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현상이 단순히 신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법칙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시대 사람들이 처음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사람들은 천상을 지배하는 자연법칙과 지상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이 서로 다르다고 믿었는데, 그런 생각은 중세까지 계속되었다. 신이 살고 있는 천상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은 완전하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증거가 바로 천상에 속한 물체인 별들이 원을 그리며 운동하는 것이다. 별들은 완전한 형태인 원을 따라 이동하며 절대로 멈추지 않고 영원히 움직일 뿐 아니라 별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 단지 한 가지 종류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반면에 인간이 사는 지상은 불완전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지상의 물체는 힘을 받아야 비로소 움직이고 힘을 받지 않으면 움직이던 물체도 결국 정지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지상을 구성하는 물질은 불완전하여 끊임없이 다른 물질로 바뀐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서 자연법칙에 대한 그동안의 믿음이 옳지 않다는 증거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행성들의 운동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얻은 브라헤의 자료를 수학적으로 분석한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에 관한 법칙을 도출하는데 성공하였는데, 그로부터 사람들은 행성들이 원 궤도가 아니라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따라 회전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태리의 갈릴레이는 지상의 물체가 힘을 받지 않으면 움직이던 물체도 결국 정지하게 된다는 생각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사고(思考) 실험을 통하여 힘을 받지 않는 물체가 정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직선 위를 동일한 빠르기로 계속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케플러에 의해서 행성들이 어떤 운동을 하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지만 당시 학자들은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더 중요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 것이라고 보았다. 행성들이 왜 원 궤도가 아니라 타원 궤도를 그리며 회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래 브라헤가 행성들의 운동을 면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회전하기 보다는 지구를 포함한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때문이었다. 브라헤는 지동설이 옳지 않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행성들의 운동을 자신이 직접 관찰해보자고 작정하였다. 그런데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조차도 행성들이 원 궤도를 그리지 않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천상의 물체가 완전한 운동인 원 궤도를 그리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브라헤의 신빙성 있는 관찰 자료에 근거한 케플러 법칙에 의해서 사람들은 행성들이 원이 아니라 타원 궤도를 그리며 운동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하였지만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는 뉴턴에 의해서 극적으로 단번에 해결되었다. 그는 태양과 행성들 사이에 인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회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힘은 두 물체가 접촉할 때만 작용된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발표된 이러한 제안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뉴턴은 태양과 행성들 사이 뿐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들 사이에도 이러한 인력이 작용한다고 믿고 원래부터 모든 물체가 지니고 있는 인력의 원인을 물체의 질량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크기는 그들이 지닌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그들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다.
만유인력 법칙만으로는 왜 행성들이 태양 쪽으로 끌려가지 않고 오히려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를 그리며 운동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뉴턴은 물체에 힘이 작용되면 이 힘은 물체에 가속도를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제안하였다. 지상에 속한 물체에 힘이 작용하면 물체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는 종전의 지상에 속한 물체에 대한 자연법칙을, 힘은 물체의 속도를 바꾸는 원인이 된다는 것으로 수정한 셈이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뉴턴의 운동법칙으로 뉴턴의 운동방정식이라고도 알려진 이다. 행성의 운동에 만유인력 법칙과 운동법칙을 적용하면 케플러 법칙이 왜 성립하는지 잘 설명되었다. 이렇게 발견된 뉴턴의 운동방정식은 놀랍게도 천상에 속한 물체인 행성들의 운동을 설명하여 줄 뿐 아니라 지상에 속한 물체에 대해서도 역시 똑같이 성립하였다. 물체가 힘을 받지 않으면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움직이던 빠르기로 직선 위를 계속 움직인다는 갈릴레이의 생각도 뉴턴의 운동방정식의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천상과 지상으로 구분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뉴턴의 운동법칙과 만유인력 법칙은 1687년에 발표된 그의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새로운 자연법칙의 위력은 극적인 방법으로 과시되었다. 비사교적인 뉴턴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사람이었던 핼리는 수십년 만에 한번씩 갑자기 하늘에 나타나 긴 꼬리를 달고 밤하늘을 질주하다가 몇 주일이 지난 뒤 사라지곤 했던 혜성의 운동에 뉴턴의 운동법칙을 적용하여 혜성이 다시 출현할 시기를 미리 계산하였다. 비록 핼리가 사망한 뒤였지만 그 혜성은 1758년 예언된 날짜에 정확하게 다시 출현하였다. 중세까지 사람들은 신이 인간에게 징벌을 예고하는 표시로 혜성을 보내며 혜성이 나타난 뒤에는 전쟁과 질병 그리고 기근 등의 재앙이 뒤따른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핼리에 의하여 혜성은 단지 정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며 혜성이 나타날 시간을 운동법칙에 의해 미리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부터 이 혜성을 핼리 혜성이라고 불렀고 뉴턴이 발견한 자연법칙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현상을 미리 예측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17세기에야 비로소 인간은 지상과 천상을 포함한 모든 자연현상에 대해 성립하는 자연법칙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자연법칙 즉 뉴턴의 운동법칙은 뉴턴역학 또는 고전물리학이라 불리는 학문 분야로 태어났는데, 라그랑주, 오일러, 해밀턴 등 수많은 뛰어난 학자들이 뉴턴역학을 수학적으로 아름다운 이론체계로 발전시켰다. 또한 뉴턴역학은 자연에서 관찰되는 어떤 현상에 적용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올바른 궁극적인 자연법칙을 찾아내었다고 믿게 되었고 19세기 말에 도달하였을 때 이제 물리학은 완성되었다고 확신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19세기에서 20세기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뉴턴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우연히 관찰되기 시작하였다.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고 베크렐이 나중에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등으로 명명된 방사선을 발견한 뒤 러더퍼드는 알파선을 금 원자에 충돌시켜서 금 원자의 내부를 조사하였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만일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기본이 되는 입자인 원자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반질반질한 완벽한 수정구 모양일 것이고 그 내부는 오로지 신만 알고 인간은 알지 못하는 존재일 것이라고 상상하였다. 그런데 음극선관에서 전자(電子)를 발견한 톰슨이 물질에서 전자가 발생하는 것으로부터 전자는 원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 내부에는 구름 형태로 양전하가 분포되어 있고 음전하를 지닌 전자는 그 양전하 구름 사이사이에 박혀있을 것이라는 원자모형을 제안하였다. 러더퍼드는 이러한 톰슨의 원자모형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러더퍼드의 실험 결과는 놀랍게도 예상과 다르게 나왔다. 원자의 내부는 온통 빈 공간뿐이었다. 그리고 양전하는 원자 중심부 아주 작은 공간에 밀집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러더퍼드는 원자핵을 발견하였다. 원자핵은 아주 작아서 만일 원자의 크기가 야구장만 하다면 원자핵은 모래 한 알만 하면서도 원자핵의 질량은 원자 전체 질량의 99.95%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원자핵이 발견되자 톰슨의 원자 모형은 수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자핵은 양전하이고 전자는 음전하이기 때문에 원자 내부에 전자가 정지해 있다면 전자들이 전기력에 의해 모두 원자핵으로 끌려들어가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에 러더퍼드는 전자들이 원자핵의 주위를 회전하고 있을 것이라는 원자모형을 제안하였다.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이 발표되자 당시 사람들은 몹시 놀라면서도 환호하였다. 이 원자모형은 마치 태양계 모습과 흡사하였고 원자 내에 다시 태양계가 반복된다는 것이 무척 그럴듯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환호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그 때 이미 잘 알려진 전자기 이론에 의하면 가속 운동을 하는 전하는 전자기파를 방출하며 자신의 운동에너지를 잃어야 하였다. 따라서 원자핵 주위를 회전하는 전자는 전자기파를 내보내면서 회전 속력이 줄어들고 그러면 전자의 회전 반지름도 감소하여 결국에는 원자핵 주위를 회전하는 모든 전자들이 원자핵으로 끌려 들어가 버리고 말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원자핵이 발견되고 원자가 기본 입자가 아니라 내부에 또 다른 구성 입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다음에 원자 내부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자연법칙이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사람들이 올바른 자연법칙이라고 그렇게도 확신하였던 물리학은 원자 내부세계에서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원자 내부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였다. 그런데 원자 내부구조에 대한 정보는 이미 나와 있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러시아의 과학자 멘델레프는 1869년에 원소의 주기율표를 발표하였다. 주기율표는 당시에 알려진 원소들을 질량 순으로 배열한 것인데 그로부터 동일한 화학적 성질을 가진 원소들이 주기적으로 출현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원소가 모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기본 입자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또한 뜨거운 기체에서 나오는 빛도 역시 원자 내부의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18세기 말부터 이미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켜서 그 빛의 진동수를 알아내는 분광(分光) 기술이 매우 정교하게 발달해 있었는데, 뜨거운 고체에서 나오는 빛의 진동수는 연속적으로 분포된데 반해 뜨거운 기체에서 나오는 빛의 진동수는 불연속적이었다. 그래서 고체로부터 나오는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연속 스펙트럼을 만들었고 기체로부터 나오는 빛은 선 스펙트럼을 만들었다. 그런데 스위스의 고등학교 교사인 발머는 뜨거운 수소 기체에서 나오는 빛의 몇 가지 진동수들 사이에 규칙적인 관계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발머의 공식이 왜 성립하는지를 당시에 자연현상 모두를 빠짐없이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뉴턴역학을 비롯한 물리학으로는 도저히 풀어낼 수가 없었다.
20세기에 들어서기 직전에 당시 물리학으로 바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들이 또 있었다. 플랑크는 뜨거운 고체에서 방출되는 복사파의 세기를 진동수의 함수로 설명하는 식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이 세기는 진동수가 증가할수록 더 커지다가 어떤 진동수에 이르면 최고가 되고 그 이후로는 진동수가 더 증가하면 세기는 점점 더 약해졌다. 그렇지만 당시 이론으로는 복사파의 세기가 이렇게 바뀌는 모습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단지 세기가 최대인 진동수를 중심으로 진동수가 낮은 쪽과 높은 쪽을 따로따로 설명하는 공식이 나와 있을 뿐이었다. 레일레이와 진스가 진동수가 낮은 쪽의 공식을 만들었고 빈이 진동수가 높은 쪽의 공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플랑크는 우연히 레일레이-진스 공식과 빈의 공식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당시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가정 아래서만 가능하였다. 뜨거운 고체에서 나오는 복사파의 에너지가 아주 작지만 유한한 에너지의 정수배이어야지만 되었다. 그보다 더 작은 에너지를 이용하면 올바른 복사 공식을 도저히 만들 수가 없었다. 이것은 복사파가 파동이 아닌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가장 작은 에너지양을 나타내는 상수를 플랑크 상수라고 부른다.
20세기로 들어와서도 그런 문제점들이 계속해서 출현하였다. 금속 표면에 빛을 쪼여주면 금속 내부의 전자가 바깥으로 튕겨져 나오는데, 이 현상을 광전(光電) 효과라고 한다. 광전 효과는 1886년에 헤르츠에 의해 처음으로 관찰되었고 전자를 발견한 톰슨은 1899년에 빛을 쪼여준 금속에서 튕겨져 나오는 것이 정말 전자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1902년 레나드는 당시 알고 있던 물리학 지식으로는 이 광전 효과 현상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하였다. 금속 표면에 빛을 쪼여주면 금속 내부의 전자가 빛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운동에너지가 증가하고 이 에너지가 충분히 커지면 금속 바깥으로 튕겨져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가 있다. 그리고 당시 빛은 파동인 전자기파의 일종이며 따라서 빛이 나르는 에너지는 빛의 세기에 비례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광전 효과에서는 빛의 세기를 증가시켜도 나오지 않던 전자가 튕겨 나오는 경우는 없었고 오히려 아무리 약한 세기의 빛이라도 빛의 진동수를 크게 하면 나오지 않던 전자가 튕겨 나오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일단 전자가 튕겨 나오기 시작할 때 빛의 세기를 증가시키면 나오는 전자의 수가 빛의 세기에 비례해서 많아졌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빛이 입자라고 생각하면 광전 효과 문제가 해결된다고 제안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도 플랑크 상수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빛이 입자들의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빛 입자 하나가 나르는 에너지는 플랑크 상수에 그 빛의 진동수를 곱한 것과 같다고 하면 광전 효과에서 관찰되는 모든 현상이 아주 잘 설명되었다. 빛이 입자라는 증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23년에 컴프턴은 단색광 빛을 전자에 충돌시켰더니 충돌 후 빛의 색깔이 바뀌는 것을 관찰하였는데 이 때 빛을 입자라고 보고 구한 빛의 운동량이 플랑크 상수를 그 빛의 파장으로 나눈 것과 같다면 충돌 전후 운동량의 합이 같도록 빛의 색깔이 바뀐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빛과 전자의 충돌이 마치 당구공끼리의 충돌과 똑같이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만일 빛이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라면 전자와 충돌한 뒤에 회절하게 되더라도 충돌 뒤에 빛의 진동수가 바뀔 수는 없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원래 역사학자였던 드브로이는 빛이 입자일 수도 있다는 증거나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1924년에 만일 파동이라고 믿었던 빛이 입자라면 입자라고 믿었던 전자가 파동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내용의 박사 학위 논문을 파리 대학에 제출하였다. 드브로이의 생각은 1927년 데비슨과 저머에 의해 미국에서 그리고 전자를 발견한 J. J. 톰슨의 아들인 G. P. 톰슨에 의해 영국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수행된 실험들을 통하여 증명되었다. 결정체를 통과시킨 전자들로부터 파동만의 특징인 회절 현상이 관찰된 것이다.
이와 같이 뉴턴역학으로부터 시작한 고전물리학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진 시기에 원자 내부세계와 그 내부세계를 구성하는 입자들에 관해서 고전물리학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마치 17세기에 브라헤가 행성에 관한 관측 자료로부터 행성들의 운동이 만족하는 케플러 법칙이 나왔듯이, 20세기 초에는 원자 내부세계에 대한 수많은 실험 자료들이 만족하는 경험 법칙들이 나왔다. 1913년에 보어는 러더퍼드 원자모형을 수정한 원자모형을 발표하였다. 보어는 전자가 원자핵의 주위에서 정해진 궤도를 회전하면 전자기파를 방출하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며 전자가 높은 에너지의 안정된 궤도에서 낮은 에너지의 안정된 궤도로 옮길 때만 전자기파를 방출한다고 생각하였다. 보어의 원자모형에서 안정된 궤도는 회전하는 전자의 각운동량이 플랑크 상수를 로 나눈 값의 정수배일 때뿐이다. 그리고 전자가 높은 에너지의 궤도에서 낮은 에너지의 궤도로 옮길 때는 그 에너지 차이를 플랑크 상수로 나눈 값과 같은 진동수의 전자기파를 방출한다. 마치 처음에는 케플러 법칙이 성립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듯이, 보어의 원자모형도 왜 성립하는지를 알 수 없었지만, 보어의 원자모형을 이용하면 뜨거운 기체가 방출하는 빛에서 관찰되는 선스펙트럼의 진동수 관계들을 잘 설명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1927년에 하이젠베르크는 전자 등과 같이 원자 내부세계에서 관찰되는 자료들을 보면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위치가 불확실한 정도와 운동량이 불확실한 정도의 곱이 플랑크 상수보다 더 작을 수가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하였다. 예를 들어,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면 운동량의 값이 전혀 정해지지 않고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하면 위치의 값이 전혀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1928년에 파울리는 여러 종류의 뜨거운 기체가 방출하는 선스펙트럼의 진동수를 분류하면서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보어의 원자모형에서 전자들이 모든 면에서 동일한 상태에 두 개 이상의 전자가 존재할 수 없다는 배타원리를 발표하였다.
20세기가 시작하면서 드러난 원자 내부세계를 지배하는 자연법칙과 연관된 사정은 마치 17세기에 대두되었던 사정과 흡사하였다. 천상의 물체들은 완전한 원운동을 한다고 굳게 믿고 있던 시대에 케플러 법칙이 발표되었고 사람들은 케플러 법칙이 왜 성립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는데, 그 때는 뉴턴이 문제를 바로 해결하였다. 이제 고전물리학이 자연의 진리라고 굳게 믿고 있던 시대에 원자 내부세계에서는 보어의 원자모형이나 불확정성 원리 그리고 배타 원리 등이 필요하였는데 사람들은 그런 법칙들이 왜 성립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문제를 단번에 명쾌하게 해결해 주는 뉴턴과 같은 한 사람이 등장하지는 못하였다. 대신 많은 학자들이 의견을 나누며 고심하면서 해결책을 하나씩 모색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원자 내부세계의 자연법칙을 찾아내었는데, 그 이론체계를 양자역학이라 부른다. 그리고 뉴턴의 운동방정식이 뉴턴역학에서 담당하였던 역할을 슈뢰딩거 방정식이 양자역학에서 담당한다. 즉 슈뢰딩거 방정식은 원자 내부세계의 현상에 적용되는 운동법칙이다.
17세기에 뉴턴역학이 출현하면서 서로 다른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였던 천상과 지상이 동일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하나의 세상으로 통합되었다. 그런데 20세기에 양자역학이 출현하면서 뉴턴역학의 지배를 받지 않는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뉴턴역학의 지배를 받는 세상을 거시세계 그리고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는 원자나 분자의 내부세계를 미시세계로 구분하게 되었다. 뉴턴역학은 자연현상을 경이로울 정도로 완벽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자연의 진리로 받아들여졌었다. 양자역학이 출현한 뒤 한 세기가 채 다 지나가지 않은 오늘날 인간은 미시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양자역학에 의해서 초정밀 최첨단 과학기술 문명을 이룩해 내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가 바로 양자역학이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올바른 자연법칙임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많은 학자들에 의해 양자역학 이론체계가 어렵게 수립되던 시기에 아인슈타인은 혼자서 상대성이론의 골격을 완성하였다. 상대성이론은 특수 상대성이론과 일반 상대성이론으로 구성되는데 특수 상대성이론은 그동안 믿었던 공간과 시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수정해준 이론이며 일반 상대성이론은 뉴턴의 중력이론을 대치하는 이론으로 결국 우주론에 도달하게 된 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