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한반도 최초의 쌀 생산지는 김포시 통진면 가현리 일대라는 학술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런 사실은 한국 선사고고학회와 일본 도호쿠(東北)대 스즈끼 미쓰오 교수팀이 공동으로 지난 97년 4월 김포시 통진면 가현리 450번지 일대의 이탄층을 채취, 방사선탄소연대측정법을 이용한 3년간의 연구조사 끝에 최근 밝혀졌다.
한국 선사고고학회 임효재 회장(서울대 문학박사)은 “일본의 스즈끼 미쓰오교수팀과 97년 4월 김포 통진면 가현리에서 채취한 이탄층을 조사한 결과 가장 아래쪽은 BC 5440년, 중간층은 BC 4420년, 가장 위쪽은 BC 4720년에 형성된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 선사고고학회는 김포지역이 한국 최초의 벼농사 유적지임을 검증하기 위해 2000년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한국, 일본, 중국의 고고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김포 고대 쌀문화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충복 소도리볍씨
영국 비비씨(BBC) 방송을 비롯한 세계적 언론매체들도 앞을 다투어 특집으로 다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로리볍씨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볍씨로 알려진, 중국 양자강 유역 옥섬암(玉蟾岩) 유적에서 출토된 볍씨(약 1만 1000년 전)보다 수천년 앞선,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1998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되었습니다
1만 7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볍씨로이전까지 쌀의 종주국이 중국이었으나
대한민국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구석기 시대 토층에서 석기 제작소와 주먹대패 긁개 톱니 날 등
유물 2,000여 점과 함께 소로리 볍씨가 출토되었습니다
청원 소로리 볍씨는 1997~1998년 오창과학산업단지 건설 예정지인 옥산면 소로리 문화유적 지표조사 과정에서 발견됐다.
당시 출토된 볍씨는 고대벼 18톨, 유사벼 41톨 등 모두 59톨로 확인됐다.
볍씨뿐만이 아니라 이 유적 일대에는 찍개, 긁개, 홈날, 몸돌, 격지 등의 구석기 유물이 넓은 범위에 걸쳐 수습됐다
.▲ 고대볍씨(자포니카)의 출토 상태 모습
특히 출토된 볍씨는 바로 서울대학교 AMS(방사선탄소연대측정) 연구실과 미국의 지오크론(Geochron Lab)연구실로 보내져,
1만3000년 ~ 1만5000년 전의 절대연대값을 얻어 청원 소로리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볍씨임이 판명됐다.
청원 소로리 볍씨가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 고고학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알려진 것은 중국 호남성 옥첨암 동굴의 순화볍씨였다.
청원 소로리 볍씨는 이보다 3000~4000년 전의 볍씨로 밝혀진 것이다.
소로리 볍씨가 1만 5000년전 것으로 판명되자 일부 학계에서 의문이 제기됐다.
그 의문은 크게 2가지였는데, 하나는 ‘1만 5000년 전은 구석기말 빙기의 끝무렵인데 한반도에서 아열대 식물로 알려진 벼가 추운 기후에서 자랄 수 있었을까’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또 그 벼가 야생벼인지, 재배벼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 소로리볍씨의 소지경이 잘라진 모습.
그 고증을 얻기 위해 당시 청주MBC 취재팀이 국립 작물시험장 춘천출장소에서 냉해실험을 통해 벼가 자랄 수 있는 온도를 실험한 결과, 벼가 자연상태에서 최저 발아온도가 섭씨 20도로 알려졌지만, 실험결과 13도에서도 70%이상이 발아되어 생성되는 연구 결과를 얻게되었다.
냉해실험을 통해 따뜻한 기후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벼가 기후적응을 잘하는 식물로 1만5000년전의 학설이 긍정적으로 무게가 실려진 것이다.
이융조 교수 “재배벼 단정할 수 없다”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청원 소로리 볍씨는 고대벼의 소지경 형태는 야생벼의 길쭉하고 뾰족한 것과는 다르게 짤림이 잘 되지 않았다.
SEM 촬영결과 외부의 힘에 의해 잘라진 특징이 관찰되어, 재배벼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융조 이사장은 “청원 소로리 볍씨는 그동안 1만3920bp(before present)의 연대값을 기초해 ‘약 1만5000년 전’으로 발표했으나, 이를 다시 미국 캠브리지대의 세계 공용 측정프로그램으로 계산한 결과 BC 1만5118년전으로 밝혀져 그 연대를 ‘약 1만7000년 전’으로 수정한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또한 “지금까지는 학명없이 ‘소로리볍씨’로만 불렀으나 ‘Oryza sative coreaca(오리자 사티바 코레아카)’ 즉, ‘한국의 고대벼’ 라는 학명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이융조 이사장은 청원 소로리 볍씨에 대해 “재배벼의 특징은 가지고 있지만 재배벼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지 재배벼 이전 단계인 ‘순화벼’라는 명칭을 청원 소로리 볍씨에 부여했다.
이 이사장은 “소로리 볍씨의 연대가 1만7000년 전으로 측정된 것, 아생벼와는 다르게 인위적으로 보이는 소지경의 절단면이 SEM으로 관찰된 점, 토탄 출토지점 옆에서 많은 구석기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점 등 반재배단계와 초기 농경단계 사이의 순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벼라고 생각된다.
즉 소로리 볍씨는 한국 재배벼의 조상이며,순화초기의 벼라고 보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조용구 충북대 식물자원학과 교수는 “현재 국내에는 잡초벼가 있을 뿐 벼의 선조라고 할 수 있는 야생벼가 존재하지 않는 점, 또한 소로리볍씨는 현존하는 유적 실물 중 가장 연대가 높은 점 등을 비추어 볼 때, 이는 인간이 야생상태의 벼로부터 차츰 파종하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자연 선발되는 단계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서학수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는 “청원 소로리 볍씨의 DNA분석 결과, 현재의 재배벼·유사벼와는 다른 39.6%의 낮은 유전적 유사성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소로리볍씨와 야생벼와는 57% 정도의 유사도를 보이는 연구도 있다.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야생벼는 낟알이 소지경으로부터 자연적으로 잘 떨어지는 탈립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야생벼의 소지경은 매우 매끄럽다.
이에 반해 재배벼는 소지경 상태가 매우 거칠다.
가와지볍씨의 소지경 상태를 전자주사현미경(SEM)으로 촬영한 결과 재배벼의 특성인 거친 단면이 나타났다.
이러한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청원 소로리 볍씨는 재배벼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재배벼라고 단정할 수 없다.
▲ BBC 뉴스(인터넷판)에 소개된 "세계 최고의 벼가 발견되다"(2013.10.21)
소로리볍씨가 가와지볍씨로 맥 이어져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을 비롯해 고 박태식 박사,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은 비록 적은 개체수이긴 하지만 온전한 청원 소로리 출토 볍씨 13톨과 고양 가와지 출토 볍씨의 크기와 볍씨 형태를 비교했다.
그 결과 소로리 출토 볍씨는 유전적으로 변이가 크게 분포하고 있으며,경기도 고양시 가와지 출토 볍씨보다 약간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소로리 볍씨는 자포니카(japonica)에 가까운 편이었고,인디카(indica)에 가까운 것이 1톨,자포니카(javanica)로 추정되는 것이 1톨이었다.
자포니카(japonica) 쌀은 모양새가 둥글고 굵은 단립형 쌀이다. 자포니카 쌀은 한반도, 일본, 중국 북부에서만 주로 소비가 되며,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쌀 중 10% 가량뿐이다.
이에 반해 인디카(Indica) 쌀은 전 세계 쌀의 90%를 차지하는, 쌀의 대표적인 품종으로 ‘안남미’라고도 부른다.
태국쌀, 필리핀쌀, 베트남쌀 등이 모두 안남미이다. 인디카는 모양이 길쭉하고, 찰기가 없어서 밥알이 분리된다.
따라서, 밥그릇을 한 손으로 들고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사용해 마시는 방식으로 먹는다.
이들 연구자들은 소로리와 가와지의 두 출토 볍씨 사이에 있던 긴 공백에도 소로리 출토 볍씨가 가와지 출토 볍씨로 맥이 이어져 약간 작고 약간 긴 쪽으로 균일화되었다고 추정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에 의한 선택, 또는 벼를 재배해야 할 충분한 생존의 압력이 작용했으리라 추정되지만 앞으로 좀 더 많은 유물이 또 여러 곳에서 나와야 보다 확실한 추론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여겼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들 연구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남쪽지방에서 유입된 여러 가지 벼(고대벼와 유사벼의 4종류)가 우리 선조의 지혜와 자연선택에 의하여 자포니카에 가까운 재배벼인 고대벼로 종의 분화에 이르른 가와지벼는 당시 사회변화에 큰 영향을 주어 고조선을 비롯한 여러 국가형성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
고양시의 가와지 볍씨
바로 옆 이웃동네인 고양시에서도 오천년의 역사를 가진 볍씨가 발견되었다.
일산신도시 건설이 본격화하면서 이듬해 대화동 일대에서 발굴조사가 벌어졌다.
충북대 조사단은 성저마을 가와지 1지구에서 12톨의 볍씨를 찾아낸다.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에서는 4330년이 나왔다.
여기에 1994년 국립농업과학원 박태식 박사는 가와지 볍씨가 야생벼가 아니라 재배벼라는 연구를 내놓아 화제의 중심에 섰다.
한반도 벼농사의 기원을 청동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올려놓은 것이다.
이로써 그동안 일본으로부터 쌀이 전래되었다는 학설을 뒤집고,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밝힌 소중한 가치를 지닌 볍씨다.
고양시는 ‘고양 가와지 볍씨와 아시아 쌀 농사의 조명’이라는 주제로 2013년 12월 3일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여 그 연구결과를 국내·외 학계에 공인받도록 노력하고 있다.
고양시는 오천년 볍씨의 발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학술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심포지엄을 매년 개최하는 외에 다양한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1991년 연구가 시작되어 1997년 가현리 토탄층 조사 이후 24년이 지났다.
그리고 통진읍 마송근린2공원에 김포 토탄농경유물전시관이 지난 2014년 3월 개관했다.
김포시는 전시관이 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고 비옥한 토양에서 재배된 김포 우수 농산물을 홍보하는 공간으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런데... 아무도 가지 않는다. 관심이 없다.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도 가지 않는다.
아마도 공무원 대부분도 가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어느 누구하나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다.
김포가 세계 최초의 쌀 생산지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출토된 곳이라고 말하면...
근데? 뭐가? 어쩌라고? 라는 반응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2003년 워싱턴에서 열린 제5회 세계고고학대회에서 고양에서 발견된 가와지 볍씨가 소개되어 국제학계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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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리볍씨의 수수께끼
소로리벼는 야생벼인가 순화벼인가?>
필자는 기존에 망과 강모의 부재, 입형, 이층부위 모두를 종합하여 조사단 의견대로 소로리벼가 야생벼보다는 순화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2009, p.206). 솔직히 당시에는 소로리벼의 오래된 연대에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15,000년전의 연대가 소로리벼에서 직접 측정된 상황을 더이상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소로리벼가 정말 야생벼인지 순화벼인지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소로리벼에 망과 강모가 없다고 하였으나 잘못된 기술이다. 고 허문회 교수님의 감정결과를 보면 장립형으로 보고된 1립만 융모가 없으며 나머지 단립형은 부모가 길고 억세며 대체로 약간 소형이며 개개의 변이가 매우 큰 편이다고 하였다. 소로리벼 전체에서 뚜렷한 까락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까락이 없다면 순화벼라고 보아야 하나 후퇴적과정과 체질과정에서 망실되었을 수도 있다. 1만년경 이후의 일산 가와지벼에서도 까락이 뚜렷하다고 하니 더욱 의심스럽다. 순화형으로 보이는 입형 역시 볍씨 계측의 기준점에서 발생한 오류일 수 있다. 사진에서 보듯이 외영과 내영이 벌어져있어 폭이 넓게 계측될 수 밖에 없고 소지경, 소수경, 부호영의 잔존 여부에 따라 길이 계측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순화벼일 가능성도 있다.
소수축 탈립면 관찰에 의해 장강 하류역에서 야생벼에서 순화벼로의 완전한 전환은 6000년전에야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현재의 통설이다. 그러나 중국학계 일각에서는 야생벼의 재배나 순화벼의 발생이 15,000년전이 이미 발생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이는 대부분 벼식물규산체 분석에 의한 주장이다. 장강 중류역의 강서성 조통환, 선인동 유적에서는 15,000년무렵부터 야생형과 순화형으로 추정된 벼식물규산체가 출토된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현재의 오키나와 해협 근처의 시추공(DG 0603)에서 14,000-13,000년전 퇴적층에서 순화형의 벼식물규산체가 검출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벼식물규산체 형태로 야생벼, 재배벼를 구분할 수 있다는 상기 주장에 회의적 견해도 많다. 그럼에도 만약 소로리벼가 순화형이라면 이들 벼식물규산체의 빙간기 연대에 다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야생벼가 많이 서식하는 곳에서는 굳이 야생벼의 재배가 필요하지 않지만 기후온난화로 야생벼가 북상하여 새로이 서식처를 마련한 주변 지역에서는 야생벼 자체의 생존을 위해서도 종자 번식이 요구되고 새로운 야생벼 식량을 확인한 수렵채집민들도 야생벼 서식처의 관리나 인위적 재배를 시도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로리의 만빙기 수렵채집민이 야생벼(and/or 줄풀)를 식재료로 이용하고 재배하려면 거기에 부응하는 문화적 수용능력이 필요하다. 완전히 익은 야생벼는 너무 딱딱하여 생으로 먹기 어렵다. 물에 불리거나 조리를 위해서는 용기, 특히 토기가 필요하다. 물론 덜 익은 야생벼를 채취하면 생으로 먹울 수 있지만 이 경우 비탈립성 등 순화형 특질이 누적되지 않아 순화벼로의 전환이 어렵다. 또한 벼를 수확하고 가공하기 위한 도구도 필요하다. 중국 북부에서는 이미 만빙기부터 기장속이나 조속 등 벼과 식물을 이용한 흔적이 갈판, 공이 등의 가공용 석기에서 전분분석과 식물규산체분석으로 확인되고 있다. 소로리 유적에서는 이러한 문화적 설비가 결여되어 있다. 지난 불로그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소로리에서 볍씨 외에 줄기와 관련된 부채형 벼식물규산체가 확인되고 과학적 검증을 거친 수확과 가공도구가 확인된다면 벼의 현지 재배를 수용할 수 있다. 그 전까지는 소로리벼는 수수께끼로 남길 수 밖에 없다.
[출처] 소로리볍씨의 수수께끼|작성자 안승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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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유역 발견된 가와지볍씨, 여주 흔암리볍씨보다 1천년 빨라
1991년 일산 신도시 개발지역의 발굴조사 결과 토탄층에서 5000년전으로 추정되는 볍씨, 즉 가와지볍씨가 발굴되면서 한반도 벼농사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벼농사는 3000년 전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고고학계의 일반적 정설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가와지볍씨가 처음 알려졌을 때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부정적 반응을 얻기도 했으나, 오늘의 시점에서는 긍정적 입장으로 변해 가는 추세다.
가와지볍씨가 발굴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쌀농사의 기원으로 인정받는 것은 여주 흔암리볍씨다.
고양 가와지볍씨가 5000년 전 신석기 시대 볍씨인데 반해, 여주 흔암리볍씨는 3000년 전 청동기 시대의 볍씨다.
국제학계에서는 3000년 전의 것인 여주 흔암리볍씨(탄화미)를 한반도 쌀농사의 기원으로 인정해왔다.
▲ 여주 흔암리 선사 유적지에서 발굴된 당시 선사인들의 주거지.
여주 흔암리볍씨는 경기도 발굴 당시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 산 2-1번지에서 발굴된 흔암리 선사유적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여주 흔암리볍씨로 인해 학계에서 우리나라에서 쌀농사를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였다고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시작은 B.C.1300~B.C.1000년경이다.
수확도구와 발굴된 흔암리 탄화미여주 흔암리볍씨(탄화미)가 발굴된 때는 1976년이다.
서울대박물관 고고학팀은 지난 1972년부터 1976년까지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에서 발굴 조사 사업을 펼쳤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기원전 500~600년의 탄화된 볍씨가 발굴됐다. 바로 여주 흔암리볍씨다. 또한 쌀 수확도구인 크기 14㎝ 가량의 반월형석도(청동기시대에 곡식의 낟알을 거두어들이는 데 쓰던 도구) 5개도 발굴했다.
▲ 1976년 서울대박물관 고고학팀이 발굴한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
▲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 중 장방형 12호 주거지에서 발굴된 무늬없는 토기 안에서 새까맣게 엉켜 있는 곡식 낟알이 발견됐다
당시 조사단은 흔암리 일대의 청동기시대 주거지 14곳을 발굴했는데 가로 10m, 세로 4m의 장방형 12호 주거지에서 발굴된 무늬없는 토기 안에서 새까맣게 엉켜 있는 곡식 낟알을 발굴했다. 채취된 곡물은 서울대 농대 이춘녕 학장의 감정결과 쌀, 겉보리, 조 임이 판명됐고 이중에서 쌀의 품종은 크기가 작은(4.0×2.5㎜) 미발달 상태의 북방계 종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당시 흔암리에서 발굴된 볍씨는 1920년 김해 패총에서 나온 기원전 100년 전 볍씨보다 500년 가량 앞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쌀로 인정받았었다. 여주 흔암리 볍씨를 발굴한 서울대팀은 “반월형석도와 함께 발굴된 한반도 최초의 수전(水田) 볍씨”라고 주장했었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우리나라 벼농사는 청동기시대에 저습지에서부터 시작됐고 초기철기시대 들어서야 관개시설이 발달하면서 비로소 일반화됐다고 주장하는데, 이 내용이 아직 국사 교과서에 정설로 실려 있다.
한강권서 발굴된 김포 가현리볍씨
지난 1987년에는 김포 통진면 가현리에서 4000년 전의 볍씨가 출토됐다. 김포 가현리에서 발굴된 볍씨의 연대측정 결과 당시까지 가장 오래된 재배벼로 인정되던 여주 흔암리볍씨보다 1000년 전인 BC2100년경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김포 통진면 가현리에서 역사시대의 시작인 기원전 2100년 전경의 고환경을 알 수 있는 수 백 점의 옛 씨앗류를 포함, 3점의 볍씨가 출토돼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임효재 교수팀은 당시 통진면 가현리 554번지 일대의 배수로 공사를 위해 길이 약 200m, 폭 2m, 깊이 1m80㎝로 파헤쳐진 이탄층에서 채취한 자료를 50여 일간의 물채질로 분석한 결과 지금부터 약 4000년 전의 씨앗과 볍씨가 출토 됐다고 밝혀냈다. 당시 김포에서 출토된 3개의 볍씨는 길이 0.9㎝ 크기의 둥근형의 온대형으로 크기로 봐서, 기원전 1000년경의 여주 흔암리에서 출토된 볍씨(평균길이 0.7㎝) 보다는 발달된 것이라고 밝혀졌다. 이때 볍씨와 함께 백제 초기의 격자문이 타날된 적갈색 토기, 회청색 경질 토기 등 40여 점의 토기와 수전 농사에 수로를 단단히 하기 위해 나무를 깍아서 만들어 사용한 말뚝 2개도 출토됐다. 당시 임효재 교수(당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한국선사고고학회장)는 “2000년 전경의 볍씨가 출토된 곳은 4000년 전 한반도에서 최초로 재배됐던 볍씨가 나왔던 이탄층에서 5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며 “통진면 가현리 일대는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이어지는 한국 벼농사의 발달 양성을 잘 보여 주는 중요 자료로 평가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강 유역에서 볍씨 다수 출토
우리나라의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김포에서 볍씨가 발굴된 1987년 이후인 1991년 일산의 유적지에서 5000년전의 것으로 밝혀진 가와지볍씨까지 발굴됨으로써, 우리의 벼농사는 한강을 중심으로 신석기 시대부터 활발했음을 뒷받침하게 됐다.1991년 발굴된 가와지볍씨는 약 5000년 전의 재배 볍씨로 밝혀졌고, 2000년 발굴된 김포군 한강 하류 이탄층에서 발굴된 볍씨 역시 약 4000년 전 볍씨로 밝혀졌다. 한강을 중심으로 벼농사가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됐음을 알리는 중요한 단서다. 김포 가현리에서 발굴된 볍씨가 3톨이었던 것에 비해 고양의 일산지역에서 발굴된 볍씨는 모두 300톨이 넘는다. 특히 일산2지역 2지구의 검은색 토탄층에서 무려 300톨이나 발굴됐다.현재 고고학계에서는 논농사의 도입시기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하나는 논농사는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다른 하나는 신석기 시대에 이미 논농사가 이뤄졌다는 견해다. 이 사실은 쌀의 역사가 5000년의 긴 역사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북부 서해안 지역일수록 오래된 쌀이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쌀이 북방으로부터 전래된 작물이며, 더구나 이들이 모두 일본형(JAPONICA)의 ‘단립형 볍씨’였다는 사실은 한국이 쌀문화를 남쪽으로 전파시켜 일본에까지 전하였음을 확인시켜 준다. 이융조 교수는 “재배벼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볍씨들이 일산 1지역과 가와지, 김포 가현리에서 넓게 출토됐다. 이 사실은 한강을 배경으로 한 농경이 당시 발달됐음을 주목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당시의 사회배경인 단군 ~고조선으로 연결하는 신용하 교수의 학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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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가현리 유적조사 1m 토탄층 발견
- 2019.04.17 00:05
물 고여있던 습지로 추정
환경 변화 예측 활용가치
"상세조사해 보전할 계획"
김포시 통진읍 가현리 일대에 대한 신석기 유적 지표조사 과정에서 대규모 토탄층이 발견됐다.
과거 이 지역은 해안선 변화에 따라 물이 고여 있던 습지였던 것으로 추정돼 향후 반도 형태의 김포지역 지형변화 연구에도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나타났다.
16일 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재)국토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가현리 지역 신석기 유적 지표조사 결과 30만㎡ 넓이의 토탄층이 분포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토탄층은 대부분 김포 내륙 평탄지에서 구릉성 지형으로 바뀌는 해발고도 10m 이하의 낮은 지점에서 발견됐다.
두께는 1m 정도로 가현리 일대가 과거 저습지 또는 해안선의 변화에 의해 물이 고여 있었을 가능성이 많은 지역으로 추정했다.
앞서 1985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은 이번 조사지 인근인 가현리 해란산 주변 농경지 농수로 주변에서 채집한 토탄층 일부를 일본 오사카농업대학에 의뢰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조' 등의 탄화곡물을 발견했다.
이들 곡물에 대한 연대 측정결과 기존 여주 흔암리나 남경(중국) 유적의 쌀 연대인 기원전 1000년경보다 500~1000년 정도 앞선 것으로 밝혀져 우리나라 최초의 곡물 재배지가 김포라는 가설을 낳기도 했다.
또, 인근에서 대형 석촉과 원반형석기, 마제석부 등의 청동기시대와 통일신라 토기편 등이 출토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중국의 쌀농사가 자연늪지대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한강 하류 김포-일산 장항리 일대의 늪지대가 중국 양자강하구에서 유래된 농경지의 선착지라는 추정을 불러오기도 했다.
토탄(土炭)은 이끼류·갈대 등의 화본과 식물, 소나무·자작나무 등의 수목질이 물에 잠겨 산소 공급의 억제와 냉랭한 기후로 인해 분해가 억제되면서 형성된 지층으로 대부분 지하 5~10m구간에서 1m 이상의 두께로 발견된다.
퇴적된 토탄층에서는 분해되지 않은 식물과 유기물 등 화석이 잘 보조돼 있어 생태 변화 정도와 화학적 성분 분석 등을 통해 토탄이 형성된 기간 동안의 환경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 가치가 높다.
시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개발행위로 인한 현상변경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토탄층 훼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토탄층 분포영역을 도식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각종 개발행위에 앞서 시굴조사를 통해 토탄층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조사를 실시해 이 지역에 대한 신석기 등의 유적을 보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처 : 인천일보(http://www.incheonilbo.com)
가현리 볍씨는 김포의 자랑
그렇다면 김포의 자랑거리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김포에는 장릉, 애기봉, 문수산성, 대명항 등 자랑거리가 많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최초의 벼농사의 기원인 역사적인 가현리 토탄층이 있으며 그곳에서 볍씨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더 놀라운 것은 가현리 토탄층에서 발견된 볍씨가 가와지에서 발견된 소로리볍씨보다 약420년이 나 앞선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욱더 소중한 유산인 것이다.
‘오천년 최초의 쌀 생산지’ 김포시 브랜드 가치창출 전략이 필요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면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김포시 도시이미지를 구축하여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가치창출 전략이 필요하다.
그 도시이미지란 오천년 최초의 쌀 생산지에 맞는 친환경도시, 역사가 공존하는 도시,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라는 도시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여주기식 도시이미지 홍보가 아닌 시민과 방문객이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도시이미지 설계와 실질적인 구축을 통하여 김포시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가치창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