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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조선문명

정문경(精文鏡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9.04.11|조회수189 목록 댓글 0

고조선 시대의 정교함의 끝판왕 

 

다뉴세문경에 관한

 

역사채널e 처동거울의 비밀 회차가

 

있어서 소개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역사채널 청동거울의 비밀

 


 

 


 



 


 

 


 

 


 

햇빛을 비추는 매끄러운 반사면과

 

다양한 문양을 새겨 장식한 뒷면

 


 

청동기 , 초기 철기시대의

 

주술의식에 사용되었던 청동거울

 


 

 


 


 


 

 


 

 


 

한반도 남부지역과

 

중국 , 일본에서도 흔히 출토되는

 

대표적인 고대유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충남 논산에서 지금까지의 것과는

 

다른 한 점이 새로 발견되면서

 

학계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국보 141호 다뉴세문경

 

많은 다 , 꼬리 뉴

 


 

 


 



 


 

 


 

 


 

'세밀한 문양'이 그려진 '거울'

 


 

이전에 출토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

 


 


 


 


 


 

 


 

 


 

지름 21.2cm의 거울을

 

세 개의 큰 원으로 구획을 나누고

 

0.3mm 간격의 선

 

1만 3천여 개를 손수 새겨 넣었다

 


 

 


 



 


 

 


 

 


 

2500년 전

 

고조선 세공기술의 정수로 만들어진

 

다뉴세문경

 


 


 


 


 


 

 


 

 


 

성분을 분석한 결과

 

구리와 주석 비율은

 

주례고공기에 실린

 

'거울을 만드는 황금비율'과

 

거의 일치하고 있어

 


 

 


 


 


 

 


 

 


 

오늘날 사용되는 거울과

 

견줄 수 있을 만큼

 

반사도나 선명함이 뛰어났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많은 연구진들이

 

복원에 뛰어들었지만

 

0.3mm의 선들을 정교하게 그려내는

 

도면작업에서 수차례 실패하였고

 


 

 


 



 

 


 

 


 

 


 

제작 과정에 다가가는 데만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역사채널e 청동거울의 비밀 주인공

 

다뉴세문경 제작방식은

 

크게 3가지로 말이 오고간다고 합니다

 


 


 









밀랍모형에 진흙을 씌우고

 

열을 가해

 

밀랍은 녹여내고 진흙 거푸집에 주조하는

 

밀랍주조법

 


 


 


 





모래와 진흙을 굳힌 판에

 

문양을 새긴 다음 쇳물을 부어 주조하는

 

사형주조법

 


 


 







마지막으로

 

활석에 직접 모양을 새겨놓은 다음

 

쇳물을 부어 주조하는 석제주조법

 


 


 







특히, 최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컴퍼스같은것을 사용하여

 

둥근원을 그린 후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사이사이를 메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많은 시도와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원본의 정교함을 완전히 표현해

 

내지는 못하고 있다고...

 


 


 



 

 


 

고조선 위대한 기술력을 보여주는

 

국보 141호 다뉴세문경의 제작 비밀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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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경(精文鏡

다뉴세문경

요약 테이블
시대 선사/철기
성격 거울
유형 유물
크기 지름 14.3㎝
재질 청동
분야 예술·체육/공예
소장/전승 일본 도쿄[東京]국립박물관

요약 초기 철기시대에 제작된 청동제 거울

 

 

개설

일본 중요문화재. 도쿄[東京]국립박물관 소장 정문경(精文鏡, 잔무늬거울)은 복잡한 기하학 무늬를 거울 뒷면에 정교하게 표현한 거울이다. 손잡이가 여러 개 달려 있어 다뉴세문경(多?細文鏡)이라고도 한다.

내용

일본인 오구라(小倉武之助)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수집해 간 한국문화재의 하나로 일본에서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거울의 지름은 14.3㎝로 손잡이가 2개이며, 경상남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진다.

 

거울 뒷면은 원형의 선을 둘러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하였는데 안쪽에는 가로 5줄, 세로 16줄의 선을 교차시켜 여러 개의 사각형을 만든 후, 그 안을 삼각형의 집선문(集線文)으로 세밀하게 새겨 장식하였다.

그 위로 두 개의 손잡이가 약간 위쪽에 배치되었다.

거울의 기본 무늬인 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은 다른 청동기에서도 볼 수 있는 공통적인 문양이다.

 빛이 발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반사 기능과 함께 의식용 도구로서 옷에 매달아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거울은 청동기시대 최전성기에 만든 정문경보다 무늬 및 주조 상태가 약간 거친 편이나 여전히 정교한 제작 기법을 보여 준다.

 

 

특징

 

다뉴경(多?鏡)의 형태는 원래 기원전 1000년경, 요하(遼河) 서쪽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는데 무늬가 거칠고 정교하지 못한 거친무늬거울 즉 조문경(粗文鏡)이 정문경보다 먼저 제작되었다.

 

 중국 동북 지방과 한반도의 여러 지역 즉 길림, 연해주, 대동강 유역, 아산만-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여러 유형의 조문경이 제작되었다.

 

이후 청동기 후기인 기원전 3~2세기로 넘어와 정문경이 한반도의 고유한 양식으로 정교하게 발전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대동강 유역, 금강,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견되며 일본 열도에까지 전파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국식 동검과 함께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의 고유한 제작 기술과 발전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중국 동북 지방에서 서북한 지역을 통해 유입된 초기 철기시대의 문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 『다뉴경과 고조선』(이청규, 단국대학교 출판부, 2015)
  • 『다뉴세문경 종합 조사 연구』(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숭실대학교, 2009)
  •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오구라 컬렉션 한국 문화재』(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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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경
(精文鏡)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국보
종목국보 제141호
(1971년 12월 21일 지정)
수량1개
시대청동기 시대
소유숭실대학교
주소서울특별시 동작구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정문경(精文鏡) 또는 옛 명칭 다뉴세문경(多鈕細紋鏡)은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에 만들어진 청동으로 된 거울잔무늬거울이라고 한다. 한 면은 거울로 비출 수 있도록 하고, 뒷 면에는 거울을 멜 때 사용하는 고리인 "뉴(鈕)"가 2개 있다.

개요[편집]

정문경은 지름 21.2cm, 테두리 폭이 1cm이며, 앞선 시대에 있던 거칠게 무늬를 새긴 거울(거친무늬거울, 粗紋鏡)에 비해, 작은 삼각형을 기본으로 하여 기하학적 무늬를 세밀하게 새긴 것이 특징이다. 현존하는 잔무늬거울 가운데 가장 크며, 동질(銅質)·주조(鑄造)·문양 등의 면에서 세문경(細紋鏡)으로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볼록 두드러진 테를 주변에 돌리고 그 안에 가는 선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기고, 내구(內區), 중구(中區), 외구(外區)로 3등분 되어 있다. 외구에는 사선 삼각형을 조직적으로 종으로 배치하면서 그 중간에 4쌍의 동심원을 균형있게 배치하였고, 주석이 많이 들어가 빛이 잘 반사되게 만들었다. 중간구에는 역시 사선 삼각형 무늬를 횡으로 조합하였으며, 내구는 꼭지를 둘러싸고 5겹으로 사선원을 두른 다음 그 내부에 중간구와 대치되게 삼각선 무늬를 조합하였다.

정문경의 놀라운 제작 기술 때문에 세간에는 정문경을 현대 기술로도 복제할 수 없다는 소문이 떠돌고 언론에서 이를 유포하기도 했다.[1] 그러나 다뉴세문경의 제작은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실제로 복제에 성공하였고 심지어 복제품이 나돌기도 했다.[2] 2008년 10월 16일 열린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과학적 보존처리》학술대회에서는 과학적 조사를 통해 다뉴세문경의 합금 비율을 구리주석[1]

출토[편집]

국보 141호로 지정된 정문경의 정확한 출토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1960년대에 충남 논산군 성동면 원남리에서 출토되어 서기준(徐基俊) 씨가 기증하였다고 한다. 한병삼(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증언에 따르면 논산훈련소에서 참호를 파던 군인들에 의해 발견된 뒤 중간 상인에게 유통되던 유물이라 한다.[3][4] 국보 146호로 지정되어 있는 강원도 출토 일괄 유물[5]

제작시기[편집]

청동거울의 제작시기는 대략 기원전 4세기 전후로 보고 있는데 이 시기는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며 세형 동검

사용 및 기술력[편집]

청동기 시대 거울은 아무나 갖지 못했다. 신의 뜻을 전하는 제사장의 권력을 상징하는 신비한 힘을 가진 물건이었다. 번개 무늬, 별 무늬, 태양 무늬 등 다소 성긴 모양의 조문경(粗文鏡)에 나타나는 무늬만 봐도 그러하다. 세밀한 기하학적인 무늬로 발전한 세문경(細文鏡)도 태양의 상징을 담고 있다. 함께 출토되는 청동방울을 봐도 샤먼적인 성격을 추정할 수 있다. 기원전삼한시대에 접어들면서 중국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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