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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보수, 좌파, 우파 - 개념정리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7.03.21|조회수242 목록 댓글 0

일상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거의 구별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진보라고 하면 좌파나 사회주의를 떠올리기 마련이고 우파라면 보수, 수구세력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고 구별되어서 사용되어야할 필요성을 가진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그것을 정의하는 사람마다 약간씩 다른 의미와 범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정확히 규정하기는 힘들다. 이 글에서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여러 가지 의미를 알아보고 그 공통점을 찾아서 정리해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지, 왜 그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정리해 보기로 한다.

 

먼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개념을 이념성이나 가치성을 가지는 가의 여부에 따라 구분 짓는 의견이 있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개념적 정의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김경미(2009)의 글에 의하면 보수는 ‘보전하고 유지한다.’는 의미로 보수주의는 사회의 현 상태를 가능하면 유지하려는 태도와 정향을 뜻하며, 이에 반해서 진보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진보주의는 인간의 정신과 문명이 역사적으로 보다 더 완전하고 이상적인 상태로 발전해 나아간다고 보는 신념체계로 이해된다. 그녀는 ‘이 두 개념은 무엇보다도 어떤 구체적인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과는 분리된, 사회적 변화에 대한 일종의 실천적 태도나 행동양식으로 설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는 서구의 합리주의적 인식론과 경험주의에 바탕을 둔 과학적 방법,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의 지적 산물이라 말한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간이 완전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다. 사회적 변화에 대해 낙관적이며 변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수용한다. 그리고 사회의 모순들을 개혁하여 완전한 사회로 가는 것을 꿈꾼다. 인간의 능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역사적 진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진보주의자는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 인간의 지식, 합리성, 부와 자연에 대한 지배 등이 기초해서 “원칙적으로 인간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이성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Hobsbawm 1999, 439)”고 믿는 사람들이다.

 

 

또 그녀는 이와 대비되는 보수주의는 인간의 이성보다는 오랜시간에 걸쳐서 쌓여온 사회적 전통이라 관습, 경험 같은 것을 훨씬 신뢰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보수주의가 인간의 이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오랜 세대에 걸쳐 한 사회가 형성해온 전통이나 관습을 합리적 이성으로 간주한다. 보수주의가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조심스런 태도를 지니며 변화가 가져올 사회적 비용이나 혼란을 걱정한다. 보수주의자들은 기존의 체제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변화에 대해 보존과 개선의 입장을 지닌다. 따라서 그녀는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차이는 역사적 진보 자체에 대해 긍정과 부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변화의 진행과 추동력에 있다’며 ‘사회적 변화의 포괄적이고 빠른 진행에 대한 수용태도와 그러한 변화를 수행할 수 있는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의 정도에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보수주의자는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이성에 의한 사회 전반의 급격한 변화보다는 전통과 관습의 개량을 추구한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빠른 사회적인 변화를 꿈꾸며 그 변화에 대해서 낙관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다. 따라서 이러한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성을 지니지는 않는다. 이는 노병만(2007)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좌파와 우파의 유래는 프랑스 혁명시대 국민공회에서 급진혁명, 사회주의, 노동자와 농민, 빈민의 입장을 대변하던 자코뱅파가 좌측의석을, 온건개혁,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상공업 부르주아의 입장을 대변하던 지롱드파가 우측의석을 차지하고 대립하던 것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좌파는 사회주의와, 우파는 자유주의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좌파와 우파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를 통해 본 바, 어떤 특정의 이념이나 실천과는 독립적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정치적 내지는 사회적 가치 및 이에 근거한 체제를 신봉하는 세력은 우파로, 이에 반해서 기존의 가치체계와 제도를 비판하고,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적인 정치적 및 사회적 가치와 제도들을 모색하는 세력은 좌파로 규정된다. 좌파와 우파는 그 시대의 지배적인 이념, 그리고 대항 이념을 통해 자신들의 주의를 가진다. 예를 들어 18세기와 19세기를 지나며 중세봉건적 질서와 절대왕권을 옹호하는 우파세력을 비판한 부르주아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좌파세력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사회의 주 체제가 되면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점에 불만을 가지고 나타난 사회주의자들이 현재 좌파 세력으로 대변되고 있다. 만약 사회주의가 주 체제가 되고 다시 이에 반하는 비판세력이 나타난다면 이들이 다시 좌파세력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진우(1999)는 좌파와 진보를 개념적으로 분리하고 있다. 진보가 사회적 모순을 변혁하고자 하는 전진적 사상이고 보수는 전통과 관습을 중시하여 급격한 변화를 회피하려는 사상이라고 말한다. 진보와 보수는 ‘바람직한 사회를 성취하는 방법’을 기준으로 구분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좌파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기득권에 저항하는 세력이고, 우파는 소수의 기득권을 보존하고 확대하려는 세력으로 ‘권력’관계를 통해서 규정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좌파와 우파는 ‘기득권’을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는 현실적으로 구별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양동안의 견해에 따르면 진보가 ‘바람직한 상황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하는 가치적인 용어로 이상향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은 개인의 사상에 따라 상이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진보가 아닌 좌파사상으로 규정한다.

 

 

채장수(2003)에 의하면 진보는 기존 질서에 대한 변화를 긍정하고 보수는 이를 거부한다. 좌파는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가지고 특정 체제를 지향하며 우파는 기존의 체제와 질서를 경영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좌파와 우파가 특정 이념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가지는 이념이나 지향하는 체제는 지속적은 갱신된다. 한국사회에서의 좌파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사회주의 지향성을 핵심요소로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피지배계급의 이익확대를 목표로 하여 체제적 대안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변혁이나 수정을 모색하는 운동’으로 정의된다.

 

 

이와 다르게 강원택(2005)은 이념갈등을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형태로 구분하면서 이를 설명하는 개념 중의 하나로 좌우 개념을 꼽는다. 그는 진보와 보수를 설명하기 위해 네 가지 차원으로 첫 번째가 좌우개념이고, 두 번째는 권위와 자유주의. 세 번째는 근대적 가치와 탈근대적 가치, 네 번째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입장 차이를 이용한다. 그는 좌우 개념을 경제적/물질적 가치의 배분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평등과 효율, 국가와 시장, 분배와 성장, 노동과 자본 등으로 양분하여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 간주한다. 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적 가치의 대립이며 근대 산업 사회의 산물로 계급 정치적 속성을 지닌다. 진보와 보수를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의 하나로 좌우 개념을 바라보고 있어 앞에서 설명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개념을 바라보는 시각들과 차이를 가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보와 보수, 그리고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진보는 급진, 개혁, 발전 등과 개념상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진보와 좌파는 일상적이고 학문적인 담론에서도 혼용되고 있다. 한종호(2006)는 자신의 글에서 진보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사상적 논쟁의 토대를 잃어버렸다며 좌파와 진보의 의미를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렸다.

 

 

채장수(2003)는 이러한 현상을 ‘색깔론’으로 불리는 비정상적인 이념논쟁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그는 반공주의에 기초한 색깔론은 정치에서 상대방에게 좌파라는 낙인을 찍기만 하면 되는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정치 전략으로 보고 있다. 식민통치를 받고난 후 분단과 전쟁을 경험하며 이념의 스펙트럼의 획일화가 이루어지면서 한국사회에서 좌파는 하나의 금기어가 되어왔다. 그리고 진보, 급진, 좌익, 빨갱이 등으로 불리며 반국가적인 범죄 세력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좌파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며 왜곡된 정보와 부정적인 사회화로 인해 정상적인 담론 논쟁이 불가능한 현실을 만들었다. 또 그는 상호 소통적인 정치 과정이 아니라 주류 우파의 강압적인 지배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고 결과적으로 좌파의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홍윤기(2002)는 한국 현대 정치에 ‘진보-보수-담론’의 장의 유무에 의문을 던진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이후로 진정한 의미의 진보와 보수의 담론의 장이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좌익’과 ‘우익’의 대결은 민주적이고 시민적인 공론장을 통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는 당시 권력 독점 체제 아래에서의 생존 문제로 간주한다. 해방이후 친일파로 통칭되는 세력은 미국군정체제 아래에서 통치의 기득권을 계속해서 누리며 한민당으로 결집하였다.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며 권력을 독점하고 싶어하는 이승만을 원조하며 정당성을 일부 부여 받았다. 그리고 분열된 민족 독립운동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이승만은 친일 경찰들을 장학하고 친일 세력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북한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시작된 식민 잔재 숙청 작업으로 인해 반사회주의적 세력이 월남하면서 반공산주의?반북세력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6.25로 인해 전쟁울 주도한 북한에 대한 민중들의 반감을 바탕으로 완벽한 반북 냉전 체제를 구축하였다. 남한에서 정권의 핵심은 친일파들이 독점하였다. 이들은 국가권력을 필사적으로 지켜서 자신들의 생존을 연장시키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진보라고도, 보수라고도 부를 수 없는 세력들이었다. 홍윤기는 이 현상을 ‘정치적 빈곤’이라고 칭한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색깔론이다. 색깔론은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 주장의 정당한 위치보다는 이미지를 앞세워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 색깔론은 광복과 분단 이후 우리 민족이 해결해 나가야 했던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회피하고 더 크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문제로 남아 있는 친일파 청산 문제 또한 색깔론으로 회피되었고, 이승만에게는 야당의 정치적 입지를 좁히는 수단이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게는 민주 체제의 수립을 억제하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박정희의 경제성장 제일주의는 시민적 자율성과 기본권을 보장해주지 않았고 분단의 고착화를 가져왔다. 민주화 혁명 이후에도 과거 군부 세력의 잔재에 실권이 넘어갔다. 역대 독재 정권들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권력을 생존의 차원에서 끌고 왔고 이는 정치적 빈곤을 심화시켰다. 홍윤기는 이들은 통치의 정당성을 갖지 못한 채 정권 수호와 정책 집행의 압박 속에서 통치자의 업적이 정치적 의미를 갖지 못하는 항상적인 ‘정치적 빈곤’상태에 시달린 것으로 판명된다고 지적한다. 한국 정치사를 독점해 온 보수주의적 기풍이 보수주의적 이념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통치의 정치적 빈곤에서 기인하며, 진보-보수-관계의 설정을 통해 구체적인 생활 과정과 의제화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정치는 권력-생존 차원에서 벗어나 권력-의미 차원으로 풍부화 되는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홍윤기(2002)가 정치적 빈곤을 한국정치의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면 선우현(2002)은 진보와 보수 간의 이분법적 흑백논리 대결양상을 말한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 간 이념적 대립구도가 ‘왜곡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며 지적한다. 또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이후 민족과 역사의 이름으로 마땅히 척결되어야만 했던 친일 민족 반역 세력이 단죄되지 않은 채, 우리 사회의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고 급기야 정치적 정당성이 결여된 독재 권력과 야합하여 여전히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 확대하는 상태가 지속되어 온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재 권력과 결탁한 수구 세력은 자신들을 겨냥하여 정당한 비판과 저항, 민주화 투쟁을 시도하는 ‘민주적 혁신 세력’에 대해 이를 체제 전복 세력, 좌경 용공 세력, 민주 질서 파괴 세력 등의 이름을 붙여 탄압하는 폭거를 자행해 왔다. 바로 이와 같은 도정에서 기득권 세력은 민족 정기의 확립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한 진보 진영의 정당한 요구를 ‘반공 이데올로기’와 ‘자유주의 체제의 수호’라는 왜곡된 슬로건을 내세워 거부하였다. 또 기득권 세력을 ‘수구 반동’으로 바라보는 이념적 시각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 형성되었다. 그는 문민정부를 거쳐 참여 정부가 출범하면서 혁신 진보 세력은 오히려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며 ‘보수 일반’을 수구반동으로 몰아붙이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보수 세력은 진보 세력을 '급진적 사회 불안 세력‘이나 독선주의자로 비판하면서 왜곡된 이념적 갈등구도가 정립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보다 민주화된 사회, 보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발전과 민족적 이익에 부합하는 ’제대로 된‘ 형태의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간 대립 구도를 필수적으로 요청한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사회의 변화에 대한 태도와 인간에 대한 믿음의 정도로 보았을 때 나는 보수주의자이다. 그러나 좌파와 우파의 개념에서 본다면 나는 좌파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현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체제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변화를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변화의 속도가 급격할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하여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확실한 대안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나는 이 체제를 개선시켜나가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보수주의자의 성향을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좌파 성향을 띠는 이유는 현재 체제가 가지는 이념체계와 정치체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대안 체제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불평등한 사람들에게 좀 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의 적극적인 시행을 바라고 있다. 또한 기득권에 대항하여 피지배층과 사회적 약자들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수정과 변혁을 통해 사회주의적 정책이 실현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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