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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고려청자는 태양숭배시대의 '해항아리'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8.06.01|조회수190 목록 댓글 0

 

고려청자는 태양숭배시대의 '해항아리'

- 고려청자 매병은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태양 이미지 -

 

 

*고려청자 (국보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고려청자는 본래 신라청자였다. 신라후기부터 청자는 존재했다. 고려청자의 모양이 그렇듯이 신라인들은 그들의 '신라청자'를 그냥 생활품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달항아리처럼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신을 모신 그릇이었다. 달항아리가 있다면 해항아리도 있어야 한다.

 

고려청자는 기능적으로 무엇을 담기보다는 상징적이며 무언가 제사용 제기와 같은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인다. 고분에서 출토되는 고대인들의 그릇들은 먹는 그릇의 의미보다는 신에게 바치는 제기(祭器)의 의미가 강했다. 그렇게 볼 때 고려청자의 모양은 어떤 신에 대한 이미지를 담은 상징성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필자의 이 글은 세계적으로 우리 민족 예술의 정예라고 할 고려청자 특히 위가 둥글고 아래가 가는 매병 스타일의 고려청자의 신화적 이미지와 그 문화적 상징의 근원을 고찰하는 글이 될 것이다.  

 

고려청자의 명칭은 사실 후대적인 것이다. 신라청자라고 해도 어딘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도자기의 자기(磁器)라는 한자 말보다 더 토속적인 우리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달항아리'라는 말을 한자로 백자대호(白磁大壺)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보듯이 고려청자 매병은 신라의 태양숭배사상을 담은 '해 항아리'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태양숭배사상은 고려청자 매병 이미지 그 자체에서 증거들을 찾아낼 수 있다.

 

고려청자 가운데 '달항아리'는 달을 닮아 있다. 달처럼 둥글게 하고 주로 흰 색에 가깝게 만든다. 달항아리가 있다면 '해항아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매병 고려청자가 둥근 해를 닮아 있지는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왜 해를 닮았다고 필자가 주장하고 있을까? 그것은 수평선에 떠오르는 해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고려청자'의 모양인 매병 스타일 청자는 그 아래쪽이 가늘고 위쪽은 둥근 모양은 바다 위에서 떠오르는 아침해의 솟는 모양을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특별한 이미지이다.  

 

신화적으로 해와 달은 그 숭상에서 떠 있는 위치가 달랐다는 것을 필자는 구분한다. 달은 중천에 뜬 달을 숭상했다. 반면에 해는 떠오르는 솟는해를 숭상했다. 달은 그래서 한가위나 대보름처럼 중천에 뜬 보름달에 크게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달 항아리'는 중천에 뜬 둥근 보름달처럼 만든 것이다.

 

 

*달항아리 (보물 1437호 白磁大壺)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한자 표기로는 ‘백자대호(白磁大壺, 백자 큰 항아리)이지만 이러한 청자는 '달항아리'로 잘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 사용하는 말이 오히려 더 오래되었으며 신화적인 배경이 있다. 해와 달은 <삼국유사>에서 보여주듯 신라의 해와 달의 신화적 배경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적 현실적 이름으로 백자대호라는 식으로 바꾼 것이다. 도자기의 도자처럼 항아리의 '항'도 한자말일 수도 있으나 항아리가 보다 제격의 오래된 우리말이다.

 

왜 항아리에 달 이미지가 들어가야 했을까?

 

그것은 신화적으로 달에 대한 숭배가 항아리에 달을 담고자 하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결과이다. '달을 딴다'는 말은 과일처럼 따는 의미보다 그것을 닮게 한다(딴다)는 의미가 더 깊은 뜻일 것이다. 달을 닮기 위하여 방안에 달을 가져다 놓은 느낌을 갖고 싶었던 사람들은 달 항아리에 담아 두고 싶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달항아리'라는 것이 방안에 놓이게 되었을 것이다. 이쁘다는 표현을 '달덩이 같다'고 표현하는 것은 신화적이다.

 

그런 면에서 태양숭배 문화는 '해항아리'도 만들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태양에 절하고 태양이 떠오르는 곳을 향한 숭배 의식은 지금도 남아 있는 여러 사적지들에 그 영향이 남아 있다. 해를 그대로 가슴에 간직하고 싶은 열망은 뜨거운 1천3백도 항아리 도요에서 구워내는 항아리에서 그 해를 느끼며 구워냈을 것이다. 아니 매병 청자처럼 생긴 해가 수평선에서 솟아오를 때 밤사이 바다 밑에서 불에 익는 청자를 구워내는 이미지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특히 해는 떠오르는 해는 아침에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맞이에서 모든 태양숭배사상의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다. 동짓날 토함산 석굴암에서 바라다 보이는 해중릉에서 떠오르는 해는 특히 신화적이었다. 그런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는 단지 동그란 해가 아니라 그 솟아오르는 해의 모양은 '혀의 모양'이라고 표현한 조선시대 문인의 표현 이상 길쭉하게 올라오는 고려청자 매병 모양의 항아리 모습이다.

 

당나라 시기 절강성 월주도요(浙江省 越州窯) 청자의 영향을 받은 해무리굽 청자라는 이름을 가진 9 -10세기 초기 고려시대 청자는 '해항아리'가 아니며 '달항아리'의 짝이 될 수 없다. 그 모양은 단지 중천의 뜬 해의 모습이다. 수평선에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해항아리'로서 우리의 '고려청자 매병'과는 달리 '해무리굽'이라는 칭호 자체가 태양숭배에 대한 그 어떤 정신사적인 근거가 없이 그 모양으로만 이름이 지어졌을 뿐이다.   

 

*해무리굽(일휘문굽) 청자와 해무리굽백자

龍仁西里高麗白磁窯 고려시대 / 사진 문화재청

 

 

*해무리굽 청자의 밑면

9세기 중국산 浙江省 越州窯

 

*해무리굽 청자의 옆면

9세기 중국산 浙江省 越州窯

 

우리의 '해 항아리'는 분명 둥근 해가 아닌  '솟아오르는 해 모양'을 '따서 만든'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고려청자를 다시 보았다.

 

공식명칭이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이라 표현한 것은 도자기 무늬와 모양에만 국한하여 표현한 이름이다. 그 배경은 전혀 무시된 명칭으로서 너무나 비예술적이고 비신화적이고 반심미감적 이름이다. 필자는 이 대표적인 국보 '고려청자'의 본래 이름은 '해항아리'였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최초의 고려청자의 이미지 기원을 설하는 주장이 될 것이다.

 

단지 '달항아리'가 있었으니 그에 상대적인 칭호를 찾아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매병 고려청자의 그 모양에서 태양숭배시대의 해맞이 즉 '해오름' 이미지를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록문화의 문헌으로 증명하기에는 우리의 역사 사료가 나무나 멸실되었고 그 어떤 신라 태양숭배 문화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들이 미약할 뿐이다. 이럴 때에 이미지 대조는 대단히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첫째, 고려청자의 모양은 아침에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해의 모습이다.  아래쪽은 가늘고 위로 올라가 둥근 고려청자의 모양을 매병(梅甁)이라고 한다. 그것은 매화 봉오리처럼 생겼다는 것보다 오히려 "아가리가 좁고 어깨는 넓으며 밑이 홀쭉하게 생긴 병" 모양을 매병이라고 한데서 그렇게 칭하고 있다.

 

이러한 매병 칭호는 신라때의 칭호가 아닌 '매란국죽' 사군자를 숭상하던 유교적 조선시대 영향을 받은 칭호일 뿐이다.

 

일출을 바다에서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수평선에 솟아오르는 해의 모양은 둥근 상부에 아랫쪽이 허리처럼 늘씬해지는 해돋이의 모양이 바다에서 인절미처럼 쭉 늘어져 올라오는 모습은 가히 해가 사람의 모습처럼 솟아오르는 느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해오름은 매병 청자를 닮아 있다. 고려청자가 해돋는 모양을 이미지화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 이름도 '해 항아리'고 바른 표현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려청자 (국보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해 항아리'라고 불러야 바른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해가 솟아오르는 이미지는 청자로 만들어 해를 담아두고 싶은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한 태양숭배 의식은 고려청자(신라청자) 그대로 표현된 '해 항아리'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한가지 더 청자 매병이 해항아리인 것은 그 모양이 남성의 심볼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평선에 떠오르는 해의 모습을 닮은 해항아리는 그 주둥이가 달항아리에 비하여 아주 좁다는 점이 눈에 띈다. 달항아리는 여성적 둔부 이미지라면 해항아리는 남성적 심볼의 솟아오르는 이미지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

 

고려청자 매병의 아래 바닥 부분이 약간 넓게 한 것 또한 바다에서 솟는 해의 수평선에 닿는 부분의 약간 넓은 부분을 닮게 한 것이다. 

 

두번째로 태양숭배시대의 '해항아리'의 의미를 고려청자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운학(雲鶴) 문양에서 볼 수 있다.

 

도자기에 왜 구름이며 학일까? 이것은 해가 솟아오를 때의 구름과 학을 그린 것이다. 운학이 해와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라고 하는 사람이 그래도 있다면, 화투장 1월 광에서 해와 학은 그대로 짝이 되어 있는 것을 알 것이다.

 

화투의 1월은 설날의 해맞이 태양숭배시대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화투의 다섯가지 오광의 '光'은 모두 해와 달을 의미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월의 송학과 해의 그림이 들어간 1월광은 새해 햇빛의 '光'이다. 이러한 전통은 고려청자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세번째로 고려청자에는 이와같은 해의 빛(光)이 문양으로 들어 있다. 운학(雲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려청자의 상단부 둥근 입구는 햇빛을 그려넣고 있다. 아래에 국보 고려청자의 위쪽 문양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중앙의 둥근 입구는 해가 들어오는 구멍이고 사방으로 퍼지는 햇빛이 묘사되어 있지 않는가.  

 

 

 

  *태양숭배의 광경이 그려진 것이 고려청자.

  빛나는 해를 중심으로 운학(雲鶴)이 온 하늘을 날고 있는 상서로운 광경을 

  그려넣고 있다. '해(日出) 항아리' 또는 '日出 단지'로 칭해야 할 것이다.

 

네번째로 왜 고려청자가 '청자' 즉 '푸른 항아리'인가. 그것은 해가 바다에서 솟아올라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을 그리는 하늘의 분위기이다. 

 

다섯째. 고려청자 매병의 아래쪽 바닥의 문양은 해가 솟아오르는 수평선의 파도 문양이다.  일월오악도 바다 물결모양과 같은 파도 문양이다. 파도 위에서 솟아오르는 해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항아리'에 대한 느낌은 필자만이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고전 중에 해돋이를 묘사한 유일한 해돋이 기행문인 의유당 남씨의 <동명일기>는 한글로 되어 있다. 태양의 여신이 솟아오르는 것을 여인의 감성으로 기록한 <동명일기>는 비록 조선시대 기록이지만, 그녀의 한글 필체 속에 섬세히 그려져 있는 영감과 감성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해돋이의 신성한 이미지를 '항아리'에 묘사하고 있다는데서 필자는 고려청자 매병이 분명한 '해 항아리'라는 판단하며 주장한다. [의유당 관북 유람 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의 <동명일기 東溟日記>의 해돋는 광경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로 하며, 항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左右)로 뛰놀며,

    황홀(恍惚)히 번득여 양목(兩目)이 어즐하며, 붉은 기운이 명랑(明朗)하여 첫

    홍색을 헤앗고, 천중(天中)에 쟁반 같은 것이 수렛바퀴 같하야 물 속으로

    치밀어 받치듯이 올라붙으며, 항, 독 같은 기운이 스러지고, 처음 붉어 

    겉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혀처로 드리워 물 속에 풍덩 빠지는 듯싶으더라.

    일색(日色)이 조요(照耀)하며 물결에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일광(日光)이

    청랑(淸朗)하니, 만고천하(萬古天下)에 그런 장관은 대두(對頭)할 데 없을

    듯하더라.

 

    짐작에 처음 백지 반 장만치 붉은 기운은 그 속에서 해 장차 나려고 우리어

    그리 붉고, 그 회오리밤 같은 것은 진짓 일색을 빠혀 내니 우리온 기운이 차차

    가새며, 독 같고 항 같은 것은 일색이 모딜이 고온 고로, 보는 사람의

    안력(眼力)이 황홀(恍惚)하여 도모지 헛기운인 듯싶은지라.

 

                                                  <동명일기 東溟日記>

 

위의 원문에서 하일라이트를 한 것은 필자가 표시한 것이다. 필자의 오랜 '태양숭배 시대' 추적은 의유당 남씨의 <동명일기>의 위의 부분에서 커다란 영감을 받았다. 흔히 우리는 학교에서 <동명일기>를 배울 때 해돋는 모습이 '소의 혀처럼 드리워'라는 부분에서 해돋는 모습이 '혀'의 이미지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 크게 들어온 부분은 위의 문장에서 '항과 독'이라는 부분이다.

 

항, 독 같은 기운이 스러지고, 처음 붉어 겉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혀처로 드리워 물 속에 풍덩 빠지는 듯싶으더라. .... 독 같고 항 같은 것은 일색이 모딜이 고온 고로, 보는 사람의 안력(眼力)이 황홀(恍惚)하여 도모지 헛기운인 듯싶은지라.

 

해돋는 모습은 둥근 것이 아니었다. 소의 혀처럼 길고 또 특히 항아리나 독과 같아 그 모양이 아주 곱다고 표현하고 있다. 필자의 글 <고려청자 매병은 해항아리>라는 글에서 우리의 청자 백자 도자기에서 '달항아리'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려청자 매병은 '해항아리' 이미지를 본딴 것이었음을 매병을 구성하는 여러 특징의 사실들을 바탕으로 증면한 바 있다. 고려청자 매병은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우리의 전통 도자기이다. 그것은 불교시대를 대변한 것이 아닌 태양숭배 시대의 해돋는 모습을 형상화한 예술임을 필자는 주장한다. 의유당 남씨 부인의 한글 해돋이 기행문 <동명일기>는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의유당 남씨는 사실상 유교시대인 조선시대의 선비의 아내로서 비록 춤은 추지 않았지만,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해돋이 굿의 무당처럼 그녀의 마음은 감동과 영감의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해 항아리'로서 국보 68호 고려청자의 한자 명칭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은 그 이름 자체가 보여주는 모든 것이 태양숭배시대의 이미지를 증명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한자문화의 문화재 감정사의 감정적 이름이 아닌 본래의 신화적 이름을 되찾아서 '해(日出) 항아리' 또는 '日出 단지'로 칭해야 할 것이다.

 

동짓날(작은 설) 솟는 해는 석굴암 본존불의 방향에도 영향을 주었을 정도로 '부처님도 맞이해야 하는 해'로서 종교적이었다. 그래서 태양의 여신을 항아리에 담아 두는 이른바 '삼신단지' 또는 '성주단지' 같은 것으로 '해항아리' 즉 고려청자의 본래의 모습이며 그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신라와 삼국시대의 태양숭배 문화는 더 근원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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