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조상들은 이미 3천 년 전에 세계최고의 정밀과학과 수학을 상징하는 나노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 당시에 우리조상은 세계 최고의 초정밀기술을 가지고 인류 문명을 선도했음을 실체로서 웅변하는 유물이 있다.
다음 구리거울의 사진은 기원전 4세기 무렵 청동기시대에 만든 국보 제141호로 이른바 ‘다뉴세문경’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우리조상들이 세계 최고수준의 정밀기술로 만든 것이다.
[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 지름 21.2㎝ ]
오늘날 최첨단의 과학시대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주철제조 기술을 따라 할 수가 없다.
이 다뉴세문경 제작 방법의 비밀을 풀기 위해 지금껏 수차례 복원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이 구리거울은 초기의 철기시대에 유행한 청동거울이라고 한다.
‘다뉴’란 끈으로 묶을 수 있는 고리가 여러 개 달려 있다는 뜻으로, 거울 뒷면에 달려 있는 고리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세문’은 이 문양이 정밀하다는 뜻에서 붙은 것으로, 거울 뒷면에는 직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문양을 새겼다.
이 다뉴세문경의 사용처는 아직 정확하게 증명하지 못하고, 단지 얼굴을 비추는 거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고 무슨 주술적인 제사나 의례활동 하는데 사용된 도구라고 짐작한다.
아직 우리과학계나 역사 전문가들, 고고학자들의 수준이 함양미달인 것은 분명하지만 반드시 지혜수준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학문시스템상의 왜곡된 상태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원래 우리 족속들은 머리좋기로 유명하니...
아무튼 기원전 4세기경인 초기 철기시대에 제조된 청동거울로 뒷면에는 이 거울을 멜 수 있는 고리가 2~3개 있다.
이 구리거울은 중국 동북 지방과 러시아 연해주를 비롯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국보인 이 구리거울의 비밀은 무엇보다도 새겨진 문양의 정교함에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것이 지름이 21.2㎝에 불과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좁은 공간에 무려 1만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이 새겨져 있다.
21cm에 불과한 원내에 깊이 0.7mm, 폭 0.22mm로 구성된 1만 3000개 이상의 선과 원이 새겨져 있는데, 선의 굵기는 머리카락보다도 가늘다.
현대의 컴퓨터기술로도 재현이 불가능한 이런 청동거울을 기원전 4세기경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여전히 신비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은 불과 0.3㎜에 불과한데다, 원과 직선이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 최고의 숙련된 제도사가 확대경과 초정밀 제도 기구의 도움을 받아 그린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육안과 도구에 의존해서 이처럼 정교한 문양을 그렸다는 것 때문에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전문가는 후대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위조논란까지 일고 있다.
이 제작방법의 비밀을 풀기위해 지금껏 수차례 복원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을 정도다.
과학자 이종호 박사는 저서 ‘한국 7대 불가사의’에서 거울 안에 0.3㎜ 간격으로 가는 선 1만3천개를 기하학적 규칙성을 고려해 화려하게 새겨 넣었는데, 이 기술은 확대경과 정밀한 제도 기구를 갖춘 현대의 주조기술로도 만들기 어렵다며 다뉴세문경을 ‘불가사의’로 손꼽기도 했다.
또 놀라운 점은, 그것이 거푸집에 청동을 부어 만든 것인데, 도안이 아무리 정밀하더라도 그 도안을 바탕으로 주물을 떠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주물기술이 필요하다.
주물기술에 문제가 있을 경우, 도안의 정교함이 희생되어 최종적으로 만들어낸 거울이 도안과 같은 수준의 정밀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거푸집이 출토된 적이 없기 때문에 거푸집의 재질과 형태는 더욱 더 신비한 수수께끼에 휩싸여 있었다.
또, 구리거울의 합금기술은 당시 최고의 기술로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청동기는 구리·주석·아연의 합금인데, 고조선의 것은 중국 것보다 아연 성분이 많다고 한다. 이는 고조선의 합금기술이 가장 우수하다는 증거가 된다고 한다.
비등점이 다른 아연·청동 합금은 고도의 합금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고조선보다 훨씬 뒤인 한나라 때에야 나타나게 된다.
제철기술도 마찬가지이다. 철은 탄소 함유량에 따라 연철·선철·강철로 구분한다.
탄소가 많은 선철이 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것은 서기14세기경 이후이고, 선철에서 강철을 얻는 제련방법도 대략 이때부터 사용된다.
그 전에 사용했던 강철은 연철을 단조하여 얻었다. 그런데 고조선 사람들은 기원전 수백 년 전에 연철과 선철을 제련하고 강철도 제련하여 사용했다.
이는 철에 대한 지식과 가공 기술이 매우 높았음을 말해 준다.
한편, 이 구리거울의 제작의 비밀을 푸는 관건은 주석과 구리의 비율, 거푸집의 재질, 문양제도방법 등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우선, 이 구리거울은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매우 이상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중요한 것은 주석 함유량이 많을수록 거울의 반사율이 높아지지만, 주석 함유량이 일정비율을 초과하면 인장강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작은 충격만으로도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이 거울의 구리와 주석비율은 65.7:34.3으로 다른 나라 것에 비해 주석 함유량이 높은 편이고, 제작당시 거울면의 빛깔은 은백색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엄청난 문양을 그려 넣었는가 하는 점이다.
21cm의 원안에 무려 1만3000여개의 선과 100여개의 동심원을 0.3㎜ 간격으로 어떻게 그려냈는지는 가장 큰 관심거리이다.
또, 원의 반지름 분포가 동일한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길이 안에 무려 20개의 바늘을 박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초정밀기계의 도움 없이 어떻게 그 기구를 만들어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확대경이나 초정밀의 제도기구의 도움 없이 어떻게 그처럼 복잡한 문양을 그려냈는지도 미지수의 영역으로 남아있으며, 대부분은 수학적인 설명이 결여된 상상력의 수준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구리거울의 복원에 도전했던 한 장인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라고 하면서 그 정밀한 제작기술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위대한 유물은 분석할수록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낸다.
이 구리거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비밀을 간직한 채 현대인들에게 지속적인 찬탄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과연 왜 지름이 21㎝에 불과한 동판에 그토록 현대최첨단의 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정교한 문양을 새겨 놓았을까 하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그 문양을 새기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과 공이 바쳐진 것이다.
왜, 만3천개의 직선과 100개의 원을 수놓았을까?
그러한 문양의 개수를 정하고 실제로 신기에 가까운 작업을 하여 정교하게 새겨 놓는 데서도, 어떠한 의미 없이 대충 하지 않았을 것임을 쉽게 짐작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연고와 사연이나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구리거울 그자체가 일종의 피라미드이고 금척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도형을 체계화 한 것이 수학이고, 이를 세상에 적용한 것이 바로 철학이다.
구리거울 안의 도형은 분명하게 원방각의 도형이 새겨진 것이다.
초고대사회의 모든 인류는 이른바 우주만물의 원형인 ‘원방각의 우주관’이 공유되고 있었다고 하였다.
기원전 1000년 전에 주비산경이 등장하였다는 것만 보아도 확실한 증거가 된다.
물론, 서양의 경우, 플라톤도 삼각형의 기하학으로 마름모와 사각형 그리고 원의 그림표를 작성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으로 우리의 민족은 이미 일만 년 전부터 환인과 환웅, 그리고 단군의 시대가 있었다고 하며, 그 때에 통치철학이 아주 간단한 81자의 천부경에 담겨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천부경이란 무엇인가?
천부경은 우리민족이 처음 시작하는 시기부터 구전으로 이어져 전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환웅의 시대에 비로소 천부경은 구리거울에 새겨지고, 환웅과 단군이 강론을 할 때 가지고 나왔다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특히 태백일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 한웅천황께서 제천단에 나가실 때에는 엄중한 여러 가지 제도예법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천부경을 거울에 새겨 신하 중에 풍백이 받들고 나간다.”
위의 글에서 언급된 천부경은 현재에는 81자의 한문으로 된 것으로, 만일에 이를 경전이라고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최초이며, 가장 초 미니의 경전이 된다.
천부경은 우주만물의 변화와 이치를 황금비의 구구단의 수로 파악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정도로 추측하고 있다.
이 천부경의 내용을 도형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구리거울이라는 의미이다.
구리거울의 삼각형과 원의 문양은 바로 천부경의 세계관을 나타낸다는 것이라 해도 틀림이 없다.
그러나 천부경의 81자의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재로서는 전문적인 기관에서 연구된 바가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천부경의 놀라운 점은 주비산경의 원방각의 원리를 제공한다는 점과 피라미드의 황금비의 원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천부경의 81자의 글자 자체가 황금비의 구구단이라고 하는 점이다.
우주만물의 이치를 원주율의 구구단으로 환산해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100개의 원은 삼라만상의 근본을 상징한다고 볼 수가 있다.
단군신화에서도 나오는 100일 동안이라는 개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100의 수를 곱하기 하게 되면 1만이 되는데 이는 100의 환산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1만3천의 선의 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3의 수는 황금비의 등비관계에서 전체를 의미하고, 다시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구리거울은 그자체가 원주율의 황금비의 상징이며, 우주나 자연을 황금비의 수로 정확히 계산하였다는 점을 잘 나타낸다.
고조선 시대는 원방각의 세계관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제도의 운영은 물론이고, 개개인의 실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응용하였는데, 이를 수학적으로 등식화한 것이 바로 1만3천개의 선과 100개의 동심원이라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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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세문경(多紐細汶鏡)은 고리(紐(뉴))가 여러개이고 세세한 무늬가 있는 청동거울을 뜻한다.
다뉴세문경은 한반도, 만주, 연해주, 일본에서 발견되는 청동 거울.
중국에서도 청동거울이 많이 발견되지만
세문경(細汶鏡) 즉 세세한 무늬가 있는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즉 다뉴세문경은 [한반도-만주] 즉 고대한국의 중심영역에서 생겨나서
연해주, 일본등으로 전파되었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은 한국의 여러 다뉴세문경 중 하나로
1971년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한국의 다뉴세문경은 위 것 이외에도 여러 개가 있다.
고조선의 다뉴세문경 - 전북 완주 갈동유적
기사
초현대적 기하학적 무늬가 감탄스럽다 하겠다.
마치 현대 작품인 것 같다.
최소한 2천수백년 이상 전 작품들이라는 게 믿기 힘들 정도.
[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 지름 21.2㎝ : 충남 논산 출토 ]
위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의 특징은 불과 지름 21㎝ 정도 되는 크기 안에
0.3㎜ 간격으로 무려 가는 선 약 1만3000개를 새겨넣었다는 데 있다.
0.3㎜ 간격
가는 선 약 1만3000개
세문경은 한국 특산품이기 때문에 여러차례 현대기술로 복원을 시도했으나
아직도 복원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마치 고려청자를 아직도 제대로는 복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다 하겠다.

[ 잔줄무늬 거울 (다뉴세문경) - 국보 141호 ]
초현대식 기술로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저 작품을
그 옛날 어떻게 만들었나 하는 것이 현대 과학계의 숙제 중 하나라 하겠다.
다뉴세문경은 금속을 깍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주물로 떠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것.
충남 논산과 전북 완주에서 발견된 위 3개의 다뉴세문경을 보면
모두 무늬가 중심축에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이것은 혹시 지구가 중심축에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닌가.
그 옛날 고대한국 사람들이 지구가 기울어져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너무 속단하지는 말자.
손바닥만한 면적에다가 0.3미리 간격으로
무려 1만 3천개나 되는 선을 만든 사람들이다.
그것도 파서 만든 것이 아니라 주물로 떠서 만들었고
지금의 첨단 현대기술로도 복원을 못하고 있다.
긴 시간과 넓은 공간 속에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은 너무나 많지 않을까.
중국 설화에 '초가지붕만한 거북이 등껍데기'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현대 고생물학자들의 얘기가
지금의 황해(서해)가 1만여년 전만 해도 대평원(육지)였고
'황소만한 거북이'가 기어다녔다고 한다.
1만년전 멸종되었다는 맘모스도 지금의 코끼리 보다 몇배 더 크듯이.
지금의 황해(서해) 바다 속에는 '자동차만한 거북이 등껍데기'가 아직도 묻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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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독특한 금관일 것이다.찬란한 순금 금관에 수없이 매달린 조그만 원형의 금판 구슬들은 미동에도 반짝이고 함께 매달린 비취색 곡옥들은 신비감을 더한다.이 신비한 신라 금관의 곡옥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박물관에 전시된 신라금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취빛의 구부러진 옥.이 곡옥이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허구를 증명하는 단초가 되고 있다.
일본 왕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세 가지 보물 가운데 하나인 곡옥이 한반도에서 전래된 유물이고 특히 이 곡옥이 중국인들이 동이라고 불렀던 동북아시아 문화의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점은 곡옥문화 한가운데 우리 민족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한반도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빗살무늬 토기가 대량으로 발견된 중국 요서지방의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곡옥의 기원을 알려줄 만한 옥룡들이 발견된 점,무엇보다 이 같은 곡옥이 중국의 중원지방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홍산문화 유적지의 봉분들이 중국의 분묘양식과는 달리 한반도의 적석총, 즉 돌무지무덤 형태를 띠고 있고 진주 남강 일대에서 홍산문화 유적과 유사한 곡옥과 돌무지무덤 형태를 띠고 있고 진주 남강 일대에서 홍산문화 유적과 유사한 곡옥과 돌무지무덤 그리고 빗살무늬 토기 등이 발견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홍산문화 유적지 일대가 중국과는 다른 별개의 문화를 이뤘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를 중국역사의 한 갈래로 보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동북아시아 곡옥문화의 중심에 우리 민족이 있음이 증명되면서 다시 한 번 그 허구성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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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우
안녕하세요
삼종의 신기(三種の神器)라고 해서 일본의 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가 가지고 있던 거울, 검, 곡옥을 가리키며 일본 역대 덴노(天皇)에게 계승되어 온 보물입니다.
팔지경(八咫鏡 야타노카가미) : 고서기와 일본서기에서는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동굴로 숨어버려 온 세상이 어두워졌을 때 이 거울로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흥미를 끌어 밖으로 다시 나오게 했고 그로 인해 세상이 다시 밝아졌다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현재는 이세의 코우타이 신궁(皇大神宮)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팔척경구옥(八尺瓊勾玉 야사카니노마가타마) :
구슬로 만든 큰 곡옥으로 아마테라스가 동굴로 숨었을 때 타마노오야노미코토(玉祖命 : 일본 신화의 신)가 만들어 팔지경과 함께 아마테라스를 동굴 밖으로 나오게 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황궁의 어소에 안치되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천총운검(天叢雲剣 야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 :
초치검(草薙剣 쿠사나기노츠루기)이라고도 불리우며 고서기와 일본서기에서는 일본의 신 중 하나인 스사노오(スサノオ)가 물리친 야마타노오로치(ヤマタノオロチ)의 꼬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다른 기록에는 오로치를 퇴치하는데 사용된 칼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아츠다 신궁(熱田神宮)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일본 천왕 3대 보물
-삼종신기(일본어: 三種の神器 산슈노 진기/미쿠사노 카무다가라[*])는 아마테라스로부터 하사받아 현재까지 일본 천황에 의해 계승된다는 세 가지의 물건입니다.
-쿠사나기의 칼{草薙劍(초치검), 쿠사나기노 츠루기}과 야타의 거울{八咫鏡(팔지경), 야타노 카가미}, 야사카니의 굽은 구슬{八尺瓊曲玉(팔척경곡옥), 야사카니노 마가타마}을 말한다. 삼종신기는 천황조차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을 만큼 귀중한 물건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심하는 학자들도 있다. 또한 그 시대의 첨단 가전제품을 일컫는 말로도 쓰이는데, 1950년대의 삼종신기는 흑백 텔레비전과 냉장고, 세탁기였다.
단노우라 해전과 삼종신기
겐랴쿠 2년(주에이 4년, 1185년) 3월 24일, 단노우라 해전에서 다이라노 도키코가 삼종신기 중 신새(곡옥)와 보검을 몸에 지니고, 안토쿠 천황을 안은 채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때 곡옥은 회수할 수 있었지만, 보검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거울과 곡옥은 4월 25일에 교토로 돌아왔다.
출처(위키백과:삼종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