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논의 역설(1) -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
제논의 역설1
2012/03/0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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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 역설이란?
그리스 철학자 제논(Zenon of Elea, BC 490?-BC 430?)이 반대자들의 공격으로부터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15?~BC 445?)의 학설을 지켜내기 위해 사용했던 논증 방법이다. 제논의 이름과 그의 논증방식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고려하여 ‘제논의 역설(逆說)’ 또는 ‘제논의 패러독스(Zenon's paradoxes)’라 부른다. [출처] 제논의 역설 [─逆說, Zenon's paradoxes ] | 네이버 백과사전 |
제논의 역설중 유명한것중 하나가 아킬레스와 거북의 경주이다. 거북이가 앞서서 달리고 아킬레스가 그 뒤를
쫓아가서 거북이를 추월하려고 해도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제논이 정확이 무어라고 말을 했는지 그
원문을 구할수 없으니 직답하기는 어렵고 그의 역설을 표현한 몇가지 경우를 보고 역설를 깨 보자.
거북이와 아킬레스의 경주
아킬레스는 거북이보다 10배 빨리 달릴수있고 거북이는 아킬레스보다 100미터 앞에서 출발하는 경우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추월할수 없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하기 위하여 거북이가 이전에 있었던
위치인 100미터 지점에 일단 도착하여야 하는데 그러면 거북이는 아킬레스가 이동한 거리의 1/10인 10미터를
더 달려가서 110미터 위치에 있을것이다. 다시 아킬레스가 110미터 지점에 이르면 거북이는 아킬레스가 간
거리의 1/10인 1미터를 더 가서 111미터 지점에 있을것이다
아무리 아킬레스가 빨리 달린다 하여도 거북이가 있던 지점에 도착했을때 거북이는 아킬레스가 간 거리보다
십분의 일만큼 더 앞서 있게 될것이므로 결코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추월할수 없다.
위의 역설표현은 제논이 했던 말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그의 주장을 후세사람들이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이 역설은 자체적으로 헛점이 있어서 제논이 준비한 함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었다.그래서
제논은 더 세련되고 완벽한 "이분법의 역설"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이 글에서는 스스로 불완전하고 헛점을 가진 이 거북이와 아킬레스의 경주에 관한 역설을 살펴본다.
◆ 역설을 깨는 첫번째 키포인트 - 목적(목표)을 분명히 하라
아킬레스가 거북의 출발점에 일단 도달하여야 하는것은 맞지만 그것이 거북을 추월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는
점이다.아킬레스가 처음 출발하면 거북도 달리기 시작하므로 처음 거북의 출발점은 이미 거북이 떠나고 없는
과거의 한점이 된다.
추월을 목적으로 한다면 거북이가 이미 달려가고 없는 과거의 출발점으로 달려갈게 아니라
아킬레스의 출발점과 거북의 출발점까지의 거리에다가 아킬레스가 거북의 출발점에 도착할동안 거북이
달려간 거리를 합한 거리만큼(그 거리에 있는 점,위치까지)달려야 하는 것이다.
즉,,아킬레스는 거북이가 현재 달리고 있는 위치를 계속 목적지로 하여 달려야 한다.이미 거북이가 떠난 과거의
위치를 목표로 달리면 영원히 거북의 뒤를 쫓아다니게 될수 밖에 없다.
거북의 출발점에 일단 도착하여야 하는것은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반드시 일어나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제논의 역설을 재구성 하면 다음과 같은 말이 된다.
" 아킬레스는 거북을 추월하기 위하여 달리는 거북이를 향하여 (거북이 현재 달리고 있는 지점을
목적으로 하여) 쫓아가게 되는데 거북을 추월하기전에 먼저 거북이의 출발점과 지나간 점들을
반드시 지나가게 된다. 이때 거북이 지나간 점들은 수학적으로 무수히 많이 존재하는데 아킬레스가
거북을 추월하게 되면 그 무수히 많은 점들을 모두 반드시 지나가게 될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킬레스가 달리고있는 거북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거북이가 지나갔던 (현재 달리고 있는
지점의 바로 직전인) 과거의 한점을 쫓아서 계속 달린다면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추월할수 없다"
제논은 중요한 대목을 모두 빼고 붉은색 부분만을 말하여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제논이 제시한 무수한 출발점들은 그냥 거북이 지나간 과거의 점들일 뿐이고 아킬레스가 지금현재
목표로 하여 달려갈 지점은 아니었던 것이다,
◆ 역설을 깨는 두번째 키포인트 - 역설 자체의 헛점을 발견하라
제논은 수학으로 풀수 없는 문제를 내고서는 수학자들이 숫자로 풀수 있는것이라고 착각하기를 바랬다.
위의 역설을 제논이 본다면 고개를 저으며 이랗게 말할것이다.
"나는 아킬레스가 거북이보다 몇배 빠른지 말하지 않았소. 아킬레스가 거북이보다 빠른건 분명하지만
얼마나 빠른지는 알수 없소, 또한 거북이가 아킬레스보다 어느정도 앞서 있는지도 말하지 않았소
그것 또한 알수 없소"
관념론자들은 숫자가 중요한 수단이므로 그것을 잘 아는 제논은 숫자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릴것이
분명하다.
"처음에 거북이가 어느정도 앞서 출발했고 그 출발지점으로 아킬레스가 온다면 그 시간동안 거북이도
어느정도 갔을것이고 아킬레스가 또 달려서 거북이가 나아간 지점으로 쫓아가면 그 시간동안 거북이도
또 조금 더 앞으로 갔을것이오.아무리 아킬레스가 빨라도 앞에서 달리는 거북이가 있던 지점에 도착할
시간동안 거북이는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것이기에 아킬레스는 항상 거북이 뒤에서 달리게 될것이오"
자..이렇게 하면 수학이나 물리학으로도 역설을 깰수가 없다.속도나 거리에 숫자를 대입하여 계산을 하려고
하면 거리나 속도는 모르는 상태라고 제논은 말할것이다.
역설의 극복
거북이는 까마득히 보이지도 않을만큼 멀리 앞서서 출발한다고 하자.거북이가 어느정도나 앞서서 달리는지
그 거리는 모른다. 두 경주자의 속도가 얼마인지는 모르나 아킬레스가 거북이 보다는 훨씬 빠른것은 제논도
인정할것이므로 거북의 출발점에 아킬레스가 도착하면 거북이는 아킬레스가 간 거리보다 훨씬 짧은 거리를
이동한 상태일 것이다.
아킬레스가 거북의 출발위치에 도달했을때 거북이 멀마나 갔는지 그 거리는 알수 없지만 그곳을 향하여 다시
아킬레스가 달려서 도착한다면 거북과의 거리는 분명히 이전보다 좁혀져 있을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아킬레스가 달리기를 할수록 거북과의 거리는 점점 좁아지게 되고 결국 거북은 아킬레스의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아래 그림을 보자.아킬레스가 처음 거북을 발견하였을때 아킬레스의 위치를 ㉠, 거북의 위치를 ㈀라 하자.
이때 두 지점사이의 거리를 ★이라 한다면..
![]()
여기서 아킬레스가 ★ 거리만큼 달리는동안 거북은 ▲거리만큼 달린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아킬레스는 거북의 출발점인 ㈀ 위치에서 얼마나 더 달려야 거북을 추월할지 알수 없으므로
그냥 여태 자기가 달려온 거리 ★만큼 더 가보기로 한다.
이렇게 아킬레스가 ㈀ 위치에서부터 ★만큼의 거리를 달리는것을 반복하면 그동안 거북이는 항상
▲ 거리만큼만 달리는것을 반복하게 되고 결국 아킬레스는 거북을 추월한다
![]()
그러나 아킬레스가 거북이보다 빠르게 달리는지는 알수 없다고 제논이 고집을 부린다면 아킬레스가
거북이보다 빨리 달릴때만 추월할수 있다...라고 대답하면 된다.
그리고★만큼의 거리가 얼마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만큼 달리느냐? ...하고 묻는이가 있다면 그렇기
때문에 아킬레스는 최대한 오래 계속 거북을 추월할때까지 달려야 한다. 달리다 보면 결국 ★만큼의
거리를 달리게 될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면 된다.
다음에는 이분법의 역설을 다루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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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역설- 이분법의 역설, 그 철학적 분석
제논의 역설2
2012/03/06 14:56
http://blog.naver.com/verid88/70133099955
제논의 역설(2) - 이분법의 역설(The dichotomy paradox)
이 역설은 1편에서 말한대로 제논이 직접 말한 내용은 알수 없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에서 언급한것을
토대로 전해진다.
"That which is in locomotion must arrive at the half-way stage before it arrives at the goal"
"움직이는(운동중인) 것은 목표에 도달하기전에 (현재 위치와 목표 사이의) 절반거리에 도달하여야만 한다"
그러한 제논의 전제를 사실로 인정 한다면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하여 절반거리에 일단 도달 하여야 하고
그 절반 거리를 가기위하여 다시 절반의 절반거리에 도달 하여야 하고 또다시 절반의 절반거리에 도달하기
위하여 절반의 절반의 절반 거리에 도달 하여야 한다.
움직이는 존재가 그 어떤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도달하여야 할 절반 거리에 해당하는 지점은 존재할것이며
무수히 존재하는 절반지점을 모두 도달하기는 불가능하므로 움직이는 것은 목표에 도달할수가 없다는 주장이다.
역설극복의 기본방향
제논의 이 역설도 먼저 다루었던 거북이와 아킬레스의 경주에 관한 역설처럼 함정을 숨겨두고 특정부류의
사람들을 골탕 먹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정답이 있는 퀴즈라고 생각하고 숫자를 이용하여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려한다면 빠져나올수 없는 덫에 걸려든다는점은 거북이와 아킬레스의 역설과 똑같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지적했듯이 이 역설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과 같은것인데 단지 표현만 약간 바꾼 것이다.
거북이가 처음 출발했던 지점에 아킬레스가 도착하여야 한다...는 전제는 엉터리임이 들통날 가능성이 큰 것이었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하기 위하여 이미 거북이 떠나고 없는 빈자리인 출발지점으로 달려갈 필요가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앞서 달린 거북이 이미 떠나고 없는 과거의 지점에 계속 도착한다면 영원히 거북이 뒤만
따라다닐것이 쉽게 드러날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논이 좀더 어려운 트릭을 만들어낸게 바로 지금 다루는 "이분법의 역설"이다.이 역설을 이론적으로
풀어보라는게 제논의 주문이다.따라서 여기서 철학적인 방법으로 풀어보도록 하겠다.(모두가 알다시피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그냥 풀린다)
이글을 읽는 독자들이 일반적인 수준의 사고력과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대부분 이해할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제논의 책략
제논이 역설을 만들어낸 목적은 상대방이 착각과 혼돈을 일으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것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상대방이 잘알지 못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취약한 것들만 골라서 시키면 된다. 운동선수에게
미분,적분 문제를 풀게하거나 거지에게 돈을 가득 담아 줄테니 금으로 만든 양동이를 가지고 오라고 하든가 정치인에게
양심을 지키라고 하면 된다.
서울대교는 최대 100톤의 하중을 견딜수 있다.지금 다리위에 있는 1톤짜리 차가 80대 있다.다리가 붕괴되지 않는
한도내에서 앞으로 1톤짜리 차가 몇대 더 다리위로 오게 허용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논리,숫자로 해결할수 있다. 하지만...
심청이는 어제 길동이와 2시간동안 크게 다투고 어제밤 12시부터 계속 자기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울고만 있다.
심청은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자기방에서 나오게 될까?
이런 질문은 논리,숫자로 해결할수 있는게 아니다.
그런데 심청이 경우처럼 논리나 숫자의 문제가 아님이 너무도 분명하다면 이론가는 걸려들지 않을것이기에 착각하게끔
교묘한 역설을 만들어야 한다.
라면을 끓여먹기위해 솥에 물을 붓고 끓이려 한다.물은 섭씨 100도에 끓기 시작하는데 그전에 먼저 물의 온도는 절반인 50도에 도달 하여야 한다.그러나 50도가 되기 위하여는 먼저 절반인 25도에 이르러야 하고 25도가 되려면 그 절반 온도에 또 도달해야 한다. 물이 끓게 되려면 무수히 많은 절반 온도에 도달하여야 하는데 그 무수한 온도를 모두 도달하기는 불가능 하므로 물을 절대로 끓게 할수가 없다. |
수도꼭지를 열고 수도꼭지에 연결된 고무호수로 70리터 양동이에 물을 가득 채우려면 먼저 양동이의 1/2양을 채워야 한다. 양동이에 1/2양의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1/4량을 채워야 한다.1/4양을 채우기 위해서는 1/8양을 채워야 한다. 무수히 많은 절반양을 모두 채울수는 없으므로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는것은 불가능하다. |
양동이 안에 70리터의 물이 있다. 아주 가느다란 고무호스를 양동이의 물속에 담구어 양동이에서 물을 아주 조금씩 빼내려고 한다.고무호스의 굵기는 알수가 없다.70리터의 물을 모두 빼내려면 먼저 그 절반인 35리터의 물을 빼내야 한다.35리터의 물을 빼내려면 먼저 절반인 17.5리터의 물을 빼내어야 한다.무수히 많은 절반의 양을 모두 빼낼수는 없으므로 양동이의 물은 빼낼수 없다. |
지피지기
제논이 자신과 논쟁했던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약점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서 사고방식이 다르고 그때문에 문제의 해결방식도 달라지는데 제논은 바로 그점을 발견한 것이다.
높이를 잴때 흔히 자를 이용한다. 사람의 키를 잴때에는 간단하지만 빌딩의 높이를 잴때에는 불편하고 산의
높이를 잴때는 불가능하다.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도구를 가지고 실제 현장에서 손발로 해결하려
한다.도구와 육체적 행동과 현장을 중요시 한다.(목수,대장장이,검투사..)
그러나 산의 높이를 재는 경우에는 그러한 스타일로 일을 해결하는 사람들은 문제에 봉착한다. 이때 모든것을
머릿속에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그들은 머리속에서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산을 그안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수학의 삼각법을 이용하여 산의 높이를 숫자로 계산해 낸다.(수학자,물리학자.철학자..)
전자를 응용가라 하고 후자를 이론가라 해보자.응용가란 흔히 말하는 머리가 나빠서 손발이 고생하는 타입이고
이론가는 머리가 좋은 똑똑한 사람이다..라고 보면 된다.
제논이 상대했던 사람들은 모두 이론가들이었다.응용가들에게 제논의 거북이와 아킬레스의 역설을 말해보면
그들은 "이 사람 농담도 잘하는구먼" "실제로 경주를 한번 시켜보면 될거 아닌가?" 하고 넘어가 버린다.
현실적으로만 생각하고 이론적으로 생각하는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역설은 안통한다.
그러나 이론가들은 머리속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에다가 아킬레스와 거북이를 집어넣고 온갖 이론들을
적용시키고 논리로 사고하고 숫자로 계산하려 한다.제논은 이점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이론가들은 응용가들과는 달리 권리,의무,이익,손해,지위,재산,명예,계산등에 관심과 소질이 많다.
이 또한 제논은 잘 알고 있었다.
두명의 이론가들을 위한 덫
그러한 이론가들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일단 넘어가자) 하나는 목적,결과에 집착하는
부류고 다른하나는 절차,과정에 집착하는 부류다. 두 부류가 모두 머리속의 가상공간에다가 모든것을 집어넣고
숫자로 계산하고 논리로 따지는는것을 특기로 하고 있으며 권리나 의무에 민감하다. 제논은 이점에 착안하고
역설을 만든다.
아킬레스와 거북의 역설에서 이론가들이 혼란에 빠지게되는 이유는 "목적"과 "방법"과 "의무" 의 함정 때문이다.
In a race, the quickest runner can never overtake the slowest, since the pursuer must first reach the point
whence the pursued started, so that the slower must always hold a lead.
(경주에서 최고 빠른 사람이라도 가장 느린 사람을 추월할수 없다. 왜냐하면 쫓아가는 사람은 쫓기는 사람이 출발했던
지점에 일단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따라서 더 느린 사람이 항상 앞서가게 된다)
위의 말이 제논이 주장했던 아킬레스와 거북이 역설의 전제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에서 전한다.
함정은 바로 왜냐하면 쫓아가는 사람은 일단 쫓기는 사람이 출발했던 지점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는 곳에 있다.
이분법의 역설에서도 같은 함정이 나오는데..
"That which is in locomotion must arrive at the half-way stage before it arrives at the goal"
"움직이는(운동중인) 것은 목표에 도달하기전에 (현재 위치와 목표 사이의) 절반거리에 도달하여야만 한다"
..에서 문장 전체가 함정이다.
왜 함정이냐 하면 그 말 자체는 분명히 옳은 말이고 틀리지 않았지만 듣는 이론가들이 착각을 하도록 유도하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론가들은 어떤 착각과 오해에 빠질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중 똑똑한 분이라면 분명히 제논의 함정에 빠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쫓아가는 사람은 일단 쫓기는 사람이 출발했던 지점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의 말을 이론가들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쫓아가는 사람은 일단 쫓기는 사람이 출발했던 지점에 도착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목적론적(결과론적) 이론가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반드시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거북이를 추월하는 목적을 위하여 아킬레스는 거북이 출발했던 지점에 일단 도착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해석한다.의무가 있으므로 제논이 제시한 무수한 점들에 자꾸 도착하려고 집착한다.
그러나 제논은 아킬레스가 거북의 출발점에 도착하는게 의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의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오해를 해주기 바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
"움직이는(운동중인) 것은 목표에 도달하기전에 (현재 위치와 목표 사이의) 절반거리에 도달하여야만 한다"
...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움직이는 것은 목표에 도달하기전에 (현재 위치와 목표 사이의) 절반거리에 도달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심지어 제논이 제시한 출발점과 중간점을 목표(목적)으로 오해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제논은
대박성공이고 쾌재를 부를것이다.
방법론자(절차론자)가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절차를 지키기 위한 의무가 있다고 항상 생각하기 때문에 제논의 전제를
다음과 같이 오해한다.
" 쫓아가는 사람은 일단 쫓기는 사람이 출발했던 지점에 도착해야 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의무가 있다"
"움직이는 것은 목표에 도달하기전에 (현재 위치와 목표 사이의) 절반거리에 도달하는 절차를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
절차론적 이론가는 제논이 제시한 무한히 많은 출발점과 1/2점을 의무적으로 거쳐야할 절차의 하나로 인식하여
헤어나지 못한다. 물론 제논은 "그 수많은 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이며 의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해야만 한다" ..라고 하니 의무인가 보다...하고 착각한 것이다.다시 말하지만 똑똑하지 않고 돈이나 지위,명예등에
욕심이 없는 사람일수록 이런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
역설을 깨고 함정을 피하자
그렇다면 제논이 말한 "~해야만 한다(must)"는 의무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물음에 답하기 위하여는 "의무"가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개념을 먼저 정의해야만 한다. 어찌보면 사기꾼인지 ,
또 어찌보면 삼류 토크쑈 진행자인지 헛갈리는 마이클 센델의 정의론을 보면 "의무"에 대하여 말하면서 의무란 용어가
무슨 뜻인지 개념도 정의하지 않는것을 볼수할수 있다. 한마디로 개념없다.
독자들이 "의무" 란 용어의 개념을 정의하기란 어려울테니 먼저 힌트를 보도록 하자.
의무론의 예 |
이제 의무가 무엇인지 대충 감을 잡있으니 다음과정에 도전해보자
다음에서 의무와 의무가 아닌것을 고르시오
2.유턴하려는 차는 정지신호 또는 좌회전 신호가 켜진후에 유턴을 해야 한다. 3.군대에서는 상관을 만나면 반드시 경례를 하여야 한다. 4.겨울이 오려면 먼저 가을이 와야 한다. 5.강을 헤엄쳐 건너려면 먼저 강 한가운데를 지나야 한다 6.어미소가 되려면 먼저 송아지가 되어야 한다. 7.서울대학에 입학하려면 먼저 입학원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8.물을 끓이려면 먼저 물이 50도까지 데워져야 한다. 9.50살이 되기위하여는 먼저 20살이 되어야 한다. 10.무죄석방이 되려면 먼저 재판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11.일정거리를 앞서서 달리는 거북이를 추월하려면 먼저 거북이의 출발점에 도착하여야 한다 12.발사된 화살이 목표에 도달하기전에 반드시 발사지점과 목표의 중간지점을 지나야 한다 |
구분이 잘 되는가? 잘 될리가 없다 의무에대한 개념정의를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제 드디어 "의무" 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목적에 이르기 위하여 혹은 원인에 의하여 다음과정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사건중에서 인위적으로 실행하지 않으면 목적을 이루거나 다음과정이 진행된다고 해도 이행되지 않는것"
이에 반대되는 개념을 "필연"이라 한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목적에 이르기 위하여 혹은 원인에 의하여 다음과정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사건중에서 인위적으로 실행하지 않아도 목적를 이루거나 다음과정이 진행되면 반드시,저절로
이행될수밖에 없는것"
이제 개념을 정의하였으니 다시한번 도전해 보기 바란다.
1.천리길을 걸어 가더라도 먼저 한걸음부터 걸어가야 한다
천리길을 걸어가는게 목적이라면 그 목적을 이루게 되었을때 한걸음을 걸어가는 사건은 반드시 이행될수
밖에없다 - 필연.
2.유턴 하려는 차는 정지신호 또는 좌회전 신호가 켜진후에 유턴을 해야 한다.
차가 유턴하는 과정에 이르거나 유턴이라는 목적을 이루게 되면 정지신호,좌회전 신호가 켜지는 사건은
반드시, 저절로 이행되지 않는다 - 의무
3.군대에서는 상관을 만나면 반드시 경례를 하여야 한다.
상관을 만난것은 원인이고 경례를 하는것은 원인이 발생한후 다음단계의 과정으로 진행되는 과정중에
일어나는 사건이다.상관이 지나가 버리는 다음 단계의 과정이 일어나면 인위적으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저절로 경례가 이행되지 않는다. - 의무
4.겨울이 오려면 먼저 가을이 와야 한다.
겨울은 가을의 다음 과정이며 겨울이 되면 가을이 오는 사건은 이미 반드시 이행될수밖에 없다 - 필연
5.강을 헤엄쳐 건너려면 먼저 강 한가운데를 지나야 한다
강을 헤엄쳐 건너는 목적을 이루게 되면 간 한가운데를 지나는 사건은 저절로, 회피할수없이 반드시
일어나게된다 - 필연
6.어미소가 되려면 먼저 송아지가 되어야 한다.
어미소가 되는것이 다음과정이다. 이 과정이 이루어진다면 송아지가 되는 사건은 반드시 이행되어
있을수밖에 없다 - 필연
7.서울대학에 입학하려면 먼저 입학원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서울대 입학이 목적인데 입학을 했다고 입학원서가 저절로 제출되지는 않는다 - 의무
8.물을 끓이려면 먼저 물이 50도까지 데워져야 한다.
물이 끓는점에 도달하는게 목적이거나 다음과정이다. 물이 끓고 있다면 50도 순간을 반드시 지났다고
할수 있다 - 필연
9.50살이 되기위하여는 먼저 20살이 되어야 한다.
50살이 되는 과정은 다음과정이고 20살이 되는 사건은 이전과정이다. 다음과정에 이미 도달 하였다면
이전과정은 반드시 이행되었다고 봐야한다 - 필연
10.무죄석방이 되려면 먼저 재판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석방이 다음과정이고 재판에서 이기게되는 사건은 다음과정으로 진행하는 중에 있는 사건이다.무죄석방이
이루어 졌다고 해서 재판이 열리고 이기는 사건이 반드시 이행될수밖에 없다고 할수없다 (재판전 진범이
체포되어 석방되는게 절차상 가능하다면) - 의무
11.아킬레스가 일정거리를 앞서서 달리는 거북이를 추월하려면 먼저 거북이의 출발점에 도착하여야 한다
추월이 목적이고 출발점에 도착하는것은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 있는 사건이다.목적을 이루게되면 아킬레스가
거북의 출발점에 도착하는 사건은 반드시 이루어 질수밖에 없다 - 필연
12.발사된 화살이 목표에 도달하기전에 반드시 발사지점과 목표의 중간지점을 지나야 한다
화살이 목표지점에 도달하는것이 목적 혹은 다음과정이고 중간지점에 도착하는것은 과정중의 사건이다,
화살이 목표에 도달하여 목적이 이루어지거나 다음 과정이 진행된후라면 화살이 중간지점에 도달하는
사건은 반드시 이루어 질수밖에 없다 - 필연
역설의 재구성
이제 모든것이 분명해진다.아킬레스는 거북이가 처음 출발한 지점을 갈 의무가 없었고 움직이는 것은
목표지점과의 중간지점을 갈 의무가 없었으며 제논이 제시한 무수히 많은 출발점과 1/2지점은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도 아니며 목적도 아닌것이다.
제논이 제시한 점들은 일부러 도달할 의무가 없는, 일부러 도달하지 않아도 저절로 도달하게되는 점들이었다.
화살은 그 수많은 1/2점들을 일일이 거치는 절차없이 그냥 목표에 도달하면 된다. 아킬레스도 그 수많은
거북의 출발점에 도달하는 절차없이 거북이의 앞으로 달려가면 된다.
제논은 자신이 제시한 출발점과 1/2점들을 이론주의 논쟁자들이 목적상,절차상의 의무로 착각해주기를
기대한 것이고 그래서 그들을 수많은 헛된 점들로 끌고 다녔다. 이론가들은 그 수많은 점들을 좇아다니는게
인위적으로 반드시 이행하여야할 의무라고 보았기에 제논에게 끌려다닌 것이다.
"당신의 사업이 잘되려면 굿을 해야 되!" ....................하고 무당이 말한다.
사업이 잘되는것은 목적이고 굿을 하는것은 목적을 이루는 과정상의 사건이다.목적이 이루어져 사업이 잘된다면
굿은 저절로 될까? 아니다. 그러므로 굿은 필연이 아니라 의무다.이렇게 생각하니 굿을 꼭 하게 되는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의무는 반드시 있어야 할 사건중에서 존재한다. 굿이라는게 사업을 잘하려는 목적을 위하여 반드시 있어야 할 사건인가?
따라서 무당의 굿이 사업의 성공상 꼭 필요다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굿을 하게 되어 있는것이다.의무의 개념에
사로잡힌 사업가라는면 말이다. 그런데 이론가는 권력이나 돈,명예에 대한 욕구가 크므로 이론가가 사업을 하면
무당에게 찾아갈 확률이 크다 ...하는 결론이 나온다. 정말로 그럴까?
"나이를 먹으면 나이값을 해야되"
나이를 먹는게 다음 과정이라면 나이를 먹게된후 저절로 나이값을 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따라서
나이값을 해야 하는건 인위적으로 이행하여야 할 의무다.
이론가들에게는 이말이 설득력이 있겠지만 응용가들은 의무의 개념이 희박하므로 통하지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응용가들은 의무를 필연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이들면 저절로 나이값은 하게 되는 거에요. 뭘 그렇게 잔소리가 많아요?"
"내버려 둬요 좀, 내맘대로 살게"
...이러한 답을 하지 않을까?
역설의 역이용
제논이 이론가들을 상대로 필연을 의무로 착각하게 만든 역설을 지어낼수 있었다면 이론가들도 응용가들을 상대로
의무를 필연으로 착각하게 만들수 있을것이다.
"김대위, 이번 돌격에는 자네 3중대가 최선봉으로 나서야만 하네"
이렇게 말하면 응용가인 김대위는 "대대장님, 왜 하필 우리 3중대에요?" 할것이다.그래서 대대장이 이렇게 구슬러
보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김대위, 나는 항상 인복이 많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듣고 살았네. 내가 자네를 만난것도 큰 복이고 이것도 인연이지.
이 넓은 전장에서 자네와 내가 오늘 여기서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대전투를 하게될줄 누가 알았겠나?
오늘 우리는 여기서 반드시 이겨야 하네.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오늘의 전투에서 자네 중대가 앞장을 서야 하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오늘 김대위가 선봉에 서야하는것은 필연이다....하고 입력시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설법중 대표적인게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하는 표현이다. 필연이니
따를수밖에 없다는 의미다.의무 이니까 따를수밖에 없는 이론가들 처럼..
철학자들의 한계
"제논의 역설이 철학적인 문제였다면, 그리고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왜 어떤 철학자들도 당신과 같은
결론을 말하지 못했소? 당신이 그렇게 잘났소?"
하고 물을수도 있으리라 본다.(물론 이미 어떤 철학가가 내가 말한 정답을 이미 내놓았을수도 있다)
인간의 철학은 개인의 고유한 사고체계에서 기원한다. 누구라도 자기 생각대로 말하면 철학이 된다.인간은 8개 부류로
이루어져 있기에 아무리 개똥철학이라도 8개중 한부류에 속하게 되고 지지자 옹호자가 생길수밖에 없다. 8개중
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정말 자기생각과 일치하고 자신의 생각을 체계화,정당화하고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어떤 문제가 8개중 한부류의 사고방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각각의 철학자는 정답을 찾을수 없다.
그러면 유일한 길은 문제와 관련된 부류의 철학자들이 모여서 해답을 찾을수밖에 없다.
역학은 8개부류의 인간들 각각의 고유한 사고체계에서 발생하는 철학이 아니다. 공리주의,자유주의..하는 그런
분류체계의 범위를 넘어선다.따라서 8개중 어떤 부류의 사람들의 지지나 옹호를 얻기가 무척 힘들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 사고체계와도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치명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내세울수 있는 장점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 혹은 몇개부류의 사람들에게 공통된
문제를 다룰때는 참으로 유용하다는 점이다.
제논의 역설은 8개중 4개부류의 사람들을 골탕먹이려고 만든 것이다.그러니까 인류의 절반은 당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의무라고 느끼는, 판단되는 그 사건들을 올바른 의무에대한 개념정의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당하지 않을수도 있다.
이글을 읽고 이해한 후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