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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철학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8.05.05|조회수1,382 목록 댓글 2

플라톤 철학은 이데아 이론에서 출발한다.

이데아의 세계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와 다른, 이 세계의 근원적 모습을 말한다.



① 한 노예의 값으로 세운 서양 최초의 열린 학교

 

플라톤은 노예시장에 팔려나갔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자유를 얻게 된다. 그는 그의 몸값으로 낸 돈으로 아테네에 서양학교의 기초가 되는 ‘아카데미아’를 세웠다. 이곳에서는 철학뿐만 아니라 수학, 체육학이 강의되었다. 수학은 당시 철학의 한 영역이였고 기하학을 알지 못하는 자는 이 문에 들어서지 말라는 유명한 구절이 전해진다.

 

기하학

공간의 성질과 공간 안에 물체에 대한 성질을 다루는 수학의 주요 분야로 수학의 가장 오래된 분야의 하나이다.


[아카데미아

BC 387년 경 플라톤이 철학을 강의했던 곳. 아리스토델레스를 추종하는 소요학파와 구별됨

플라톤 철학의 본산으로 900여년동안 지속했다.

초창기-

플라톤과 그의 직계 제자들이 활동, 플라톤 만년 신비적 경향계승,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받아 종교적 경향을 띤 사상을 전개했다.

중기 -

회의론적 경향을 띠었고, 새로운 아카데이마는 신플라톤 학파의 일파, 즉 아테네파가 주류로 활동

말기-

AD 529년 로마황제 유스티아누스의 명령으로 다른 이교도 학교와 함께 폐교될 때 까지 신 플라톤주의와 중세 플라톤주의의 중심지였다.]



②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것들’ 의 멀고도 가까운 사이

 

플라톤은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본래의 모습인 원형을 닮으려는 모방이라고 보았다.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삼각형을 예로 들어보자.

플라톤에 의하면 아무도 완전한 삼각형을 그릴 수 없다.

 우리는 보통 삼각형의 모습을 가진 한 형태를 그릴 뿐이다.

왜냐하면 삼각형이란 내각의 합이 180도여야 하는데, 누가 내각의 합이 정확히 180도인 삼각형을 그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그려낼 수 없는 이 완벽한 삼각형이 플라톤이 말하는 원형, 즉 '이데아(idea)'이다.

 

이데아의 세계에 삼각형의 원형이 있고, 현실세계에서는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삼각형들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철학은 이데아 이론에서 출발한다.

 이데아는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낸 추측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경험적인 세계와는 별도로 떨어져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나간다.

 

이데아 세계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이 세계에 근원적 모습이다.

이 원형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 원형이 우리에게 알려진다.

 

 이데아란 그리스어의 eidos(에이도스)와 비슷한 말로 idein(이다인) 즉 ‘본다’라는 동사에서 왔다. 이에 의하면 모양이나 모습을 뜻한다.

 

예를 들어 물고기나 사슴 그리고 독수리 등은 그 모양이 다르고 성격이 다름에도 동물로 부르는 것은, 동물이라는 이데아가 있기 때문이다. 각각 제 모양을 가진 구체적인 동물들은 이 원형을 본뜨거나 원형에 해당하는 일부를 가짐으로써 동물로 분류되는 것이다.

 

또한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것들의 차이도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아름다움 그 자체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데아가 되고 아름다운 것들은 그 이데아를 닮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답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먼저 아름다움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사람’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때로는 관계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심지어는 미워질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아름다움’ 그 자체는 완벽하고 부족함이 없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그 어떤 아름다운 것도 이 아름다움을 따라잡지도 뛰어 넘지도 못한다.

 

다만 이 이데아를 향해 어느 정도 나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

 ‘아름다움’의 이데아와 ‘아름다운 것들’의 사이는 영원히 하나 되지 못하지만, 그러나 늘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가장 가깝고도 먼 관계다.

 

사랑하는 대상이 바뀌어도 사랑의 이데아는 조금도 약해지거나 달라지지 않으면서 또다시 사랑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늘 사랑을 원하게 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이데아들이 존재한다.

 아름다움의 이데아, 정의의 이데아 그리고 올바름의 이데아 등, 우리는 이데아의 세계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플라톤은 모든 이데아 중의 이데아인 ‘선의 이데아’를 말한다.

 

 선의 이데아는, 도덕적으로 우리가 흔히 선하거나 착하다고 말하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이유과 근원인 이데아란 뜻이다.

사람의 ‘존재의 이유’는 수많은 이데아 중 선의 이데아를 알고 실천하는데 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이데아를 만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 최고의 목표는 선의 이데아를 이루는데 있다.

미의 이데아나 진실의 이데아 조차도 선의 이데아를 앞서지 못하며, 선의 이데아를 통해서 완성된다. 선하지 않은 진실과 아름다움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를 그의 <국가론>에서 태양에 비유한다. 태양은 빛과 영양을 공급해 대상이 보이게 하고 만물을 자라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의 이데아는 다른 많은 이데아를 만들어내고 그들을 알게 만든다.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은 서양철학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서, 헤겔은 “철학은 비로소 플라톤에서부터 시작한다.”라고 했고, 미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모든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철학의 설명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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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에 따르면, 이데아론에서 이데아는 현상 세계 밖의 세상이며 이데아는 모든 사물의

원인이자 본질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이데아는 현실 세계의 인간에 대한 원인으로

인간의 이데아가 있기 때문에 현상 세계에 인간이 실재하는 것을 들 수 있다고 합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세계는 몇 개의 세계들로 구분되는데 이데아의 세계는 참되고 본래적인 세계이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 세계는 존재와 무의 가운데 있는 모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플라톤은 단순히 구분에 그치지 않고 참되고 본래적인 존재인 이데아적인 존재를 통해서 다른 존재들이 존재를 갖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던져진 돌은 포물선의 형태로 운동합니다. 돌의 운동 속에 포물선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돌의 움직임을 이끄는 하나의 규범과 같습니다. 기하학의 세계는 세상의 모든 것을 특징짓는 뼈대이고 그 모상인 사물 세계는 본래 세계인 이데아의 세계를 덮은 엷은 껍질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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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세계는 모두 이데아의 껍질이라는 거에요?

 

플라톤의 이데아는 쉽게 말하면 참된 진리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개념입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대신 참된 진리는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변하지 않는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입니다. 예로서 산과 강이나 바다도 긴 세월을 두고 보면 변합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변하지 않는 참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이데아라는 용어를 만든 것입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해 동굴의 비유를 예로 들었습니다.



참고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소개하겠습니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이 지하 굴에 살고 있다. 그 굴은 입구가 빛을 향해 있는데, 그 빛은 모든 동굴을 비춘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그곳에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다리와 목은 사슬에 묶여 있어서 움직일 수 없다. 단지 그들은 앞 쪽만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슬이 그렇게 묶어서 그들로 하여금 고개를 돌릴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멀리서 그들 위에 뒤쪽으로 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불과 죄수들 사이에는 높은 길이 있어서 사람이 보려고 하면 낮은 벽이 그 길을 따라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스크린 같다. 인형극 배우들이 자신들 앞에 스크린을 세워놓고 꼭두각시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인간이 보는 것은 인형극의 그림자가 보여주는 허상을 보는 것이고 그림자의 실체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림자는 우리가 이 세상에 보고 느끼는 것이고, 실체는 이데아이다.


이처럼 플라톤은 감각적 사물들로 구성된 가시적인 세계와 별도로 정신으로만 인식할 수 있는 이데아계가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이데아야말로 궁극적인 참된 실재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데아론은 물질적 요소를 중심으로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였던 그리스의 자연철학적 전통에서 벗어나 가치 중심의 형이상학적 철학의 전통을 낳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비물질적이며 항구적인 속성을 지니는 이데아가 참된 실재라고 주장함으로써 물질적 세계를 초월하는 절대적인 가치 판단의 기준과 진리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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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리를 인식의 문제로 가져옵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실재의 인식이란 이런 이유 때문에 우선적으로 먼저 우리가 ‘감각(감성)의 상태로부터 벗어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부언컨대 <더 진실한 것, 더 참된 것>을 보는 단계일 뿐인 ii)에서 i)로의 전환이 플라톤이 말한 ‘수인(여전히 감각의 포로 상태에 머물고 있는)의 인식’이라면, <진실한 것>, <참된 것>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실재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해 <더 진실한 것, 더 참된 것>은 어디까지나 실재의 상(像)들에 관한 인식의 단계에 속할 뿐이며, <진실한 것>, <참된 것>의 인식이 가능할 때 비로소 이를 실재에 관한 인식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실재를 태양에 가탁

중요한 것은 플라톤에게 있어 ‘실재’는 어쨌건 인공물(인위적 제작물)이 아니라 비록 ‘추상화된’ 형태로나마 자연물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데 있으며, 이 자연물로서의 실재의 인식은 반드시 태양이 매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상식적이면서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언급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실재의 인식을 태양의 빛에 의지하고, 실재의 상, 즉 이미지의 인식을 인공적 불빛에 위탁함으로써 이 둘의 존재(-가치) 및 위상을 플라톤이 전략적으로나마 구분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돌려 말해, 태양이 존재하는 곳에 실재하는 것들이 있고, 실재하는 것들이 펼쳐진 곳에서 비로소 철학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때문에 지성의 산물인 철학은 실재를 떠나서는 탐구될 수 없으며, 모름지기 철학자라면 바로 이 두 경계를 오가며 '사색(spéculation)'을 해야 하는 것이다.

3. 빛과 혼을 찾아서

플라톤에게 있어 실재는 감각(특히 시각)과 지성의 경계, 즉 동굴 안과 동굴 밖이 구분되는 바로 그 지점에 존재한다는 해석이 일차적으로 가능할 것 같다. 실재가 이렇게 두 세계의 경계‘에’ 존재한다는 것은 플라톤에게 있어서 실재는 절반은 감각의 영역에 속해 있고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지성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란 뜻일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두 번째 해석이다.

실재가 감각의 영역에 절반, 지성의 영역에 절반 속해 있다는 것을 돌려 말하면 실재 자체가 반감각적(mi-sensible)이고 반지성적(mi-intelligible)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즉 실재는 우리의 감각에 의해 단지 그 외양(apparence, 단순한 의미에서의 image)이 파악되는 수준에 그칠 수도 있지만, 지성에 의해 그 심층(essence)이 파악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참된 인식, 참된 배움(교육)은 철저히 감각의 단계로부터 혼(psychē)의 보살핌과 지성의 고양이 수반될 때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고양된 지성을 겸비한 자라야(다시 말해, ‘철학자’) 비로소 실재를 향한(실재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플라톤의 실재관이다. 부언컨대, 플라톤에게 있어 지성만이 우리가 실재의 상(像)이 부리는 요술에 휘둘리는 감각과 달리 실재 자체를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현실 세계에서 태양에 유일하게 비유 가능한, 혼(즉, 빛)이다.

4. 이데아가 진리와 지성의 제공자

플라톤의 철학 체계 내에서 볼 때, 이데아가 가시계의 빛이자 주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앞서도 언급했듯, 이데아가 단지 가시계의 주인에 그치지 않고 종국적으로는 가지계의 주인으로서 진리와 지성의 제공자라는 점에 있다. 그가 517b-c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선(善)의 이데아를 옳음(眞)과 아름다움(美)의 원인(aitia)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이데아(빛/태양)의 인식이 플라톤에게 있어 사유의 최종 목표라는 것을 우리에게 재삼 확인시켜 준다.

이렇듯 플라톤에게 있어 眞․善․美는 모두 같은 근원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데, 그 뿌리가 다름 아닌 이데아이다. 이데아는 자연계에서 비유 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유일하게 태양이고, 바로 이 태양이 “플라톤의 ‘이데아’”를 대변(métaphoriser)하고 있다.

5. 이데아를 버려라

‘이데아(즉 “신이 만든 의자”)’라는 이념을 우리가 버릴 수만 있다면 문제는 아주 간단히 풀린다. 다시 말해, 이데아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나는 내가 현재 사용 중인 의자에 대해 그것의 이상적 원형이 어떤 형태이며, 본질은 무엇이며, 원제작자가 누군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이유가 말끔히 사라진다. 또 실제 그렇게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의자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요인즉, 그러므로 직접적 실재, 이-세계와는 ‘다른’ 이념적 허구의 세계를 플라톤주의자들처럼 하나의 성상(聖像)과도 같이 추앙하거나 숭배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6. 현대 철학자의 교훈-자신의 이념의 동굴로부터 벗어나야

플라톤의 요구대로 우리는 우리의 지성을 더욱 개발하고 혼의 등정을 통해 감각의 동굴세계로부터도 탈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의 요구를 아무런 의심 없이 진리처럼 믿어버리는, 다시 말해 그의 ‘이념화된 동굴’의 노예가 되는 것으로부터도 역시 벗어나야 한다. 우리에게 유형․무형의 동굴은 도처에 산재해 있다. 물리적 동굴만이 동굴이 아니다. 이념의 동굴, 편견의 동굴이 우리 곁엔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보면 동굴은 단지 플라톤의 ‘비유’로 그치고 말 문제는 아닌 듯하다. 제 형태로 우리를 진실로부터 가리는 동굴, 우리는 바로 그것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그 동굴이 만일 우리 인간이 자신의 ‘현실’에 바로 서는 것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 이념의 동굴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굴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된 자(l'homme libéré des cavernes)란 이 동굴 또는 저 동굴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아니라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자이다. <~로부터의> 해방은 단지 ‘그것’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남 이상의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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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이데아에 관하여 몇 가지를 정리하여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플라톤의 이데아의 정의

플라톤의 '이데아'(Idea)는 개별적인 사물에 질서를 형성하고, 동일한 것을 개념화하며, 상이한 것을 구별 짓게 하는 보편자에 해당합니다.

즉, 눈에 보이는 현상계(현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질서와 개념 및 구별을 부여하는 변치 않는 영원한' 진실재'(보편자)를 의미합니다.


2. 플라톤 철학의 주 요소

플라톤은 이데아(Idea)을, 자신의 철학적 근간을 형성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의 주 요소로 삼고,

세상은 영원불멸한 이데아의 세계와, 변화 생멸하는 감각의 세계인 현상계로 구성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3. 이데아의 성격(기능)


우선, 현 세상(현상계)의 모든 만물은 영원한 이데아의 그림자(영상, 모사)에 불과하므로,

시공을 초월한 실재의 세계에 있는 이데아를 따라 가야합니다.

왜냐하면 진실재인 이데아는 현 세상의 모든 것을 비추고 인도하는 원형이자 초월적이며 보편적인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육의 궁극적 이상 역시, 세상만물(현상계)의 원형인 이데아 세계를 기억(상기)하여, 본래의 형상 이데아를 회복하는 데에 두어야 합니다.


또한, 가치론적으로 볼 때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로서, 세상의 모든 대상으로 하여금 이데아 자신을 목적으로 설정하여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월성을 띤 이데아는 초월적 실재이므로 경험적 지각이 아닌, 이성적 사유와 직관에 의해서만 인식이 가능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4. 결론

플라톤은 이데아를 설정하여 이원론적 세계관의 주 요소로 삼고, 교육, 이상 국가, 정의 등 모든 철학적 개념과 사상들을 도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데아는 뚜렷한 어떤 원리나 준거를 제시해 주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그가 역설한, 세상 만물이 영원한 이데아를 바라보며 모방 접근해 감으로써, 세상 만물을 형성하는 각각(개별자)은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는 주장은,

직관론의 오류 즉, 감각 경험 추리의 사유 작용 없이, 대상을 직접 파악하여 그 존재의 실재를 주장하는 문제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데아에 기초한 그의 철학은 교육(고전적 자유교육, 직업 교육의 경시), 수재 중심의 엘리트주의, 능력주의, 사회중심적 교육관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 대학원에서 교육철학 전공 당시, 플라톤의 교육사상을 잠시 접한 경험으로 전문 용어들을 배제하고 보다 쉽게 정리했지만, 다소 난해한 설명도 있을 것이니 해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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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유토피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5.05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천부경의 본에 대한 설명이고 해석입니다.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본질이 있으며 그래서 존재는 그 본질의 파생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본질은 불변하는 것이고 이 외에는 가변적인 데 그 변화하는 정도도 역시 차별적인 겁니다.
    모든 존재는 가변과 비가변의 비율로 존재하는 것인데 이를 이분법적으로 보자면 불변하는 본질적인 것 즉 이데아와 그 파생자로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 작성자유토피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5.05 플라톤의 이데아이론은 천부경의 본질론 즉 성수론을 가장 잘 설명한 것입니다.
    즉 모든 존재는 하나의 존재가 그안에 파생자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과 모든 존재는 1과 4 그리고 7의 수로 구분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성수의 관점으로 세상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하나사상이라고하는 파므메니데스의 상상을 포용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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