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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신은 죽었다- 니체의 철학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8.05.13|조회수191 목록 댓글 1

유럽 문명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신은 죽었다'

플라토닉 삼각관계로 맺어진 루 살로메와 파울 레, 니체(왼쪽부터. 1882년)

 

 

니체의 할아버지는 카톨릭교의 주교에 해당하는 루터 교회의 감독관이었으며, 아버지 칼 루드비히 니체는 작은 마을의 목사였다. 어머니 프란치스카 윌러는 루터 교회 목사의 딸이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이 일종의 반항처럼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또 다른 전기적 해설은 니체가 가풍에 충실한 아이였으며, 아버지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보였다고 진술한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은 어린 니체에게 충격을 주었고, 니체의 여정이 유사아버지를 찾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가령, 니체와 바그너의 기묘한 관계를 상징적인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은 죽었다.”라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공격이나 논박이 아니라 서구의 지성사를 꿰뚫는 선언인 동시에 유럽 문명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것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즐거운 학문>에서 신의 죽음을 설명하는 한 대목을 음미해 보자. “사람들은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그의 그림자를 동굴에서 보여주었다.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그림자를.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이 지금 상태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신의 그림자가 떠도는 동굴들은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그림자 역시 정복해야만 한다.” 니체의 이 말은 그가 특정한 종교를 공격하려 했던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니체의 개인사적 스캔들로 가장 유명한 것은 바젤 대학의 동료였던 철학자 파울 레와 그가 소개한 루 살로메와의 삼각관계이다. 레는 살로메에게 청혼을 했지만 거절 당하고, 플라토닉한 삼각관계를 형성하자는 살로메의 요청에 따라 니체를 끌어들이게 된다. 그런데, 니체가 살로메에게 청혼을 하면서 이들의 삼각관계는 종결이 된다.

 

이들의 사연은 호사가들의 재밋거리로 자주 거론되면서, 여러 작품과 상상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스탠포드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인 어빈 얄롬이 쓴 소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는 살로메가 니체를 위해 프로이트의 스승인 브로이어 박사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실제로 만난 적이 없지만, 이 소설은 허구를 통해 니체를 정신 분석해 보는 흥미로운 상상의 소설이다).

기존 가치와 관습을 뒤바꾸려고 했던 '망치로 철학하기'

 

20세기의 뛰어난 철학자인 들뢰즈는 니체에 관한 저작 <니체와 철학>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철학에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분명, 현대 철학은 대부분 니체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니체가 원했던 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20세기 니체의 영향력은 철학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이들에 의해 전유되었다. 개인적으로 니체를 다룬 흥미로운 책들로는, 영국의 소설가로 잘 알려진 아이리스 머독이 쓴 <니체>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조르주 바타유가 쓴 <니체에 관하여>, 피에르 클로소프스키가 쓴 <니체와 악순환> 등을 들 수 있다. 이 저자들은 단순한 철학자가 아니라 소설을 비롯해서 다양하게 글을 썼던 인물들이었다.

 

영감에 의한 글쓰기를 본보인 니체의 책은 수많은 저자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것은 관습을 뒤흔들고, 새로운 가치를 도입하는 니체의 호소력에서 비롯된다. 니체의 저작 중 <우상의 황혼> 부제가 ‘망치로 철학하기’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니체는 기존 가치를 전도하여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기를 바랐다.

 

물론, 그가 사용한 ‘영원회귀’, ‘위버멘쉬’, ‘힘에의 의지’와 같은 사유의 언어는 손쉽게 잡히는 개념은 아니다. 그가 사용한 방법론인 고고학과 계보학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에 의해 이어지기는 했지만 니체는 체계적인 글을 쓰는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아포리즘’과 같은 경구 스타일의 문장을 쓰거나 파편적인 글쓰기를 시도한 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했다. 이러한 스타일 때문에 니체는 종종 오해를 받아왔지만, 그 덕분에 지금도 새로운 이해를 기다리는 인물이 되었다.

 

 니체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책은 일종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사람을 보라>였다. 그는 이 책을 완성한 후 두 달 만에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생이 좀 더 가벼워지기를 갈망하면서,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써 내려갔다. “나를 이해했는가?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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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유토피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5.13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한 의미가 파시스즘을옹호한다는 사상으로 이해하는건 전도된 주장이 아닐까요?
    생과 삶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주장한 것이 어찌 파시스트와 연결하려는건지...

    [출처] 신은 죽었다- 니체의 철학 (잃어버린 철학을 찾아서) |작성자 goodstat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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