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식(方程式)" 이라는 말은 중국의 수학책 "구장산술" 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현재 연립방정식을 적당한 계수행렬을 이용해서 풀듯이 연립방정식의 계수들을 마방진과 같은 틀 안에 써놓고 이리 저리 더하고 빼고해서 해를 구했습니다.
따라서 사각형(方)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程) 이라는 의미에서 그 풀이 방법을 방정(方程)이라고 했습니다.
영어로 방정식을 뜻하는 equation 은 equal 과 어원이 같은데 두 양을 같다고 놓은 것 이라는 뜻입니다. 이집트의 파피루스,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도 방정식을 다루었던 내용이 있을 정도로, 인류가 방정식을 풀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였습니다.
이후 방정식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람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디오판토스(Diophantos) 가 유명합니다. 그러나 방정식이라고 해도 고대에는 식이라는 것이 없었고 모두 말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방정식의 현대식 기호 체계를 확립한 것은 비에트라고 합니다.
대수방정식의 역사
수학사에 의하면 기원전 6 세기경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살던 바빌로니아 사람의 문화에서 볼 수 있었던 수학은 일차, 이차 및 삼차방정식에 해당하는 문제를 풀고 있었다.
또 고대 이집트 사람도 일차, 이차방정식에 상당하는 문제를 풀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더욱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디오판토스(Diophantod;246?-330?, 그리스)는 이미 이차방정식의 해법을 알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9세기 전반 알콰리즈미(Alkhwarizmi;780-850, 아라비아)의 저서 "al-gebr w'almuqubala"에는 일차, 이차방정식의 풀이법이 나타나 있다. 여기서는 오늘날의 '이항'을 al-gebr, '동류항을 정리한다'를 auqubala라고 불렀다.
그래서 대수학을 뜻하는 algebra는 al-gebr에서 유래하고, 계산법을 뜻하는 algorithm은 Alkhwarizmi에서 유래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디오판토스, 알콰리즈미에서는 음수의 개념이 없었으므로 음의 근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음의 근의 존재를 명확히 의식한 최초의 수학자는 16세기 카르다노 (Cardano, G.;1501-1576, 이탈리아)라고 한다.
이 때까지는 이차, 삼차방정식의 계수는 모두 양의 근만을 다루었다. 즉, 카르다노 이전까지는 양의 근만을 근으로 인정하였을 뿐이다.
구장산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중국에서는 일찍이 음수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6세기경에 양수, 음수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S'ridhara(991-?,인도)는 디오판토스가 몇 가지의 경우로 나누어 푼 이차방정식을 1025년에 근의 공식을 얻어 통일적으로 푸는 방법을 밝혔다.
또한 바스카라 (Bhaskara, A.;1114-1185,인도)는 1150년에 이차방정식에 두 근이 있고, 음의 근이 존재함을 인식한 최초의 수학자이었다.
또, 바스카라는 삼차, 사차방정식도 다루었다.
간단한 모양의 삼차방정식은 메나이크모스(Menaechmos;375-325 B.C., 그리스)가 정육면체의 문제에 관련해서, 아르키메데스 (Archimedes;287?-212 B.C.,그리스)가 구의 부피의 문제에 관련해서 다루었다 . 또 카얌 (Khayyam, Omar; 1040-1123, 아라비아)은 삼차방정식을 원뿔곡선의 교점을 작도하여 풀었다. 그는 아라비아의 대표적인 시인이기도 하였다.
삼차방정식의 해법에 처음으로 성공한 사람은 페로 (Ferro; 1465?-1565, 이탈리아)라고 한다.
오늘날 카르다노의 방법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삼차방정식의 일반적인 해법이 발견된 후에 사차방정식의 해법이 카르다노의 제자인 페라리 (Ferrari, L.;1522-1565, 이탈리아)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카르다노는 1545년에 삼차, 사차방정식의 해법을 그의 저서 'Ars Magna'에 발표하였다.
삼차, 사차방정식의 해법이 발견된 후에 약 300년간 많은 수학자들이 5차 이상의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발견하려고 고심하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해도 해법이 발견되지 않으므로 계수에 가감승제와 근호의 유한회의 조작을 반복하는 대수적 해법은 불가능하다는 증명을 시도하게 되었다.
루피니 (Ruffini, P.;1765-1822, 이탈리아)는 5차 이상의 방정식은 대수적으로 풀 수 없다는 증명을 발표하였으나, 그 증명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아벨 (Abel, N.H.;1802-1829, 노르웨이)은 1826년에 "5차 이상의 방정식은 일반적으로 대수적으로 풀 수 없다."라는 정리를 증명하였다.
그 후 갈루아 (Galois, E.;1811-1832,프랑스)에 의해서 대수방정식이 대수적으로 풀 수 있는지 어떤지는 근에 대한 치환군(아벨군)의 군론적 구조에 따라 명백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와 같은 독창적인 갈루아의 생각은 오늘의 갈루아 이론의 바탕이 되었고, 현대 수학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5차 이상의 대수방정식이라도 특별한 것은 물론 대수적으로 풀 수 있다.
또 타원함수와 같은 알맞은 함수를 활용하면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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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식에서 방(方)은 모, 각, 사방, 방위, 방향, 비교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정(程)은 규칙, 법도, 길이의 단위로 쓰이는 말의 뜻이 담겨있다. 따라서 방정식에는 여러 가지 경로로 번잡하게 엉클어져 있는 것을 서로 비교하여 일정한 규칙(식)으로 정리한다는 뜻이 숨어 있으며, 방은 좌우를 뜻하고 정은 대소 비교를 뜻하니까 좌우를 비교하여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방정’이라고 했다는 학설이 있다.
일본의 수학자 다케베 겐코(建都賢弘)는 ‘방은 정(正)이다. 여러 가지 수의 행렬을 정확하게 나열한다. 그것이 방정(方正)이다.
정(程)은 벼를 세는 수이다. 《구장산술》에 볏단 여러 개를 행과 열에 맞추어 늘어놓고 서로 줄여 가면서 답을 구하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에
방정(方程)이라는 용어가 생겼다’라고 주장한다.
이《구장산술》은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정리된 것으로서 저자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내용상으로 보면 서민의 일상 생활이나 사회 생활에서 필요한
수학적 계산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수학 백과 사전’이다. 각 권 제목과 내용 중 제8권의 방정(方程)은 미지수를 구하는 계산, 연립방정식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대표로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소 다섯 마리와 양 두 마리에 열 냥, 소 두 마리와 양 다섯 마리에
여덟 냥이다. 소와 양 한 마리의 값은 각각 얼마인가?
또 1593년 정대위(程大位)라는 사람이 60세에 지은 17권 짜리 책인 《산법통종》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구미호는
머리가 하나에 꼬리가 아홉 개 달려 있다. 붕조(鵬鳥)는 머리가 아홉 개에 꼬리가 한 개 있다. 이 두 동물을 우리 안에 넣었더니 머리가
72개에 꼬리가 88개였다고 한다. 각각 몇 마리 있는 것인가?
한편, 천칭으로 물건의 무게를 잴 때는 지레의 원리를
적용한다. 지레의 한쪽에 놓은 물건과 다른 한쪽에 놓은 추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 지레가 수평이 될 때 물건의 무게를 재는 것이다. 방정식은
이러한 지레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고, 이러한 지레의 원리를 사용하여 수 많은 수학 문제를 푼 사람은 아르키메데스였다. 아르키메데스는 부력의
원리와 지레의 원리를 교묘하게 짜 맞추어 사용했다. 또한, 그는 이원일차연립방정식의 개념도 생각해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방정식은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복잡한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기 위해 사용된 하나의 문제해결방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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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별 대수방정식의 역사
(1) 수메르
지금부터 4000년 전, 수메르에서는 간단한 일차, 이차, 삼차방정식을 풀었다고 한다.
(2) 그리스
기하학의 왕국인 그리스에서는 많은 기하학자가 배출되었으나, 대수학자(방정식 연구가)는 희귀했다. 디오판토스는 희귀한 대수학자의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산학' 13권을 저작했으며, 기호에 의한 방정식을 최초로 풀었다.
(3) 이집트
피라미드가 건설된 것은 기원전 2800년경이다. 피라미드의 건설에는 고도의 수학이 필요한데, 방정식을 사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실제로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수학서인 '아메스(Ahmes ; 1700년경 B.C)의 파피루스'가 있는데 B.C 1650년경 신관(神官) 아메스가 그 전부터 알려져 있던 수학에 관한 지식을 파피루스에 기록한 수학책으로 판독하였다.
파피루스란 나일강 습지에서 나는 갈대와 닮은 식물로, 얇게 썰어서 종횡으로 겹쳐서 압축한 거친 보드(board)지와 같은 종이이다. 파피루스는 18feet × 13inch의 두루마리로 되어 있는데 기록된 수학문제는 4부로 나누어 총 85문항이다. 여기에는 미지수를 hau로 한 방정식이 보이는데 그것이 일차방정식과 이차방정식이다.
(4) 아라비아
아라비아의 수학은 인도의 대수와 그리스의 기하 등을 받아들여 이것을 정리, 발전시켜 유럽에 전하는 역할을 하였다. 아라비아도 인도와 같이 수학자는 천문학자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산술이나 방정식 분야에 치중하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 9세기의 저명한 수학자 알콰리즈미의 연구이다. 그는 '알제브로 발르 아카라바'라는 방정식에 관한 저작을 하였는데 이 책의 al-bebr 부분은 오늘날의 대수 algebra의 어원이 되었다.
12세기의 카얌(Khayyam, Omar ; 1040 - 1123)은 삼차방정식을 풀었다.
(5) 중국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에서도 옛날부터 방정식이 두루어졌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세기경에 쓰여졌다는 명저 '구장산술'이다. 이 책은 9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8장 '방정'의 장에서 오늘날의 연립방정식이 나온다.
우리가 사용하는 '방정식'이라는 어원도 여기에서 나왔다.
(6) 인도
고대 인도의 수학은 천문학자에 의해서 발전되었기 때문에, 그리스와는 반대로 기하학의 발달은 별로 없었고, 대수학(산술이나 방정식 등)이 왕성하게 발달했다.
6세기의 아리아바타(Aryabhata ; 476 - 550?)는 이차방정식을 풀었으며, 12세기의 바스카라(Bhaskara, A ; 1114 - 1185)는 처음으로 이차방정식에서 음의 근과 무리수의 근을 인정하였다.
인도 수학의 가장 큰 공적은 0과 음수의 발견, 자릿수 기수법에 의한 수의 사용이 그것인데, 이것은 현대 수학의 토대가 되었다.
(7) 유럽
이탈리아에서 이차방정식과 사차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했는데, 오차방정식의 해법은 좀처럼 얻을 수가 없었다. 그 해법을 얻기 위해 약 300년간에 걸쳐 많은 수학자가 도전했으나 어느 누구도 풀 수가 없었다.
그 후 오차 이상의 방정식은 그 일반적인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프랑스의 갈루아와 노르웨이의 아벨이 증명하였다.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이탈리라에서는 학문연구의 세계에도 올림픽 정신을 도입해서, 수학계에서는 방정식 해법 경쟁이 생겼다. 이로 인해 삼차, 사차방정식도 풀 수 있게 되었다.
오차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할 수 없다는, 즉 대수적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아벨과 갈루아는 그 증명과정에서 '군'의 개념을 생각해 내었다. 이리하여 방정식의 해법에 관련된 수학의 새로운 영역으로 '군(群)'이 탄생하였는데, 이 군의 이론은 20세기 수학의 추상주의의 계기기 되어 수학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나아가 군의 이론은 고차방정식 외에도 삼각방정식, 대수방정식, 벡터방정식, 미분방정식, 적분방정식 등 수학의 여러 분야에 관련되었다.
(8) 미국과 영국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과 영국에서 OR(Operations Research, 작전연구)가 탄생하였는데, OR에는 수학의 방정식과 부등식이 도입되었다.
처음 군사적 목적에서 발전한 선형계획법은 그 후 여러 방면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가까운 예로서, 햄이나 소시지나 화학비료 등을 만드는데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이용되어 왔다.
5 + □ = 8, 3 × □ = 21 등과 같이 일상적인 필요에서 나타난 방정식은 오늘날의 고도의 방정식 이론으로 발전하기까지 5000년 이상을 인간사회아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16세기에는 일종의 놀이로서, 19세기에는 순수학문으로서, 그리고 20세기에는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과도 관련을 가지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계속 발전해 가고 있다.
현재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미지수가 수천 개나 되는 방정식, 부등식의 해도 구할 수 있다.
알콰리즈미(780~850)
알마문치세(813∼833)에 활약한 페르시아계 수학자·천문학자·지리학자인 당시의 최대 과학자. 이슬람교도로서, 아랍식 기수법(記數法)을 뜻하는 알고리즘(algorism)은 이 이름에서 전용된 것이다. 그리스와 인도의 지식을 종합하였으며, 그 산수는 아랍인과 유럽인에게 인도의 기수법을 소개하였다. 대수학 저서인 《복원(復元)과 대비의 계산》도 중요한 것으로, 거기에는 1차방정식과 2차방정식의 해석적 해법이 포함되어 있다. 또 2차방정식의 기하학적 해법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대수학을 뜻하는 영어의 algebra는 아랍어로 복원을 뜻하는 al-jabr에서 유래한다. 그의 천문표와 삼각법의 표에는 사인함수나 탄젠트함수도 포함되어 있다. 지구의 경·위도 측정에도 종사하였는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의 본문과 지도의 양쪽을 개정하여 《지구의 표면》이라고 개제하였다.
◆ 3차 및 4차 방정식
16세기의 가장 극적인 수학적 성취는 아마도 이탈리아 수학자들의 3차 및 4차 방정식 의 대수적 해법의 발견일 것이다. 이 발견과 관련된 이야기는 매우 다채로운데, 벤베누토 젤리니가 쓴 것이 제일 그럴 듯하다. 간단히 얘기하면 다음과 같다. 1515년 경에 볼로냐(Bologna) 대학의 수학교수였던 페로(Ferro, 1465~1526)가 x3 + mx = m 방정식을 대수적으로는 풀었으나, 이는 아마도 그 이전의 아라비아 원전들 위에 기초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자신의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채 제자인 피어(Fior)에게 그 비밀을 알려 주었다.
한편 1535년경에 타르탈리아(Tartaglia)가 x3 + px2 = n 꼴의 3차 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피어는 그의 주장이 괜한 허풍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타르탈리아에게 3차방정식을 푸는 공개시합을 하고자 제안했다. 타르탈리아는 전력을 다하여 연구한 끝에 시합이 열리기 며칠 전에 2차항이 없는 3차 방정식의 대수적 해법도 발견하였다. 시합에서는 두 종류의 3차 방정식 문제가 출제 되었고 피어는 그 중 한 종류 만 풀었으나 타르탈리아는 문제를 모두 풀어 완전히 승리 하였다.
그 후에 카르다노(Cardano)가 타르탈리아에게 간언하여 비밀을 꼭 지키겠다는 엄숙한 맹세 아래 3차 방정식을 푸는 중요한 방법을 얻어 내었다. 그러나 1545년에 카르다노는 대수에 관한 탁월한 라틴어판 논문 <위대한 술법, Arsmagma> 을 뉴렘베르그에서 출간 하면서 타르탈리아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3차 방정식의 타르탈리아 해법을 실어 버렸다. 타르탈리아는 이에 격분하여 격렬한 항의를 하였지만 카르다노의 가장 유능한 제자였던 페라리(Ferari)는 카르다노가 제 3자를 통하여 페로의 해법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타르탈리아가 동일한 원전으로부터 해법을 표절했다고 비난했다.
3차방정식이 풀려진 후 오래지 않아 4차방정식의 대수적 해법도 발견되었다. 1540년에 이탈리아 수학자인 코이(Coi)가 카르다노에게 4차방정식을 초래하는 문제를 주었다. 그러나 카르다노는 그 방정식을 풀지 못했지만 제자인 페라리가 문제를 푸는데 성공하여 그의 <위대한 술법>에 이 해법을 싣는 기쁨을 누렸다.
16세기를 대표하는 수학, 즉 대수의 '원산지'는 비유럽 세계인 아라비아였지만 대수가 유럽에서 발전하게 된 이유는 '중세 후기에 있어서의 상업발달의 압도적인 영향 밑에서 계산술과의 쌍둥이로서' 이탈리아 상인이나 은행가들의 실제적인 필요 때문이었다. 천문학이 오랜 동안 수학의 발전에 기여해왔고, 한 때는 '수학자'라는 이름이 천문학자를 의미하기도 했다. 수학에 공헌한 천문학자 중에서 가장 빼어난 인물은 폴란드의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Nicolas Copernicus. 1473~1543) 였다. 우주에 관한 그의 이론은 삼각법의 개선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그 자신도 삼각법에 관한 논문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