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는 신 또는 신성한 존재와 합일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모든 주요종교는 신비주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힌두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신비주의적으로 해석된다.
요가파는 전통적인 힌두교 안에서 선택된 소수가 신비스러운 통찰의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신비주의적 기법에서 유래했다.
티베트의 금강승 또는 탄트라 불교의 구도자들은 신비적인 무아지경에 이르기 위해서 요가 훈련과 함께 절대주의적 철학과 고도의 상징언어를 사용한다.
유대교 신비주의는 성서의 예언자들이 본 환상과 성서시대 이후 유대교의 묵시적인 상상에 근거하고 있다.
14세기에는 신비주의가 교회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단 종파 안에서도 번성했다.
중세 이래 서양철학사는 우주적 신비주의라는 말로 특징지을 수 있는 사상 형태를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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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는 신(神) 또는 신성한 존재(초월적인 영역)와 합일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모든 주요종교는 신비주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미개한 문화의 주술, 입신(入神) 의식, 세속적인 체험에서도 그 형태를 유추할 수 있다.
종종 신비주의를 신학과 비교하여 우위에 두고 신비주의가 신학보다 더 진정하거나 더 주관적이며 열정적이라고 말하지만, 이 두 형태의 종교사상은 사실상 병존해왔고, 한 개인이 2가지를 모두 지니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다고 해서 신비주의 체험을 신학적인 의미로 환원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신비주의 신학자들은 신학적인 분석으로는, 신비스러운 정화(淨化)·계시·합일이라는 독특한 체험을 파악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고 분명히 주장해왔다.
그와는 정반대로 신비주의 신학자들은 신학적인 분석으로는, 신비스러운 정화(淨化)·계시·합일이라는 독특한 체험을 파악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고 분명히 주장해왔다.
힌두교는 다른 어느 종교보다 신비주의적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힌두교 의식 가운데 최고의 이상으로 꼽히는 고행자, 즉 목사(mokṣa : '해방'이라는 뜻)는 힌두교를 배우는 서구인들뿐만 아니라 힌두교 스승들에게도 커다란 주목을 받아왔다.
요가파 (Yoga)는 전통적인 힌두교 안에서 선택된 소수가 신비스러운 통찰의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신비주의적 기법에서 유래했다
요가의 기법들은 개인의 영혼이 삼라만상에 흡수된다는 힌두교의 전통적인 교리들과 결합되었다. 힌두교 신비주의의 어떤 형태들은 신자 개인을 힌두교 만신전(萬神殿)의 특정한 신(예를 들면 크리슈나 또는 시바)과 연결시켜주는 등 보다 개인적인 성향을 띠는 데 반해, 몇몇 형태들은 궁극적 실재의 은총과 권능에 의지하고 굴복하는 수동적인 신앙을 강조한다.
여러 불교 종파의 공통점은 명상과 관조를 열반(涅槃 Nirvāṇa)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 강조하는 데 있지만, 그 목표에 대해서는 각기 해석이 다르다.
불교 신비주의에 관한 논의에서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은 금강승(金剛乘 Vajrayāna) 과 선종(禪宗 Zen)이다,
티베트의 금강승 또는 탄트라 불교의 구도자들은 신비적인 무아지경(無我之境)에 이르기 위해서 요가 훈련과 함께 절대주의적 철학과 고도의 상징언어(象徵言語)를 사용한다.
한편 일본의 선종은 실천을 강조하고 사실적인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불교의 신비주의 지류와 정반대되는 지류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종파도 일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얻는 부분적인 지식 대신 반야(般若 prajñā : '지혜'라는 뜻)를 얻기 위해 수련하므로 신비주의 사상과 유사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슬람교의 수피 (Ṣūfῑ) 신비주의는 선불교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대답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종교적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 등장했으며, 기존의 이슬람교에 있던 신비주의 체험을 중시하는 일부 추세를 받아들였다.
수피 신비주의는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다른 여러 신비주의와 마찬가지로 신랑과 신부 사이의 도취와 사랑에 관한 은유를 사용하여 스스로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은 알라의 절대주권과 초월성을 강조하는 〈코란〉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은 언어였다. 그러나 수피 신비주의는 〈코란〉이 가르치는 '전적 타자'인 신이 너무 엄격하고 멀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신의 실재에 더욱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유대교 신비주의는 성서의 예언자들이 본 환상과 성서시대 이후 유대교의 묵시적인 상상에 근거하고 있다.
유대교 신비주의의 가장 독특하고 심오한 주제는 카발라 (Kabbala)인데, 이것은 13세기말경에 등장한 세페르하 조하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 책은 하느님의 권능과 내면적 삶을 묘사했으며, 참된 신자는 원칙들과 계명들을 지킴으로써 인간이 천진한 순수성에서 타락함에 따라 무너지고 만 데베쿠트(devequt :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라는 뜻)를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이후의 유대교 신비주의는 이러한 조하르의 지혜를 토대로 꾸준히 발전되어갔다.
특히 하시디즘 형태는 일반인들의 신앙과 의식에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마르틴 부버의 사상에서 하시디즘은 그리스도교 사상뿐만 아니라 세속적 사상의 형태로 나온다.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적인 양상들은 동방 신비주의를 특징짓는 체계화된 비의(秘儀) 전승들과는 대조적으로 회상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사물의 본질이 본래 악함을 강조한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이단인 영지주의 (靈知主義)는 조로아스터교와 그외 동방 종교들의 정서를 지니고 있었던 유대교 신비주의의 잔재였던 것 같다. 바울로와 요한의 종파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등장하는 '그리스도-신비주의'가 그 뿌리를 이룬다.
3~4세기의 사막 교부들은 신비스러운 계시를 받기 위해 의식(意識)을 갖고 준비하며 실천하는 은둔 전통을 세워놓았다.
아우구스티노가 신플라톤주의의 주제들과 표상(表象)에서 이끌어낸 '존재의 신성한 빛'은 후대 신비주의자들의 문헌에서 강하게 등장했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에게서 절정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에크하르트는 이상세계의 실재를 강조했으며, 만물을 하느님의 존재 안에서 영원히 존속하는 요소들로 보았다.
14세기에는 신비주의가 교회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단 종파 안에서도 번성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그뒤 여러 시대의 특징을 이루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개신교 신비주의자들은 신적인 빛 또는 불꽃이 보편적인 원칙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인정하는데, 이것은 가톨릭의 가르침에 함축되어 있다.
중세 이래의 서양철학사는 우주적 신비주의(cosmic mysticism)라는 말로 가장 잘 특징지을 수 있는 사상 형태를 포함하고 있다.
베네딕트 드 스피노자는 이 사상형태를 철학의 체계로써 가장 명석하게 설명했고,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문학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불합리하고 위협적인 것처럼 보이는 우주 안에서 인간은 자신을 우주의 구조와 목적에 일치시킴으로써, 그리고 존경과 헌신의 태도를 수양함으로써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고대의 서사시에서부터 윌리엄 블레이크, 스테판 말라르메, 그밖의 시인들의 시(詩)에 이르기까지 문학작품에 잘 나타나 있는 신비주의적 환상과 문학적 영감의 관계가 미학(美學)의 주요쟁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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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란 무엇인가?
신비주의를 소개하려면 우선 그 개념을 좀 설명해야 할 것이다.
실은 신비주의라 자칭하는 것 가운데 대부분은 신비주의와 무관하다. 신비주의의 핵심은 쉽게 놓칠 수 있는데, 이런 일은 그 옹호자나 적대자 양쪽 모두에게서 자주 일어난다.
신비주의에 대한 몰이해 역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신비를 주장하지만 지극히 의식적, 의도적으로 취한 입장에 불과하거나 한낱 기적 신앙에 불과한 것이 최소한의 명료한 사상적 근거도 없이 신비주의로 내세워지곤 한다. 신비주의에 정통한 이들도 저마다의 출발점과 가치관, 그 지향하는 바와 방법적 특성 등이 서로 다른 나머지, 일치된 견해를 내지 못하고 의견이 분분하다. 신비체험과 신비에 관한 진술 및 이론이 혼동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편향되지 않은 중립적 태도로 신비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는지, 아니면 신비체험 자체를 추구하는지는 명확히 구분해야만 한다.
신비학(1975년에 벤 I. Benn은 신비주의에 관해서 세 가지 개념을 구분하자고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신비에 대한 이론적 연구인 신비학Mistologie, 실천과 훈련인 신비술Mystagogie, 그리고 신비체험 자체Mystik로 나눌 수 있다), 혹은 신비서술학에서 중요한 것은 신비체험의 과정을 묘사하는 작업이고, 그 역사와 현재에 이르는 신비체험의 발현형식들을 기술하는 일이다.
전기작가가 작품에서 묘사하는 주인공의 생애와 그 자신의 생애가 동일하지 않듯이, 신비학자를 신비체험자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사실 신비체험은 아무리 섬세하게 감정이입을 한다고 해도 묘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항상 어느 만큼의 거리와 불확실성이 있다. 관찰자로서 거리를 둘 때, 그것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신으로 가득 차enthousismos'초월적인 존재로 인해 비상非常한 인상에 압도당한 사람 대부분이 자기자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 해도 실제 접촉을 통한 심층적인 이해 역시 요구되어진다. 신비학자에 대해서는 전기작가와 마찬가지로, 작가가 대상과 내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임의의 대상을 다루며 의무적으로 작업한 따름인지 우리는 면밀히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신비학자라도 신비체험의 뜨거운 용암에 휩싸여 보지 않고서는 그 특별한 성질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다. 신비에 대한 특수한 감각, 즉 신비감각sensus mysticus이 있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계발해야 한다.
특히 신비술사는 다른 사람에게 신비한 차원을 알게 해주고 신비주의적 노정의 동반자가 돼야 하므로 더더욱 그렇다. 개인적인 이끎이 이루어지는 모든 경우가 그렇듯, 인식 도상에서나 심리치료 과정에서 그 누구도 자신이 도달한 것 이상으로 타인을 이끌어줄 수는 없다. 그렇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허다하다. 예를들면, 영적체험과 인격적 성숙을 전혀 갖추지 못했는데 그런 자질이 요구되는 과제를 떠맡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그 경우이다. 이들은 단지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인 기능적 인물일 때가 많고, 진정 자신에게 요구되는 과제를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럴 때 얼마나 사람들이 실망하는지, 일례로 오늘날 교회의 성직자들에 관해 사람들이 품고 있는 회의적 평가를 상기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기성의 거대한 교회로부터 이탈하는 수효가 크게 증가했다.
신비주의 자체 경계는 어떠한가? 신비주의는 오로지 종교적 영역에 국한된 것일까? 철학 신비주의, 역사 신비주의, 자연 신비주의 등과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또 여러 종교가 지니는 저마다의 상이한 신비주의 형태들은 서로 어떤 연관성을 갖는 것일까? - 이 같은 질문만 던져보아도 이미 신비주의라는 주제가 개별적인 학문영역의 경계를 훨씬 초월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신비유형학은 역사학이나 문헌학의 인식 수단만으로 충분한 접근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종교역사학, 종교심리학, 심층심리학, 사회학 등의 보조를 받아야만 한다.
신비(Mystik, 그리스어로는 myein. '눈과 귀와 입을 닫는다'는 의미)라는 어휘는 종교적인 근원현상을 가리키며, 절대자, 무제한자, 신神과의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접촉 체험에 기초하고 있다. 이 같은 체험과 인식의 요소들은 표현은 상이할지라도 모든 종교에 두루 퍼져 있는 것이다. 신비체험을 증명하는 다양한 기록들을 볼 때, 마음을 사로잡고 뒤흔드는 신비체험의 강렬함에는 여러 등급이 있고 또 그 과정에도 상이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비주의에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세 가지 중요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엑스터시ekstasis, 忘我로서 경계소멸, 일탈, 자아의식이 개성적인 것에서 초개성적인 것에로 개방됨을 뜻한다.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의식이었다가 정신적, 영적으로 중간적 상태로부터의 탈피가 이루어진다. 도취적인 탈아상태나 의식의 침몰을 신비적 엑스터시와 혼동해선 안된다. 왜냐하면 이때의 엑스터시란, 혼미함이 아니라 영적인 잠재력의 각성이기 때문이다.
합일enosis은 절대자, 혹은 어떤 더 높은 차원의 존재와 경이로운 느낌으로 하나가 되는 체험이다.
비존재me-on, 非存在, 非在, 非有로서 인간이 존재를 넘어서 순전한 무無에 이르는 체험을 일컫는다. 신 자체는, 어떻게 상상하든지 간에, 그 깊이에 있어서 우리가 존재와 동일시함으로써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부정의 신학theologia negativa, 否定神學'이 필요해진다. 부정의 신학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대상에 이름을 붙이기 위한 차선책이다. 여기선 유한성의 영역에서 특징과 기호를 취하는 시도 따위를 하지 않는다. '전지전능하며 가장 위대하신 분'이라는 표현처럼 최고의 존칭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인류가 종교사와 전신사를 통해 발명해낸 그 모든 명칭들은 근본적으로 '무화無化'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 가지 주개념, 즉 엑스터시, 합일, 비존재는 거시적인 방향 지침으로 도움이 될 만하다. 이 개념들을 핵으로, 신비주의를 넓게 정의한다는 취지에서 그 밖의 다른 본질적 특성들의 원을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개념의 원을 확장시켜 온갖 신비적 현상들과 아울러 초감각 심령현상들까지 포함시킨다면 신비주의 갸념은 그만큼 애매해질 것이다.
예시력, 염력, 환각, 공중부양, 성흔聖痕 등과 같은 압도적인 인상을 주는 현상들을 신비적이라 한다면, 내적 체험이야 말로 외형적인 것에 압도된 나머지, 증명할 수도,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의 위상을 잃고 고작 꾸며낸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이 영역을 탐구하는 신비학자는 자신이 주제로 삼고 있는 핵심이 비체험非體驗, Nichterfahrung으로서 정교하게 설명하거나 합리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영역 너머에 놓여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노자老子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道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개념화시킬 수 있고 사고할 수 있는 의미는 영원한 의미가 아니라고 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신에 의해 인간이 변화된 상황으로 들어가는 유일무이한 체험raptus을 강조했다. 또 신비주의자들은 예비적인 정화淨化, via purgativa와 개명開明, via illuminativa의 과정을 경험하면서 본래의 목표인 신비적 합일合一, unio mystica에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 신비주의라면 13-15c에 이르는 일반 민중어로 구사된 신비주의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지만, 신비주의는 본질적으로 특정 역사의 시기에 한정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신비주의자들은 표면적으로 여러 종교의 도그마에 구속된 듯 보여도 신학과 교구청의 지침을 뛰어넘는 초종파적인 유대감을 갖고 있다. 신비주의자들의 이 같은 성향을 통해 상이한 종교들이 내적인 일치점도 없이 손쉽게 혼합되는 제설 혼합주의(諸說 混合主義 종교, 사상 등의 혼합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신비주의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역사적 구속과 종교적, 세계관적 무지의 동굴을 단호히 박차고 나오는 초종파적 보편주의 정신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 요즘같이 서로 간의 간격이 좁아지는 이 세계에서 신비주의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시사하는 깊은 의미가 있다.
신비주의의 본질적 요소라 할만한 영적체험이 있다. 기독교 신비주의는 일방적으로 교리를 추종하지 않고 체험에 기반한 신성神聖의 인식이라는 길을 알고 있었다. 아달베르트 게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비체험은 언제나 헌신적인 내면화와 결부되어 있다. 이는 종종 무력감을 체험하는 고통스러움에서 발생된 것이다. 신비체험은, 오랜 역사를 지닌 종교들이 제의와 주도면밀한 사고체계를 통해서 혹은 교회의 제도화된 경건성으로 오히려 개인적으로 직접적인 신성체험을 가로막으면서도 막상 개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종교가 아무런 힘도 되지 못했던 그런 때였다.
오히려 영적으로 빈곤한 시대마다 위대한 신비주의자들이 나타나곤 했다. 신비주의의 발현은 결코 위기를 가중시키는 일 없이, 유럽 기독교사에서 볼 수 있듯이 기성 종교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용을 했다. 신학자 프리드리히 하일러는 이 같은 정신적 영향에 관해 다음과 같이 포괄적으로 요약한다.
신비주의의 첫 발자국은 <요한복음>에서 발견된다. <요한복음>에는 이집트-헬레니즘적 신비주의가 가볍게 가미되어 있다.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은 부드러운 내밀성을 띠게 되었다. 그노시스에서 신비주의적 관념은 바울의 구원신앙과 결합되어 병적이고 그로테스크한 혼합형식을 나타낸다.
클레멘스 폰 알렉산드리엔과 오리게네스에게서는 헬레니즘적 신비주의와 기독교적 도그마가 결합되어 하나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 철학의 요소가 발견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경건성은 신플라톤주의의 신비주의와 성서적 은총의 신앙이 결합하여 낳은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중세의 신앙에 결정적으로 각인된 위인은 아우구스티누스와 디오니지우스 아레오파기타였다.
안젤무스, 베르나르, 토마스 아퀴나스, 토파스 폰 켐펜 등이 한 인물을 더 우위에 두었다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요한네스 타울러, 카타리나 폰 게누아 등은 다른 인물을 더 중시했다는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알칸타라의 페트루스와 오수나의 프란체스코에 대한 보나벤투라의 이해에 기반해 테레사의 경건 신비주의가 만들어졌다. 후안 델 라 크루스(십자가의 성 요한), 프랑수아 드 살, 몰리노스, 마담 샹탈, 마담 기용 등이 이들의 심오한 신비체험으로부터 자양분을 얻었다. 몰리노스는 또 아르놀트와 테어스테겐의 스승이 되었다. 경건 신비주의는 신약복음서의 구세주 신앙과 베르나르파의 예수 신비주의의 결합으로 탄생되었다.
여기에 시, 공간적으로, 또 교회 밖의 영역으로부터도 아직 더 보충할 부분은 많다. 카발라('전승된 유산'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이며 유대 신비주의를 가리킴)나 샤시디즘(카발라에 근거한 유대신앙의 일종으로 18c 동유럽에서 형성되었음)으로 대표되는 유대 신비주의도 매우 중요하고 현대의 시인, 작가들과 사상가들이 신비주의에 기여한 작품들도 외면할 수 없다. 가령 로베르트 무질은 1909년에 발표된 마틴 부버의 <무아경의 고백>에 깊은 인상을 받고 '합리성과 신비, 이 두가지가 우리 시대의 축을 이룬다'고 썼다. 신비체험의 기록들은 자신의 초기 창작활동에 크게 반영시켰던 마틴 부버는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어느 시대든 커다란 단일성의 신화를 만들어낸 심오한 신비주의자들은 그 자신의 체험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단일성을 체험했고, 그 단일성으로부터 다수성으로 이행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엑스터시는 엄청난 것이 엄습해 들어와 영혼을 압도하는 식의 양상을 띠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체험은 가장 깊은 근원, 보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친숙함으로 그들에게 다가섰다. 다시 말해 엑스터시라는 말은 그들에겐 몰아대는 불길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체험은 신비주의자들로 하여금 그 사건을 동시대 사람들에게 기능적으로 보고하지 않도록 했고, 그들 자신의 생과 작품 속으로 받아들여 신비에 관한 저 오랜 신화를 새롭게 살려내고 또 글로 쓰도록 했다.
신비주의자들은 세상의 물건에 물건을 더하듯이 하지 않고, 천공의 별들에 새로운 별을 더하듯이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신비라는 신화는 환영에 불과한 것일까? 신비는 존재의 궁극적 진실의 현현이 아니었던가? 황홀한 신비체험은 세계정신의 원체험이 감각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는 귀 기울인다. 그러면서도 어느 바다의 파도소리인지를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부버가 말하는 알 수 없음이 결국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인가? 바울에 근거해 말할 수 있듯, 어두운 거울을 들여다볼 때면 적어도 부분적인 밝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프로메테우스의 오해를 범하는 게 아니라면, 이 맥락에서 신비주의자 바울의 또 다른 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깊은 경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통찰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