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1년 중국에서 편찬된 [무비지]에 나오는 로켓 화기(왼쪽)
1474년 편찬된 병기도설의 신기전 설계도 (오른쪽)
소신기전(위), 중신기전(아래)의 구조, (단위 mm)
① 화살대 ② 종이약통 ③ 화살촉 ④ 깃털 ⑤ 소발화통(폭탄)
대신기전의 구조 ① 대신기전 발화통(폭탄) ② 약통(로켓엔진) ③ 안정막대(대나무) ④ 깃털,
산화신기전은 대신기전발화통 대신 지화통(2단 로켓)에 소발화통을 묶어 사용했다. (단위 mm)
대신기전은 길이 5.3m의 큰 대나무 앞부분에 길이 70cm, 지름 10cm의 대형 약통이 달렸다. 종이로 된 약통에는 최대 3kg의 흑색화약을 채운다. 약통의 앞부분에는 길이 23cm, 지름 7.5cm의 대신기전 발화통이란 대형 폭탄이 달렸다. 이 폭탄은 목표물 도착 전후에 점화선에 의해 자동으로 폭발하도록 설계돼 있다. 사정거리는 600~700m 정도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대신기전은 압록강과 두만강 중류지방에 있던 4군 6진에서 여진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신기전은 중신기전에 비해 60배나 많은 흑색화약을 써야 했고, 당시 가장 큰 대포였던 장군화통(將軍火筒)보다도 3배나 많은 화약을 사용하는 등 너무 많은 화약 소모량 등으로 인해 수명이 길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산화신기전은 ‘불을 흩뜨리는 신기전’으로 대신기전 약통의 윗부분을 비워놓고 그곳에 로켓의 일종인 지화통(地火筒)을 소형 폭탄인 소발화통과 묶어 사용하였다. 지화통은 종이를 말아서 만들었으며 길이는 13.5cm, 지름은 2.5cm로 중신기전과 소신기전약통의 중간 정도 크기다. 지화통은 땅에 묻어놓고 적이 접근하면 불을 붙여 하늘로 불을 뿜게 하여 적을 도망가게 하는 로켓 화기의 한 종류이다. 2009년 11월 27일 산화신기전 발사실험에서 비행 중 2단 로켓인 지화통에 불을 붙이는 데 성공하였다. 산화신기전은 발사하면 포물선을 그리며 500~600m를 비행해 내려가면서 지화통이 점화되고 지화통은 소발화통이라는 폭탄과 함께 빠르게 적진으로 날아가며 폭발한다.
2009년 11월 27일, 자동차성능연구소에서 있었던 산화신기전의 발사모습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약통 로켓인 신기전의 구조와 특징
신기전의 약통은 현대식 로켓의 ‘모터(motor)’에 해당한다. 종이를 말아서 만들었으며 연소가스의 분사속도를 높여주는 ‘노즐(nozzle)’이 없는 형태의 초기로켓이다. 16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로켓은 종이약통의 끝부분에 끈을 조여서 감아 만든 목을 통해 노즐 역할을 하도록 했다. 화약을 약통에 채울 땐 화약이 타들어가는 면적을 넓히고 화약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원뿔꼴의 첨철(尖鐵)위에 약통을 세운 뒤 화약을 조금씩 넣고 속이 빈 원통형 도구인 원철(圓鐵)을 이용해 망치로 다졌다.
신기전의 특징 중 하나는 중신기전이나 대신기전 또는 산화신기전의 앞부분에 발화통(지금의 폭탄)을 장치했다는 점이다. 로켓의 앞부분에 지금의 미사일처럼 폭탄을 장치해 발사했던 것은 신기전이 처음으로, 인류가 만든 로켓 무기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신기전은 세계 최대의 종이약통 로켓으로 추정된다. 종이약통 로켓은 1232년의 세계 최초 로켓에서 1805년 영국에서 제작된 6-파운더(Pounder) 로켓이 개발되기까지 600년간 전 세계에서 사용되었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쓰인 종이약통 로켓 무기들과 비교하면 대신기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로켓 무기였다.
콘래드 하스가 개발한 2단 로켓 (1529년
또한 산화신기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2단형 로켓이다. 산화신기전은 약통의 윗부분에 소발화통이 달린 지화통을 여러 개 설치하는데, 지화통이 바로 산화신기전의 2단 로켓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2단 로켓으로 알려진 것은 루마니아의 콘래드 하스(Conrad Haas)가 1529년 설계한 로켓이지만, 산화신기전은 이보다 80년 앞서 개발됐다
[국조오례서례 병기도설]의 신기전 설명은 아주 자세하고 정밀하다. 각 부분의 치수를 0.3mm에 해당하는 리(釐)까지 아주 정밀하게 기록했다. 각 부분의 길이와 각 부분의 길이를 모두 합한 길이를 함께 기록해 현대식 기계설계기법과 같이 아주 자세히 기록했다. 이 같은 신기전에 관한 연구는 국제우주학회(IAF, IAA)에서 1993년과 2009년에 발표돼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살상력과 적에게 큰 공포감까지 불러일으키는 신기전의 위력
신기전의 위력은 어땠을까? [조선왕조실록]에는 적이 숨어 있을 만한 곳에 신기전을 쏘면 겁에 질려 스스로 항복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칼∙화살∙창, 그리고 총포가 전부이던 시절 굉음을 내고 불을 뿜으며 날아가 폭발하는 무기의 파괴력도 무섭지만, 적에게 큰 공포를 주었을 것이다. 더구나 화차를 통해 중신기전 100발을 한 번에 발사해 사거리 250m를 날아가서, 소형폭탄을 폭발시킬 수도 있었다. 또 500~700m를 10여 초 만에 날아가 여러 개의 소형폭탄이나 대형폭탄을 터뜨렸던 대신기전이나 산화신기전의 파괴력도 당시로써는 상상을 초월하는 ‘첨단’무기였다.
복원한 소∙중 신기전을 화차에서 발사하는 모습
| 대단한 위력을 가졌던 신기전은 세종 29년인 1447년 11월부터 문종 1년인 1451년 1월까지 3년 3개월 동안 4만여 발이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제작돼 사용됐다. 화차도 1451년에만 700여 대가 만들어져 전국에 배치됐을 정도다. |
2009년 네 종류의 신기전을 원형으로 복원하여, 발사 성공해
1975년 11월 역사학회에서 ‘주화와 신기전 연구 - 한국 초기(1377~1600) 로켓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우리나라에 로켓 무기인 주화와 신기전이 고려와 조선시대에 있었음이 처음 알려졌다. 그리고 1980년에는 행주산성 유물기념관에 세종 때의 각종 화포와 함께 신기전 및 화차를 복원해 전시했다. 1986년에는 헝가리에서 개최된 국제우주대회(IAF)에서 신기전을 국제학회에 처음 소개했다. 1993년에는 대전 엑스포에서 노즐이 있는 모습으로 소, 중, 대신기전을 복원하였고 화차를 이용해 소∙중신기전을 처음으로 공개 발사하였다. 2009년엔 소∙중∙대신기전과 산화신기전등 모든 종류의 신기전을 약통에 노즐이 없는 형태인 원형대로 복원하여 발사시험을 벌여 우리나라 전통 로켓의 위용을 완벽히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