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이라는 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시대나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변증법이란 실재 속에 모순구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별한 논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보통의 형식논리학에서 모순율은 절대적인 근본원리이므로 이 원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A는 B이다"이면서 동시에 "A는 B가 아니다"가 되므로 두 주장이 모두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변증법은 이 모순율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식논리학과 대립하는 논리로 이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변증법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헤겔 이후이며, 그 이전에는 전혀 그러한 의미를 갖지 않았다. 원래 변증법이 대화술이라는 의미였으므로 이는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사상이 다른 사람을 상대로 대화나 토론을 할 때 우리는 상대의 입장이 어떤 점에서 틀렸는가를 논증해야 한다. 즉 상대의 입장에 어떠한 모순이 포함되어 있는가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 입장의 모순을 밝혀낼 수 있다면 상대도 자신의 오류를 깨닫고 인정하고 우리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사상적인 대화란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모순율이라는 원리가 처음부터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입장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받아도 결코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상대로는 토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모순율의 인정은 대화를 성립시키는 전제조건인 것이다.
따라서 대화술로서의 변증법은 본래 형식논리학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논리라고는 할 수 없고, 형식논리학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성립한다. 이렇듯 변증법이라는 개념은 헤겔 이전과 이후에 전혀 그 의미가 달리 쓰이고 있는데, 여기서는 역사적 흐름을 따라 그 의미의 변천을 더듬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을 변증법의 창시자로 불렀는데, 제논의 변증법이란 바로 토론이나 변론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유일부동이며 불생불멸이라는 자신의 스승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계승해, 이 입장에서 '운동'이나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상이 얼마나 자기 모순을 안고 있는가를 논증하려고 했다.
그러나 제논의 변증법은 소피스트들에게 와서는 논의를 위한 논의, 반론을 위한 반론이 되고 말았다.
완전히 논쟁술로 전락해버림으로써 그 적극적 의의를 잃어버린 변증법에 철학의 방법으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변증법을 대화술, 문답법으로 훌륭하게 구사한 철학자였다.
그는 아테네 시가에 나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철학적인 문답을 나누었는데, 그것은 어떤 질문을 하여 상대방이 대답하면 그 대답을 찬찬히 짚어보면서 상대에게 모순이 있음을 자각시킴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의욕이 생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계승한 플라톤은 변증법을 학문의 최고의 방법으로 중요시했다. 다만 소크라테스의 경우 변증법이 실제로 타인과 주고받는 문답술이었던 데 비해 플라톤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사유방법으로 생각했다. 원래 사상적인 대화는 반드시 실제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찾아 사색할 때는 언제나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면서 자기 자신을 상대로 대화한다고 할 수 있다. 사상의 발전은 이처럼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플라톤과 달리 그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법을 학문의 방법으로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변증법은 통설이나 추측으로부터 출발하여 추론하는 논의로서, 개연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는 있지만 참된 학문적 의의는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사유의 훈련으로서, 참된 인식을 하기 위한 준비의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와 중세를 통해 변증법이라는 말은 단순히 논리학의 일부인 변론술 또는 논리학 자체를 의미했지만, 근세에 이르자 칸트는 이 말에 다시금 중요한 의의를 부여했다.
칸트에 의하면 변증법이란 가상(假象)의 논리학, 즉 참인 듯이 보이는 오류를 비판하는 논리학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단지 경험적 세계 즉 현상계를 인식할 수 있을 뿐이며 초경험적인 것, 예컨대 신이나 영혼 등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이성은 본래 개개의 판단을 종합, 통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떡해서든 경험을 초월한 무제약적인 것을 찾으려고 하며 여기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칸트는 이 오류를 선험적 가상이라 불렀는데, 이를 밝히고 비판하는 것이 선험적 변증법의 임무이다.
즉 칸트에게서 변증법이란 플라톤과 같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적극적인 철학의 방법이 아니라 단지 참인 듯한 오류를 비판하는 소극적인 역할로 규정되어 있었다.
변증법에 가장 적극적인 의의를 인정한 것은 헤겔이다. 헤겔은 변증법이 인식의 발전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발전 논리라고 생각했다. 즉 모든 사물은 결국 정·반·합의 3단계로 발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존재 자체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면, 존재는 적어도 발전의 제2단계에서는 모순적 구조를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변증법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즉 변증법은 모순의 실재를 인정하는 모순논리로서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수한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헤겔에 이르러 변증법의 의미가 달라진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변증법이라는 말의 의미가 달라지면 존재 속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상은 변증법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헤겔은 "만물은 태어나서 유전하며, 만물을 생성하는 것은 사물의 대립"이라고 생각했던 헤라클레이토스를 변증법의 진정한 창시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를 변증법의 창시자라고 할 때, 이는 제논을 변증법의 창시자라고 할 때의 변증법과는 전혀 다른 뜻이 된다.
헤겔의 변증법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이르러 유물론과 결합되어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계승되는데,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 모든 존재, 즉 자연이나 사회도 변증법적 구조를 갖고서 변증법적으로 발전해간다. 자연에서 나타나는 변증법은 자연변증법이며, 사회나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유물사관이다.→ 변증법적 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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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론
서로 대립하는 것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으면서 서로 배척하고 투쟁하는 것을 가리키는 모순에 관한 이론을 의미한다.
모순은 사고영역에 존재하는 논리적 모순과 사물·과정·체계 등의 객관적 실재에 속하고 모든 운동·변화·발전의 근원을 이루는 변증법적 모순으로 나뉜다.
최초로 대립물의 투쟁을 사물의 운동과 변화의 원인으로 보는 사상을 제시한 사람은 그리스 자연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였다. 그는 세계를 운동하고 변화하는 것으로 보면서, 변화와 운동의 원인을 사물 안에 있는 대립물의 투쟁으로 설명했다. 그후 아리스토텔레스는 모순 문제를 철학적·논리적으로 다루었다. 그는 판단론에서 긍정과 부정의 결합, 즉 논리적 모순을 본래적인 모순으로 보았다. "동일한 것이 동일한 것에 동일한 관점에서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모순배제(무모순) 원칙으로 정식화했다. 그러나 그는 실제적 모순을 부정하지는 않았고,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같은 것이 동일한 것에 속하기도 하고 속하지 않기도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모순율을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했다. 즉 시간이 다르고 관점이 달라도 한 사물에 대립적인 성질이 동시에 그 사물에 속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 사물은 하나의 불변적인 본질(자기동일성)을 지니고 있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운동이 신(神)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자연과학이 발전하면서 모순의 실제적인 존재가 문제시되었다. 16세기 이탈리아 자연철학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엠페도클레스의 사고에 기초해서 확대와 축소, 희박과 농축, 인력과 척력(斥力), 공감과 반감, 열과 냉 등 대립물이 실제로 다투고 끊임없이 투쟁한다는 점에서 물체들이 상호작용한다는 사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사상은 쿠자의 니콜라우스의 '대립물의 일치'로 체계화했다. 정지와 운동, 생성과 소멸, 수동성과 능동성은 현존하는 사물들이 모순적임을 나타낸다. 자연에는 곡선과 직선, 다각형과 원, 밝음과 어두움, 열기와 냉기와 같은 예에서 보듯이 대립적인 것이 있다. 그러나 니콜라우스는 모순율을 뛰어넘어 유한한 대립을 무한한 것 속에서 통합하는 인간의 사유능력과 모든 대립이 사라지는 절대자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G.브루노와 J. 뵈메도 이러한 관점을 지지했다. 뵈메는 대립물의 일치를 신·세계·인간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관계로 보았다. 그는 특히 도덕적 선에 대립하는 도덕적 악이 인간생활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선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 대립물인 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G. W. 라이프니츠는 세계를 그 내적 모순에서 이해하는 철학적 원리들을 발전시켰다. 연속성과 불연속성, 결여(privatio)와 욕망(appeitus)을 대립시키고 통일성과 다수성, 보편자와 특수자를 논리적 대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는 존재방식으로 이해했다.
이마누엘 칸트는 초기 논문에서 논리적 대립과 실제적 대립 개념을 사용하면서, 실제적 대립을 양 측면이 상호 부정하는 것이면서도 긍정적인 현상을 구체화하는 관계로 규정했다. 그러나 칸트는 이러한 관계를 본질적으로 충돌하는 경향들을 균형에 이르게 하려는 관점에서 파악했을 뿐 운동과 변화의 동력으로 파악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그는 이 관계를 순수이성의 이율배반, 즉 유한성과 무한성, 연속성과 불연속성, 자유와 필연의 양극관계로 고찰하고 이것을 논리적 모순으로 보았다. F. W. J. 셸링은 자연철학에서 모순의 실제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이 모든 삶과 운동의 추진력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모순을 절대적 동일성, 즉 자연과 정신의 통일, 주관과 객관의 통일로 나타나는 절대자로 이행하는 하나의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G. W. F. 헤겔은 가장 포괄적인 형태로 모순을 개념화했다. 그는 형식논리학적 모순과 변증법적 모순을 구별했다. 변증법적 모순은 '개념들의 공허한 대립'이 아니라 "'일자'(一者)와 '그것의 타자(他者)'를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의 대립물'을 자체 내에 포함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그 자체가 모순적"이다. 모순은 "모든 자기 운동의 원리"이며 "모든 운동과 생명의 뿌리"이다. "자기 안에 모순을 가진 것만이 스스로 운동하며 충동과 활동성을 갖는다." 그는 변증법적 모순과 부정의 부정을 토대로 절대정신의 관념론 체계를 전개했다. 이러한 헤겔의 모순 개념은 K. 마르크스와 F. 엥겔스에 의해 유물론적인 것으로 해석되면서 사회·역사의 객관적 운동법칙을 규명하는 개념이 되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사회모순인 계급모순, 즉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의 모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사회와 개인의 모순 등을 밝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틀로 삼았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지지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순이 다양한 물질의 운동과 발전을 낳는 원인이며, 각각의 현상을 발전시키고 다른 존재형태로 이행시키는 추진력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순 개념으로 세계 외부의 어떤 비물질적인 존재(신)를 가정하지 않고 운동을 설명했으며, 사회발전의 내적인 필연성·추진력·합법칙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실천적·정치적 활동의 이론적 토대로 삼았다. 이들은 또 모순을 그 성격에 따라 내적 모순과 외적 모순, 주요모순과 부차적 모순,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 등으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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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변증법
헤겔의 변증법은 거대한 형이상학입니다. 이는 모든 존재에 대한 설명입니다. 헤겔은 변증법을 존재 자체의 움직임, 존재 자체의 논리라고 합니다. 헤겔 변증법의 특징은 우선 그것이 동적인 철학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는 정적인 철학처럼 실재의 움직임을 언어로서 정지시켜 놓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흐름 자체를 수용하는 철학입니다. 헤겔의 변증법 이래로 이제 모든 존재는 그 자체 누적의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역사철학의 기초가 마련된 것입니다. 헤겔에서 존재의 가능성은 유-무-생성의 단계를 통해 마련됩니다. 즉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우선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유이지만, 그것은 다른 존재자들 속에 들어가는 순간 그 존재가 부정되는 무가 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유가 살아나서 참된 존재자로 생성됩니다. 이는 존재 자체의 논리학입니다. 이러한 논리가 구체적 사물에 적용되면, 그것은 '즉자적 존재'-'대자적 존재'-'즉자 대자적 존재'로 됩니다. 법도 그렇게 성립합니다. 즉 추상법의 단계로 출발합니다만, 곧 그것은 부정되어 도덕의 단계로 이행합니다. 그러나가 결국 양자가 지양되어 인륜을 이룹니다. 법은 그와 같은 누적의 입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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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변증법
이성 연마의 방식 : 변증법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제논(Zenon)이 처음으로 사유의 방식으로 사용한 이후, 변증법 혹은 변증술(dialetiké, Dialektik)은 소크라테스-플라톤에게서는 사유의 방법 및 그 자체 추구의 대상으로서 등장한다. 사유의 방법으로서 변증법은 참된 존재자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자, 동시에 참된 존재자에 대한 인식 상태 그 자체인 것이다. 플라톤은 변증법을 반론술(antilogiké) 및 쟁론술과 구별한다. 쟁론술은 플라톤에 따르면 진리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논변에서의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고, 이 목적을 위해 적절한 수단과 장치를 함양하고 공급하는 기술로 이해한다. 따라서 쟁론술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논변술일 수는 없다.(조지 커퍼드, 『소피스트 운동』, 김남두 옮김 107)
반면 반론술은 논변의 기술이다. 이것은 특정 진술에 대한 반대진술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플라톤은 이 반론술을 그 자체로는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리를 목적으로 "종류에 따른 사물들의 나눔에 기반한 토론하는 힘"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경박한 목적으로 잘못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반면 변증술은 반론술이나 쟁론술과는 달리 진리를 목적으로 하는 토론적 힘을 갖춘 진정한 의미의 인식방법일 수 있다.(조지 커퍼드, 『소피스트 운동』, 김남두 옮김 108) 이런 변증술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반론술이 동원될 수 있지만, 변증술 없는 반론술은 결코 논변의 적절한 방식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논박술이라고 하는 독특한 형태를 사용한다. 이것은 참여자들이 모순되는 견해들로부터 어떤 전진이나 탈출도 볼 수 없는 곤경에 빠진 채 아포리아 상태에 있는 경우를 통해서 확인될 수 있다. 니체는 변증술과 반론술과 쟁론술과 논박술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변증술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축적된 논리와 가시돋친 악의'에 가득찬 이성연마의 방식이라고 비난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플라톤적 논박술이나 변증술에 대한 정당한 지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플라톤이 미리 지적해 놓았던 쟁론술이나 반론술의 위험성에 상응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논박술의 아포리아 상태가 갖는 부정적 측면을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데카당스를 공인된 본능의 무절제 및 본능의 아나키 상태가 알려주기는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 축적된 논리와 그를 특징짓는 가시 돋친 악의 역시 이 방향을 보여준다.(GD 소크라테스의 문제 4; KGW Ⅵ 3, 63. 한글판 90)
변증법의 문제
'축적된 논리와 가시 돋친 악의'로서의 변증법은 니체에 의하면 '고귀한 취향을 전복'시킨 '천민'적 이성연마방식이자, 천민적 인식상태를 보여줄 뿐이다. 그 이유는 변증법이 첫째, 정당화를 요구하고, 둘째, 설득력이 부족하며, 셋째, 복수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그리스 취향은 변증법에 유리하게 돌변했다 : 그때 진정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무엇보다도 고귀한 취향이 정복되었다; 천민이 변증법을 수단으로 삼아 상부에 올라섰다. [⋯] 권위가 미풍양속에 속하는 곳, '근거를 들어 정당화'하지 않고 명령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변증론자는 일종의 어릿광대에 불과하다 : 그들은 비웃음을 사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소크라테스는 어릿광대였지만,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던 어릿광대였다 : 이때 진정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GD 소크라테스의 문제 5; KGW Ⅵ 3,63-64. 한글판 91)
변증법의 문제 1 : 정당화
변증법의 첫 번째 문제로 니체가 지적하는 것은 입증(beweisen)이라는 과정이다. 입증이라는 것은 근거와 이유들을 제시하여 정당화(Justifikation)하는 것에 대한 다른 명칭이다. 니체는 이런 방식이 천민적인 수단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 방식이 권위(Autorität)에 의한 명령(Befehl)과는 대립적이기 때문이다. '권위에 의한 명령'은 위버멘쉬나 주인적 존재라는 존재 유형을 염두에 둔 니체의 언급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인적-귀족적-위버멘쉬적 존재는 그 자신이 가치평가의 주체이자, 자신들의 가치평가를 명령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리고 동시에 타인들의 주인적-귀족적-위버멘쉬적 존재방식을 공고히 하고 고무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주인적-귀족적-위버멘쉬적 존재들의 가치평가들도 승인하고 인정한다. 이들 사이에는 오로지 주인적-귀족적-위버멘쉬적 존재들의 삶에 대한 유용성이 척도가 되는 평가들의 가치 위계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위계 관계에는 '저항하는 복종과 명령'이라는 형식이 적용된다. 따라서 가치의 위계 관계는 늘 가변적이다. 그렇다면 '권위에 의한 명령'은 오로지 주인적-귀족적-위버멘쉬적 삶을 척도로 측정되는 권위이자, 곧 그 권위에 대한 '저항을 촉발하는 복종'을 요구하는 명령인 것이다.
인간이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더 이상 주인적-위버멘쉬적-귀족적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표현이다. 이런 인간은 자신의 가치평가 체계를 명령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가치평가 체계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그것이 논리적 이유가 있음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이런 개념 사용 맥락을 유념하면, 니체가 말하는 권위에 의한 명령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약한 귀납의 오류, 즉 잘못된 권위에의 논증(appeal to unqualified autority)과는 다른 범주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오히려 플라톤이 반론술을 반대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적절한 방식으로 질문을 이끌어 갈 능력도 없고 진리를 발견할 수도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 반론술은 모든 경우를 반박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게 만드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며 주의를 요구한다.(조지 커퍼드, 『소피스트 운동』, 김남두 옮김 109)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그리스 취향은 변증법에 유리하게 돌변했다 : 그때 진정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무엇보다도 고귀한 취향이 정복되었다; 천민이 변증법을 수단으로 삼아 상부로 올라섰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는 변증법적 수단이란 건전한 사회에서는 거부되었다 : 이것은 나쁜 수법으로 간주되었고 조롱받았다. 젊은이들은 그 수법을 사용 못하도록 주의받았다. 자신의 근거를 그런 식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은 불신되었다.
품위 있는 사람이 그러하듯 품위 있는 것들은 자신들의 근거를 그런 식으로 내세우지 않는 법이다. 다섯 손가락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점잖치 못한 일이다. 스스로를 먼저 입증시켜야만 하는 것은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 권위가 미풍양속에 속하는 곳, '근거를 들어 정당화'하지 않고 명령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변증론자는 일종의 어릿광대에 불과하다.(GD 소크라테스의 문제 5; KGW Ⅵ 3, 63-64. 한글판 90)
변증법의 문제 2 : 불신과 설득력의 문제
니체는 변증법이 그 자체로는 권위에 의한 주장보다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오히려 불신을 조장시킨다고 생각한다. 니체의 이런 지적 역시 4.2.2.2. 이성 연마의 방식 : 변증법에서 보인 것처럼 변증술 없는 반론술이나 논박술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수단이 없을 때만 변증법이 선택된다. 변증법으로 인해 불신이 조장된다는 것, 변증법이 설득력이 거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변증론자가 주는 감명이야말로 가장 손쉽게 지워버릴 수 있다 : 연설모임에서의 경험이 그 사실을 입증해준다. 그것은 단지 다른 무기를 전혀 갖추지 못한 자들의 정당방위일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런 자신의 권리를 강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사용 해보지 못하니.(GD 소크라테스의 문제 6; KGW Ⅵ 3, 64. 한글판 91)
변증법의 문제 3 : 복수 수단
니체는 변증법을 복수 수단이라고 단언한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변증법은 '적수의 지성을 피로하게 만드는 사유방식'이다. 이런 생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플라톤이 소피스트에게 했던 공격을 다시 소크라테스-플라톤에게로 전회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플라톤은 '반론술'이나 '쟁론술'이라는 기술을 일종의 수사학적 장치로 단정 짓는다. 이것은 진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변증법과는 다르다. 그것들은 말의 모순들만을 기초로 하여 진행되며, 변증법의 목적과 토론적 힘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그것들이 갖는 위험성을 소피스트들의 경우를 통해 지적했던 것이다.(4.2.2.2.1.1. 변증법의 문제 1 참조) '적수의 지성을 피로하게' 한다는 변증법에 대한 니체의 표현은 또한 논박술이 아포리아 상태로 이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변증법이 복수 수단인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주인적-위버멘쉬적 존재들을 무력화시키고, 그들의 권위에 의한 명령 가능성을 와해시키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는 반항에 대한 표현일까? 천민이 품는 원한에 대한 표현일까? 피압박자로서 자신의 고유한 잔혹성을 그는 삼단논법의 칼처럼 찔러대며 즐기는 것일까? 그가 매혹시킨 귀족들에게 그는 복수하고 있는 것일까? ― 누군가가 변증론자라면 그는 무자비한 도구를 하나 갖고 있는 것이다 : 그는 이 도구에 의해 폭군이 될 수 있다; 그는 승리하면서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변증론자는 자신이 바보가 아님을 자신의 적수에게 입증하도록 한다 : 그는 적수를 분노하게 하고 동시에 속수무책으로 만들어버린다. 변증론자는 적수의 지성을 피로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 뭐라고? 그렇다면 변증론이란 소크라테스에게서는 복수의 형식 중 하나일 뿐이란 말인가?(GD 소크라테스의 문제 7; KGW Ⅵ 3, 64. 한글판 91-92)
변증법의 성공 이유
복수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변증법이 성공한 이유를 니체는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철학적-지적 측면에서 보면, 변증법은 자연적 욕구들에 대한 유일한 제압 수단인 이성 연마의 수단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리스 문화에 대한 니체의 이해에서 나온다. 즉 그에 의하면 변증법이라는 기술은 플라톤의 입장과는 달리 반론술이나 쟁론술이나 유치한 논박술로서, 이것이 그리스인들이 지니고 있는 경기(Agon)충동을 만족시켰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 두 번째 이유는 부르크하르트(J. Burkhardt)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리스인들이 경쟁과 경기를 즐기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이것이 그리스의 문화를 독특하게 형성시킨 요인 중의 하나였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즉 그리스인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 관계에서 승리하는 것에서, 갖가지 경쟁에서 최고자가 되는 데서 명예를 찾았다. 가장 뛰어난 체조가가 되는 것, 법정에서 승리하는 것, 최고의 예술활동을 하는 것 등은 바로 그들의 경쟁 및 경기 충동, 그리고 거기서 획득되는 명예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던 것이다.
부르크하르트는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들을 더 이상 존경할 수 없게 된 그리스 민족이 웅변술을 숭앙하게 되었으며, 이렇게 그들은 새로운 바탕 위에서 다른 수단을 통하여 같은 경쟁을 시작했다고 본다.(J.C. Burkhardt, Griechische Kulturgeschichte, 1898-1902) 니체는 부르크하르트의 이런 사유를 바젤 대학에서의 그와의 의견교환을 통해 이미 습득하고 있었으며, 그리스 문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의 토대로 삼는다.
그는 새로운 종류의 경기Agon를 발견해냈다는 것, 그가 그런 경기에서 아테네 귀족층을 가르칠 수 있는 최초의 검술사범 같은 존재였다는 것 [⋯] 그는 헬레네인들의 경기하려는 충동을 건드려 매혹시킨 것이다. ― 그는 젊은 남자들과 청년들 사이의 싸움에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GD 소크라테스의 문제 8; KGW Ⅵ 3, 65. 한글판 92)
소크라테스는 의사처럼, 구원자처럼 보였던 것이다.(GD 소크라테스의 문제 11; KGW Ⅵ 3, 66. 한글판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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