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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조선문명

역사관의 유형들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7.09.16|조회수523 목록 댓글 0

 

1.순환론적 역사관

신화가 역사를 대신 했을 때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과거에도 같은 유형의 역사가 있다고 생각.역사를 회전하는 바퀴로 봄.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생각.

모든 개인의 생애는 성장해서 성숙하고 결국 노쇠하여 죽는 유형을 나타낸다.똑같은 도식이 역사 과정에 투영되었다. 

농업을 주로 하던 사회에서는 역사를 자연의 일부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해마다 찾아 오는 계절의 주기적인 반복이 인간 세계에서 좀더 큰 주기로 재현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왕조 순환론:

  특정 왕조나 문명을 순환 단위로 보는것.각왕조나 문명은 모두 흥기하여 번영하다가 파국이나 쇠퇴를 겪고 몰락한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역사는 왕조적 관점에서 기술되었다. 신왕조의 등장과 유지. 그리고 몰락의 진행과정에 대한 방대한 역사를 남겼다.  그 핵심된 개념은 천명사상.

사람들은 반복되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우주론적 순환론:

사람이 전 지구나 심지어 우주가 보통 광대한 시간을 주기로 순환한다고 주장.한주기의 종결은 모든 것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땅, 새로운 하늘이 다시 시작되는 주기의 전주곡.

서기 천 년 이전 인도 브라만들이 편집한 ‘푸라나’라는 중요한 자료는 우주가 긴 시간을 주기로 해서 전개된다고 보았다.한 주기는 보통 네 유가, 즉 네 시대로 되어 있는데 각 시대의 앞에는 여명기가 있고 이후에는 황혼기가 있다.

각 유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 수명과 도덕성, 행복이 감소한다는 특징을 보여 준다.

만 이천년 즉, 마하유가라는 한 주기가 끝나면 우주는 해체되어 혼돈 상태가 되고 새로운 주기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무한히 계속되는 반복 유형에 체념해야만 했다.

역사를 초월한 영원한 세계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

결국 우주적 순환론은 역사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를 낳았다.

 

상고주의:

과거를 잃어버린 황금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쇠퇴하는 과정으로 보는 것.한주기 안에서의 전개 과정, 즉 쇠퇴 국면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전세계에 걸쳐서 사상에 반영되었다.


베빙톤(‘역사관의 유형들’저자)

  순환적인 역사관을 논하면서 그리스. 로마 철학들의 견해와 역사가들의 견해를 구분하여 순환사관에 대한 정의를 시도 했다.

그의 주장은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은 인도나 중국같은 동양의 순환론에 익숙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헬라 철학자들에게 있던 희년사상(50년마다 돌아오는 복스러운해.종도 놓아주고 빚도 탕감해줌)이었다.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은 희년을 역사과정의 한 순환의 도식으로 받아 들였으며 이 사상은 헤라크리투스 그리고 플라톤에게로 전승되었다. 즉 역사의 순환론적인 이해는 고대 철학자들이 가진 역사 개념의 근간이었다. 스토아 학파의 원색적(언행이나 차림새 따위가 노골적인것)인 교리형태로 계승.

이것은 스토아 학파들이 자아 포기가 극기의 정신이라는 철학적인 태도를 잉태시킴.

베빙톤은 그리스, 로마의 역사가들의 사관을 논하면서 철학자들보다는 사건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과정의 순환론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역사가들은 철학자들의 입장처럼 세상을 별 의미가 없다는 관점과는 달리 광범위한 역사진행의 발전 과정을 연구 서술하려 했다.

 

헤로도투스

(‘히스토리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여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움)

  신화적인 개념의 순환사상을 극복하려는 노력.  자신의 집필의 목적은 역사에 대한 연구결과를 서술하고 문화적인 업적을 설명하며, 왜 페르샤의 전쟁을 야기시켰는가를 보여주는데 있다고 진술. 그러나 그가 직접적으로 순환사상을 파괴하는 시도는 보이지 않음. 단순히 체계적인 역사연구의 개혁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신이 역사의 동인이 된다는 개념에서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함.  신권적이고 신화적인 역사 서술에서 인본주의적인 역사 서술로 전환시킴

헤로도투스가 사용한 인간의 행한 일들의 전말에 의의를 파악하는데 역점을 두고 역사를 기록하는 과학적인 역사 이론을 설파했지만 여전히 ‘불변하는 것만이 인식이 가능하다는 회랍적 로고스철학, 형이상학적 역사인식론’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투키디데스

  역사의 원인을 제 1원인과 제 2원인으로 구별하고 신적인 원인을 제 1원인으로 보고 제 2원인은 인간에게 있다고 보았다. 제 2원인의 규명에 역점을 두는 역사 인식을 발달 시켰다. 그래서 그는 신화적인 로고스 개념에서 떠나 인간들사이의 복합적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역사의 과제라고 보았다. 복합적인 원인들을 규명하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이나 앞으로 일어날 사건등 많은 점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분명하게 이해하려는 하람들을 위해 시도하였다. 이는 고도로 발달된 순환론적인 사관이었다.

※ 로마시대- 복고주의 적인 역사 서술의 영향이 짙음.

 

 

라비우스와 타키투스

  영구 불변한 로마의 영광은 역사적으로 처음부터 영속적이었음을 인식. 바로 이 사상은 본체의 영구불변성을 뜻하는 희랍의 본체철학이며 곧 로고스 철학의 관념주의와 이상주의 개념이었다. 결론적으로 신화적인 이야기로 시작된 순환사관은 본체론이라는 관념론적인 체계를 견지하면서 영구불변한 실체의 정신적 작용의 범주내에서 모든 정치적 문화적 사건들을 이해하려는 역사의식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관념론적 사관은 국수주의나 국가주의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으며 독일의 민족주의 그리고 일본의 황국주의의 배후에 잠재한 힘이기도 하였다.

 

※ 순환사관은 근대에 와서도 지속적으로 보존되었다.

라조(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저서 [역사철학]에서 오늘날의 서양 문명은 마지막 순환주기에 도달했다고함.

니체: [짜라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서 영겁 사상에 대한 신념을 필했고, 이것은 기독교의 관점을 거부하는 순환 개념이었음.

스펭글러: 니체의 영향을 받음. 창조의 시기인 문화시대화 쇠퇴의 시기인 문명시대를 나누어 농촌문화와 도시문화의 등식으로 19세기 서구사회의 문명을 마지막 단계로 해석하였다.

토인비:

 

영국에서의 순환론의 주창자로 근대에 세계적인 명성을 떨침.

1950년에 [역사연구]라는 방대한 저작을 남김. 그는 한 국가의 운명을 논했던 이전의 순환사상가와는 달리 전 사회의 운명에 관심을 가졌으며 보다 세밀하게 검토하였으며 21세기에 예견되는 문명의 생성, 몰락의 순환에 만족한 것이 아니라, 각 순환들이 어떻게 연계되는 가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순환의 유형과 연관성을 검토하면서 인간의 역사가 순환논리에 의해 영원히 회전한다는 개념에 만족할 수 가 없었다. 그는 모든 순환이 독창적인 특징이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각 문명의 변동 시기에 바퀴가 차로 하여금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게 해 준다면, 영원히 돌아가는 바퀴는 결코 헛된 반복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토인비는 각 문명의 순환사이에 간격을 메꾸는 제 3의 차륜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보편교회로 보았다. 1954년 그는 문명의 하양곡선 단계에서 종교가 발생하며 그것은 영혼의 발전은 고난에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문명의 생성, 몰락과 더불어 신에 대한 지식도 증식된다고 보았다.

그는 이런 주장을 통하여 기독교와 순환론을 병합하는 이론을전개하여 순환론의 비관주의 사관을 극복하는데 기여 하였다.

그리고 모든 사물이 목표지향적임을 인식케 하였고, 순환은 이제 그 자체의 힘으로 지탱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2.진보론적 사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에부터 일어남.

기독교 역사관이 세속화된 결과.하나님의 개입에 대한 믿음은 무시되었지만 기독교적인 기원이 잘 드러남.

미래에 대한 신념 제공, 불변하는 도덕가치 수용. 인간의 역사가 흥하고 쇠퇴하는 순환개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역사는 발전한다는 사상.

 기술이나 물질적인 조건의 발전뿐만 아니라, 지적 도덕적 면이 발전한다는 것.

물론 역사 과정에서 퇴보의 순간이 있음을 인정하지만(중세시대) 인류의 발전은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는 것.

  진보론적 발생은 17세기 있었던 고대인과 현대인에 대한 논쟁에서 발생.

논쟁점은 근대의 학자들이 고대의 학자들보다 우수한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에서 비롯.

당시 많은 사람들은 고대인들이 더욱 우수하다고 믿었다.

 

옥스퍼드 대학에 임용되는 교수들은 대부분 이러한 신념 때문에 처음에는 강의를 하지 아니하고 고대학자들의 작품에 주석을 다는 일로 일정한 기간을 수련하는 의무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도 시간이 감에 따라 축적된 유산이라는 점을 간파하는 학자들의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페로(Perrault)는 [고대인과 현대인의 비교]에서 그리고 퐁드넬(Fontenelle)은 [고대인과 현대인의 차이]에서 이런 주장을 하였으며 이 주장은 곧 문명이 발전한다는 18세기 진보 사상의 길을 예비하였다.

  17세기의 기독교 사상도 진보주의 사관에 기여.

17세기에 천년왕국의 개념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역사내에 축복받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증폭.

이것은 바로 발전을 통해 진보되는 역사관을 잉태시키는데 일조를 하였다.

 

 진보사관의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과학주의였다.

과학의 속성이 그렇듯이 역사를 낙관적이고 발전으로 보는 견해를 발달시켰다.

 과학주의가 진보주의 사관을 한단계 더 깊게 발전시켰다고 볼수 있다.


3.역사주의

자연의 세계는 일반화의 법칙이 가능하다고 보는 자연주의와는 달리 역사의 세계는 특수성으로 충만된다고 보는 것이 역사주의의 본질이다.

 

즉 역사의 보편성보다는 그 특수성에 따라서 역사현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주의적 사고를 토대로 본다면 모든 사물의 본질이란,끊임없는 흐름과 변화속에 있게 마련이어서 ,사물자체가 놓인 공간과 시간의 제약속에서 그 고유한 형태를 가지고 끊임없이 발생하였다 사라지는 역사적 현상에는 결코 동일하게 반복되는 요인이란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 사회의 정치,경제,사상과 같은 영역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그것 자체의 고유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역사주의 핵심은 자연현상과 문화현상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며,따라서 사회과학 이나 인문과학과는 달리 원리적으로 다른 방법론을 적용해야 한다는데 있다.


역사주의의 배경

역사주의가 언제 시작되었는가는 논자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논의를 제시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역사적 확증은 보편적인 것보다는 개별적인 것을 파악함으로써 밝혀진다고 보았다.

 

근대 역사적 인식의 기초를 이룩한 비코vico 헤르더herder에 이르러서 이러한 역사적 관점은 심화 되었다.

비코는 이미 18세기 초에 그의 신과학 이라는 저술에서 사회적 실재에 대한 연구는 본질적으로 자연과학과는 다른 방법론을 요구한다고 보았다.

 

헤르더는 18C말 역사철학 이라는 저술에서 역사주의적 원리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전개하여 각 시대가 그에 내재하는 가치개념에서 관찰 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히면서 시대와 민족의 개별성을 명확하게 포착하였다

그리고 18C,19C 세기를 거치는 동안 역사주의의 성격은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1792년부터 1815년에 걸쳐서 진행 되었던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독일침략은 18세기 고전주의 전통이나 보편주의에 대신하여 민족집단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급선회하였다.


역사주의 이론

역사주의자들의 신념은 모두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계몽주의 사상가들에 따르면 역사과정은 사회조직의 다양한 개선단계를 통해 향상되는 직선적 발전과정이다.이와 대조적으로 역사주의자들은 역사에 일직선적 발전은 없다고 주장한다.빌헤룸 훔볼트의 세계사에 대한 고찰 이라는 글은 진보사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보여주며,역사에서 규칙성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점을 밝히면서 역사의 비합리성을 강조하였다.

 

1)랑케의 역사주의 이론

독일에 있어서 역사주의의 절정을 이룬 사람은 랑케이다.랑케가 끝까지 견지한 것은 특수성을 통해서 진리를 파악하고자 하는 입장이었다.개별적 사건이 일반성의 의미와 정신을 그 속에 간직한다고 보았다.그는 신이 역사과정에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2)헤르더의 역사주의

헤르더는 다원주의란 모든 문화가 다른 문화의 가치와 정당하게 비교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를 가진다는 주장이다.이 문화적 상대주의는 과거를 현재와 비교하여 열등한 시대로 여기는 진보주의 사상가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다.


역사주의 위기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례없는 파국을 겪은 뒤 역사적 사고와 역사적 인식에 대한 심각한 반성의 소리가 나타나게 되었다.

19세기까지의 역사인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외견상 불합리하고 수없는 개별성으로 충만된 역사적 세계가 그 배후에 신의 근원과 직결된다는 랑케의 역사신학이었지만 20세기초에 이르러 이러한 신앙은 정신적,사회적 변동에 의해 크게 흔들리고 역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가치의 상대화와 더불어 역사인식의 상대화가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상대주의 원리로 사회현상이나 역사현상을 적용할 경우 주관적으로 확인되는 객관적 진실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지고 과학적 지식의 기초는 허물어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한없는 다양성과 한없는 변화 속에 역사적 개성을 찾는다는 역사주의는 산업화와 대중화라는 새로운 사회현상에 직면하고는 아무런 사회적,사상적 기능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4.마르크스주의 역사관

마르크스주의의 체계는 헤겔, 포이어바흐등 19세기 독일의 고전철학에서 변증법과 유물론을,영국의 고전 경제학 중에서도 리카르도의 경제학으로부터 노동가치설을,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발전,통일 시킴으로써 형성하였다.

헤겔철학의 극복

헤겔에 의하면 어떠한 시대에서든지 일반적으로 용인된 관념 또는 정(正, thesis)이 존재하지만 곧 상반되는 것 또는 반(反, antithesis)에 의해 부정된다. 이러한 관념의 갈등에서 진리의 보다 높은 형태를 의미하는 새로운 정(正, thesis)이 되는 합(合, synthesis) 이 형성된다. 새로운 정(正)은 마찬가지로 반(反)에 의해 대립되고 새로운 합(合)으로 변화된다. 그 결과 이러한 끝없는 관념의 고리에서 각 관념이 진리에 더욱 가깝게 접근하면서 역사는 모든 것들이 갈등으로 야기되는 변화의 수단에 의해 점차 보다 완벽하게 되는 끝없는 과정으로 진화한다. 헤겔은 그것을 연구하기 위한 방법 뿐 만 아니라, 이러한 과정까지도 변증법이라 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 철학과 헤겔 철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헤겔이 관념론적인 반면, 마르크스는 유물론적이라는 것이다.


관념적 역사관과 유물론적 역사관의 차이

관념적 역사관은 인간의 사상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최고의 책임이 있다고 믿는 것에 반해 유물론적 역사관은 인간의 삶은 우선 먹고,마시고,거주하며,옷 입는 등의 다양한 일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최초의 역사적 행위는 이러한 필요들을 만족시키는 수단을 생산하는 것, 즉 물질 생활의 생산이라고 본다.

포이어바흐철학의 극복

변증법적 유물론과 함께 마르크스 철학의 양축을 이루는 사적유물론(史的唯物論)1)은 청년기 마르크스 사상의 분수령을 이룬다.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를 극복하고 자신의 사상을 과학적 세계관으로 정립하는 데는 두 번의 단계가 필요했는데,포이어바흐의 ‘자연주의적 유물론’의 정태성과 비변증법적인 요소를 비판하는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와 추상적 인간관을 역사,현실적 인간으로 정초하는 {독일 이데올로기}가 그것이다.{독일 이데올로기}는 사적유물론의  기본적인 명제와 개념들을 명확히 표현되는 저작으로,가장 중요한 성과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발견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인간사회는 처음에는 낮은 생산력에 제약되어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노동하는 원시 공동체였다. 그러나 생산력이 높아지자 사적 소유,상품교환의 출연으로 공동체가 무너지기 시작해 사람들은 여러 계급으로 갈라져 계급사회가 생겼다. 그리고 계급사회에 맞추어 국가를 중심으로 법률적,정치적 상부구조2)가 형성되었고 사회적 여러 의식형태 내지 이데올로기(사회심리,종교,철학,예술 등)가 형성 되었다고 본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특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기존의 생산관계 즉 이전까지 적합했던 소유관계와 갈등을 빚게된다. 그때 사회혁명은 시작된다. 정적인 생산관계는 마르크스 변증법에 있어 정이고, 역동적 변화하는 생산력은 반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생산력은 존재하는 생산관계가 더 이상 생산력에 조응하지 않는 것과 같이 체제에 모순이 나타난다. 이러한 모순은 사회혁명이 있도록 격렬해지고, 새로운 생산관계가 생기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들을 전제로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잡음으로써 자본제사회는 변혁되고 장기의 과도기를 거쳐 착취?수탈?폭력?계급지배가 없이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공동생산제사회가 실현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일생을 걸고 연구하고 확신했던 사회주의 체제는 몰락의 길로 치닿고 있다.

             

5.기독교적인 역사관

기독교 섭리사상의 핵심은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한다는 것,그분은 역사를 일직선으로 인도한다는 것.그리고 그분은 역사를 자신이 계획한 목적지로 이끈다는 것이다.

기독교적 역사는 곧 하나님의 나라 역사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역사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의 성경 적인 개념은 통치와 영역의 이중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로서 그의 주권적 통치가 미치는 역사의 전 영역을 포함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 자신이 세우신 목적 달성을 위해서 행해지는 역사의 전 과정이다.

 

창조의 개념에서 역사를 조명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그 영역이 우주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우주적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에 바로 창조된 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의 통치에 절대 복종 하도록 창조된 창조세계는 타락으로 인해 파괴되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하는 세력의 역사가 형성되었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타락한 불복종하는 세력의 역사로부터 하나님의 다스림을 회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세상의 타락한 역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서 세상과 자신을 화목케 하신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중심부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와의 관계를 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가 성취하려던 하나님의 나라는 타락한 역사속의 훼손된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를 회복시키는데 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미래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성을 포함한 전 역사의 과정을 의미한다.

셋째,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지리적으로 단순히 피안적인 것이 아니라.이땅의 현세에도 동일하게 성취되어야 할 하나님의 통치 역사이다.

넷째, 그리스도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자연계의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

이와 같이 기독교 역사관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한 죄악 된 역사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개입과 통치를 신앙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기독교사관을 확립시킨 사람은 어거스틴이었다.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복은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주는 선물이요 은혜라고 하였다.그러므로 인간의 공로와 하나님의 자비가 자격 없는 자들에게까지 확대되기도 하며 그분의 심판은 어떤 특별한 죄에 대해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세에서의 모든 잘못된 행위에 어김없이 심판이 임한다면 최후의 심판까지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권능이 현세에서 저질러 지는 모든 죄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벌주지 않는다면 섭리에 대한 믿음은 끝장나고 말 것이다. 어거스틴은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에 대한 정상적인 기독교인의 믿음을 제시하였다. 어거스틴은 역사 전체를 말할때 역사의 시작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역사의 시작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로 보았다. 그는 무형의 질료에서 유형의 세계로 창조되었다고 하였고, 우리의 시간은 바로 유형의 세계가 나타날 때부터라고 하였다. 창조의 시작과 섭리는 하나님으로부터이며, 창조자와 섭리자를 떠나서는 역사의 의미와 목적이 없음을 주장하였다.초대교회의 교부들에게 나타난 기독교적인 사관은 바로 역사의 이중성 보다는 창조주 하나님의 총체적인 섭리와 구원의 역사라는 대 전제속에서 해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세교회

중세의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와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토마스 아퀴나스였다.즉 교회가 국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교권의 우월적인 사관은 세상 역사를 치유하는 은총의 매개자인 교회가 구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론화 하였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지만 피조물과는 본성적으로나 존재양식으로나 전혀 다른 초월자로서 인간 세상과 그 역사에 대해서도 초월자로서 간접적인 개입을 한다는 주장이다.즉 중세교회의 역사관은 지나친 교권주의 개입으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상실한 교회 지상주의적인 사관이었다. 지상교회의 위상과 권위가 역사를 지배하다 보니 하나님의 나라가 곧 교회와 일치되는 사관을 형성하였다.

16세기 이후의 교회

종교 개혁시대에 접어 들면서 하나님의 나라역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종교 개혁은 역사상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충분히 경험한 시대였다.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을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경험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역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하에 있었고, 또한 역사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임을 인정하였다. 개혁자들의 개혁의 원천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절대 복종하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기초로 시작되었다.

 

 

 

다른 역사유형들과의 비교

순환론은 어떤 종류의 유신론과는 필연적인 관련성을 가지지 않지만 기독교의 역사사상은 하나님이 세상에 개입한다는 믿음에서 유래한다. 더구나 다양한 순환이론들은 순환의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을 거의 강조하지 않는 반면 기독교는 역사의 종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은 진보 사상과 마찬가지로 밝은 미래를 약속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그 약속에 대하여 진보 사상보다 더욱 확고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래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보장된다. 기독교 역사관은 역사주의와 독립적이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역사의 외부에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이 가치의 근원이며 또한 가치의 계시자이다. 한편 기독교적 관점은 인간이 고유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고 믿는 역사주의의 확신을 공유한다. 기독교 역사관과 비교해 볼 때 마르크스주의적 견해는 근본적으로 안목이 짧으며, 그 의미란 주로 현대 서구 영향을 주고 있는 경제적 변화에만 집중되고 있다. 정치적 선동의 영역에서 공산주의가 즉각적인 효과를 거두는 이유는 설명이 되나, 보편적 역사 이론으로의 철학적 가치는 크게 손상된다.

기독교적 역사관은 창조와 진행과 종말이라는 삼각 관계 속에서 시작과 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회복키 위해 오셨다. 고로 그의 구속은 기독교적 역사관의 중심을 이루며 피조 세계와 인간의 모든 영역 미치는 구원의 사역이었다.

 

 예수님의 사역은 모든 믿는 자에게 천국을 열어 줌으로써 하나님이 역사의 종말을 이끌 것이라는 기독교의 소망을 확립시켰다.

기독교적인 사관은 바로 이러한 총체적인 구원의 완성을 위해 섭리하시는 하나님 나라 회복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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