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적색(赤色)
복식은 인간의 심리와 욕구 즉, 감정과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그 시대의 가치관 및 생활 문화를 살펴볼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색채는 복식의 구성요소 중 가장 시각적 효과가 강하게 반응한다.
의복에 사용하는 다양한 색채 중 적색은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색이며,
전편에서 설명하였던 바와 같이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사상에서 양에 속하는 색으로 매우 중요시 되었다.
색을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나 기분을 연상시키는 것은 색채가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며,
또한 색채는 인간의 생리기관과 기능에 자극을 주기도 한다.
색채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흔히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색채에서 받는 인상은 색에 따라 다르며, 그에 따른 감정도 다양하다.
칼라사진이나 천연색 영화가 흑백영화보다 강력한 인상을 주며, 화사하게 느껴지는 것은 색이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색 중에서 특히 적색이 주는 느낌은 매우 강렬하다.
적색(赤色) 또는 홍색은 붉다는 개념으로 빨강색으로 알려진 색이다.
순수한 우리말로는 빨강으로,한자어로는 ‘赤’이라 하고 영어로는 ‘red’ 로 표기한다.
순수한 붉은색을 순홍색, 짙으면서도 다른 색이 섞이지 않았다는 뜻으로 진홍, 선홍이라고도 부른다.
적색은 3원색 중 노랑, 파랑보다 강한 자극성이 있으며,
24색상 중 순색이 빨강, 즉 적색이고, 노란색이 섞이면 주황으로 변하고, 파란색이 섞이면 보라색이 된다.
먼저 우리가 느끼는 적색의 이미지와 상징성을 살펴보도록 하자.
오방색(황, 백, 흑, 적, 청) 중에서 적색은 방위로는 남쪽, 계절로는 여름, 오행으로는 불을 상징한다.
적색은 태양과 생명을 의미하며, 따뜻하고 만물이 무성하고, 양기가 왕성함을 뜻 한다.
태양과 불, 그리고 피는 붉고, 밝고, 따뜻함, 생명의 근원을 뜻한다.
따라서 붉은색은 생명을 낳고 지키는 힘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붉은색은 신성, 신비, 두려움의 상징으로 여겨져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붉은색에는 천재지변과 액운, 악귀를 몰아내는 주술성이 있다고 여겨졌다.
적색은 강력한 자극을 주는 색으로 보는 사람에게 흥분감을 일으킨다.
적색은 인체기능의 촉진작용에 영향을 미치며, 맥박을 증진시키고 내분비작용을 왕성하게 한다.
또한 활동을 왕성하게하며, 이로 인하여 피로도가 높은 색이기도 하다. 또한 식욕을 돋우는 색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상징적인 색에는 민족적인 정서가 담겨있고 생활의 철학이 녹아있다.
적색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려한 장식성을 지니지만, 적색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를 통해
중국의 전통과 사회적 관습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에서 적색의 선호가 매우 특징적으로 나타난 예는 여러 가지 풍습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크게 벽사와 의례, 신분, 복락의 상징으로서 사용되었다.
전통적으로 적색이 벽사의 상징으로서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목적으로 옷과 장신구에 사용된 사례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적색이 지닌 질병의 치유와 예방 활동성,
악령으로부터의 보호 등의 이미지에 기인한 것으로 시대나 지역에 관계없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에서는 여성복이나 어린아이의 의복에서 특히 적색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홍색은 양의 색으로 여성에게 선호되었으며, 벽사의 색으로 귀신과 제악을 물리치는 색이라고 보았다.
또한 예로부터 장수를 누리기 위하여 루비나 산호 같은 적색 보석을 몸에 지니고 다녔으며,
어린아이들의 땋은 머리카락에 적색 천 조각을 매달아 주었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라고 생각된다.
중국인들은 적색이 나쁜 힘을 막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잡귀를 막아주는 부적이나 악귀를 막고
신년의 복을 받아들이는 벽사문에 붉은 색을 사용하였다. 적색이 길상의 우의로 정서적 불안감을
해소시키고 주술적인 능력에 의해 강한 염원이나 희구를 실현시키려 한 의지의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의례의 상징으로서도 적색을 사용하였는데 결혼식에서 특히 홍색계열을 많이 사용하였다.
중국에서 신부는 용을 수놓은 적색 옷을 입었고 신랑 가족의 이름이 적색으로 새겨진 초롱으로 꾸미고
붉은 장식을 한 결혼 가마에 탔으며 적색 양산을 썼다. 사람들은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붉은 폭죽을 터뜨렸으며
식이 진행되는 동안 신부와 신랑은 적색 끈으로 연결된 두 개의 잔으로 언약을 다짐하는 술을 마셨다.
복식에 보이는 색채이 시각적 효과는 오히려 복식의 형태보다 강렬하므로
색채는 신분계급의 구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했었다.
남성복에서는 황제나 황공 백관 복의 길복(吉服)이나 우복(雨服)에 적색이 사용되었는데
일반 남자복식에서는 적색의복의 사용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적색이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귀한 색으로 신분을 나타내며 사용되어
서민들에게는 동경의 색이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신분을 나타내는 적색에 대해서는 뒤에 각 시대에 나타난 적색복식에 대해 설명할 때 좀 더 자세히 보기로 하자.
적색은 중국에서 복을 받는 색, 행운의 색이라고 생각하여 복색(福色)이라고 부르는 적색 옷을 입었다.
복색은 심각생의 의복으로 용문과 오채의 운문 등 화려한 수를 놓은 옷으로 경사와 같은 특별한 날에 입었다.
서양의 크리스마스에 비견되는 중국의 설날에는 빨간 띠에 황금 글씨로 새해의 행운을 비는 경구를 써서 걸어놓는데,
적색이 가진 행운과 복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알 수 있다.
중국은 역사가 유구하고 한족과 다수의 이민족들이 상쟁하면서 세운 여러 나라들의 흥망성쇠가 번다하였기 때문에
복식문화 역시 그에 따라 매우 다양하였다. 그렇다면 각 시대별 복색 중 적색의 사용과 종류는 어떠했는지
전반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주나라(周 B.C 1100 ~ B.C 221) 시대를 보면「주례, 춘관」에서는 주대부터 시작하여 관복제도가
이미 완비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는데, 예복의 규정이 엄격하여 주대 황제의 면복은 모범이 되었다.
황제의 면관에서는 아래를 훈색(纁色)을 사용하였고 류(旒)는 면판 아래에 구슬을 꿰어 드리웠는데
그 색채는 적색을 포함한 다섯 가지였다.
여기서 훈색은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는 색으로 삼입염(三入染)으로 락일지색(落日之色)
즉, 해가 떨어질 때의 색이라 하여 황혼의 색으로 간주되었다. 「초사」의 사미인편이나 「설문」에는
훈은 담강(淡絳)이라 하고 후한의 「주역」에서는 훈이 황과 적을 겸한 색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후대에서는 강과 같은 색으로 되었다. 그리고 면복 착용 시 신은 적석을 신었는데 제후와 왕이 함께
사용하였으며 현, 백 중에서 가장 높은 우위였다.
또한 <단궁>에 주나라 사람은 붉은 빛을 숭상해서 초상 때 염하는 것은 해가 돋을 때 하고,
군대에서 붉은 말을 이용하며, 희생에는 붉은 소를 썼다고 한다.
한대(漢 B.C 202 ~ AD220)에는 음양오행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복식에 나타난 시기로
이때는 이미 색의 실용화 단계가 상당히 진척되었다. 한의 초기에는 흑과 적색을 숭상하였으나
무제 원봉(元封) 7년 5월에 이르러 황색이 숭상되었으며 건무(建武) 2년에는 수례의 기(旗)와
복장의 색을 제정하였는데 이때 다시 적색을 가장 존중하게 되었다.
「후한서」의 <여복지>에는 “깃과 수구에 강색의 선을 댄 것을 중의로 삼았는데,
이는 성심으로 신을 받듦을 나태난 것이다”라고 하여 중의의 적색의 선이 종교, 주술적으로 사용된 것을 표현하고 있다.
한대에는 주대에서 계승된 왕복 중 면복에 훈색이 그대로 사용되었고, 종교․주술적 의미를 가진 선의 색으로,
화려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심의의 색, 상의 색으로 사용되었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220-589) 시대의 적색은 비색, 강색, 훈색, 주색 등으로 다양화되기 시작하면서
남, 여 복식에 사용되어 신분, 계급, 여성의 미를 표현하였다.
위, 진에서 강색은 두복인 조건(皁巾)에 사용되었으며, 서민에게는 자, 강색을 금하였다.
한대 이후 자색이 귀한 색으로 유행하면서 강색이 자색 바로 다음으로 귀하게 여겨져 신분을 표현하는 색으로 사용되었다.
남조의 진(陳)의 일반문관은 주의(朱衣)를 조복으로 하였으며, 무관의 복색은 문관과 같았으나 무관(武冠), 적책(赤幘)만이 달랐다.
이 주의에 사용된 주색을 살펴보면 고대의 주(朱)는 정색으로 삼입염은 훈(纁)이고 사입염은 주라고 하였으며 심훈색(深纁色)이었다.
「예기」에도 적과 주를 천(淺)과 심(深)으로 비교하여 주는 적보다 짙은 색으로 나오고 있다.
북조의 후위는 한과 위의 예법에 따라 공경(公卿)은 상의는 현색으로 하의는 훈색을 착용하였다.
천자, 백관과 사서는 대부분 비포(緋包)를 입었는데 비(緋)는 적우작(赤羽雀)을 의미하는 비(翡)에서 나왔다.
그러나 위진 이후에 강과 혼용되어 사용된 적색으로 보인다.
수대(隋 581 ~ 618)복식은 한나라의 영향을 받았고 당나라(唐의 618 ~ 907) 복식에 영향을 주었으며
당의 복식은 실크로드를 통하여 서방 각국의 문화적 요소가 들어와 국제적인 문화를 이루면서
서역풍에 정교하고 화려해졌다.
수·당대 주로 예복으로 사용된 박수관포(博袖寬袍)는 황제에서 백관에 이르기까지 제복, 조복에 적용되었는데
적색의 비단을 사용하고 깃, 소매부리, 도련 등에 선을 붙였다. 특히 이 시대의 여자복식의 적색이 유행색으로
애용되어졌었다.
황후의 복식에서는 수대의 휘의에서 대수의 안으로, 당대의 휘의에서 상으로 적색이 사용되었으며
수대의 궐적은 비색의 라로 만들어졌다.
또한 궁녀들의 의복에서도 적색의 사용된 경우가 많아 이 시대의 화려하고 농염한 유행에
적색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대의 군으로는 심홍(深紅), 행황(杏黃), 강자(絳紫),
월청(月靑), 초록(草綠) 등이 있었는데 석류홍군이 가장 오래 유행하였다.
석류홍군은 예쁜 홍색으로 염색되어 있다는데서 나온 명칭으로 당대의 군은 색이 화려하고 재료는 정교하며 도안이 아름다웠다.
당대의 복식에서의 적색은 하려하고 다양화됐으며 석류색 등의 새로운 명칭이 나올 정도로 염색법도 정교해졌으며
오래 유행하여 귀족, 일반 여인들 모두에게 입혀진 아름다운 색이었다고 하겠다.
송대(宋 960 ~ 1279)의 복식은 당의 제도를 계승하여 큰 변화는 없었으나 호화로운 것을 싫어하고
검소함을 숭상했기 때문에 보수적이며 색채도 순수하고 자연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황제의 조복에서는 강렬한 색으로 나타나지만 그 외에는 적색이 화려하지 않게 수수하면서 부드럽게
다른 색과 배색하며 나타났다. 여자복식에서도 황후의 경우 이외에는 적색이 대부분 문양이 없이 단색으로 사용되어
다른 시대와 비교하여 볼 때 수수하고 검소한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요(遼 916 ~ 1125)·금(金 1115 ~ 1234)·원(元 1271 ~ 1368)의 복식을 살펴보면 요는 흉노족이 세운 나라로서
외관은 본래 그 민족 고유의 복제가 있었으나 한족의 복식을 채용하였다.
천자와 백관의 복식에는 적색이 없었으며 황후의 복식에만 홍포의 착용이 있었다.
금대복식은 기본이 여진복식으로 복식제도가 거란복식과 비슷하여 백색을 애호하였다.
적색은 황제의 조복에서 통천관과 강사포의 강색으로 사용되었고 백관의 공복에서는 자, 비, 록으로 자색 다음으로 사용되었다.
원대의 숭상색은 백색이었지만 황제, 황후, 백관, 일반 부녀자들의 복색으로 적색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특히 질손의(質孫衣)에서는 다양한 색명으로 나타났다. 천자의 질손의는 조복, 공복으로 착용되었다.
이 질손의에 보이는 색채명 중에는 대홍, 도홍, 홍황 등 적색의 종류가 많았으며 계절에 따라 구분하여 착용하였다.
백관의 공복은 라(羅)를 재료로 썼으며 6품 이상이 비색을 착용하였다. 원의 부녀복식은 대홍직금, 길구금을 많이 사용하였고
대홍, 홍색, 황색, 연지홍(臙脂紅), 차색(茶色) 등을 좋아하였다. 또한 홍색은 황후의 고고관에 사용되어
황후의 고귀한 신분과 존엄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명(明 1368 ~ 1644)은 건국 후 한족의 예의를 회복하고, 관복제도를 조정하였다.
명대의 적색은 호아색의 아래 등급이었고 자색보다는 우위였으며 진색들은 귀족계급에서 사용하고
일반인들은 옅게 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명대 황제 상복은 황색, 황태자의 상복은 적색, 황태자비는 황색을 제외한 색을 사용한 것을 미루어 볼 때
색의 등급은 황색 아래임을 알 수 있다. 황제의 상복 착용 시 홍색 중단을 착용하였는데
이는 음양오향사상에 의해 황색을 더욱 상생하기 위한 배색으로 적색이 사용된 것이라 하겠다.
백관의 공복에서는 비색, 청색, 녹색 순으로 비색이 귀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일반 부인의 포삼에는 자록, 도홍의 엷고 담담한 색을 사용할 수 있었고 대홍, 아청, 황색은 사용할 수 없었다.
청조(淸 1164 ~ 1910)는 만족과 한족이 300여 년간 함께 하면서 자연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게 되어
한족의 복식형태와 만족의 복식형태가 혼합된 형태를 이루었다.
복색을 살펴보면 조복의 색채는 황제만이 금황색을 사용할 수 있었고, 친왕과 군왕 이하는 모두 남색, 또는 석청색을 사용하였다.
색의 등급도 금황색, 자색, 남색, 석청색 순으로 적색은 제외되어 있다.
청대에는 적색이 숭상되어 사용되지는 않았으며 모자에서 결자의 색으로 나타나고
홍색 융 매듭모자는 다만 황제와 태자만이 쓸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중국복식에서 적색은 거의 모든 시대에서 숭상되는 색으로 귀하게 여기는 색이었으며
대부분의 복식에서 나타났다. 특히 명대 이전에 황제와 황후의 복식에서는 훈색과 강색이
위엄과 예를 나타내는 색으로, 관복에서는 비색이 계급을 표시하는 색으로,
사회 권력과 정신력을 표현하는 동시에 상층계급을 지칭하는 색채였으며
귀족부녀의 복식에서는 여성적이고 화려함을 표현하는 색으로 일반서민들에게는
동경의 색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적색계에서도 색명을 달리하여 의미를 다르게 부여하거나
그 농담의 차이나 밝기의 차이로 색명을 달리해 구분함으로써 사용처를 달리한 것은
적색에 대해 여러 면에서 비중을 크게 두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나라와 민족, 사회에서 애용되었던 색은 그 나라 민족의 시대정신과 사회사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색은 근현대 사회로 진입하면서 공산주의의 정치적 상징이 되었다.
중국에서의 적색은 국가의 상징인 국기, 오성홍기(五星紅旗)로도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홍색 바탕에 다섯 개의 황색별이 그려져 있는 오성홍기에서 홍색은 혁명을, 황색은 광명을 상징한다.
이처럼 현대의 중국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국기에 적색과 황색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중국 전통 색채관이
면면히 이어져 오는 영향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적색이 가지는 상징성과 의미를 알아보았으며, 이를 초점으로 중국의 각 시대와 민족성 등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적색이라는 색채를 통해 독자들의 중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류근종. 미술학박사, 서울종합예술학교 패션예술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