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의 진실~~~!>
태극기가 대한민국 공식 깃발이 된 지 올해로(2009년도) 꼭
60年이다.
태극기(太極旗)는 1949년 10월15일 문교부 고시 제2호에 의해
국기(國旗)로 제정됐다.
태극기가 처음 만들어진것은 조선 고종 19년인 1882년이었다.
그동안 태극기는 박 영효(朴 泳孝:1861~1939년)가 만든것으로
알려져왔다.
일본에 특명 전권대사 겸 수신사로 파견됐던 박 영효가
메이지마루(明治丸) 선상에서 그려 1882년 9월25일 일본 숙소에
게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새 자료와 연구가 잇따라 나와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태극기를 만든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
아긱도 베일에 가려져있다.
모른다가 정답일것이다.
그런데 태극기의 태극의 개념은 신시시대라고 하는 환웅시대의 천문역학자인 발귀리가 사용했다고한다.
우주만물은 원방각의 기하학과 무극 반극 태극으로 구성된다는 이론이다.
태극의 개념이 이미 정립되었던 것인데 그 천문역학이 바르게 전승되지 못하고...
아무튼 태극의 개념은 잃어버린 철학이고 천문학이되었고 완전히 기억에서 사라 진것이다.
그러다가 시라박혁거세설화에 금척이라는 설화가 등장하고 조선에와서는 이셩계의 몽금척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다가 또 사라진다.
또한 한반도의 역사문화에서 태극의 문양은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다가 1882년에 국기로 사용되기 시작하는 데...
1882년 5월 조미(朝美) 수호통상 조약을 체결 할 당시 조선은
국기가 없었다.
1882년 5월14일 미국 전권대사 슈펠트(Schufeldt) 제독은 조선
대표 신 헌(申 櫶)과 김 홍집(金 弘集)에게 조인식에 사용 할
국기를 제정하라고 요청했다.
김 홍집이 "국기를 만들라"고 명령한 사람은 역관 이 응준
(李 應俊:1832~ ?)이었다.
이 응준은 1882년 5월22일까지 미국 함정 스와타라(Swatara)
선상에서 국기를 만들었고 이 국기는 제물포에서 열린 조인식
에서 성조기와 나란히 게양됐다.
이 국기의 모습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확한 기록이 없었다.
그런데 2004년 1월 획기적인 자료가 발굴됐다.
태극과 4괘를 갖춘 "조선의 깃발"이 실린 미국 해군부 항해국의
문서 "해상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이
윤 형원 아트뱅크 대표에 의해 공개됐던 것이다.
지금과 비교할 때 4괘(卦)의 좌우가 바뀌고 태극 모양이 약간
달랐다.
세상을 놀라게 한것은 "1882년 7월19일"로 기록된 책의 출간
일자였다.
조미조약 체결 두달 뒤였고 "박 영효 태극기" 보다도 2개월
이상 앞섰던 것이다.
2008년 5월 열린 "국기 원형자료 분석 보고회"에서 김 원모
단국대 명예교수, 이 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한 철호 동국대
교수는 "이 태극기는 조미조약 체결 당시 걸렸던 '이 응준
태극기'가 분명하다"는데 동의했다.
이 응준은 1850년 나라에 경사가 있을때 보던 증광시(增廣試)
역과(譯科)에 2위로 합격한 뒤 역관이 됐다.
중국어를 할줄 알았던 그는 조미조약 때 영어를 아는 청나라
역관을 통해 미국과의 통역을 담당했다.
1889년 사신단의 일원으로 청나라에 갔던 이 응준은 귀국 즉시
체포돼 의금부에 수감됐다.
청나라 북양(北洋) 군벌의 실력자 원 세개(袁 世凱)가 "이 응준이
왕을 속이고 2만 금(金)을 가로챘다"고 했던 것이다.
벌을 받고 하루아침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세종 때 장 영실
처럼 이 응준도 그뒤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다.
논픽션 "태극기"를 쓴 박 충훈씨는 "우리 청룡기를 국기로 쓰라"는
권유를 무시당했던 청나라가 조선의 국기를 창안한 이 응준을
눈엣가시로 봤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박 영효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박 영효의 일기 "사화기략(使和記略)"은 그가 준비해 간 '태극
팔괘도(太極 八卦圖)'를 영국인 선장 제임스(James)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괘도(四卦圖)'로 고쳤다고 기록했다.
학자들은 이 기록에 대해 조미조약 당시 '이 응준의 깃발이 일본
국기와 혼동되니 팔괘도를 국기로 삼으라'고 했던 청나라 특사
마 건충(馬 建忠)의 건의를 자연스럽게 배제하기 위해 제임스를
끌어들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 영효는 이 응준의 태극기에서 괘의 左.右(좌.우)를 바꾼
태극기를 만들었고, 1883년 3월6일 조선의 국기로 공식 선포됐던
것이다.
'박 영효 태극기'가 이런 모양이었음은 지난해 발견된 1882년
11월1일 일본 외무성의 '요시다(吉田) 문서'가 뒷받침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