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지(징심록) 저자 박제상은
박혁거세의 9세손, 지마이사금의 고손자이다
▶계보도
1세-박혁거세
2세-남해차차웅
3세-유리이사금
4세-파사이사금
5세-지마이사금
6세-이칠갈문왕
7세-아도갈문왕
8세-파진찬물품
9세-박제상(영해박씨 시조)
출처: http://www.jogbo.kr/genealogy.htm
▶《삼국사기》 열전의 박제상전에 따르면, 그는 박혁거세의 후손이자 파사(婆娑)이사금의 5세손이며, 파진찬 물품(勿品)의 아들이라고
영해박씨(寧海朴氏)의 시조 박제상(朴堤上)은 신라 5대 파사왕의 후손이다. 눌지왕 때의 이름난 충신인 그는 박혁거세의 9세손인 갈문왕의 손자다.
따라서 영해박씨는 신라박씨에서 분관된 성씨다.
http://blog.daum.net/12501436/12830687
▶박제상은 시조 혁거세의 후손이고, 파사 이사금의 5대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阿道) 갈문왕이고, 아버지는 물품(勿品) 파진찬이다.
http://weekly.hankooki.com/lpage/nation/200511/wk2005110810150637070.htm
▶이칠 갈문왕(伊柒葛文王)-신라 박씨 선원세계상 박혁거세의 6세손
아들 박아도(朴阿道)도 사후 갈문왕에 추봉
손자 : 박물품(朴勿品, 파진찬 역임, 박씨 8세손)
증손 : 박제상(영해 박씨의 시조)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C%B9%A0_%EA%B0%88%EB%AC%B8%EC%99%95
▶밀양박씨와 고령박씨
밀양박씨(시조 박혁거세 30세손 밀성대군 박언침)와 고령박씨(시조 박혁거세 30세손 고양대군 박언성)
*신라의 54대 경명왕은 왜 박씨인가?
⊙ 박혁거세 탄생신화
◦기원전 69년 여섯 촌장들이 아들을 데리고 알천의 언덕 위에 모여서 백성을 다스릴 임금을 뽑기 위한 논의를 하던중 남쪽 방향의 양산 아래 있는 나정이라는 우물가에서 오색영롱한 빛이 비치고 백마 한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한다. 이들이 그곳에 가보니 박같은 알이 있어 이를 깨어 보니, 잘생긴 사내아기가 나왔다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연유로 그아이를 혁거세라 이름 지었고, 박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을 박씨라 하였다. 그가 곧 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이다.
◦같은 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정이라는 우물에서는 용이 나타났는데, 왼쪽 갈비에서 어린 여자 아이가 나왔다 한다. 이 아이는 얼굴과 입술은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를 닮아 보기가 흉해서, 월성 북쪽에 있는 냇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나온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알영(閼英)이라 이름지었다.
◦기원전 57년 이 두 아이가 13세가 되자 박혁거세는 왕이 되었고, 알영을 왕비로 맞아들였으며, 나라의 이름을 서라벌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신라 왕실의 56대 왕은 박, 석(昔), 김의 3성이 돌아가며 하였는데, 그중 박씨 성을 가진 왕은 시조인 박혁거세를 포함하여 모두 10명이다.
◦박씨는 녀러 본관 중 단 1본도 외래 귀화족이 없으며, 모든 박씨는 박혁거세를 유일한 시조로 받들고 있다. 박씨끼리의 혼인을 피하는 이유도 이러한 까닭이다.
◦박씨는 박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왕(신라 5대왕)과 일성왕(신라 7대왕)에서 갈라 졌으며, 일성왕계는 그의 26세손인 경명왕(신라 54대왕)과 경애왕(신라 55대왕)대에서 다시 갈라졌다.
◦특히 경명왕계는 아들 9형제에서...
1.첫째 아들 박언침의 밀성대군파 - 밀양박씨, 반남박씨, 진원박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2.둘째 박언성의 고양대군파 - 고령박씨
3.셋째 박언신의 속함대군파 - 함양, 삼척
4.넷째 박언립의 죽성대군파 - 죽산, 음성, 고성,
5.다섯째 박언창의 사벌대군파 - 상주, 충주
6.여섯째 박언화의 완산대군파 - 전주, 무안
7.일곱째 박언지의 강남대군파 - 순천, 춘천
8.여덟째 박언의의 월성대군파 - 경주박씨의 8대군파
9.아홉째 박교순의 국상공파 - 울산박씨로 분파되었다.
◦한편 경애왕계는 계림대군파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