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그의 정치철학을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고전이 《크리톤》이다. 다수의 대중을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만이 아니라 흔히 법이 갖고 있는 두 원칙 즉 정의의 원칙과 법의 안정성 가운데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라는 대표적 논쟁을 다루고 있다.
또한 논의 과정에서 국가와 법의 관계, 계약의 의미, 더 나아가서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논쟁점이 여기저기에 숨어있다.
크리톤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에게 탈출을 권했다. 열렬한 제자인 아폴로도로스가 눈물을 흘리면서
“선생님! 당신께서 아무 죄도 없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라고 하자 그는 제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사랑하는 아폴로도로스여! 너는 내가 죄 없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보다 죄가 있어서 사형에 처해지는 것을 보기를 희망하고 있는가?”
라고 했다고 한다.
또 한번은 아내가 면회를 와서 “당신은 부당하게 사형되는 것”이라며 탈출을 권유하자 “
그러면 당신은 내가 정당하게 사형되기를 원하오?”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소크라테스도 어지간히 유머 감각이 풍부한 것 같다.
크리톤은 절친한 친구인 소크라테스가 죽으면 돈 깨나 있으면서 친구를 죽게 만들었다는 나쁜 평판을 우려해서 탈출을 설득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반박한다.
“많은 사람의 의견에 구애될 이유가 무엇인가? ··· 사실 많은 사람은 최대의 해를 끼칠 수도 있을 거야. 그렇다면 그들은 최대의 선도 이룩할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어느 쪽도 하지 못하네. 그들은 사람을 현인으로도 바보로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에 지나지 않아.”
대중은 무지하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든 별다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러니 대중의 의견을 고려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 논리대로 하면 다수 대중의 의견에 기초한 정치는 최악이다.
그래서 “자네는 한 나라에서 분별 있는 사람은 소수이고, 자네가 미쳤다고 보는 무분별한 사람은 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면 자네는 우리가 그렇게 많은 미친 사람과 함께 무사히 나라를 꾸려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라면서 민주정치에 분노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대중에게 갖고 있는 불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논리는 자연스럽게 다수 대중을 대체할 뛰어난 소수로 이어진다.
“체조 연습에 열중하고 있던 학생은 만인의 찬양과 비난과 의견을 경청해야 할까, 아니면 그가 누구든 의사 또는 체육가 한 사람의 말만 들어야 할까?”
다수 대중의 의견이 무슨 큰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극소수 전문가의 지도가 더 중요하다.
“정의와 부정, 미와 추, 선과 악의 문제에서도 우리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따르고 그 의견을 두려워해야 할까? 아니면 분별력이 있는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르고 그 의견을 두려워해야 할까?”
현재도 위의 말을 마치 소크라테스는 를라톤이 민주주주의에 반하는 엘리트주의나 귀족주의의 입장을 대변하는 발언이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해석하는 데 진실문제 정의문제는 인간의 수로 결정되는 성질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다수의 의견이란 곧 진실이라는 당시의 상대주의적인 진실론자들 소피스트의 주장과는 다른 입장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다수의 횡포라고도 할 수가 있다.
진리와 정의는 다수의 찬반투표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현령비현령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정치적이었다. 그는 소피스트들의 중우정치를 반대했다.
특히 재판이 있었던 시기, 아테네의 사회 분위기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후 위기를 맞았다.
많은 피를 흘린 것은 물론이고, 전쟁이 끝나자 스파르타의 조종을 받는 30인 참주정이 세워지면서 또다시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열리기 2년 전, 30인 참주 독재의 끔찍한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테네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다.
소크라테스는 이 쿠데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다. 반역의 주역들이 대부분 소크라테스와 가까운 사람이었다.
스파르타 편에 서서 아테네를 배신했던 알키비아데스와 30인 참주정의 지도자였고 쿠데타의 주범인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는 모두 그의 제자였다.
소크라테스는 이 부유한 귀족 청년들과 어울리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이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별로 탐탁하지 않게 여겼는데, 다분히 소크라테스의 영향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아테네 시민 입장에서는 청년들에게 그러한 영향을 미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 가장 중대한 위협이 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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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소크라테스 · 공자 · 예수 · 석가 · 마호메트를 세계의 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이 태어난 시기가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대략 기원전 4~5세기에서 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 태어나서 활동한 사람들이다.
그럼 왜 기원을 전후해 세계의 성인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태어났을까?
왜 이시에 종교적인 사상가들이 집중적으로 태어나서 활동한 것일까?
이 당시의 시대의 요청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 시기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각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노예를 당연시하는 약육강식의 고대국가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 이전에는 영토전쟁보다는 공동체의 관습이나 서로간의 이해에 근거해 사회가 운영되었다. 규모가 작고 공동체 요소가 중심이었으니 이를 통한 운영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국가는 규모나 활동영역에서 새로운 규칙 즉 법이나 제도를 비롯하여 국가라는 단위에 적합한 전혀 다른 사회구성 원리가 필요했다.
성인의 사상은 상당부분 고대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서로 다른 생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소크라테스와 관련해서 “너 자신을 알라”와 함께 가장 유명한 말이 “악법도 법이다”다.
이와 관련한 언급이 나타나는 대화편이 《크리톤》인데, 사실은 소크라테스가 직접 이렇게 말한 대목은 없다.
다만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서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어느 정도 담겨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을 쓴 대화편은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이 네 편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논증하는 장면이라면, 《크리톤》은 사형선고가 내려진 후 찾아온 크리톤이 탈출을 권하는데도 왜 그 제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지 설득하는 내용이다.
크리톤에게 반박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국가와 법의 본질을 밝힌다.
국가를 의인화하여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부모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등치시킨다.
“우리는 당신을 존재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당신의 아버지는 우리의 도움으로 당신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당신을 낳았다. ··· 나라가 노했을 때는 아버지가 노했을 때보다는 부드럽고 존경하는 태도로 달래야 하며 설득하거나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단 말인가?”
부모가 자식을 낳고 기른 것처럼 개인은 국가가 만들어내고 키운 피조물이다.
국가의 도움으로 남녀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논리를 통해 국가가 개인을 존재하게 만들었음을 논증한다.
국가가 법률로 정한 양육과 교육 아래서 비로소 자랄 수 있었다.
가정에서 부모가 하는 역할을 국가가 했으므로 자식이 부모에 속하듯 개인도 국가에 절대적으로 속해야 한다.
다음에 법을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재판을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을 경험한 자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는 우리가 그에게 명령하는 바를 행하겠다는 사실상의 계약을 맺은 것과 같네.”
라고 한다. 이어서
“소크라테스 당신은 우리(국가)와 약속 및 동의를 파기하려고 하는 것이야. 게다가 당신은 강요받거나 기만당해서 성급하게 약속한 것이 아니라 70년 동안이나 숙고할 시간을 갖고 한가하게 약속한 거야.”
라고 한다.
국가가 개인에게 법을 강제하지 않았고, 자발적 동의에 기초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성인이 되어서 국가 행정을 알게 되고 법률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국가가 싫으면 좋아하는 곳으로 재산을 갖고 떠나는 것이 허용되었음을 든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전쟁 때문에 아테네를 벗어난 일 말고는 외국이라고는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테네에 충실했다. 이는 개인이 국가와 법을 판단하도록 할 때 스스로 선택한 행위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법이란 자발적 동의와 계약에 기초한 것이므로 이제 지키는 일만 남았다. 개인과 국가, 개인과 법을 일체가 된 관계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 내용은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충돌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변론 과정에서 그는 판결에 저항할 의지를 나타냈다. 자신을 방면해주는 조건이라 하더라도
“나는 여러분보다는 신에게 복종할 것”임을 선언했다.
여기에서 “여러분보다 신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국가의 뜻에 따르기보다 신의 뜻 즉 자신이 믿고 있는 정의의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또한 자신을 방면하든 방면하지 않든 “나는 내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이해해 주십시오.
비록 내가 몇 번이고 사형당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라고 함으로써 국가가 그에게 지금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명령하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이랬던 그가 《크리톤》에서 국가의 명령이 올바르지 않더라도 개인은 따라야한다면서 법을 준수하고 국가에 복종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소크라테스의 변론》에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담겨있고, 《크리톤》에는 플라톤의 입장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확인할 수 없으니 현실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 다른 해석으로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아테네 법에 반대하면서 저항 의지를 표명한 것인데, 다만 법을 바꾸는 방식이 설득이어야 하고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법을 지키는 것만이 정의라는 생각을 《크리톤》에서 보여준 것으로 설명하는 게 가능하다.
일단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과거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소크라테스가 몸으로 보여주었다는 해석이다.
즉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설득의 ‘과정’이고, 《크리톤》은 최종적으로 설득에 실패한 상태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용을 중심으로 볼 때 후자의 해석이 한결 설득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