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의 문자의 기원에 관하여 환단고서 태백일사의 신시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는데 이는 시사 하는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문자의 발명한 분이 신지혁덕이라는 직책을 가진 분이라는 것이고 문자의 본을 사슴의 형상에 찾았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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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域留記 神市紀 云
桓雄天皇 又 復命神誌赫德 作書契 蓋神誌氏 世掌主命之職 專掌出納 獻替之務 而只憑喉舌 曾無文字 記存之法 一日 出衆狩獵 忽見驚起 一隻牝鹿 彎弓欲射 旋失其? 乃四處搜探 遍過山野 至平沙處 始見足印
亂鎖 向方自明 乃 俯首沈吟 旋復 猛惺 曰 記存之法 惟如斯而已夫 惟如斯而已夫 是日 罷獵而歸 反復審思
廣察萬象 不多日 悟得創成文字 是爲 太古文字之始矣 但 後世年代邈遠 而太古文字 沒泯不存 抑亦 其組成也
猶有不便 而然歟 亦嘗聞 南海島郎河里之溪谷 及 鏡珀湖先春嶺 與夫烏蘇里以外 岩石之間 時或 有發見彫刻 非梵非篆 人莫能曉 此 非神誌氏之所作古字歟 於是 而更恨 吾國之未振 吾族之不强也
桓雄天皇 又 復命神誌赫德 作書契 蓋神誌氏 世掌主命之職 專掌出納獻替之務 而只憑喉舌 曾無文字記存之法
환웅천황은 또 신지혁덕에게 명하여 문자(作書契, 글을 작성하는 방법)를 만들도록 하였다. 무릇(蓋, 발어사) 신지씨는 대대로 천황의 명령을 전하는 직책(主命)과 출납헌체(出納獻替)의 임무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단지 말(입, 혀)로만 전달할 뿐이었다(而只憑喉舌).
일찍이 문자로 기록을 보존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曾無文字記存之法).
一日 出衆狩獵 忽見驚起一隻牝鹿 彎弓欲射旋 失其? 乃四處搜探 遍過山野 至平沙處 始見足印亂鎖 向方自明 乃俯首沈吟 旋復 猛惺 曰 記存之法 惟如斯而已夫 惟如斯而已夫
어느 날(一日) (환웅천황이) 무리들과 함께 여러 사람들과 사냥을 나갔었는데(出衆狩獵), 갑자기 놀라 뛰는 암컷 사슴 한 마리를 보았다(忽見驚起一隻牝鹿). 활시위에 화살을 걸려고 돌아보는 사이에(彎弓欲射旋) 사슴의 종적을 잃어버렸다(失其?).
이에 사방을 수탐하면서(乃四處搜探) 산과 들을 지나(遍過山野) 평평한 모래밭에 이르렀다(至平沙處). 비로소 이리저리 얽힌 발자국을 발견하였다(始見足印亂鎖).
그러나 향방은 분명하였다(向方自明). 이에 머리 숙여 곰곰이 이리저리 살피다(乃俯首沈吟 旋復) 소리 질러 말하기를(猛惺 曰)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記存之法)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다!(惟如斯而已夫, 惟如斯而已夫)"라고 하였다.
是日 罷獵而歸 反復審思 廣察萬象 不多日 悟得創成文字 是爲 太古文字之始矣
이날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환웅천황과 신지혁덕은) 반복하여 생각에 잠겼고(反復審思), 만물의 여러 가지 형상을 다양하게 관찰하였다(廣察萬象).
얼마 후(不多日) 드디어 문자를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였다(悟得創成文字). 이것이(是爲) 태고문자의 효시이다(太古文字之始矣).
但 後世年代邈遠 而太古文字 沒泯不存 抑亦其組成也 猶有不便 而然歟 亦嘗聞 南海島郎河里之溪谷 及 鏡珀湖先春嶺與夫 烏蘇里以外岩石之間 時或 有發見彫刻 非梵非篆 人莫能曉 此 非神誌氏之所作古字歟 於是 而更恨 吾國之未振 吾族之不强也
다만(但) 후세의 연대가 너무 멀고도 멀어(後世年代邈遠) 태고문자는 없어져 존재하지 않으며(而太古文字 沒泯不存 ). 또한 그 조성 방법을 알 수가 없다(抑亦其組成也). 아마도 사용하기에 불편하여(猶有不便) 자연스럽게 없어진 듯하다(而然歟).
또 예부터 들리는 바에 의하면(亦嘗聞) 남해도 낭하리 계곡(南海島郎河里之溪谷)과 경박호 선춘령 주변(鏡珀湖先春嶺與夫)의 오소리강(동만주 흑룡강 지류)외곽 암석 사이(烏蘇里以外岩石之間)에서 언젠가(時或) 암각된 글씨가 발견되었는데(有發見彫刻), 그 글씨는 범자도 아니고 전자도 아니어서(非梵非篆) 사람들은 그 글자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人莫能曉)고 한다. 이것이(此) 신지씨가 만든 고문자가 아닌가 한다(非神誌氏之所作古字歟).
이런 것을 보면(於是) 새삼 한탄스러운데(而更恨), 이는 우리나라가 아직 떨치지 못하고(吾國之未振), 우리 민족이 아직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吾族之不强也).
- 태백일사의 저자 이맥(李陌)의 독백. 국력이 쇄진된 고려말, 조선초의 실상을 한탄한 것으로 우리 것을 우리 것이라 주장하지 못하는 억울한 심정을 표출한 내용임.
<참고> : 진역유기(震域留記)/ 규원사화(揆園史話)
진역유기(震域留記)라는 책은 고려 시대까지는 실전했던 사서(史徐)로 추정된다.
이 책은 조선왕조 세조대에 이르러 불온서적 수거령이 내려지면서 모두 수거되어 일부는 왕실도서관인 서운관에 보관되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저자 이맥(李陌)은 연산군에게 직언을 하다 유배된 후 중종 때 다시 찬수관(撰修官, 纂修官)으로 임명되었다. 찬수관에 임명된 이맥은 서운관에 보관된 여러 불온서적(비서(秘書))을 읽을 기회가 있었고, 그 내용들을 모아 태백일사를 저술하였다. 18세기에 쓰인 북애노인의 규원사화(揆園史話)는 진역유기의 대본이라 할 수 있다.
규원사화(揆園史話)는 조선 숙종 2년(AD 1675)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지은 역사책이다. 고조선의 47대 단군의 재위 기간과 치적을 기록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귀증본 629번 고서 2105-1번으로 등록되어 있다. 1972년 이가원, 손보기, 임창순 등 고서심사의원 3명이 심의한 결과 숙종 때 쓰여진 진본임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이병도, 조인성, 송찬식 등은 이 책에 나오는 '천주(天主)'라는 말이 천도교도들이 사용하는 종교적 용어이기 때문에 이 책은 천도교인들에 의해 조작된 위서(僞書)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천주(天主)라는 말은 고대 민속신앙에서 말하는 삼신(三神)을 뜻하는 말로 천제(天帝, 하늘님)를 의미하는 말이다. 규원사화(揆園史話)를 위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민속신앙이 삼신사상(三神, 天主, 天帝)에서 나왔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규원사화의 서문에 의하면 북애노인은 자신이 과거에 낙방한 뒤 전국을 방랑하던 중 어느 산골에서 발견한 <진역유기(震域遊記)>를 바탕으로 규원사화를 쓰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진역유기(震域遊記)>는 고려말 청평(淸平) 이명(李茗)이 발해의 역사서인 <조대기(朝代記)>를 참고하여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진역유기(震域留記)와 진역유기(震域遊記)
이맥(李陌)이 인용한 진역유기(震域留記)와 이명(李茗)이 저술하였다는 진역유기(震域遊記)는 한글로는 그 차이점이 없으나 한자로는 유(留, 머물을 유)와 유(遊, 놀 유)가 다르다.
하지만 그 의미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머물다와 노닐다(논다)는 말의 의미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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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이면 사슴을 본으로 하여 문자를 만들고
사슴의 어떠한 형상을 본으로 하여 문자를 만들었을까
우선사슴이라고 하는 동물의 성격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슴이란 동물이 과연 그당시에 어디에서 서식하는 것이고 어떠한 형상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탐구의 첫출발이라고 봅니다.
사슴은 사슴과에 딸린 포유동물로, 몸길이 90~130cm, 몸높이 40~230cm, 몸무게 10~800kg으로 종에 따라 차이가 심하다. 뿔은 수컷에서만 볼 수 있고, 몸 색깔은 여름에는 갈색에 흰 점이 있으며, 겨울에는 짙은 갈색에 누르스름하고 희끗희끗한 점이 있다.
암컷은 수컷보다 약간 작고 뿔이 없다. 주로 봄에서 여름에는 나무의 싹이나 잎, 가을에는 도토리나 상수리 등의 열매를 먹고, 겨울이 되면 두릅나무 · 분비나무 · 참나무 등의 껍질을 먹는다. 위는 4개로 되새김질을 하며 제3위가 크고 쓸개는 없다.
번식 지역은 삼림 · 습지 · 황무지 · 사막 · 툰드라 등 매우 다양하며, 지대가 급경사진 곳보다 평탄하고 숨을 곳이 많은 곳을 좋아한다. 보통 무리를 지어 살며, 무리는 암컷과 새끼들로 구성되고, 수컷은 수컷끼리 무리를 짓는다. 10~11월이 되면 수컷끼리 싸움을 하여 이긴 쪽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살며, 암컷은 5~6월경에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사슴은 위험을 느끼면 궁둥이에 난 흰 털을 세워 같은 무리에게 위험을 알린다.
사슴의 뿔은 해마다 빠져 새것으로 바뀌고 가지가 벌어져 아름다운 모양을 이룬다.
어린 사슴의 뿔은 작은 혹 같고, 여러 해 자란 사슴의 뿔은 가지가 많다.
또한 이 뿔은 녹용이라 하여 한약재로 쓰이고, 뿔로 장식품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 나라 · 중국 ·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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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과 뿔의 의미와 상징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 사슴!
노천명 시인의 사슴에서 사슴은
백석이라고 한다..^^
백석을 사슴으로 메타포한 시를 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슴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슴의 전통적 의미를 보자면,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소중히 생각하는 신의있고 의리있는 동물이다.
실제로 사슴은 무리생활을 하며 살아가는데...
자리를 옮겨 무리가 이동할때 마다 낙오된 사슴이 있는지
확인하며 전체를 생각하는 동료애가 깊다고 한다.

온순한 성격과 동료애를 소중히 생각하는 신의, 의리있는 모습의 사슴...
그래서 인지,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
선녀와 나뭇꾼에서도 사슴은 그런 의미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나뭇꾼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자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나뭇꾼에게 선녀를 만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야기를 보면...
옛날부터 사슴은 약속을 잘 지키며 의리있는 동물이었던것 같다.

서양에서는 사슴을 순수한 영혼을 가진 동물로 보았다.
그래서 사슴의 뿔을 하늘과 교감할 수 있는
신성한 동물로도 보는 해석을 했다.
사슴 뿔을 보면 하늘로 뻗쳐오르는 모양 같기도 하니...말이 되는 상상력같다.

또 수사슴의 뿔은 자라났다가도 떨어지고, 또 솟아나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보고 재탄생과 영생,
혹은 장수 등으로 의미를 해석해서 받아들였다.
아마 이런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십장생의 한 동물로서 입지를 굳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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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아이들에게 루돌프 사슴뿔을 만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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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발에 대하여
(삼하
22:34)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다윗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신다고 하였는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여서
자기의 높은 곳에
세우신다고 노래로 고백하였는가?
다급한 상황에서 황급히 도망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윗의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다.
실제 몸으로, 바위를
건너뛰며,
깎아지른 절벽 사이사이, 한 발만
아차하면 죽을 수도 있는
암벽을
기어오르내리며, 숨을 곳을 찾아보았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다윗의 발을, 암사슴의
발 같게 하셨는가!
위기에 처했던 다윗의 심경과 처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원수가 아주 가까이까지 접근하여 추격해 오고 있다.
다윗에게
전처럼 물맷돌이 있은들, 골리앗을 상대하듯이,
자신을
추격해오는 자를, 결코 때려 상하게 할 수는 없는 인물이
다윗의 원수요, 장인이기도
했던 사울 왕이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필요한 것은 물매와 물맷돌이
아니었다.
활과 화살도 아니요, 칼과 같은
전쟁 무기가 아닐 수밖에...
다윗은 날개가 있어서 비둘기처럼 차라리 날아오르기를 희망했다.
(시
55:4-8)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셀라)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전쟁
용사였을지라도, 다윗에게는 작은 비둘기에게라도 있는,
그런 날개가 없으니, 날개
대신 “사슴 발”이
절실히 필요했다.
거친 바위땅을 아랑곳하지 않는,
유연한 도약, 날쌘
점프 Jump가 필요했다.
어떻게 날렵한
뜀뛰기를 하는 사슴 발이 될 수 있을까?
틀림없이 다윗은 암사슴 발이
진짜 부러웠을 거고,
사슴
발 Jump의
그 기술을 배우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최근에 걸을 때 척추 뼈에 입혀지는
충격 완충내지 충격 흡수 코일 Coil이
신발 뒤꿈치에 부착된
특수 운동화를 맘먹고 산 일이
있었다.
신발이 무거워서 자주 신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도움을 받고 있었고, 피곤감이 확실히 덜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는
성경적으로 또한 인문학적으로 사슴 발을 연구했다.
사슴 발바닥 앞쪽은 스펀지 sponge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마찰을 줄이고, 미끄럼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1. 미끄럼 방지 사슴 발바닥, 넘어짐 방지 사슴 발바닥 징
사슴의 앞쪽 발바닥 가장자리는 징과도 같다.
사슴에게는, 발을 디뎠을 때 빙 둘러 바닥 표면을 꽉 잡아,
다리의 지탱력을 유지시켜주는 단단한 징 부분이 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발뒤꿈치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드신 사슴 발은 부드러움과
단단함의 조화를 함께 지녔다는 게 놀랍다.
말하자면
미끄러져서도 안 되고, 넘어져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슴의 발바닥 뒤꿈치는 동시에 매우 단단하다.
또한 사슴의 뒷발은 정확히
앞쪽 두 발이 디뎌 찍은 자리를 겹쳐서 밟는다.
2. 굽이 갈라진 쪽발의 사슴, 민첩한 움직임
구약에서 사슴 발은 굽이 갈라져 쪽발이고 되새김질을 하므로
부정한 동물이 아니었다(신
12:15; 레 11:3).
굽이 갈라진 쪽발이란, 가려서(골라서 선택적으로) 땅을 짚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굽이 갈라져 쪽발이다, 그
말은, 세상과 분리되어 사는 분별력,
아무 데나 발을 내디뎌 첨벙 함부로 음행과 불결 속에
빠져들지 않는 주의력과 민첩함을 가진 발을 말한다.
사슴은 보통 2.4m 정도를 거뜬히 뛰어넘는다고 한다.
나는 캐나다 야산에서 사슴이 얼마나 통나무와 철조망
울타리 fence를 잘 뛰어넘는가를 심심찮게 보았었다.
그것이 바위와 바위 사이일 때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뜀 기술이 된다.
그러나 진정한
힘과 보호는 하나님께 있다.
지금도 북한의 지하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호와 권능으로
“셀라하마느곳” (분리의
바위)를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감히 색출하는 작업에 혈안이 되어있는 악의
세력들,
그 권력자들 내부에 자체적으로 무슨 일이 발생하기를 기도하자.
사울 왕처럼 스스로 꺾여서 물러가고 스스로 붕괴되기를 기도하자.
(삼상
23:28) “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Selahammalekoth= (마온 광야에 있는) 분리하는
험한 바위
3. 밟은 땅 밑을 바라보는 시간보다
그 다음 뛸 곳을 더 많이 바라보는 사슴 발
나는 하박국을 새로 읽으면서 하박국의 심정이 되어보았다.
땅을 바라보든지, 세상
형편을 바라보면 울분이 터지고 암울하다.
악이 왜 성행하는가? 왜
이토록 사탄숭배의 죄악이 난무하는가?
공의의 하나님은 왜 악인들을 참아주고 내버려두시는가?
뛰어오르는 사슴
발은 자기 발밑을 오래 살필 겨를이 없다.
그러므로 사슴처럼 매일 직면하는 고난에서 완전히 눈을 떼라.
어려움을 보지 마라. 앞만 바라보고
다음 걸음을 모색하라.
고난을
주목하면 넘어지고야 말리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
다음
스텝에서 하나님께서 힘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뛰어라.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내가 어찌 다 알랴?
알려고도 하지 말고, 보려고도 하지 말고,
힘이
되신 하나님만 믿고 소망이 되신 하나님만 바라보라.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단념하지 말고,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라.
인류의 역사를, 창조주
대大 주재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바로 이 시대, 내
거처에서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시도록,
하나님의 행사와 긍휼이 나타나시도록 기도만
하라.
힘들어도 지금은 참아라. 고난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뼛속
깊이 썩어 들어오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한 분으로
즐거워하라.
나는 이런 적용메모를 내 성경 귀퉁이에 적어 넣었다.
무화과 열매나 포도 열매, 감람
열매나, 밭의 농작물이
다 없어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모든 눈에 보이는 물질이 없고, 힘이
없고, 기쁨이 없고,
소망이 없고, 또
실제로 입에 넣을 양식이 전혀 없다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전능자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면 그건 된 것이다.
하나님만이 즐거움이고 하나님만이 기쁨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내 구원과 내 힘이 되시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즐거워하리라.
나는
암사슴의 발처럼 고난의 땅과 미끄러운 바위를
뛰어오르고 또
장벽을 뛰어넘을 것이다.
할렐루야~!
내 기도
노래가 나를 높이 날아오르게 하나니,
다윗의 등불을 켜신 하나님은 오늘도 내 등불도 켜시리라.
질문과 절망, 고난
속에서 기도 노래를 마침내 배운 하박국처럼
이 시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 노래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성경은 이전에 읽을 때 다르고, 또
다시 읽을 때 감격이 다르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는) 전쟁의 용사이시다! 하박국은
그렇게 노래한다.
하나님은 전쟁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영광이 의로 빛나신다!
하나님의
권능이 일어나신다! 땅이 진동하고 산이 무너진다!
하나님의
임재 권능과 영광으로 창수가 넘치고 바다 물결이 들끓어 오른다!
하나님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시다.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악인과 악의 세력을 모두 징벌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신다!
우리의 기쁨은 현실적, 물질적, 말초
신경적, 감정적, 혼魂적,
자기
본위의 만족과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삶의 여러 문제와 갈등, 고난과 절망, 심지어는 죽음
가운데서도
도리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그분을 알아가는 그 “영광의
지식”에
우리의
참된 기쁨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고 찬송한다.
나는 다윗의 기도 속으로 들어가 나도 다윗의 시로 노래해본다.
착한 초식동물 사슴은 들짐승에게 쫓기고, 때로는
포수의 총에 맞는 비운의 사냥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의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품 안에서 힘을 얻고 또 얻어 시온의 대로에 선다.
마침내는 하나님이 높이시고 하나님께서 원수를 굴복시키신다.
그것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의로운 전쟁이기도 하다.
(삼하
22:36-39)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내 발이 미끄러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 멸하였사오며
그들을 무찌르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그들을 무찔러
전멸시켰더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고 능히 일어나지 못하였나이다.”
무엇이
없고, 무엇이 없으며, 또
무엇 무엇이 없고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진짜 걱정되고, 무엇이
또 절망인가?
하나님이 정녕히 우리의 힘이 되심을 오늘도
주의 믿음의 백성들과 함께 나는 노래한다.
주께서 우리의 발을 암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우리의 능력과 한계를 뛰어넘어 가장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신다!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만나 뵈올 천국 소망이 항상 우리를 설레게
한다.
우리에게 암사슴 발을 주시는 기도 노래가 그래서 더욱 즐겁다.
(아 8:14)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