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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조선문명

보신각 종(제야의 종) 33번 치는 이유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20.07.19|조회수323 목록 댓글 0

보신각에 대하여

보신각(普信閣), 흔히 종각(鐘閣)이 누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54 (관철동) 종로사거리에 있습니다. 보신각은 보신각종을 걸어 놓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정면 5, 측면 4칸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1396(조선 태조 5) 창건했다가, 1869(조선 고종 6)1979년에 다시 한번 재건되었습니다. 종로구의 종 모양 심볼도 보신각종을 본 따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지하철로 1호선 종각역과 가까운 이곳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0로써 매년 양력 1231

12시가 되면 새해를 맞이하여 보신각종을 33번 치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를 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이때에는 차량의 출입이 전면 통제되며 지하철은 종각역을 무정차 통과합니다.

 

또한, 매년 1231일 이외에도 31일 삼일절, 815일 광복절 등 국경일 낮 12시를 기해서

기념 타종 행사를 열기도 합니다.

 

 

 

  보신각의 역사

조선 태조 5(1396)에 경기도 광주에서 주조한 종을 한양의 청운교 서쪽 종루에 설치한 것이

시초입니다. 이후 1413(태종 13)2층 종루를 통운교(지금의 종로네거리)로 새로지어

옮겼다고 합니다.

 

1458(세조 7)에는 새로운 종을 만들어서 설치하였으나 임진왜란(1952)의 발발시 왜군들에

  의하여 한양이 점령당했을 때 종루는 소실되었고 종도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1619(광해군 11)에 종각을 다시 짓고 종도 새로 달았는데, 이때 세운 종각은 기존의 2

 종루가 아니고 본래보다 작게 1층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건 종은 새로 만들지 않고 기존의

 종을 옮겨왔다고 합니다.

 

옮겨온 종은 원래는 원각사(圓覺寺)에 있던 종으로 세조 때에 만들었던 것이었으나

연산군 10(1504)에 원각사를 폐찰하면서 갈 곳을 잃은 이 종은 숭례문과 명례동 고개를 거쳐

현재의 종각의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19506.25 전쟁 때 또 다시 파괴되어 휴전 이후인 1953년 다시 정면 5간 측면 4간의

2층 종루의 형태로 복원하였습니다. 새로 지어진 종루는 안타깝게도 콘크리트 구조물로

 일제강점기에 바뀐 바라보는 방향 그대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보신각의 편액은 보신각이라는 이름을 명명한 고종이 직접 쓴 현판이었으나, 6·25전쟁으로

전소하였고 현재의 편액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합니다.

 

 

 

1985년에 기존에 세조때 만들었던 원각사표본래의 보신각종이 노후되어 이를 보존하기 위하여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본떠 주조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보신각 종을 33번 치는 이유



1) 역사적 의미


태조 5(1396)부터 도성의 4대문(숭례문·홍인지문·숙정문·돈의문)4소문(혜화문·소덕문

·광희문·창의문)을 일제히 여닫기 위해 종을 쳤습니다. 오후 10시에 통행금지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인정(人定)'이라 했으며, 오전 4시에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타종을 파루(罷漏)’

했습니다.

인정은 오후 10시경에 28수 별자리 수에 맞추어 28번 타종하였으며, 파루때에 종을33()

 맞추어 33번을 쳤습니다 (28+6=34)


문제는 왜 인정은 28이라고 한다면 파루는 왜 33의 수가 되는가 입니다.


즉 어떠한 계산법에 근거한 것인가하는 점인데 사실 이에 대하여 정확하게 설명하고 해설하는

분이 거의 없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고유한 역학에 근거한 책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른바 부도역학에 근거한 것입니다.

부도역학에 의하여 우주를 총 91의 비율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58과 33의 비로 이분합니다.

58의 수는 이른바 황금비의 수로서 고정된 수입니다.

일종의 물방울과 같은 것이고 영혼과도 같은 것으로 여겨진 것인데 우주는 이 영혼이 33의

비로 형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역학이나 수리학이 바로 8괘 상중론이라고 합니다.

이 8괘상중론을 약칭하여 8괘론 혹은 주역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8괘론을 시간계산한 것이 바로 28과 5의 이분론입니다.

이러한 역법을 힌히 현도라고 합니다.

 

 

 

아무튼 시계가 없던 시절, 백성들은 해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짐작했는데 밤 중에는 세종시대에

발명한 각종 시계로 백성들에게 밤 시간을 알려주었습니다.

 

세종시대에 물시계인 자격루 등은 기존의 책력을 정리한 것인데  이때에  활약한 학자가 바로  

장영실입니다.

그런데 그 숨은 공로자가 있었는데 바로 영해박씨입니다.

 

아무튼 그 당시에 각 경마다(2시간) 북을 치고, 각 점마다(24) 징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소리를 모든 주민이 들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대문이 닫히고 주민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이경(10시경)과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오경(새벽 4시경) 만큼은 종로 보신각에 있는

 대종을 쳐서 널리 알렸다고 합니다.


 

2) 불교적 의미


부도역학이 불교의 우주관으로 적용된 것이 이른바 33천의 세계관과 28계의 우주관입니다.

  33천을 도의천이라 하는데 그 곳의  천민(天民)들은 건강하고 무병장수 하므로 밝아오는

새해와 밝아오는 아침에는 우리 국민들이 도의천처럼 건강하고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섣달 그믐날 밤 자정에 절에서는 중생의 백팔번뇌를 없앤다는 의미로 종을 108번 울렸습니다.

108이란 숫자는 33의 역으로 58의 수와 50의 수가 합한 것이고 36의 수가 3배합한 것과 같습니다.

 

33번의 종을 치는 것은 온 사방 만 백성시름과 번뇌를 씻고, 새로운 한해를 축원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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