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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역사 1] 마고할미에서 단군까지 [총론]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8.12.24|조회수242 목록 댓글 0

데일리전북이 단기 4344년 단군절(檀君節)을 맞아 '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 연재를 시작합니다. '홍익인간 7만년의 역사'는 27년 이상 족보와 한중일의 역사를 연구해 오신 조홍근씨(51)께서 부도지,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년 역사를 풀어갈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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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의 역사는 반만년이 아니라, 단군 이전에 한웅천왕의 배달나라 시대가 1,565년간 있었으며, 그 이전에 한인천제의 한국(桓國) 시대가 3,301년간 있었고, 또 그 이전에 한국의 전(前)시대로 63,182년간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역사는 서기전70378년부터 올해 2011년까지 72,389년의 역사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역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임금은 마고(麻姑)이다. 마고는 마고할미라고도 불리우며, 우리 민속에서는 삼신할미라고 불리기도 한다. 철학적 종교적으로  삼신(三神)은 천신(天神), 지신(地神), 인신(人神)을 가리키며 원래 하나인 일신(一神)이 된다. 그래서 삼신일체(三神一體)라 한다. 인신(人神)은 다시 말하면 조상신(祖上神)이다. 그래서 삼신은 자식 생산에 관여하는 신(神)이 되는 것이다.

  
 
  

마고할미가 우리 조상으로서 백성들을 다스리던 시대는 서기전70378년 계해년부터 서기전7197년 갑자년까지 63,182년간에 해당한다. 물론 마고할미 한분이 63,182년간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마고라 불리는 여성 임금이 대를 이어가며 다스린 것이 된다. 마고할미가 다스리던 나라가 마고성(麻姑城)이며, 역사적으로 말하면 성곽의 나라가 된다. 이 마고성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지금의 파미르고원에 있었다.

서기전27178년경부터는 마고할미의 장손이 되는 황궁씨(黃穹氏)가 백소씨(白巢氏), 청궁씨(靑穹氏), 흑소씨(黑巢氏) 등에 속한 네 씨족을 화백(和白)으로 다스리던 시대가 되었다. 이때부터는 마고할미를 이미 조상신인 삼신(三神)으로 모신 것이 된다. 황궁씨가 마고할미를 대신하여 다스린 곳도 또한 파미르고원의 마고성(麻姑城)에 있었으므로 마고시대, 마고성 시대가 되는 것이다.  

황궁씨가 네 씨족의 장(長)이 되어 화백제도로서 서기전7197년 갑자년까지 다스리기 약 2만년이 흘러, 이후에는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이 하늘나라가 되고, 파미르고원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사는 곳은 땅나라가 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때 땅에 출현하여 정착한 시조가 우리역사에서 인류조상이라 불리는 나반(那般)이다. 

나반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아버지와 같다. 나반의 형제족들이 모두 12형제족이다. 파미르고원에서 네 씨족장을 따라 각 씨족장의 아들이 되는 각각의 3형제족이 동서남북으로 분거하여 약1,000년에 걸쳐 정착이 이루어졌다.

서기전7197년 갑자년 분거시부터 정착이 이루어진 때까지 약 1,000년에 걸쳐 황궁씨가 천산(天山)을 수도를 삼고, 각 형제족들을 주도하여 마고할미가 베풀었던 파미르고원의 낙원세상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온 힘을 기울였고,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정립하였다. 

이후 황궁씨는 천부삼인을 유인씨(有因氏)에게 전수하였다. 이 유인씨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삼신(三神)으로서 조상인 나반이 된다. 나반은 불가(佛家)에서 나반존자라 하는 독성자(獨聖者)이며, 절의 독성각(獨聖閣)에 모셔져 호랑이를 데리고 있는 산신령으로 표현되는 분이고, 황궁씨의 뒤를 이어 다스린 임금이다.

나반이 되는 유인씨가 서기전6100년경부터 서기전5000년경까지 약 1,000년을 다스렸다. 유인씨 시대는 이미 정착이 이루어진 시대로서 각 지역에 문명이 존재하는 것이 되며, 실제로 우리조상들의 문명이 되는 소위 요하문명은 황궁씨 시대 말기로부터 유인씨 시대를 거쳐 이어져 온 것이 된다.

유인씨는 다시 한인씨(桓因氏)에게 천부삼인을 전수하였다. 유인씨, 한인씨 모두 수도는 천산(天山)이었다.

한인씨의 나라가 우리가 통상적으로 부르고 기록되고 있는 한국(桓國)이다. 한인씨가 유인씨의 뒤를 잇고 유인씨가 황궁씨의 뒤를 이었으므로, 이로써 유인씨와 황궁씨의 나라도 또한 한국이 되는 것이다. 한인씨는 서기전5000년경부터 서기전3897년 갑자년까지 약1,000년을 다스려, 황궁씨, 유인씨, 한인씨가 다스린 전체 한국시대는 서기전7197년 갑자년부터 서기전3897년 갑자년까지 3,301년간이 된다.

한인씨 한국 시대에 한인은 모두 7분으로 기록되고 있다. 약1,000년간이니 한인 한분이 평균 150년간씩 다스린 것이 된다. 한국(桓國) 시대는 한인의 아들 한웅(桓雄)이 세운 배달나라(박달나라, 檀國)에 비하여 하늘나라로 받들어진다. 그래서 한웅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운 인물로 기록되는 것이다.

한국의 7대 지위리 한인이 한웅에게 호족(虎族)과 웅족(熊族)의 전쟁으로 시끄러워 진 세상을 바로잡아 다스리라 하며 천부삼인을 전수하였고, 이에 한웅이 태백산 쪽으로 가서 태백산 아래 신시(神市)를 열고 호족과 웅족의 전쟁을 평정하여 홍익인간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이를 개천(開天)이라 하는데, 개천이란 하늘을 열다라는 의미로서 단순히 하늘을 연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인 한국(桓國)의 홍익인간의 도(道)를 땅에 시행하였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천부삼인(天符三印)에 담긴 철학이 바로 홍익인간 철학이다.

호족과 웅족의 전쟁이 발발하였던 곳은 삼위산(三危山) 남쪽에 위치한 태백산(太白山)으로서 황하(黃河) 중상류에 위치한 서안(西安) 남쪽의 태백산이다. 한국(桓國) 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황하 북쪽으로 천산의 동북쪽으로 펼쳐진 몽골, 만주 땅이 한국(桓國)의 본토가 되는데, 특히 한인씨의 한국 본토는 단군조선의 진한(眞韓) 땅과 거의 일치하게 되며, 황하 남쪽은 지방으로서 땅나라가 된다. 한웅이 태백산을 수도로 삼아 배달나라를 세우고 제후가 봉해지면서 배달나라 자체가 하늘나라가 되며, 지방의 제후는 천하로서 땅나라가 되는 것이다.

배달나라는 서기전3897년 갑자년 10월 3일에 세워져 서기전2333년까지 1,565년간이 된다. 배달나라를 다스린 임금을 한웅(桓雄)이라 하며 모두 18분이 계셔 한웅 한분이 평균 약87년간씩 다스린 것이 된다. 한국의 한인을 천제(天帝)라 함에 비하여 한웅을 천왕(天王)이라 부른다.

천왕이란 천제자(天帝子)이기도 하며 천제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인 것이다. 제후는 천왕이라 불리지 않는다. 배달나라의 제후를 높여서 천(天)자를 붙여서 천자(天子) 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실제 중국의 역사에서 고대중국의 조상이 되는 소위 삼황오제는 태호복희가 천군(天君)이었고 그외는 모두 천자였다.

한웅의 뒤를 이어 단군(檀君)이 나라를 다스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아사달에서 조선(朝鮮)을 세우신 이후, 서기전232년에 해모수 북부여에 정식 접수되기까지 2,102년간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이에 해모수가 단군조선의 정통을 이었으므로 또한 단군이라 불리운다. 단군은 글자 그대로 박달임금이라는 말이며, 배달나라 작은 임금으로서, 원래는 한웅천왕의 아들인 천군(天君)이기도 하고, 단군조선의 본 임금이 되니 천왕(天王)이라 받들어지며, 후대인들로부터 삼신일체(三神一體) 사상에 의하여 천제(天帝)로 받들어지는 것이다.

서기전70378년 계해년부터 서기전232년까지 약 7만년의 끊이지 않은 우리 조상들의 역사가 있었으며, 이후 단군조선을 이은 북부여, 후삼한의 역사가 있었고, 이어서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그리고 고구려를 이은 대진국(발해)과 고려, 조선의 역사가 있어 지금의 대한민국에 이르러, 올해까지 72,389년간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마고할미에서 단군까지 실제적인 정치, 제도, 종교, 철학, 과학,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역사를 고찰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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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2] 마고의 출현과 마고성(麻姑城) 역사의 시작
2011년 07월 02일 (토) 11:01:02박용근 기자 sppopsj@yahoo.co.kr

육십갑자(六十甲子)로 칠 때 계해년(癸亥年)에 해당하는 서기전70378년, 지금의 파미르고원에 자리잡고 있던 성곽의 도시에 삼베옷(麻衣)을 입은 신선(神仙) 같은 여성이 출현하여, 일단의 무리들을 다스리기 시작하니, 그 여성의 이름은 마고(麻姑)였다.

마고는 파미르고원의 성곽도시에서 태어나고 살았으나, 그 선조들은 저 멀리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온 사람들이었다. 즉 서기전8만년경 이전에 지금의 동부아프리카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북쪽으로 동쪽으로 차츰 이동하여 마침내 살기에 적합한 파미르고원을 찾아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고할미의 무덤에서 시작되는 고인돌 
 

많은 사람들이 각 사방으로 흩어져 살았으나, 파미르고원의 성곽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일정한 규율을 만들어 모두가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러한 자유자재(自由自在)의 법을 이어 시행한 사람이 바로 마고였던 것이다.

자유자재의 법은 천부(天符)이다. 천부란 하늘의 뜻에 맞다는 말로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물론 홍익제물(弘益濟物)의 뜻도 함께 가지는 홍익인세(弘益人世)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이므로 일정한 계율이나 율법이 있었던 것이다. 공동선(共同善)을 위하여 천부(天符)에 따른 자재율(自在律)과 수찰법(守察法)이 있었던 것이다.

자재율은 자유자재의 법이며, 수찰법은 이러한 자재율을 지키도록 하는 법이다. 물론 마고 이전에도 천부(天符)는 존재하였다. 즉 마고시대 이전에도 천부가 행해지던 시대가 이미 존재하였던 것이다. 마고시대를 현시대인 중천(中天) 시대라 한다면 그 이전은 선천(先天) 시대가 되는 것이다.

마고가 파미르고원의 성곽도시를 다스리기 이전에, 이미 성곽은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즉 마고가 임금이 되기 이전의 약1만년 사이에 사람들이 스스로 살고 활동할 보호구역을 만든다고 자연지형을 살리면서 성벽을 쌓아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고 스스로 보호하였던 것이다. 마고가 출현한 이후 성곽도시 내의 사람들은 마고의 보호와 가르침에 따라 피리를 만들어 불며 자연의 소리를 노래하면서 풍류를 즐겼으며, 자연의 변화에 따라 어김이 없이 살았다.

마고는 삼신(三神) 할미라 불리면서 또 신선(神仙) 할미라고도 불린다. 신선이란 도(道)를 닦아 터득하여 신(神)과 같이 된 존재를 의미한다. 마고는 선악(善惡)의 구분이 없는 원래의 선(善)을 닦아 인간의 참 본성(本性)을 터득하여 상철(上哲)로서, 함께 하늘의 참 기운을 호흡하며 참목숨을 알아 그 수명에 한이 없었던 것이다.

마고는 자연의 소리(音)에 따라 악기를 만들어 소리로써 다스렸다. 이에 따라 성안의 사람들은 음악의 소리에 따라 조화롭게 자연스럽게 다스려졌다. 즉 율려(律呂)에 따라 다스려지던 율려시대였던 것이다. 자연의 소리는 곧 자연의 법칙인 것이다. 마고는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라는 두 딸을 낳아 각각 오음칠조(五音七調)의 음절을 맡아 보게 하였다.

마고는 천체의 움직임도 살펴서 천문(天文)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낮과 하루를 알리는 해의 움직임을 살피고, 밤과 삭망(朔望)을 알리는 달의 움직임을 살피며, 별들의 움직임과 별자리를 관찰하여 정리하였던 것이다.

마고성 안에는 마실 것과 먹을 것이 풍부하여 굳이 다른 생명체를 먹을 필요가 없었다. 성안에서 부드러운 풀들이 풍부하게 자라고 있었고, 양(羊)들을 잘 돌보며 잘 키워서 이 양들이 내어주는 젖을 받아 먹으며 평화롭게 살았다. 과연 저절로 젖이 샘솟는 젖샘(乳泉)이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파미르고원에 있던 성곽을 마고가 살면서 다스렸다 하여 마고성(麻姑城)이라 한다. 마고성 안의 기후는 온화하여 사람이 살기에 아무 곤란함이 없었다. 그냥 지상천국, 지상낙원이었다.

이렇게 마고가 파미르고원의 성곽도시를 다스리기가 43,200년 남짓 되었다. 물론 혼자 다스렸던 것이 아니라 마고라고 불리는 여성의 임금이 대를 이어가며 다스렸던 것이다. 마고를 보좌(補佐)하는 궁희와 소희도 처음부터 줄곧 죽지 않고 그리하였던 것이 아니라 궁희와 소희라 불리는 여성의 보좌가 대를 이어가며 보조하였던 것이다. 즉 마고라는 명칭이 어느 한 사람의 여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궁희와 소희라는 명칭도 특정의 여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후에는 이름이 직책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궁희와 소희도 각각 2남 2녀의 자식을 두어 모두 4명의 남성과 4명의 여성이 있어, 남성은 율(律)을, 4명의 여성은 려(呂)를 맡게 하여 율려(律呂)가 바로 다스려지는 세상이 되었다.

서기전70378년 계해년부터 43,200년이 흐른 서기전27178년에, 마고가 직접 다스리던 시대에서 마고의 두딸인 궁희와 소희가 낳은 아들들의 족속이 불어나 그 씨족의 장(長)들이 회의를 열어 서로 의견을 모아 다스리는, 화백(和白)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즉 서기전27178년부터 마고의 장손족(長孫族)이 화백회의(和白會議)의 최고 어른이 되어 다스리는, 마고성 시대 중의 소위 황궁씨(黃穹氏) 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마고가 다스리던 시대를 중천(中天) 시대, 황궁씨가 화백으로 다스리기 시작하는 시기부터 후천(後天)시대, 마고 이전의 시대를 선천(先天) 시대라고, 부도지(符都誌)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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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9] 황궁씨(黃穹氏)의 한국(桓國) 시대
2011년 07월 09일 (토) 18:26:41박용근 기자 sppopsj@yahoo.co.kr

서기전7197년경 시작된 사방분거(四方分居)는 약 1,000년에 걸쳐 이루어지고, 서기전6200년경에 이르러 정착이 이루어져, 이후 소위 문명(文明) 시대가 시작되었다. 여기 약 1,000년에 걸치는 시대가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의 장(長)이던 황궁씨가 천산(天山)을 중심으로 다스린 한국(桓國) 시대가 된다.

서기전7197년경 이전에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에서 동북지역인 천산주(天山洲)로 이동하여 천산(天山)을 수도로 삼아 다스린 황궁씨는, 오미(五味)의 난(亂)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고서 복본(復本)을 서약하고, 장자(長子)인 유인씨(有因氏)에게는 정사(政事)를 돌보게 하였으며, 차자(次子)와 삼자(三子)에게는 각 사방을 순행(巡行)하게 함으로써 형제족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가르침을 전수하였다.

  
 

서기전7197년경부터 서기전6200년경 사이에 정착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에서 먼저 동쪽으로 출성하였던 지소씨족(支巢氏族)들이 각지에 흩어져 세력이 만만치 않았는데, 먼저 마고성을 나가는 바람에 황궁씨로부터 원래 하나였음을 알게 하는 증표인 천부(天符)를 전수받지 못하였고, 또한 천부의 의미에 관한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거의 근본을 잃고 성질이 많이 사나워져 새로이 분거해온 사람들을 쫓아내고 심지어 추적하여 해(害)하기도 하였다.

분거한 사람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종주(宗主)가 되는 황궁씨의 사자(使者)가 각 제족(諸族)을 방문하는 것 외는 서로간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언어가 각 지역마다 서서히 그 나름대로 굳어지면서 서로 소통이 잘 안되는 등 언어분화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서기전7197년경과 서기전6200년경 사이에 분거가 이루어진 때, 마고할미는 마고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청소를 하였는데, 이때 청소한 물이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에 크게 흘러 넘쳐 대홍수를 일으켰으며, 이때 서쪽의 월식주(月息洲) 사람들이 많이 죽고, 동쪽 지역의 운해주(雲海宙) 땅을 크게 부수었다. 이 기록은 배달나라 시대인 서기전3400년경에 일어난 여와(女娃) 대홍수와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마고성 시대에 이미 나름대로 역(易)과 역법(曆法)이 정립되어 있었는데, 배달나라 시대의 태호복희역과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마고성 시대의 역(易)과 역법(曆法)이 황궁씨가 그대로 이어 사용한 것이 된다.

마고성 시대에 이미 북두칠성이 북극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이치를 파악하고,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1일 4시(四時), 1주(週) 7일(日), 1기(期) 4요(曜) 28일(日), 1년(年) 4계(季) 13기(期) 52주(週) 365일(日)의 역법(曆法)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법을 한국(桓國), 배달(檀國), 단군조선(檀君朝鮮)이 그대로 답습하여 정치제도에도 응용하였던 것이 된다.

  
 

황궁씨는 분거과정에서 선착한 족속들과 이동하는 족속들 사이에 발발한 불화와 전쟁을 해결할 방도로 천부삼인(天符三印)의 제도를 정립시켰다. 천부삼인은 이미 있던 천부(天符)에 하나를 더하여 천지인 삼인으로 하여 홍익인간 세상을 만드는 원리로 정립시킨 것이 된다. 천부(天符)는 마고성 시대에 사람들로 하여금 천성(天性)을 유지하도록 하고 하늘의 질서, 법(法)이 되는 천음(天音)을 모두 듣고 따르도록 하기 위한 상징물로서 거울과 방울이다.

황궁씨는 본성(本性)을 잃고 사악해져 버린 사람들을 가르침을 주어 구제하고, 한편으로 가르침을 외면하고서 악(惡)을 계속 행하는 무리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그 악을 제거하고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거울과 방울 외에 칼을 추가하여 삼인(三印)을 정립하였던 것이다. 즉 칼은 자르는 용도로 사용하는 물건으로서 천부(天符)로서의 칼은 상징적으로 악(惡)을 제거하기 위한 필요악(必要惡)의 기능을 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된다.

서기전6100년경 황궁씨가 천부삼인을 유인씨(有因氏)에게 전수(傳授)하였다. 유인씨는 황궁씨의 장자로서 황궁씨를 따라 마고성을 떠나 천산주(天山洲)에 자리잡은 사람들의 시조가 되는데, 마고성을 하늘이라 하면 마고성의 아래 지역은 땅나라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가 인류시조라 부르는 나반(那般)이, 한국(桓國)의 임금이던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삼신(三神)으로 모셔지는 인물로서 유인씨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천산(天山)의 동쪽에 해당하는 몽골, 만주 지역에 이루어진 문명은, 정착이 이루어진 시대인 황궁씨 한국(桓國) 시대의 말기로부터 유인씨(有因氏) 시대에 걸쳐 발전된 것이 되는데, 특히 요하문명권에 속하는 유적과 유물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마고성 시대 이후의 인류문명은 제족들의 종주(宗主)이던 황궁씨가 다스리던 한국(桓國)문명에 속하는 것이 되고, 세계 4대문명은 서기전7197년경의 사방분거시로부터 약1,000년에 지나는 시기로서 서기전6000년경부터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세계4대문명지역인 수메르 지역과 이집트 지역의 문명은 서기전5000년 이전에 시작된 것으로 발굴되고 있으며 그렇게 인식된지 오래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의 역사가 되는 요하문명이 서기전6200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연대가 밝혀지는 것은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다.

서기전7197년 갑자년에 시작된 황궁씨(黃穹氏)의 한국(桓國) 시대는 약1,100년이 지나는 서기전6100년경에 유인씨(有因氏)에게 전해져, 중기 한국(桓國) 시대로 접어든 것이 된다. 한국(桓國) 시대는 황궁씨, 유인씨, 한인씨(桓因氏)의 3 시대로 구분할 수 있는데, 모두 마고성(麻姑城) 시대의 낙원세상(樂園世上)을 지상에 실현시키는 방도로서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이었으며, 홍익인간 세상을 위해 공력(功力)을 쏟은 시대이고, 또한 홍익인간이 실현된 시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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