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내부 들여다 볼래도 4㎞깊이 이상 탐사 불가
지각과 맨틀, 핵으로 이루어진 지구 내부에 대한 탐사는 극히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현재로선 지진파를 이용하는 것 외에 다른 탐사방법이 없다.
이 방법은 땅에 구멍을 뚫고 작게는 금속 추를, 크게는 폭약을 터뜨려 이 진동이 전달되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질자원연구원 지질기반연구부 이병주 박사는 “지표에서 지구 중심까지의 거리는 6,400㎞에 달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4㎞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면서 “그 이상 들어가면 온도가 너무 높아 어떤 물질이라도 녹아 내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반도 아래가 어떤 형태의 지각으로 이뤄졌는지조차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며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에 대해 아는 것은 지극히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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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지표면을 직접 관찰하거나 구멍을 뚫어 접근할 수 있는 지구의 깊이는 기껏 해야 20km 정도다.
반지름이 6,400km나 되는 지구의 아주 얇은 표면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거나 만지지 않고도 지구 내부를
잘 알고 있다.
지구는 여러 층으로 이뤄졌고, 이 층에 육지와 바다를 포함한 ‘지각’과 이를 받치는 ‘맨틀’, 지구 중심부에 있는 ‘핵’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핵이 액체 상태의 외핵과 고체 상태의 내핵으로 구성됐다는 것도 직접 보지 않고 알아냈다. 어떻게 이런 모습을 알
수 있었을까? | |
| 역학이 밝혀낸 지구 내부의 구조 1 - 이상한
탐험
 지진파 연구가
시작되기 전에도 과학자들은 지구가 몇 개의 층으로 이뤄졌음을 알고 있었다.
뉴턴(Isaac Newton)이 기초를 닦아 놓은
역학 덕분이다.
이런 일은 또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를 설명하려면 1735년에 있었던 지구 탐험부터 소개해야 한다.
1735년 프랑스 과학원이 적도와 가까운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역에서 ‘이상해 보이는 지구탐사작업’을 시작했다.
지구 둘레의 1/360에 해당하는 자오선 1도의 길이를 측정하는 이 작업의 목적은 적도로 갈수록 지구가 불룩한지
확인하는 것. | |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지구 내부 구조는 내핵과 외핵, 맨틀, 지각이다.
과학자들은 지진파로 지구 내부를 관찰하기 이전에도 대략적인 지구 내부 구조를 알 수 있었는데, 이는
'지구의 밀도'덕분이다.
하지만 지진파 연구 이후 지구 내부의 모습을 더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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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과학자들은 지구도 신의 창조물이므로 완벽한 공 모양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뉴턴이 자신의 책 [프린키피아(Principia)]에서
‘지구가 불룩한 공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잘못된 주장이라고 믿었던 프랑스 과학자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탐사를 추진한
것이다. 프랑스가 북부 스칸디나비아에 파견한 다른 탐사대가 뉴턴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를 얻으면서 이 탐사의 목적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안데스 탐사는 지구의 내부를 살피는 중요한 기회가
됐다. | |
역학이 밝혀낸 지구 내부의 구조
2 - 지구의 밀도를 측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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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내부의 비밀을 알기 위해 과학자들이 제일 먼저 도전한 것은 ‘지구의 밀도’
였다. 밀도를 알기 위해서는 크기와 질량을 알면 되는데,
지구의 크기는 기원전 3세기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가 이미 꽤
정확하게 측정했다.
하지만 지구와 같은 거대한 물체를 재는 저울이 없어 지구의 밀도를 알 수 없었다. 지구가 완벽한 공 모양이라는 걸
증명하는 데 실패한 안데스 탐사대는 지구의 밀도를 측정하기에 나선다. 그런데 이 또한 뉴턴과 관련돼 있었다. ‘산 부근에 추를 매달면 산의
중력이 지구와 함께 작용해 산 쪽으로 추가 조금 기울어진다’는 뉴턴의
예측 때문이다. 이는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데, 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추가 기울어진 정도와 산의 질량을 알아낼 수 있다면,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정도는 각각의 질량에 비례하고,
그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 한다’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보편적 중력상수와 지구의
질량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탐사대의 수학자 부게르(Pierre Bourguer)는 산맥들이
납으로 된 추(측연)를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산맥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측연선, 즉 추가 매달린 선의 방향이 달랐던 것이다.
이로부터 30여년이 지난 후 영국의 매스켈린(Nevil Maskeline)은 이 자료를 이용해 지구의 질량을
결정하고 지구의 밀도가 4.5g/㎤라는 계산에 성공했다.
1798년 캐번디시(Henry Cavendish)는 이런
원리를 실험실로 가져왔다.
158kg의 둥근 납덩이 2개와 작은 공 2개, 비틀림줄로 구성된 ‘비틀림저울’을
만든 것이다. 그는 이 실험으로 지구의 밀도가 5.45g/㎤이라는 것을 알아냈는데,
이는 오늘날 밝혀진 지구의 밀도 5.25g/㎤와 매우 가까운 값이다.
그런데 지구의 밀도가 5.25g/㎤인데 반해 지표면에서 발견되는 암석의
밀도는 2.5~3g/㎤ 정도 밖에 안 된다.
결국 지구 내부에 밀도가 7.8~10g/㎤ 정도인 지표면의 암석보다 밀도가
성분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지구 내부에 ‘무거운 성분’을 포함하는 핵이 존재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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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자신의 책 [프린키피아]에서 지구가 완벽한 공 모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를 반박하고 싶었던 당시 과학자들은 적도 근처 안데스로 탐사를 떠났다. 그들은 비록 뉴턴의 생각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곳의
탐사로 지구의 밀도를 측정할 방법을 찾아온다. 덕분에 지구 내부 구조에 대한 대략적인 모형을 그릴 수
있었다. | |
역학이 밝혀낸 지구 내부의 구조
3 - 관성능률에 숨어있는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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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후반 역학연구를 통하여 과학자들이 얻어낸 지구내부의 모형이다. 지각에서
보는 암석의 밀도는 지구의 평균 밀도보다 낮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지구 내부에 핵이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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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가 거의 끝날 무렵 이런 생각은 더욱 강화된다. 회전하는 물체의 성질에 덕분이다. 뉴턴이 예측한대로 지구가
축을 따라 회전하면 적도 근처의 지점은 극 지점에 비해 더 먼 거리를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회전하고 원심력도 커진다.
결국 지구 전체적으로 볼 때 적도 지역이 ‘부푼 모습’을 띄게 되는 것이다.
지구의 밀도가 균일하게 분포됐다면 적도 부분이 눈에 띌 정도로 부풀게 된다. 하지만 질량이 지구 중심인 핵 쪽에
밀집됐다면 그렇지 않다. 이는 회전하는 물체의
‘관성능률(관성모멘트, moment of
inertia)’로 설명할 수 있다.
지구의 실제 모습을 살펴보면 적도지방이 약간 부풀어 있다. 하지만 적도와 극의 반경을 비교한 차이는 약 0.03
정도로 미미하다. 따라서 물리학자들은 관성능률과 지구의 평균밀도 자료를 고려해 지구 중심에 핵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핵의 밀도는 약
11g/㎤이고, 크기는 지구 반경의 절반 정도라는 계산이 나왔다.
이렇게 비교적 간단한 역학 계산을 통해 19세기 말 무렵의 과학자들도 지구의 내부 구조에 대한 꽤 정교한 모형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형이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20세기에 지진학(seismology)이 등장하면서
부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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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학의
재탄생
 지진학은 의학에서 X-ray나
초음파로 사람의 몸속을 살피는 것과 비슷하다.
지진이 만들어내는 파동인 지진파가 전파되는 모습을 살펴 지구 내부의 정보를 알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창기 지진학은 지진이 사람이나 물질에 주는 파괴력의 정도에 따라 지진을 분류하고, 분포도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했다.
지진학이 지구 내부를 살피는 연구를 하기 시작한 것은 1883년 영국의 밀른(John Milne) 이후다.
일본에 머물면서 일본 내에 큰 영향을 미친 몇 개의 지진을 조사했던 밀른은 그 엄청난 에너지에 놀라며 한 가지
예측을 한다.
‘큰 지진이 방출하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고려할 때 지진이 만들어내는 진동을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 관측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 같다’는 것. 이후 지진학은 새로운 학문으로 재탄생했다.
최초의
원지지진(Teleseism)
 6년 후인 1889년 독일의
레뵈르-파슈비츠(E. von Rebeur-Paschwitz)는 자신이 만든 정교한 지진계를 통해 밀른의 예언을 확인했다.
자신의 지진계에 이상한 파형이 기록된 4월 18일 일본의 동경에서 매우 큰 지진이 발생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 |

1889년 독일의 레뵈르-파슈비츠(E. von Rebeur-Paschwitz)의 지진계에
기록된 최초의 원지지진기록(Nature, 40, 1889, p. 295)과 이를 기록한 레뵈르의 정교한 지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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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견에 충격을 받은 인도지질연구소의 올덤(Richard D. Oldham)은 지진계를 제작하고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큰 지진의 파동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1900년 울덤은 그동안 획득한 지진기록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다.
그가 ‘P와 S(primary and secondary)’로
이름 붙인 작은 진폭의 두 그룹이 먼저 도착하고 이후 큰 지진파들(발견자의 이름을 따
‘Love파’와 ‘Rayleigh파’라고 부름)가 뒤따라 도착한다는 내용이다.
또 관측점에 처음 도착하는 작은 파들의 시간을 정확히 분석해 이들이 지구내부를 통과하는 ‘내부파’이고, 늦게
도달하는 큰 파들은
지표를 통해 이동하는 ‘표면파’임을 보였다. 이처럼 지진파 각각의 궤적을 확인하게 된 것은 지구의 내부 구조를
연구하는 지진학의
중요시발점이
됐다. | |

지진이 일어나고 4분 후와 9분 후 S파와 P파가 지구내부를 전파해 간 모습을 보여주는 모식도.
내핵에서 S파의 전파가 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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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른과 올덤의 연구가 지구과학자들의 열광적 호응을 얻자 전 세계에 지진관측소가 갑자기 늘어났고
이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도 증가했다. 지진파가 전달되는 속도 분포의 불연속면 등을 발견해 지구의 내부 구조를
밝히려는 노력이
급증한 것은 물론이다.
지진파로 지구의 내부 구조가
밝혀지다
 1906년 올덤은 압축파인
P파가 지구 반지름의 약 0.4배의 반경(2,550km)에서 그 아래로 내려갈 때 속력이 갑자기 느려지고 더 이상
전파되지 않는 것을 관측했다.
이는 액체상태의 핵이 존재한다는 강한 증거였다.
1909년 유고슬라비아 자그레브의 관측소에서 연구하던 모호로비치치(Andreiji
Mohorovi?i?)는 지각과 맨틀 경계 부근 30~40km
깊이에서 지진파 속도가 7.2km/s에서 8.0km/s로 급격하게 증가하는 불연속면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어 전 세계의 지진학자들이 이 불연속면을 확인했고 이를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 더 친숙히는
‘모호(Moho)’라고 불렀다.
1914년 구텐베르크(Beno Gutenberg)는
1906년에 올덤이 발견한 핵과 맨틀 경계를 더욱 정밀하게 측정했다.
그 결과 핵의 반경이 지구 반경의 0.545(2,900km 깊이)가 됨을 계산했고, 이 값은 지금까지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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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코펜하겐연구소의 레만(Inge Lehmann)이 뉴질랜드 근처에서
발생한
큰 지진이 만들어낸 지진파를 조사하면서 새로운 결과를 발견했다.
파선이 빗나가 도저히 도달될 수 없다고 생각한 몇 개의 P파가 예상 밖으로
관측된 것이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1936년 레만은 핵의 구조가 고체와 이를 둘러싸고 액체 두
부분으로 돼 있다는 ‘레만불연속면(Lehmann
Discontinuity)’을 제안했다.
이는 더 정밀한 지진 관측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이렇게 지구 내부 구조의
전체적인 윤곽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지진학이 밝혀낸 지구의 내부는 마치 노른자위, 흰자위, 껍질로 이뤄진 계란
모습과 흡사하다.
중심인 노른자 자리에는 고체(내핵)와 액체(외핵)로 구성된 반경 3,500km의
무거운 핵이 있고, 여기서 지진파는 매우 빠르게 진행한다. 핵 주위를 둘러싼
흰자위 자리는 약 2,900km 두께의 맨틀이 둘러싸고 있고,
이곳에서 지진파의 속도는 핵보다 느리다.
껍질에 해당하는 지표면 근처는 비교적 가벼운 물질의 고체로 이뤄진 지각이
있다.
지각은 두께 약 5km 정도의 해양지각과 평균적으로 35km 정도의 두께를 가진
대륙지각으로 나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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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파의 이동속도가 보여주는 지구 내부의 온도구조 모식도. 달걀의 모습을
닮았다. | |
지구 내부 대부분은
고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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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학의 2단계는 관측된 지진자료의 특성을 고체에서 음파가 전달되는 물리적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영국의 응용수학자 제프리스(Harold Jeffreys) 등은 압축파(compression wave)인
P파와는 달리
전단파(shear wave)인 S파는 액체 상태를
통과할 수 없다는 기본적 특성을 밝혔다.
덕분에 레만은 내핵은 고체이고 외핵은 액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외핵을 제외한 다른 곳에는 S파가 자유롭게 전파된다는 것은 액체 상태의 맨틀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일축시켰다.
즉, 지구 내부는 대부분 ‘움직일 수 없는 고체’로 돼 있다는 것. 이런 이론적 배경을 가진 지구물리학자들은
20세기 초에
베게너(Alfred Lothar Wegener)가
주장한 대륙이동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60년대 더 정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약 100km 깊이에 힘을 받으면 움직이는 연약권이 있다는 게 알려졌다.
결국 지진학의 이론적
근거가 판구조론을 확립시키는 돌파구로 작용한
셈이다.
지진파단층촬영법(seismic
tomography)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많은 양의
지진자료를 다룰 수 있게 됐고, 지구 내부를 단층 촬영을 하듯 들여다 볼 수도 있게 됐다.
이런 지진파단층촬영법을 통해 얻은 결과로 맨틀 전체에 2~3개의 거대한 상승류가 있어 핵과 맞닿은 맨틀 하부와
지표면의 물질이
교환되는 큰 대류현상을 보여줬다.
이 결과 판구조론은 자연스럽게 ‘플룸구조론’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개념으로 확장되며,
지구과학자들은 46억년이나 되는 오래된
지구를 보는 확실한 눈을 갖게 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