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은 현대 대수학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원뿔곡선을 구성하는 무한개의 점들은 직교좌표에서 어떤 이차방정식을 만족시키는데 같은 원뿔곡선을 평면의 다른 부분으로 약간 회전시키면 대수방정식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지만 두 원뿔곡선은 크기와 모양이 같다. 과연 두 대수식의 어떤 부분을 보고 두 원뿔곡선이 서로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가? 또 한 대수식에서 다른 대수식으로 옮겨갈 때 변하지 않는 불변량은 무엇인가? (이것을 계산하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런 문제를 파고들 때 현대 대수의 핵심적 개념들이 등장하게 된다. 불변량의 개념, 그리고 원뿔곡선을 논의하면서 또 하나 일반식과 관련하여 행렬을 들 수 있는데 이 역시 현대 대수의 핵심적 개념이다. 이와 더불어 대칭성, 위상 등등 원뿔곡선의 대수적 주제만 살펴보더라도 이러한 핵심 개념들을 만날 수 있다.
또 하나, 변환도 현대 수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다. 예를 든 것처럼 도형의 위치와 방향만 바뀔 뿐 크기와 모양은 변하지 않는 등거리 변환(isometry), 직선들 사이의 끼인각들을 변화시켜 직사각형을 평행사변형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아핀 변환, 투명 용지에 그려진 도형을 불빛으로 비춰서 모양을 바꿔 보는 것과 같은 사영 변환, 어떤 도형을 찢거나 자르지 않고 마음대로 늘이거나 줄이는 위상 변환 등이 있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나오는 로렌츠 변환, 복소 변수론에 나오는 뫼비우스 변환을 비롯한 많은 변환들이 있다.
수학적 아이디어를 모형으로 시각화하여 보여 주는데 대한 관심은 19세기 초에 부활한 기하의 한 흐름이었다. 이후 플뤼커는 곡선을 움직이는 선들이 그리는 자취로 여기는 ‘선 기하학(line geometry)'을 만들어냈고, 19세기 중반에 들어서며 곡선과 곡면에 대해 수학계는 다시 열렬히 호응하기 시작하며 이는 순수 대수에서 유래한 결과가 다시 순수 대수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되새길 만하다.
앞서 언급한 실베스터와 케일리가 연구한 다항식의 불변량에 대한 것은 실질적으로 환의 구조에 대한 연구와 같지만 19세기에는 아무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환론으로 불변량론이라는 작은 개울이 흘러들어간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해 낸 사람은 고르단과 힐베르트로 1880년대의 일이었다.
고르단(Paul Gordan, 1837~1912)은 불변량에 관해 세계인 권위자로 군림했지만 이 이론 전체를 깔끔하게 엮어낼 수 있는 핵심적인 정리 하나를 완전히 증명하지 못했다.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1943)는 고르단 문제라 불린 이 문제를 몇 달 동안 물고 늘어진 끝에 결국 해결하고 말았다. 이 증명을 본 케일리는 “귀하는 위대한 문제의 답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답변했지만 고르단은 별다른 감흥을 받지 않았고, 이 증명에 깊은 감명을 받은 클라인(Felix Klein, 1849~1925)은 괴팅겐대학교의 교수로 힐베르트를 채용하겠다고 결심한다.
힐베르트가 고르단의 문제를 증명한 뒤 얻어낸 0점 정리는 어쩐 일인지 늘 눌스텔렌사츠(Nullstellensatz)라는 독일어로 불린다. 눌스텔렌사츠는 다양체(variety)의 개념을 선보이며 기하와 쉽게 연결시켜 주는데, 힐베르트는 눌스텔렌사츠를 대수 기하학이 아니라 대수적 추론의 맥락에서 개발했기에 이 연결은 좀 기이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가환환의 구조에 관한 정리이고 환론에 속하나 대수 기하학의 모든 교재에 나온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는 환론이라는 순수 대수에 속하는 정리이다.
눌스텔렌사츠란 무엇인가? 세 미지수에 대한 모든 다항식들의 환을 어떤 곡면과 연관시키고 이 다항식환 안의 한 이데알을 생각한다. 그리고 다양체, 더 정확히는 대수 다양체라는 핵심적 개념을 도입한다. 기하학적으로 말하면 다양체는 이차원 공간 속의 곡선 또는 삼차원 공간 속의 곡면이나 ‘휘어진 곡면’을 일반화한 것으로 어떤 다항식 또는 어떤 다항식들의 영점들의 집합을 가리킨다. 바로 앞에 이야기한 이데알은 다항식의 집합이므로 이것은 하나의 다양체, 곧 이 이데알 속의 모든 다항식들이 0이 되는 하나의 다양체를 규정한다.
이처럼 힐베르트의 눌스텔렌사츠가 말하는 바는 어떤 다항식이 이 다양체 위의 모든 점들에서 0이 된다면 이 다항식들의 어떤 거듭제곱들은 이 이데알에 속한다는 것이다. (단, 눌스텔렌사츠는 실수 계수를 가진 다항식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눌스텔렌사츠는 대수학의 기본정리(FTA)와 닮았기에 때로 ‘대수 기하학의 근본정리(fundamental theorem of algebraic geometry)’라고 불리기도 한다.
19세기 중반 이후 촉발된 기하학의 몇 가지 혁명 중 마지막 혁명이 바로 대수적으로 촉발된 것이었다. 가장 순수하게 대수적인 것이지만 그 결과는 위상 수학과 해석학은 물론 물리학에까지 미친다.
노르웨이 수학자 소푸스 리(1842~1899)는 열렬한 하이커였다. 그는 대수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스스로는 기하학자로 여겼고, 그의 모든 연구에는 기하학적 영감이 담겨 있다. 리는 베를린에서 클라인을 만나 우정을 쌓았고, 파리에서 카미유 조르당(Camille Jordan, 1838~1922)의 강연을 함께 들었다. 조르당은 1870년 『대수적 치환과 방정식에 관한 소론』이란 책을 펴냈는데, 이 책은 현대적 군론의 기초를 놓은 책으로 평가된다.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으로 리와 조르당, 클라인은 만남을 지속하지 못했고, 리는 한동안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나 크리스티아니아대학에서 연구원과 상사의 자리를 얻었다. 클라인은 괴팅겐대학교에서 강사직을 얻었으며, 조르당의 책은 수학자들 사이에서 두루 읽히게 되었고, 1870년 기하학의 다섯 번째 혁명인 ‘기하학의 군화(groupification of geometry)’가 시작되었다.
클라인은 리와 조르당과의 대화에서 눈부신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것은 기하학을 변환군에 의해 구별하는 것인데, 이때 해당 기하학의 특성은 이 변환에 대해 불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평면 등거리 변환군(group of isometry)에 대해 불변이고 사영기하학은 복비(교차비-cross ratio)가 불변이다.
1872년 클라인은 에를랑겐에서 교수직에 취임하기 위해 발표한 취임강연에서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수학적 문헌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에를랑겐 프로그램(Erlangen program)’을 발표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기하학을 군론과 불변량을 중심으로 통합하는 아이디어를 밝혔고, 이것은 수학자들에게 그들의 주제를 ‘군’화하도록 촉구하는 소명의 나팔소리와 같았다.
클라인은 에를랑겐 프로그램의 끝 부분에서 연속 변환군의 이론도 유한군의 이론만큼 정교하고 유익한 이론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는데, 리는 한동안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후에 리는 가장 일반적 종류의 다양체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에 관한 완전한 연속군(continuous group)의 이론을 구축하는 게 가능하며 그 귀결은 높은 수준의 미적분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을 알았고, 그 이론을 개발하여 ‘리군’을 완성했다.
클라인이 선포한 에를랑겐 프로그램, 리의 연속군 이론, 1890년 환론 속에서의 힐베르트의 발견 등에 힘입어 19세기 대수학과 대수 기하학의 구도는 거의 완성되었다. 이후 엔리코 베티, 프란체스코 브리오스키, 루이지 크레모나, 에우제니오 벨트라미 등 우수한 이탈리아 수학자들과 곡선과 곡면에 대한 탐구를 20세기까지 진행한 그레고리오 리치, 툴리오 레비-치비 등의 이탈리아 수학자들의 연구 덕분에 20세기 새로운 대수적 도구들로 변화를 겪을 때까지 대수 기하학은 활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세기 중반까지의 대수학
클라인의 에를랑겐 프로그림을 계기로 대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수학 전반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행렬, 대수, 군, 다양체 등 19세기 대수학자들이 발견한 새로운 수학적 대상들이 기하학, 위상 수학, 수론, 함수론과 같은 다른 분야의 문제를 푸는 도구들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에 “대수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몇 가지 분야를 (이해가 어려운 만큼) 거칠게 살펴보려 한다.
1. 대수적 위상 수학(Aigebraic Topology)
위상 수학은 19세기 말이 다 되도록 대수와 별 관계를 맺지 못했으며 초기에는 아주 느리게 진행되었다.
구나 원환면(torus)의 한 점을 택하고 어떤 고리를 그리는 것을 생각해 보자. 구에서는 이 고리를 연속적으로 매끄럽게 수축시켜 점으로 만들 수 있고, 구면 위에서는 어떤 고리이든 마찬가지지만 원환면은 그럴 수 없고 이런 경로들에 대한 연구는 곡면의 위상 수학에 대해 뭔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 같다.
1895년 푸앵카레는 곡면에서 가능한 모든 조르당 고리(출발한 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모든 경로)의 기점을 고정시킨 채 모든 고리들을 여러 묶음으로 나누는 것을 생각했다. 이 중 어떤 두 고리들이 위상적으로 서로 동등하다면 같은 묶음 속에 포함시킨다. 이런 묶음의 수는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으며 이렇게 나눈 묶음들 중 각각 하나를 골라 다음과 같이 대응시킨다 : 어떤 묶음의 한 경로를 따라 지나간 뒤 이어서 다른 묶음의 한 경로를 따라 지나간다.(각 묶음에서 어떤 경로를 택하든 상관없다.)
고리의 묶음이라는 원소들의 집합과 이들을 결합하여 또 다른 경로를 얻는 방법이라면 군이 연상되지 않는가? 푸앵카레는 이렇듯 이 고리의 묶음이 군을 이룬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이로써 대수적 위상 수학이 탄생하게 된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임의의 곡면에 대한 기본군의 개념에 이르게 되는데 이 군의 원소들은 곡면 위의 경로들의 묶음들로 두 묶음들 사이의 결합 규칙은 “어떤 묶음의 한 경로를 지나간 뒤 다른 묶음의 한 경로를 지나간다.”는 것이다. 구면의 기본군은 원소가 하나뿐인 자명군이다. (구면의 모든 고리는 위상적으로 기점과 동등하며 따라서 단 하나의 묶음만 나오기 때문이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한 원소만 있는 자명군을 가진 모든 이차원 곡면은 위상적으로 구면과 동등하다.) 하지만 원환면의 기본군은 C_{infty}*C_{infty} 라고 알려진 것이다.
삼차원 공간에 담겨있는 이차원 구면을 더 높은 차원에서 확장해서 생각해 본다면? 예를 들어 사차원 공간에 담겨있는 구면은 ‘휘어진 삼차원 곡면’으로 여길 수 있고 이처럼 사차원 이상의 공간 속에 담긴 가상의 구면을 흔히 초구면(hyper-sphere)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사차원 공간에 있으면서 원소가 하나뿐인 자명군을 가진 모든 삼차원 곡면은 그곳의 초구면과 위상적으로 동등한가?” 푸앵카레는 1904년에 이런 추측을 내놓고 “그렇다.”고 답했다.
2. 대수적 수론(Algebraic Number Theory)
대수적 수론은 대수적 수라고 하는 명백한 수학적 대상에 대한 방대한 연구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물론 맞다. 수학자들도 흔히 그렇게 본다. 하지만 군과 같은 현대적인 대수적 개념들이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수론 문제를 다루는 데 아주 유용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타원곡선 위에서 유리점을 찾는 것 등 경이롭고 매력적인 현대 수학의 미해결 문제로 그 관심을 넓혀 가고 있다.
대수적 수론의 범주에 속하는 또 다른 주제는 힐베르트보다 불과 25일 먼저 태어난 헨젤(Kurt Hensel, 1861~1941)이 발견한 p겹 수( p -adic number)와 같은 수론에 대한 대수학의 찬란한 응용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p겹 수에서 p 는 어떤 소수를 나타낸다. 간단히 p=5 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5겹 수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5겹 정수’를 살펴보자.
① 5의 제곱수를 차례로 써 본다 : 5, 25, 125, 625, 3125, 15625, …
② 5에 대해서는 0~4, 25에 대해서는 0~24, 125에 대해서는 0~124의 숫자를 생각한다.
③ 첫 번째 묶음(0~4)에서 임의의 수 하나, 예를 들어 3을 택하고 두 번째 묶음(0~24)에서 이에 대응하는 임의의 수를 하나 고른다. 여기에서 ‘대응’한다고 하는 것은 5로 나누었을 때 나머지가 3인 수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두 번째 묶음에서는 3, 8, 13, 18, 23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8을 택하기로 한다.
④ 마찬가지로 세 번째 묶음에서는 25로 나누었을 때 나머지가 8인 수들 하나를 임의로 고르면 되는데 여기에서 그 대상은 8, 33, 58, 83, 108이 있고 임의로 58을 택하기로 하자.
⑤ 이와 같은 과정을 무한히 되풀이하면 결과적으로 하나의 수열을 얻게 되는데 이것들을 한데 모아 괄호 속에 쓰고 x 라고 부르자. 그러면 x 는 다음과 같다.
x=(3,8,58,183,2683,...)
이것이 ‘5겹 정수’의 한 예이다. 이런 5겹 정수가 2개 주어지면 이것들을 이루는 각 정수에 적절한 산술을 적용하여 덧셈, 뺄셈, 곱셈을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은 환을 이루고 구체적으로는 Z_5 라 흔히 기호로 나타내는 5겹 정수의 환이 된다.
5겹 정수는 얼마나 많이 있을까? 답은 무한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하지만 단순히 무한대라고 하기에는 p에 대해 좀 부적절하여 이것을 5^{infty} 로 쓰기로 한다. 이 수에 대해 더 깊이 살펴본다면 이 5겹 정수가 사실상 0과 1 사이의 모든 실수와 동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보통의 정수들로 이루어진 환 ℤ를 이용하여 ℚ라는 분수체를 정의하는 것처럼 Z_5 를 이용하여 Q_5 라는 분수체를 정의한다면 이것이 바로 5겹 수의 체가 된다. 이렇듯 p 겹 수들은 ℚ를 완비화하는 다른 방법들을 제공하고 있다.
소수, 환과 체, 무한수열과 극한 등을 보면 수론과 대수학, 해석학의 관념들이 섞여 있음을 알게 되며 이것이 바로 p 겹 수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다. 헨젤의 제자이자 계승자가 된 하세(Helmut Hasse, 1898~1979)는 이 p 겹 수를 보통의 소수가 아닌 더 일반적인 소수들에 근거를 두게 하여 그 개념을 더욱 일반화시킴으로써 20세기 중반 수학의 전면으로 등장시킨다.
3. 대수 기하학(Algebraic Geometry)
앞서 언급했듯 19세기에 발전한 대수 기하학은 20세기를 지나며 면밀한 검토를 받아 더욱 확고한 기반 위에 새롭게 세워져야 한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클라인의 에를랑겐 프로그램에 담긴 아이디어는 기하학이 번성하면서 초래한 혼란을 하나의 분류 원리로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사영 기하학, 비유클리드 기하학, 다양체에 관한 리만의 기하학, 복소수 좌표를 사용한 기하학 등이 군이라는 분류 원리를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이렇게 되자 모든 기하학들에 공통되는 패턴과 원리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어떤 특정한 공간에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점이나 선과 같은 대상들에 의존하지 않도록 완전히 추상화하려는 시도가 시작된다. 힐베르트는 1892년 동료들과 기차 안에서 “우리는 점과 직선과 면 대신 책상과 의자와 맥주 컵을 사용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는 기억할 만한 말을 했지만 구체적인 연구로 옮기지는 않았다. 이윽고 그는 1898년~1899년에 행한 일련의 강연에서 전통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이 완전한 한 묶음의 추상적 공리들에서 도출될 수 있음을 보였고 나중에 이 강연을 『기하학의 기초』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힐베르트의 공리적 접근법은 젊은 수학자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지만 당시 너무 많은 다양한 관점들이 제시되었기에 이 길이 정리되기에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야 했다.
레프셰츠(Solomon Lefschetz, 1884~1972)는 러시아제국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1911년에 수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보기 드물게 열정적이고 풍자적이며 완고한 성품을 지닌 레프셰츠가 대수학의 역사에 기여한 바는 그가 남긴 말에 생생히 담겨 있다.
자리스키(Oscar Zariski, 1899~1986)도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다. 역사에 따른 혼란은 자리스키가 고국을 떠나게 만들었고 그는 로마를 거쳐 레프셰츠의 도움을 받아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대학에 정착하게 된다. 자리스키는 레프셰츠의 현대적인 위상 수학의 아이디어를 이탈리아에서 배운 현대적 고전 기하학과 결합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1935년에 『대수곡면』이란 책을 썼지만 이 책을 쓰는 동안 대수 기하학이 위상 수학뿐 아니라 힐베르트와 에미 뇌터의 공리적 방법론도 함께 아우르면서 나아가야 함을 깨닫는다. 마침내 1937년 자리스키는 대수 기하학의 근본을 재정립하는 연구에 매진하다가 베유(André Weil, 1906~1998)를 만난다.
자리스키와 마찬가지로 베유도 대수 기하학을 힐베르트와 에미 뇌터의 추상대수를 이용하여 새롭게 재정립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특히 그는 대수적 곡선과 곡면과 다양체에 관한 이론의 결과들이 어떤 기초체에 대해서도 성립하도록 일반화하여 소수와 수론 사이의 일반적 연결 관계가 성립되었고, 베유의 업적은 현대적 수론의 대수화의 토대가 되었다.
19세기에 떠올랐던 여러 줄기의 생각들은 기하학의 새로운 이해 속에 한데 모여들어 추상대수에 기반을 두면서 위상 수학과 해석학의 주제를 결합했으며, 곡선과 곡면에 관한 현대적 고전 기하학의 아이디어는 물론, 수론까지 포괄했다. 그리하여 힐베르트의 맥주 컵과 에미 뇌터의 환, 플뤼커의 선과 리군, 리만의 다양체와 헨젤의 체 등이 모두 단일한 대수 기하학의 개념 아래 통합되었으며 이것은 분명 유일한 것도 논란이 적은 것도 아니었지만 20세기 대수의 장엄한 성취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Ⅷ. 그리고 지금… 대수학이 흘러가는 곳
19세기를 거쳐 현대로 흘러오며 군의 분류는 매혹적인 일로 다가왔다. 역사적으로 군의 분류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모든 유한단순군(simple finite group)을 분류하는 일이다. 유한단순군들의 분류는 20세기 중반과 후반에 걸쳐 마무리되었는데 최종 시점은 1980년대쯤이다. 유한군의 이론은 실질적 응용에도 뛰어나 시장 소자부터 우주론에 이르는 많은 연구들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군들에 대한 전체적 분류가 이루어졌고 차수들에 따라 콘웨이 등에 의해 족들로 묶여서 체계화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 대수학에서의 가장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오늘날의 대수는 아주 심오해졌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사실 20세기 후반으로 들어서며 대두되는 주제들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수학 초보 수준의 수박 겉핥기식으로 뭉뚱그려 그 흐름만 느껴 보시기를…
수학자들의 관심은 점점 추상화로 접근해 간다. 수학적 대상들의 추상화, 그리고 일반화는 범주론으로 그 보편화의 길을 열었다.
군, 환, 체, 집합, 벡터공간, 대수 등과 같은 대수적 대상들은 원소(수, 치환, 회전 등)와 원소들의 결합법(덧셈, 덧셈과 곱셈, 치환의 결합 등)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대상들의 구조는 원소들을 자기 자신 또는 서로 다른 것으로 바꾸는 변환(이나 사상)법을 알아내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이 대상들은 서로 다르며 사상의 종류들도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구조와 방법들 사이에는 넓은 의미에서 닮은 점들이 있다는 게 눈에 띈다. 과연 이 모든 대상들은 물론, 앞으로 새롭게 발견될 대상들까지도 모두 포괄하여 설명할 수 있는 대수구조의 일반 이론이나 일반 원리들을 찾아내어 어떤 초월적인 공리들의 집합으로 한데 엮을 수는 없을까? 즉, 보편대수(universal algebra)라고 부를 만한 것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누군가의 답은 “가능하다.”이다.
어떤 수학적 대상들의 집합을 그 안에서 통용되는 정연한(well-behaved) 사상들의 모음으로 엮었다고 생각한다면 이게 바로 범주(category)이며 이 사상들은 구상(morphism)이라 부른다. 이렇게 하여 (물론 조심스럽게) 우리는 모든 구상들을 포함하면서 한 범주에서 다른 범주로 가는 초사상(hyper-mapping)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초사상들을 가리켜 함상(functor)이라 하며 이것에 관한 이론을 범주론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높은 추상화에서 어떤 유용한 수학이 도출될 수 있을까?
범주론은 기존의 지식들을 정리하는 깔끔한 방법일지는 모르지만 너무 높이 추상화된 이론이라는 빛바랜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이 이론을 이용하여 그로탕디에크 등은 (비록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중요한 결과를 일구어냈고 그가 이룬 것들은 아직도 수학계를 감돌고 있다고 수학자들은 말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대수학은 어떻게 쓰였는가?
초기 대수는 측정, 시간 맞추기, 자연 탐사 등과 관련하여 발전했고, 실제적인 문제부터 때로 내면적인 흥미에서 유래한 대수적 주제를 다루던 고대 수학자들의 자세는 근대까지 전해져 방정식의 해법을 통한 순수 대수적 의문의 답을 얻어내게 된다. 17세기 무렵 발명된 문자기호는 오차방정식의 일반 해법에 대한 공략과 토목, 공병, 천문, 항해, 회계 그리고 기초적인 통계학의 시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쓰였다. 이 시기의 대수는 실제적 문제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였을 것이다.
19세기 들어 순수 대수가 발전함에 따라 주제들이 풍성해지자 실제적 응용성을 훌쩍 앞서 대중으로부터는 쓸모없는 영역이라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며 고도의 추상화로 흐르는 경향은 지속되었으되 그 간격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이전 세기에 발견된 모든 새로운 수학적 대상들이 과학적으로 응용될 곳들을 찾아간 것이다. 암호와 해독에서 군 이론이, 경제학적 분석에서 행렬이, 전력 생산과 컴퓨터 칩의 설계에서는 대수적 위상 수학의 관념들이 중요성을 발휘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현대 물리학에서의 응용으로 특수 상대성 이론과 로렌츠 변환, 리군의 관계, 일반 상대성 이론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해밀턴 등의 이론, 양자론과 힐베르트 및 뇌터의 이론은 오래된 사례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상대론과 양자론을 통합하려는 끈이론, 초대칭끈이론, 엠이론, 고리양자중력 같은 이름을 가진 이론들이 20세기의 대수 또는 대수 기하학에서 그 영감을 끌어 왔다.
이제 할 수 없이 20세기 대수를 특징지었던 더 높은 추상화라는 현장은 멈추거나 잠시 쉬어야 할 것 같다. 대수학자들은 이제 물리학자들이 제기한 수수께끼에 대답하기 위해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범주론과 같은 극추상적 접근법들을 적절히 분류할 필요도 있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또한 더 이상 대수가 수학 속에서 따로 분리된 학문으로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존 더비셔는 대수 나름의 독특한 사고방식이 있기 때문에 대수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더비셔는 말한다. 오늘날의 수학이 가장 높은 수준에서 경이롭도록 통합되어 있지만 여전히 독특한 사고방식과 문제를 풀고 새로운 통찰을 얻는 데 대한 독특한 접근법들이 있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에 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대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자, 이제 대수학의 흐름을 마무리해야 할 때이다.
‘수’라는 정신적 대상으로 도약한 최초의 추상화, 문자와 기호 체계를 이룩하며 어떤 수학적 상황에서 미지수를 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대신한 두 번째 추상화, 기이하고 새로운 수학적 대상들의 발견을 계기로 한 더 높은 단계의 추상화. 대수는 인간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불가능한 것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도전으로 차원을 확대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해석하게 만들었다.
지금 대수는 심오하고 난해한 정신적 분야의 한 영역으로 꼽힌다. 추상화에 추상화에 추상화를 거듭한 대상들의 이해, 여러 겹의 추상화로 감싸진 놀라운 정신적 대상들인 대수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