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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철학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생애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8.05.12|조회수566 목록 댓글 0

너무 짧은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름대로 요약한겁니다.

 

 

소크라테스 [Socrates B.C 469~ B.C 399]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활동분야는 철학이다.

 

 

<소크라테스의 사상>

 

1. 지(知), 덕(德), 복(福) 합일설(合一說)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보편적 진리 즉 참다운 진리는 그것을 실천하는데 비로소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참으로 알고서는 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에 있어서 지(知)는 곧 덕(德)이다.
지(知) 없이는 덕(德)이 있을 수 없고 덕으로 나타나지 않는 지식은 참다운 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지와 덕이 합일하면 만족이 생기는 것이니 그것이 곧 진정한 행복이다. 그러므로 지와 덕이 합일이 된다.
그는 이세가지 중에서도 지(知)를 가장 중요시하였다. 즉, 모든 덕은 지식의 특수한 표현이라고 하였다. 덕은 이성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속하는 것으로 가르침을 받고 연습함으로써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아테네 시민의 무지를 자각시키고 타락한 양심을 각성시키고 그들에게 덕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확신하였다.

 

2. 영혼불멸설(靈魂不滅說)

 

소크라테스는 영혼 불멸설을 확신하였다. 그리하여 죽음은 어쩌면 가장 좋은 행운일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플라톤의 [변명]에 의하면 그는 고소를 당하여 재판관들 앞에서 그가 잘못하면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금도 주저함 없이 소신을 당당하게 피력하였다.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고 나서도 죽으러 가는 자기자신이 살기 위하여 그 자리를 떠나는 재판관들보다도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의 생애>

 

조각가인 아버지와 산파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시민이었다.
그는 전생애를 통하여 단 한번도 아테네를 떠나 본일일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조국을 위하여 세번 전장에 나간일 외에는
그의나이35세 때쯤부터 70세때까지 즉 아테네 청년들을 부패타락시키며,
국가의 신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을 이끌어 들인다는 죄목하에
사형을 당하게 되었을 때까지
3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시내의 거리를 돌아 다니면서 소위 청년의 애인임을
자처해가며,누구를 막론하고,특히 청년들과 담론하였고,
그의 독특한 대화법을 통하여 서로의 무지를 고백하고는, 서로가 협조하여
진리탐구의 길을 떠나자고권하는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테네 출생. 아버지 소프로니스코스는 석조가(石彫家)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으며, 어머니 파이나레테는 산파술(産婆術)에 능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린시절부터 <다이몬(禁止)의 소리>를 듣고, 자주 깊은 몰아상태를 경험하는 <신들린 사람>이었다고 한다. 만년에는 후대에 악처로 유명했던 크산티페와 결혼하였다.

 펠로폰네소스전쟁 때에 중장보병(重裝步兵)으로 북그리스로 2회, 보이오티아로 1회 종군했으며, 이때 훌륭한 인내심과 침착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종군 때 이외에는 아테네를 떠난 적이 없었는데, 젊은 시절에는 자연에 대한 연구도 했으나 그 뒤에는 인간문제에 관해서만 관심을 기울여, 아테네의 거리와 시장·체육관 등에서 대화와 문답을 하면서 지냈다.

 그의 인격과 유머가 있는 날카로운 논법에 공감하는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의 동아리>를 형성하였고, 플라톤도 그 모임에 들어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전쟁 종결 5년 뒤인 BC 399년 신에 대한 불경죄라는 죄목으로 고발을 당해 재판에서 사형 받아 일생을 마쳤다.

그는 저서를 남기지 않아 플라톤의 대화편(주로 초기)과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관계 저서를 통해 그의 생애와 사상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주장하는 <덕(德)>과 세상의 이른바 지자(知者)라는 사람들의 <지(知)>에 대해 근본적으로 묻거나 밝혀내려 했다.

덕은 지와 동일시되며 혼(魂)의 비합리적인 부분 및 감정 등을 배제한 지의 추구만이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지가 원래 결코 실수하는 일이 없는 절대 확실한 것이라면 참된 지자는 신뿐이며, 우리 인간은 선미(善美)의 사항을 어느 한 가지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존재라고 하였다.

이런 자각을 하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 이상의 지자는 없다>고 한 델포이의 신탁(神託)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 뜻을 해명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지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음미하며 편력한 결과,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는데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자신만은 무지를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신탁의 참뜻은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려 모든 인간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덕이란 무엇인가>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항을 음미, 논박하며 무지를 깨닫게 하는 활동을 <신명(神命)>으로 알고 그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었다.

 

이 문답의 과정에서 제시된 지의 기준의 엄격성, 논리와 방법에 대한 명확한 의식, <무엇인가>라고 하는 물음에 담겨진 본질에 대한 지향 등은, 그의 생사에 대한 본연의 자세와 함께 철학에 커다란 전환과 비약을 가져다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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