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궤변론

플라톤의 변증술에 대한 이해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7.10.12|조회수200 목록 댓글 0

 

 

철학과 박사과정 조완형

 

 

 

 

 

 

 

변증술의 의미

 

플라톤에서는 변증술만이 가장 확실한 지식에 도달하는 길이다.1)

변증술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분할(分割, diairesis)과 종합(綜合, synagoge)의 방법이다.

분할과 종합은 항상 동시적이고 같이 붙어 다닌다.2)

상승의 길에는 개념들의 종합운동이 일어나고 하강의 길에서는 개념들의 분할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의 변증술은 생성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이데아의 원형의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뒷부분에 <티마이오스>와 관련하여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먼저 이데아의 인식을 위한 변증술을 설명하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변증술을 이해하기 위하여 참고해야할 곳들은 저서 <국가>, <파이돈>, <파이드로스>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과정과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동굴의 비유선분의 비유에 관하여 알아본다.

 

동굴의 비유: 비유라는 점에서 해석의 한계가 있으나 동굴의 비유의 핵심은 인간에게 자유와 계몽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철학에 있다는 점을 가장 낙관적이고도 아름답게 그려낸 비유이다.3)

이 비유의 구성은 동굴 안의 사람들의 상태와 한 죄수의 동굴 밖을 향한 여행의 시작, 여행길의 연속성, 그리고 동굴 밖에 도달하여 실재 세계를 만남, 동굴 안으로의 귀환과 운명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철학자에 의한 교육을 통한 계몽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인식론의 측면에서 접근하면, 인식의 단계와 과정에 관한 설명이다. 이 비유 가운데, 동굴에서부터 실재 세계에 이르는 과정까지의 4단계는 다음에 설명할 선분의 비유와 맞물려 있다.

 

선분의 비유: 선분의 비유는 기본적으로 4단계로 나눈다. 그리고 그것은 각각 인식영역과 존재영역으로 나뉘어 상호 연관을 맺고 있다. 이들 가운데 형이상학의 부분을 지식이라 부르고, 형이하학의 부분을 의견이라고 부른다. 그 중에 가장 저급한 단계로부터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존재 영역으로서, 그것은 그림이나 사진, 영상, 또는 그림자와 같이 생성계 안에서 우리가 실재물이라고 흔히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반영물들이다.

이것들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예술 작품4) 같은 것들이다. 이것에 상응하는 인식 영역의 부분은 추측에 해당한다.

 

둘째, 개별적인 실재물들이다. 그러나 사실 플라톤은 개별물의 실재성에 대해 부정적이다.5) 이 부분이 어거스틴과 차이점이기도 한데, 어찌되었든, 이것은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면서 실재한다고 믿고 생각하는 생성소멸계인 현상세계의 존재물과 존재자들이다. 이것에 상응하는 인식 영역의 부분은 신념에 해당한다.

 

셋째, 아름다운 여인들도,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도 늙거나 깨지면, 그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우리의 머릿속에서 라고 느끼는 그 미에 관한 개념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개념은 오감에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형이상학의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개별적인 아름다운 실재물들을 모아 놓고 아름답다라고 정의하는 이 개념적 지식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에 상응하는 인식 영역의 부분은 오성에 해당한다.

 

넷째, 그렇다면 이 개념적 지식은 또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개념은 이데아에 근거하는 것이다. 오성은 이데아계에서 경험한 에 대한 상기를 바탕으로 를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데아는 개념을 가능하게 하는 형상의 세계로서 개념의 상위 단계에 해당한다. 이것에 상응하는 인식 영역의 부분은 지성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형상의 세계 또한 초형상(超形相)이라고 부르는 형상 중의 형상인 선()에 달려있는 세계이다.

 

동굴의 비유에서 죄수가 그림자를 바라보던 것에서부터 동굴 밖으로 나가는 과정은 곧 선분의 비유에 나타난 그림자, 실물, 개념, 형상, 초형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각각의 과정을 설명한 것인데, 이 속에는 플라톤 인식론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어렵기는 해도 교육을 통해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동굴 밖으로 인도해 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플라톤이 주장하는 참된 지식을 인식하는 변증술의 과정에 관한 설명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플라톤의 귀납적 변증술은 그 구조가 종합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기 위해 아래로부터 위로 향해 올라갈 때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변증술은 최종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있을 때만 바른 것이 된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없다면, 변증술에 잘못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변증술은 바른 것인가? 이 문제에 관하여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들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한다. 플라톤적 변증술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변증술의 또 다른 방향, 즉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연역적 변증술을 어떤가? 물론 이것은 플라톤적인 변증술은 아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어거스틴이다. 어거스틴은 신으로부터 완전한 것을 해석한다. 신의 은총이 없다면, 완전한 지식에 관한 인식의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플라톤이 인간 내면의 기억에 의지 했다면, 어거스틴은 신의 은총에 의지한다. 이것이 변증술의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연역적 인식론인데, 플라톤과 정반대이다. 플라톤의 변증술이 귀납적으로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인식론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인식론의 변증술은 상기론으로 교육을 통하여 옛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플라톤 자신도 인정하였듯이 인간의 영혼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가능성이 낮은 방법인 것이다.

 

<티마이오스, Timaios>: 지금까지의 변증술은 생성계가 아닌 이데아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생성계에 대한 플라톤의 인식론은 어떤 것인가? 플라톤의 인식론은 이데아의 세계를 향해 귀납적 변증술로 나아가는 낙관적인 것인 반면, 이데아의 정 반대편에 있는 생성의 세계에 대한 인식론은 비관적인 것이다.

 

변증술의 대상은 항상 존재의 세계이며, 생성하는 것이 아니므로, 변증술은 생성에 대한 설명은 할 수 없다. 변증술이 그처럼 정확한 지식일 수 있는 것은 존재 자체에 의거하기 때문에 그렇다. 생성은 고정 불변하는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흘러가는 헤라클레이토스적 유전으로, 그것의 탐구 결과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꾸 변한다. 그러므로 자연에 대해서는 단지 개연성만을 말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플라톤은 자연에 대한 설명 방법에 변증술을 쓰지 않고 신화의 형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것은 플라톤이 학적인식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보조적인 방법임을 고백한다. 즉 변증술로는 생성을 그것 자체의 원리에 따라 설명할 수 없으므로, 결국 <티마이오스>에서 개연적 방법을 도입했던 것이다.6)

이것은 플라톤의 관심이 현상계보다는 이데아의 세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데카르트가 가장 의심할 수 없이 완전한 것으로부터 연역적으로 학문을 할 것을 권장했던 것처럼, 플라톤의 관심도 완전한 이데아의 세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합리주의 사상의 반대편에 있었던 근세의 경험철학의 끝이 개연성(蓋然性)에 머물렀던 것처럼, 플라톤에 있어서 다양한 생성소멸의 세계에 관한 지식도 가능성 높은 개연성을 가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플라톤이 인식론은 인식 방법에 있어서는 귀납적 형식의 경험주의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근본 사상에 있어서는 명백한 합리주의 철학자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