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도요(陶堯)의 반란
이때에 도요(陶堯)가 천산의 남쪽에서 일어나니
일차로 마고성을 나간 족속들의 후예였다.
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였으며
서보(西堡)의 우두머리에게서 도를 들었다.
그러나 본바탕이 수(數)에 부지런하지 못하니
스스로 9수5중(九數五中)의 이치를 잘못 알았다.
5를 가운데로 하고 8수를 바깥으로 삼는 것을
하나로서 여덟을 제어하고
안으로서 밖을 제어하는 이치로 오해하였다.
스스로 오행(五行)의 법을 만들고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등이 심히 꾸짖으며 절교하였다.
마침내 요(堯)가 관문을 나가서 무리를 모아
묘예(苗裔)를 몰아내니 묘예(苗裔)는 황궁씨의 후손이며
그 땅은 유인씨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씨가 여러 사람을 데리고
부도(符都)를 나가고 없으므로 요(堯)가 그 틈을 타서 기습하니
끝내 묘예(苗裔)는 동서북 세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마침내 요가 땅을 9주로 나누고 나라를 칭하였다.
스스로 가운데 거하면서 황제라 하고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符都)와 대립하였다.
이때에 거북이 등의 부문(負文)과
명영(蓂英)의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여겼다.
이로 인하여 새로 역(曆)을 만들고
천부(天符)의 이치와 부도(符都)의 역을 버리니
이것이 인간세상의 두 번째 큰 변고였다.
[원문]
是時 陶堯起於天山之南 一次出城族之裔也 曾來往於祭市之會 聞道於西堡之干
시시 도요기어천산지남 일차출성족지예야 증래왕어제시지회 문도어서보지간
然 素不勤數 自誤九數五中之理 以爲中五外八者 以一於八 以內制外之理 自作
연 소불근수 자오구수오중지리 이위중오외팔자 이일어팔 이내제외지리 자작
五行之法 主唱帝王之道 巢夫許由等 甚責以絶之 堯乃出關聚徒 驅逐苗裔 苗裔
오행지법 주창제왕지도 소부허유등 심책이절지 요내출관취도 구축묘예 묘예
者 黃穹氏之遺裔 其地 有因氏之鄕也 後代壬儉氏 率諸人出於符都而不在故 堯
자 황궁씨지유예 기지 유인씨지향야 후대임검씨 솔제인출어부도이부재고 요
乘其虛而襲之 苗裔 遂散去東西北之三方 堯乃劃地九州而稱國 自居五中而稱帝
승기허이습지 묘예 수산거동서북지삼방 요내획지구주이칭국 자거오중이칭제
建唐都 對立符都 時見龜背之負文 蓂英之開落 以爲神啓 因之以作曆 廢天符之
건당도 대립부도 시견구배지부문 명영지개락 이위신계 인지이작역 폐천부지
理 棄符都之曆 此 人世二次之大變
리 기부도지역 차 인세이차지대변
[해설]
1. 도요(陶堯)
도요(陶堯)는 중국 신화속의 명군으로 알려진 요임금을 말하며, 중화민족의 실질적인 시조로 꼽히는 인물이다. 순임금과 더불어 평화롭게 임금자리를 물려주면서 요순시절의 태평성대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부도지에서는 요(堯)가 사해평등 민족자치의 부도(符都)를 배반하고 천하를 멋대로 나누어 나라를 만들고 패권을 추구하였으며, 잘못된 진리와 역을 만들어 세상을 끊임없는 전쟁속으로 몰아넣어 인류평화를 깨뜨린 천추만대의 역적이라고 하였다. 또 요임금과 순임금의 제위교체도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아니라 미인계와 배신 그리고 가족간의 처절한 골육상쟁을 통하여 이루어진 비극적인 것이었다.(부도지 제18장, 19장 참조)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역사는 중화민족의 엄청난 역사왜곡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땅의 경계가 없었으며, 세상 어디로든지 왕래가 자유로웠다.‘오미의 화’를 일으키고 1차로 마고성을 나간 원주민들과 2차로 마고성을 나온 이주민들이 세계도처에서 섞여 살면서 서로 융화하기도 하고 배척하기도 하였다.
단군임검은 끊임없이 각 족속들을 방문하고 또 제시(祭市)의 모임을 통하여 인류가 한가족임을 깨닫고, 말과 글을 통일시켜 서로 소통하게 함으로써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堯)는 1차로 마고성을 나간 원주민들의 지도자였으며, 단군조선의 제시(祭市)에 참여하고, 서보(西堡)의 우두머리에게 도(道)를 배우는 등 처음에는 단군조선의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이상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결국 원주민들을 규합하여 중화제일주의(中華第一主義)와 제왕지도(帝王之道)의 패권을 추구함으로써 부도(符都)와 대립하고, 민족들이 나라를 칭하고 땅을 나누고 서로 다투는 처절한 전쟁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다.
2. 천산지남(天山之南)
중국고지도들을 찾아보면 천산(天山)이 3곳으로 나타난다. 아래 최신중화형세일람도에 파란색 원으로 표시한 곳이다. 왼쪽은 지금의 천산산맥(天山山脈)이며, 가운데는 기련산맥(祈連山脈)으로 <대청광여도(大淸廣輿圖 1785년, 향고도/중국고지도 참조>등에 천산(天山)으로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은 천산산맥이 동으로 뻗어 가다 사막 아래로 잠시 몸을 숨긴 후 다시 솟아오른 산맥으로 음산산맥(陰山山脈)이다. <청국지지(淸國地志)/연혁도/삼국정치도(三國鼎峙圖), 향고도/중국고지도 참조>등에 천산(天山)으로 나온다. 도요(陶堯)가 반란을 일으킨 천산남쪽은 오른쪽 천산의 남쪽으로 섬서성 일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신중화형세일람도(最新中華形勢一覽圖 1935년작)
지도의 3곳 천산은 모두 우리 민족의 이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들이며, 황궁씨와 유인씨와 환인씨의 중요 근거지로 여겨진다. 왼쪽의 천산은 황궁씨가 파미르 고원의 마고성에서 나와서 자리잡은 지역이다. 이곳에서 일부는 유럽쪽으로 이동하고 일부는 중간의 천산으로 이동하게 된다. 중간의 천산은 우리의 고대사에서 언급되는 삼위산(三危山)과 돈황(敦煌) 일대이다. 이곳은 유인씨가 자리잡은 곳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또 이동하면 지형상 대략 4갈래 길이 있다. 한갈래는 황하를 끼고 북상하는 하란산(賀蘭山)을 따라 이동하면 바로 오른쪽 천산에 도달하게 된다. 이곳은 환인(桓因)의 근거지로 생각된다. 두 번째 갈래는 위수(渭水)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하면 바로 섬서성 장안에 이르게 된다. 세 번째 갈래는 한수(漢水)를 타고 한중(漢中)으로 들어가는 길로 아래 지도에서 큰 검은 원으로 표시한 지역이다. 이곳은 한족(漢族)의 중심지였다. 네 번째 갈래는 환수(桓水)를 타고 남하하면 바로 촉(蜀)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양자강을 타고 동쪽으로 이동하면 동정호와(洞庭湖) 파양호(波陽湖)가 나온다. 동정호와 파양호 사이는 황궁씨의 후예인 묘족(苗族)의 큰 근거지였다.
또 오른쪽 천산에서 황하를 타고 남하하면 장안에 이르고, 음산산맥을 타고 동으로 이동하면 부도(符都)와 만주 및 한반도에 이르며, 북상하면 바이칼호 주변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경로를 통하여 각 민족들이 대륙전체에 퍼져서 뒤섞여 살면서 때로는 뭉치기도 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였을 것이다.<Baidu百科 燧人氏 참조>
3. 제시(祭市)
단군임검이 세계 각 족속들을 교화하기 위한 모임으로 신시(神市), 조시(朝市), 해시(海市)를 말한다. 신시는 부도(위 지도의 붉은색 사각형)에서 10년마다 1번씩 열렸으며, 조시(중국 장안의 붉은 점)와 해시(발해주변의 8곳 붉은 점)는 매년 10월에 열렸다.<부도지 14장, 15장 참조>
4. 서보지간(西堡之干)
부도의 서쪽 보단(堡壇)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를 말한다. 부도는 마고성을 본떠서 만들었으며, 중앙의 천부단(天符壇)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사방 천 여리의 거리에 동보(東堡), 서보(西堡), 남보(南堡), 북보(北堡)를 두어 동서남북을 다스렸다. 동보는 청궁씨족, 서보는 백소씨족, 남보는 흑소씨족, 북보는 황궁씨족이 맡은 것으로 보인다.
5. 오행(五行)
오행은 물질의 근본원소를 물(水) 불(火) 쇠(金) 나무(木) 흙(土)의 5가지로 보고, 이 다섯가지 물질이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을 통하여 만물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도지는 기화수토(氣火水土)의 네가지 물질이 만물을 낳는다고 하였다. 기화수토(氣火水土)설과 오행(五行)설의 가장 큰 차이는 기화수토설은 기화수토가 평등한 값어치를 가지므로 만물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오행설은 흙(土)이 가운데 있으면서 사방의 물(水) 불(火) 쇠(金) 나무(木)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평등하지 않으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단군임검이 사해평등(四海平等)과 민족자치(民族自治)를 추구한 반면, 요임금은 중화주의(中華主義)와 제왕지도(帝王之道)를 추구하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6. 제왕지도(帝王之道)
단군임검의 사해평등(四海平等)과 민족자치(民族自治) 철학에 따라 그 당시 세상은 나라도 국경도 없었으며 신시(神市)와 조시(朝市)와 해시(海市)의 모임을 통하여 각 민족이 한 핏줄임을 깨닫고, 말과 글을 통일하고, 각종 교역제도를 통일하여 각 민족들이 서로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요(堯)가 오행설을 내세우며, 멋대로 천하를 9개주로 나누었다. 그리고 자신이 제왕이 되어 중앙에 거하면서, 주위의 8개주에 각각 제후를 세우고 천하를 다스리려 하였다. 이것이 제왕지도(帝王之道)다. 그리하여 요(堯)는 천하를 돌아다니며 권력욕을 가진 사람들을 부추기고, 전쟁을 일으키며 민족간에 갈등을 부채질하여 사욕을 채우려 하였다. 그러다가 끝내는 감옥에 갇혀 죽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부도지 제19장)
중국의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書經)을 보면 요전(堯典) 1장과 2장에서 요임금이 대동세계(大同世界)를 구현하였다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극구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요임금의 정치체제인 오복(五服)을 보면 엄청난 역사왜곡임을 알 수 있다. 아래의 요제오복도(堯制五服圖)와 같이 오복(五服)은 왕성(王城)을 중심으로 각각 사방 오백리씩 전복(甸服), 후복(侯服), 수복(綏服), 요복(要服), 황복(荒服)으로 나누었다.(禹貢 101장~105장, 작성자 법고창신 참조)
전복(甸服)은 제왕의 직할지이며, 후복(侯服)은 제후의 나라이며, 수복(綏服)은 문무로써 적절히 다스리고, 왕성에서 사방 이천리 이상 떨어진 요복(要服)부터는 아예 오랑캐의 나라로 천시하였다. 요임금의 대동세계의 정체가 고작 사방 이천리에도 못미치는 편협한 중화제일주의(中華第一主義)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반면 단군임검은 전 세계의 모든 민족을 평등하게 생각하고,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다.(부도지 제12장~26장)
요제오복도(堯制五服圖) 우필오복도(禹弼五服圖)
7.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한서(漢書) 포선전> <진서(晉書)> <장자의 소요유편(逍遙遊篇)> 등에 따르면 소부(巢父)와 허유(許由)는 요임금 당시 중국 하남성 등봉현 동남쪽에 있는 기산(箕山)에 은둔하던 현인(賢人)들로 전해지고 있다. 요임금이 허유의 명성을 듣고 그에게 천하(天下)를 맡기려고 하자, 허유는 사양한 뒤 기산(箕山)으로 피해버렸다. 요임금이 다시 그를 찾아가 구주(九州)라도 맡아 달라고 청하지만 허유(許由)는 "구질구질한 말을 들어 귀가 더러워졌다"며 기산(箕山)곁을 흐르는 영수(潁水)의 물에 귀를 씻었다. 이때 친구인 소부(巢父)가 소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왔다가 그 말을 듣고는 “더러운 말을 듣고 귀를 씻었으니, 이 물 또한 더럽혀졌을 것이다. 그런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하면서 소를 몰고 영수(潁水)의 상류로 올라가서 소에게 물을 먹였다는 것이다. 굳은 절개를 나타내는 기산지절(箕山之節)로 유명한 고사이다.
이 고사는 주로 요임금이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두루 현인(賢人)들을 찾아 왕위를 물려주려 한 성군(聖君)이라는 점을 나타냄과 동시에 소부와 허유 등의 현인들이 부귀와 명예를 초개와 같이 여겼다는 뜻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부도지의 내용을 보면 요(堯)가 오행설을 주창하고, 여러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부도를 배반하고 천하의 땅을 나누어 다스리자고 부추기며, 소부(巢夫)와 허유(許由)에게도 이러한 제안을 하였다가 심한 질책과 절교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위 고사를 한 꺼풀만 벗겨보면 요(堯)의 제안이 얼마나 황당하고 역겨웠으면 귀가 더러워졌다고 귀를 씻으며, 그 귀를 씻은 물조차 더럽다고 소에게도 먹이지 않았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중국측 주장대로 요(堯)가 성군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8. 묘예(苗裔)
부도지는 묘예(苗裔)가 황궁씨의 후예임을 증언하고 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치우천황이 배달나라 제14세 자오지 환웅이라 하며, 묘족의 역사에 의하면 묘족의 시조가 치우천황이라고 한다. 부도지와 환단고기의 증언이 일치하며, 묘예(苗裔)가 우리민족의 한 갈래임을 알 수 있다.
<구당서 동이전> <당서동이전> <삼국유사> 등에도 "신라변한지묘예야(新羅弁韓之苗裔也)" "신라변한묘예야(新羅弁韓苗裔也)" "변한묘예(弁韓苗裔)" 등의 구절이 있어 부도지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우리의 상고사를 알려면 묘족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서경(書經)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의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당시에 묘족(苗族)의 주요 근거지는 청해성의 삼위산, 섬서성의 장안일대, 양자강 중류의 동정호와 파양호 일대로 나타나고 있으며, 중화족과 묘족이 끊임없이 다투었음을 알 수 있다.(禹貢78章, 夏書 제2편 甘誓, 舜典12章 참조)
현재 묘족(苗族)은 귀주(貴州) 호남(湖南), 사천(四川), 운남(雲南) 등 중국 남부의 여러 성(省)과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언어, 의복, 기타 풍습의 차이로 구별되는 70~80개가량의 각기 다른 집단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 말에 중국 정부는 먀오족이 390만 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9. 요내획지구주이칭국(堯乃劃地九州而稱國)
요(堯)는 단군임검의 사해일가, 민족자치의 부도(符都)를 배반하고 멋대로 천하를 9개주로 나누었다. 요임금이 나눈 9주는 기주(冀州), 곤주(袞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형주(荊州),양주(揚州), 예주(豫州), 양주(梁州), 옹주(雍州)다. 후에 순임금이 여기에 기주(冀州)와 청주(靑州)가 너무 넓다고 쪼개어 유주(幽州), 병주(幷州), 영주(營州)의 3주를 신설하여 12주를 두었다가 우임금 시절에 다시 본래의 9주로 되돌린다.<우서(虞書) 제2편 순전(舜典) 9장, 작성자 법고창신 참조>
아래의 우공구주산천지도(禹貢九州山川之圖 1185년작, 다음카페 향고도/중국고지도 참조)는 우임금의 9주로 요임금이 나눈 9주와 동일하다.
위에서 요제오복도(堯制五服圖)에서도 보았듯이 당시 요(堯)의 세력권은 고작 사방 천리에도 못 미치는 땅이었다. 그런데 멋대로 천하를 9주로 나누고, 허수아비 천자노릇을 하면서 사람들의 욕심을 충동질하여 마침내는 나라를 세우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서로 뺏고 빼앗기는 처절한 전쟁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부도지 제25장 참조)
우공구주산천지도(禹貢九州山川之圖 1185년작)
10. 당도(唐都)
요(堯)가 부도(符都)에 대항하여 세운 도읍지를 당(唐) 지방에 세웠으므로 당도(唐都)라 하였다. 현재 역사가들은 당도(唐都)의 위치를 산서성 임분현(臨汾縣) 평양으로 보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이곳에 요의 묘당을 엄청난 크기로 세워 놓았다.(아래지도 파란색 원)
그러나 현재의 당도(唐都) 위치에 대하여 많은 의구심이 든다.
첫째, 요가 주장한 오행설은 천하를 9주로 나누고 제왕이 중앙에 거하면서 사방 여덟 주를 다스리는 것이다. 위 우공구주도에서 보듯이 중앙은 예주(豫州)로 황하 이남이다. 그런데 산서성 평양은 황하 이북으로 기주(冀州)에 속한다. 그러므로 요(堯)가 오행설을 주장하며 천하를 9주로 나눈 사실과 부합하려면 당도(唐都)는 중앙인 예주(豫州)에 있어야 한다.
둘째, 요(堯)를 도당(陶唐)씨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요가 처음 도(陶) 땅에 봉해졌다가 나중에 나라를 당(唐)에 세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래의 우공구주도(禹貢九州圖, 다음카페 향고도/청국지지/연혁도 참조)를 보면 예주(豫州)에 도구(陶丘)와 당(唐)의 지명이 모두 보인다. 또 <제왕세기>등에 따르면 요(堯)의 탄생지는 단릉(丹陵)이라고 하는데, 단릉은 요(堯)의 맏아들인 단주(丹朱)가 제후로 봉해진 땅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도에서 당(唐, 아래 붉은 원)의 왼쪽에 검은 삼각형으로 표시한 지역이다. 이처럼 요의 탄생지와 맏아들 단주(丹朱)의 봉해진 땅과 요가 제후로 봉해졌던 도구(陶丘)와 당(唐)이라는 지명이 모두 9주의 중앙인 예주(豫州)에 모두 있다. 그리고 요임금과 순임금의 뒤를 이은 하나라의 도읍지가 당(唐) 오른쪽에 도산씨국(塗山氏國, 검은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요가 세운 당도(唐都)는 예주(豫州)의 당(唐) 지방이 유력하다고 본다. 현재 요의 도읍지로 추정하고 있는 기주(冀州)의 당(唐, 청색원)은 그들이 말하는 중앙도 아니며, 맏아들의 봉지(封地)와도 너무 멀며, 뒤를 이은 하나라의 도읍지와도 너무 멀다. 다만 일시적으로 요(堯)가 점령한 적이 있었거나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유폐되었다가 옥중에서 죽었다고 하는데(부도지 제19장) 그 곳이 아닐까 추정한다.
당도(唐都)의 위치는 상고사를 밝히는데 아주 중요하므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청국지지(淸國地志 1882년작)/연혁도/우공구주도
11. 구배지부문(龜背之負文)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글로 낙서(洛書)를 말한다. 지금까지 하도(河圖)는 하늘의 이치를 나타내고, 낙서(洛書)는 땅의 이치를 나타낸다고 알려져 왔다. 그리하여 하도와 낙서는 동양의 모든 철학사상의 근원이 되어왔다.
그러나 부도지는 전혀 새로운 사실을 전하고 있다. 부도(符都)의 진리는 하도(河圖)이며, 낙서(洛書)는 요(堯)가 사사로운 욕심으로 제왕이 되기 위하여 오행설(五行設)을 만들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신의 계시를 빙자한 거짓이라는 것이다.(부도지 제22장 참조)
참으로 엄청난 증언이 아닐 수 없다. 중화족의 모든 철학사상을 뿌리채 흔들어 버리는 증언이며,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려는 온갖 논리들을 한 칼에 날려버리는 충격적인 증언이다. 대륙의 상고사를 주름잡던 핵심세력이 아니면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엄청난 증언이다.
하도(河圖) 낙서(洛書)
하도(河圖)의 가장 큰 특징은 음양(흰 원은 陽, 검은 원은 陰)의 조화에 있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동서남북과 중앙이 모두 음양으로 고루 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낙서(洛書)는 중앙의 10수가 사라지고 5만 남아 있으며, 또 동서남북에도 양수가 정방향에 위치하고 음수는 각 모서리에 위치하여 양(陽)이 음(陰)을 통제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하도(河圖)는 중앙의 10수가 5를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 10수는 바로 동서남북(10=1+2+3+4)을 모두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낙서(洛書)는 중앙 5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사방팔방을 다스리는 형상이다.
그러므로 하도(河圖)는 음양이 평등하고 남녀가 평등하고 만인이 평등하고 만물이 평등함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중앙 10수가 의미하듯이 동서남북의 모든 민족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한 사상이 구현된 것이 부도의 신시(神市)와 조시(朝市)와 해시(海市)이며 이러한 활발한 소통을 통하여 세계일가(世界一家)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민족이 대대로 이어온 화백제도(和白制度)와 홍익인간의 인내천(人乃天)과 민족자치, 지방자치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낙서(洛書)는 양(陽)이 강력히 음(陰)을 통제함으로써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고, 강자가 약자를 다스리는 약육강식의 세상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중앙의 10수가 사라짐으로써 중앙 5가 사방팔방을 통제하므로 오직 중앙의 중화민족이 제일이며 나머지 동서남북은 모두 오랑캐로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 칭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살펴본 요제오복도(堯制五服圖)이다. 낙서는 필연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제도를 상징하며, 천리(天理)에 어긋나게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거짓된 논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여론을 통제하고 소통을 차단해야 하므로 나라를 만들고 자유로운 왕래를 막은 것이다.
이처럼 하도(河圖)는 하늘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며 낙서(洛書)는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거짓 이치인 것이다. 전혀 별개로 대립되던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BC 2세기 무렵부터 하도는 하늘의 이치를 나타내고, 낙서는 땅의 이치를 나타낸다고 그릇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다음 백과사전>에는 하도와 낙서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하도는 복희씨(伏羲氏) 때 황허 강[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그려져 있었다는 그림이고, 낙서는 우(禹)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쓰여져 있었다는 글이다. 복희는 하도에 의해 팔괘(八卦)를 그렸고, 우는 낙서에 의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각각 별개로 취급되던 하도와 낙서가 병기된 것은 〈사기 史記〉공자세가(孔子世家)와 〈회남자 淮南子〉숙진훈(?眞訓)이며, 거기에는 하도낙서가 태평치세에 나타나는 상서(祥瑞)로 설명된다. 그후 송대에 이르러 소옹(邵雍)은 그의 상수학에 의해 하도와 낙서의 도형화(圖形化)를 시도했다. 그에 의하면 하도는 기수(奇數)를 양점(陽點)으로, 우수(偶數)를 음점(陰點)으로 해서 1~10의 모두 55점을 사방과 중앙에 배치한 도상(圖象)이다. 즉 북방에는 1점과 6점, 남방에는 2점과 7점, 동방에는 3점과 8점, 서방에는 4점과 9점, 그리고 중앙에 5점과 10점을 이중으로 배치했다. 이 가운데 1~5를 생수(生數)라고 했으며, 6~10을 성수(成數)라고 했다. 낙서는 기수인 1점을 남방에, 3점을 동방에, 5점을 중앙에, 7점을 서방에, 9점을 북방에 배치하고, 우수인 2점은 서북방에, 4점은 동북방에, 6점은 서남방에, 8점은 동남방에 배치했다.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인 권근(權近)은 그가 지은 〈입학도설 入學圖說〉의 하도오행상생지도(河圖五行相生之圖)와 낙서오행상극지도(洛書五行相剋之圖)에서 소옹이 그린 하도와 낙서는 각각 오행의 상생과 오행의 상극을 도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2. 명영(蓂英)
명협(蓂莢)을 말하는 것으로 중국 요임금 때 났었다는 전설상의 상서로운 풀이다.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하루에 한 잎씩 났다가, 열엿새부터 그믐까지 하루에 한 잎씩 떨어지고, 작은달에는 마지막 한 잎이 시들기만 하고 떨어지지 않았다 하여, 달력 풀 또는 책력 풀이라고도 하였다.
13. 천부지리(天符之理)
천부(天符)의 이치는 하도(河圖)이며, 이것이 구체화 된 것이 복희8괘(伏羲八卦)와 천부경(天符經)과 부도역(符都曆) 등이다.
14. 인세이차지대변(人世二次之大變)
요(堯)가 땅을 나누어 나라를 만들고, 낙서(洛書)와 명영(蓂英)으로 거짓된 역(曆)을 만든 것이 인간세상의 두 번째 큰 변고라는 말이다.
인간세상의 첫 번째 큰 변고는 부도지 제5장~8장에 나오는‘오미(五味)의 화’다. ‘오미의 화’는 인간이 다른 생명을 강제로 먹는 것으로 비롯되었다. 이로 인하여 사람이 하늘 성품을 잃어버리고 타락하게 된 것이다. ‘오미의 화’가 사람이 만물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면, 인간 세상의 두 번째 큰 변고는 바로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늘의 이치는 만인이 평등한데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니 끊임없이 거짓 논리를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거짓 논리가 바로 오행설(五行說)이며, 낙서(洛書)이며, 나라를 나누어 소통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은 본래 불평등하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뼈에 등급이 매겨졌던 신라의 골품제도나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놈제도처럼 지나고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정당화 되는 것이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라는 참으로 이상한 논리다. 자본주의는 돈이 주인이라는 것이다. 돈이 주인이므로 돈을 가진 사람이 주인이 되고 돈이 없는 사람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돈이 어찌 사람의 주인이 될 수 있으랴! 인간존중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인류평등 세계일가의 꿈을 이룩해야 하지 않겠는가? -끝-
제18장. 유순(有舜)의 배반
이때에 임검씨가 크게 근심하여 유인씨의 후손인
유호씨 부자에게 환부(鰥夫)와 권사(權士) 등
100여명을 거느리고 요(堯)에게 가도록 하였다.
요가 환영하며 공손하게 명을 받들고
하빈(河濱)에 머무르게 하였다.
유호씨는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거처를 여러 번 옮겼다.
예전에 유호씨가 부도(符都)에 있을 때 오미(五味)를 먹지 않고
칡만 먹었으며 키가 열자나 되고 눈에는 광채가 번쩍였다.
임검씨보다 백여 세가 많았으며 조상들의 일을 이어받아
임검씨를 도와서 도를 행하며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에 이르러 사신으로 욕심에 빠진 세상을 제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때에 요(堯)가 유호씨의 아들 유순(有舜)의
사람됨을 보고 다른 뜻을 품었다.
일을 맡기고 협력하는 척 하면서 두 딸로 유혹하니
순(舜)이 마침내 홀리고 말았다.
유순은 부도에 있을 때 환부(鰥夫)로서 법을 집행하면서
넘치거나 모자라서 절도가 없었다.
이때에 이르러 요(堯)의 꾐에 빠져
그의 두 딸과 몰래 결혼하고 은밀히 협조하게 되었다.
[원문]
於時 壬儉氏 甚憂之 使有因氏之孫 有戶氏父子 率鰥夫權士等百餘人 往而堯之
어시 임검씨 심우지 사유인씨지손 유호씨부자 솔환부권사등백여인 왕이요지
堯迎之而服命恭順 使居於河濱 有戶氏 ?觀其狀 自爲敎人 數移其居 先時有戶
요영지이복명공순 사거어하빈 유호씨 묵관기상 자위교인 수이기거 선시유호
氏在於符都 採葛而不食五味 身長十尺 眼生火光 年長於壬儉氏 百餘歲 承父祖
씨재어부도 채갈이불식오미 신장십척 안생화광 년장어임검씨 백여세 승부조
之業 助壬儉氏而行道敎人 至是爲使 濟度頑迷之世 其行艱難 時 堯見有戶氏之
지업 조임검씨이행도교인 지시위사 제도완미지세 기행간난 시 요견유호씨지
子 有舜之爲人 心中異圖 任事以示協 以其二女 誘之 舜乃迷惑 有舜 曾爲符都
자 유순지위인 심중이도 임사이시협 이기이녀 유지 순내미혹 유순 증위부도
執法之鰥夫 過不及而無節 至時 爲堯之所迷 密娶其二女 暗附協助
집법지환부 과불급이무절 지시 위요지소미 밀취기이녀 암부협조
[해설]
1. 유호씨(有戶氏)
유호씨는 요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으러 간 단군임검의 특사로서 유인씨(有因氏)의 후손이며, 중국의 전설상의 성군으로 알려진 순임금의 아버지다.
부도지에 따르면 유호씨는 부도(符都)에서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는데,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칡만 먹었으며, 키가 열자나 되고 눈에 광채가 번쩍일 정도로 수행이 높은 도인(道人)이었다. 또한 단군임검의 특사로서 하족(夏族)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눈부신 활약을 하였으며, 후일 인도와 유럽 등지로 부도의 진리를 전파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사기> 오제본기에 따르면 순임금의 아버지는 이름이 고수(??)로 맹인이었다. 순의 어머니가 죽은 후 고수는 후처를 얻어 아들 상(象)을 낳았는데, 고수는 완고하고 새어머니는 모질었으며 아우인 상은 거만하여 모두 순을 죽이려 하였다. 심지어는 창고를 수리하도록 지붕위로 올려놓고는 사다리를 치우고 불을 질러 불태워 죽이려 하였으며, 우물을 파게하고는 위에서 흙을 쏟아 부어 매장하여 죽이려 하는 등 아주 완고하고 극악무도한 인물로 나온다. 한 인물에 대하여 너무나 판이한 평가다.
2. 환부권사(鰥夫權士)
환부(鰥夫)와 권사(權士)는 모두 부도의 벼슬 이름이다. 환부는 법을 집행하는 직책이며(부도지 11장, 18장 참조), 권사는 국방과 외교를 담당하는 직책(부도지 18장, 19장, 20장 참조)으로 보인다.
3. 복명공순(服命恭順)
단군임검이 사해를 순방하느라고 부도를 비운 사이 당요(唐堯)가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만들고 전쟁을 일삼자, 단군임검이 크게 근심하여 유호씨를 특사로 파견하여 요(堯)의 잘못을 추궁하였다. 상황이 불리함을 느낀 요임금이 단군임검의 명을 공손하게 받들어, 유호씨 등을 하빈(河濱)에 머무르게 하고 감독을 받은 것이다.
4. 하빈(河濱)
하빈은 황하의 물가를 말한다.
요가 천하를 9주로 나누고 그 자신은 중심에 머물러 황제라 칭하였으므로 당요(唐堯)의 중심지는 9주의 중심에 해당하는 예주(豫州)에 있는 호북성 당하(唐河) 유역으로 볼 수 있다.(중국 고지도는 대부분 이 곳이 唐으로 표시되어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당요의 중심지를 산서성 임분으로 말하고 있으나 명확한 근거가 없다)
요임금의 정치체계인 요제오복도(堯制五服圖)를 보면 왕성(王城)을 중심으로 사방 오백리가 전복(甸服)으로 요임금이 직접 관할하는 지역이다. 그리고 사방 천리까지가 후복(侯服)으로 제후들의 나라이며 요임금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방 천 오백리는 수복(綏服)으로 외교력과 무력을 적절히 사용하여 평화를 유지하는 완충지대로 볼 수 있다.(부도지 제 17장 해설 참조)
아래 지도에서 청색원이 요임금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이며, 청색원과 녹색원의 사이가 수복(綏服)으로 단군임검의 부도와 요임금의 당도 사이에 완충지대다.
당요(唐堯)의 세력범위(청색 원 내부)
요임금이 유호씨를 머무르게 한 하빈(河濱)은 황하의 물가로 이 완충지대임을 알 수 있다. 이 완충지대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위의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시(朝市, 장안의 청색점)가 열리던 지역도 포함된다. 부도지 제15장에서 보았듯이 조시(朝市)는 매년 10월 사해의 모든 족속들이 공물을 바치고, 조선제(朝鮮祭)를 지내고 즐기며 물건을 교역하던 큰 모임이었다. 그러므로 조시(朝市)가 열리던 곳은 큰 도시가 형성되었을 것이며, 조시를 주도하는 세력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부도에서 열렸던 신시(神市)와 발해의 바닷가에서 열렸던 해시(海市)는 배를 만들고 항해하는 기술이 뛰어났던 단군조선이 확실하게 주도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조시(朝市)는 대륙의 중심에 위치하여 산악족이었던 중화족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요임금이 한 때는 장안 부근의 조시(朝市)를 장악할 정도로 세력을 확대했으나, 단군임검의 특사로 파견된 유호씨에게 굴복하여 하빈에 머무르도록 한 것은 조시(朝市)의 주도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측 기록을 살펴본다.
중국 산서성 운성시 서장하촌에 순제릉(舜帝陵)이 엄청난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순제릉의 묘비에 맹자의 이루장구(離婁章句) 하편의 기록이 적혀있다.
“孟子曰 舜生於諸馮 遷於負夏 卒於鳴條 東夷之人也”
“맹자왈 순생어제풍 천어부하 졸어명조 동이지인야”
“맹자가 말하기를 순임금은 제풍(諸馮)에서 태어나시고, 부하(負夏)로 이사하시며, 명조(鳴條)에서 돌아가셨으니 동이(東夷) 사람이다.”
위 구절과 관련하여 주자(朱子)가 주석을 달기를“제풍(諸馮)과 부하(負夏)와 명조(鳴條)는 모두 지명으로, 오랑캐 땅의 지역에 있다(諸馮 負夏 鳴條 皆地名 吊方夷服之地)” 고 하였다.
제풍(諸馮)과 부하(負夏)는 모두 산동성 고부 근처이며, 명조(鳴條)의 위치는 <중국지명대사전>에 찾아보면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산서성 운성시, 하남성 낙양부근, 하남성 신향시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위 지도에서 왼쪽 첫 번째 검은 점이 산서성 운성시 부근으로 순임금이 요임금의 두 딸과 몰래 결혼할 때 살던 규예(?汭)의 물굽이가 흐르는 지역이다.
두 번째 검은 점은 하남성 낙양부근이며, 세 번째 검은 점이 하남성 신향시 부근이다.
네 번째 검은 점은 순임금이 태어난 제풍(諸馮) 부근으로 고기를 잡으며 살았다는 뇌택(雷澤)이 있는 곳이다.
맹자의 말을 정리해 보면 순임금은 동이족이며, 위에서 검은 점으로 표시한 지역들이 모두 동이족의 땅이라는 것이다. 부도지에서 “유호씨가 하빈(河濱)에 머무르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거처를 여러 번 옮겼다.”는 내용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맹자의 말을 보더라도 요임금의 당도가 산서성 임분에 있었다는 현재 중국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환단고기>에는 이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단군왕검은 당요(唐堯)와 같은 시대이다. 요의 덕망이 날로 쇠해지자 땅을 차지하려는 다툼이 그치지 않았다. 이에 임금이 우순(虞舜)에게 명하여 땅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군사를 파견하여 주둔시킨 후 우순과 함께 당요를 치기로 약속하였다. 요는 마침내 힘이 달려 순(舜)에게 의지하고 목숨을 건지고 나라를 순에게 넘겼다. 이렇게 되어 순의 부자 형제가 다시 같은 집에서 살게 되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효도와 우애를 우선으로 하였다(고동영 저 환단고기 117쪽)”
조시(朝市)의 위치는 주도세력의 변천과 홍수 등 기상의 변화에 따라 많은 이동이 있었을 것이다. 중국의 고대 지도를 보면 위수(渭水) 상류에서 황하 하류에 이르기까지 조나(朝那), 조읍(朝邑), 조가(朝歌) 등의 지명이 보이는데 조시(朝市)가 열린 곳으로 판단된다.(다음카페 향고도, 청국지지/연혁도 및 대청광여도 참조)
조나(朝那)는 위수(渭水) 상류이며, 조읍(朝邑)은 장안부근, 조가(朝歌)는 황하 하류로 은나라 수도인 은허가 발견된 곳이다.
대륙의 고대왕조의 모든 도읍지는 조시(朝市)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유순(有舜)
유순(有舜)은 중국 신화속의 명군으로 알려진 순임금을 말한다. 요임금에게 평화롭게 임금자리를 물려받으면서 요순시절의 태평성대를 이루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특히 천하의 큰 효자로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부도지에서 전하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 순임금은 단군임검이 요임금의 반란을 바로잡기 위하여 특사로 파견한 유호씨의 아들이었다. 유순(有舜)은 부도에 있을 때 법을 집행하는 환부(鰥夫)의 직책을 가지고 있었으나, 법을 집행하면서 넘치거나 모자라서 절도가 없었다. 아버지인 유호씨와 더불어 요임금의 반란을 바로잡기 위하여 특사의 일원으로 갔으나, 요임금의 미인계에 빠져 요임금의 두 딸인 아황과 여영을 아버지 몰래 아내로 맞아들이게 된다. 그리하여 요임금과 협조하면서 어진 이들을 찾아 죽이고 계속 묘족(苗族)을 정벌하는 등 단군조선의 세계일가 홍익인간의 이념과 대립하였다. 결국 요임금의 뒤를 이어 임금자리에 올랐으나 아버지 유호씨의 노여움을 싸서 수년간 피비린내 나는 부자지간의 전쟁을 벌이다가 패하여 멀리 창오(蒼梧)의 들로 달아나다가 우(禹)에게 살해되고, 그의 두 아내도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참혹한 결과를 낳고 만다.(부도지 제19장 참조)
아버지인 유호씨를 배반하고 수년 동안 부자지간의 참혹한 전쟁을 벌인 불효중의 불효자를 중국에서는 천하의 큰 효자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6. 밀취기이녀(密娶其二女)
요임금이 유순(有舜)을 자기편으로 만들 생각으로 두 딸로 유혹하니, 순이 홀려서 아버지 몰래 요임금의 두 딸인 아황과 여영을 아내로 맞이하였다는 것이다.
서경(書經)의 요전(堯典) 12장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帝曰咨四岳 朕在位七十載 汝能庸命巽朕位 岳曰否德?帝位 曰明明揚側陋 師錫帝曰有鰥
제왈자사악 짐재위칠십재 여능용명선짐위 악왈부덕첨제위 왈명명양측루 사석제왈유환
在下 曰虞舜 帝曰兪 予聞如何 岳曰?子 父頑母?象傲 克諧以孝 烝烝乂不格姦 帝曰我
재하 왈우순 제왈유 여문여하 악왈고자 부완모은상오 극해이효 증증예불격간 제왈아
其試哉 女于時觀厥刑于二女 釐降二女于?汭 嬪于虞 帝曰欽哉”
기시재 여우시관궐형우이녀 이강이녀우규예 빈우우 제왈흠재
“요임금 가라사대 물어보거라, 사악아! 짐이 재위한지 70년이니 너는 능히 (나의) 명을 쓰나니(따르니), 짐의 위를 선양할진저. 사악이 가로대 덕이 없음이라. 제위를 더럽히게 하리이다. 가라사대 밝은이를 드러내며 미천한 이를 천거하라. 무리들이 요임금에게 말씀드리기를 어느 홀아비가 아래에 있으니 가로대 우순이니이다. 요임금 가라사대, 그렇구나, 내 들었노니 어떠한고. 사악이 가로대 장님의 아들이니, 아비는 완악하며 어미는 어리석으며 상은 교만하거늘 능히 효로써 화하여 점점 다스려져 간악함에는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임금 가라사대 내 그것을 시험해 볼진저. 이에 딸을 시집보내어 두 딸에게 그 본받을 만한지를 살펴보게 하리라 하시고, 두 딸을 규수 물굽이 쪽으로 내려 보내어 우순의 아내가 되게 하시고, 요임금 가라사대 공경하라 하시다.” <요전(堯典) 12장 작성자 법고창신 참조>
<맹자> 만장장구상(萬章章句上) 제2장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萬章問曰 詩云 娶妻如之何 必告父母 信斯言也 宜莫如舜 舜之不告而娶何也 孟子曰
만장문왈 시운 취녀여지하 필고부모 신사언야 의막여순 순지불고이취하야 맹자왈
告則不得娶 男女同室 人之大倫也 如告則廢人之大倫 以?父母 是以不告也”
고즉불취녀 남녀동실 인지대륜야 여고즉폐인지대륜 이대부모 시이불고야
“萬章曰 舜之不告而娶則 吾旣得聞命矣 帝之妻舜而不告 何也 曰帝亦知告焉則不得妻也”
만장왈 순지불고이취즉 오기득문명의 제지처순이불고 하야 왈제역지고언즉부득처야
“만장이 물었다. 시경에 ‘아내를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드시 부모에게 고해야 한다’고 합니다. 진실로 이 말대로라면 순임금같이 해서는 안됩니다. 순임금이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장가를 든 것은 어떤 까닭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고하면 장가를 들 수 없으셨다. 남녀가 한 방에 거쳐하는 것은 사람의 큰 윤리이니 만일 고하였다면 사람의 큰 윤리를 폐하여 부모를 원망하였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고하지 않으신 것이다.”
“만장이 물었다. 순임금이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장가 든 것은 제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딸을 시집보내면서 그 부모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요임금도 말하면 딸을 시집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서경(書經)의 요전(堯典) 12장에 의하면 요임금이 순의 사람됨을 시험하기 위하여 두 딸을 시집보냈다는 것이다. 사람을 시험하기 위하여 귀한 두 딸을 시집보냈다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맹자> 만장장구상(萬章章句上) 제2장에서 보듯이 순임금이 부모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장가를 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그 이유가 부모에게 알리면 결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했다. 부모에게 알리면 왜 결혼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부도지를 보면 명쾌하게 의문이 풀린다. -끝-
제19장. 요순(堯舜)의 멸망
이때에 유호씨가 수시로 타일렀으나
순은‘예 예’대답하면서 고치지 않았다.
마침내 요(堯)의 신하가 되어 어진 이들을 쫓아 죽이고
계속 묘예(苗裔)를 정벌하였다.
유호씨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책임을 묻고 토벌을 논의하니
순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요(堯)는 몸 둘 땅이 없으므로
마침내 순에게 자리를 넘기고 스스로 갇히는 몸이 되었다.
유호씨가 말하였다.
“오미(五味)의 화가 아직 그치지 않았는데 또 오행(五行)의 화를 지으니
죄가 땅에 가득하고 북두성이 하늘을 가려 수사(數事)가 많이 어그러졌다.
인간세상이 곤란과 고통에 처하니 어찌 바로잡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모르고 죄를 짓는 사람은 혹 용서하고 가르칠 수 있으나
알고도 죄를 짓는 사람은 비록 지친(至親)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
마침내 둘째 아들 유상(有象)에게 명하여
권사(權士)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모아 죄를 묻고 공격토록 하였다.
수년간의 전쟁 끝에 마침내 그 도읍을 혁파하였다.
요(堯)는 옥에 갇힌 채로 죽고, 순은 창오(蒼梧)의 들로 달아나니
따르는 무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요의 무리인 우(禹)가 순에게 아버지가 죽은 원한이 있었으므로
쫓아가서 죽이니, 순의 두 아내가 또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마침내 우가‘명(命)을 바로잡아 공을 세웠다’고 말하고
무리와 군사(軍師)들을 안심시키고 돌아갔다.
유호씨는 물러나서 우(禹)의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때에 우가 도읍을 옮겨서 무리를 모으고
창과 방패를 고치고 늘리면서 유호씨를 거역하고
스스로 하왕(夏王)이라 칭하였다.
[원문]
是時 有戶氏 隨警隨戒 舜唯唯而不改 終受堯屬 追戮賢者 仍又伐苗 有戶氏 遂
어시 유호씨 수경수계 순유유이불개 종수요속 추륙현자 잉우벌묘 유호씨 수
不能忍耐 論責討之 舜呼天哭泣 堯置身無地 遂讓位於舜而自閉 有戶氏曰 五味
불능인내 논책토지 순호천곡읍 요치신무지 수양위어순이자폐 유호시왈 오미
之災末濟 又作五行之禍 罪滿於地 ?蔽於天 數事多乘 人世困苦 此不可不正之
지재미제 우작오행지화 죄만어지 강폐어천 수사다괴 인세인고 차불가불정지
且不知而犯者 容或誨之 知而犯者 雖至親 不可得恕 乃命次子有象 率權士聚衆
차부지이범자 용혹회지 지이범자 수지친 불가득서 내명차자유상 솔권사취중
鳴罪而攻之 戰及數年 遂革其都 堯死於幽閉之中 舜逃於蒼梧之野 徒黨四散 堯
명죄이공지 전급수년 수혁기도 요사어유폐지중 순도어창오지야 도당사산 요
之徒禹 與舜有殺父之怨 至時 追擊殺之 舜之二妻 亦投江自決 禹乃言正命立功
지도우 여순유살부지원 지시 추격살지 순지이처 역투강자결 우내언정명입공
慰衆師而歸之 有戶氏 退而?觀禹之所行 於時 禹移都聚群 增修干戈而 拒有戶
위중사이귀지 유호씨 퇴이묵관우지소행 어시 우이도취군 증수간과이 거유호
氏 自稱夏王
씨 자칭하왕
[해설]
1. 추륙현자(追戮賢者) 잉우벌묘(仍又伐苗)
“어진 이들을 쫓아 죽이고, 계속 묘예(苗裔)를 정벌하였다.”는 뜻이다.
순이 요임금의 중신이었던 공공(共工), 환두(驩兜), 곤(?)을 귀양보내거나 죽이고, 양자강 유역의 동정호와 파양호 사이에 살고 있던 삼묘(三苗)를 정벌하여 청해성의 삼위 부근으로 귀양 보낸 일이 있다. 또 <순전(舜典) 27장> <대우모(大禹謨) 20장, 21장> 등에도 순이 묘예(苗裔)를 정벌한 기록이 있다.
서경(書經) 순전(舜典) 12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流共工于幽洲 放驩兜于崇山 竄三苗于三危 ??于羽山 四罪而天下咸服”
유공공우유주 방환두우숭산 찬삼묘우삼위 극곤우우산 사죄이천하감복
“공공을 유주에 유배 보내시고, 환두를 숭산에 유치하셨으며, 삼묘를 삼위로 추방하셨으며, 곤을 우산에 귀양 보내어 죽을 때가지 있게 하시어 네 사람을 벌하시니 천하가 다 복종하였느니라.”
공공(共工)은 요임금의 후계자로 거론된 인물이며, 환두(驩兜)는 공공을 요임금의 후계자로 천거한 인물이다(書經 堯典 10장). 또 곤(?)은 우임금의 아버지로 9년 동안 홍수를 다스리는 직책을 맡았던 인물(書經 堯典 11장)로 모두 요임금의 쟁쟁한 중신들이었다. 이들이 순임금에게 화를 당한 이유가 무엇일까?
맹자 만장장구상 3장 주석을 보면 공공과 환두는 두 사람이 서로 사귀어 당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삼묘는 지세의 험준함을 믿고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곤은 명을 거역하고 종족을 해치고 물을 다스림에 공이 없었기 때문이라 한다. 또 서경(書經) 감서(甘誓) 3장 주석을 보면 “곤이 오행을 어지럽혀 귀양가서 죽었다(?汨五行而?死)”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공공, 환두, 삼묘, 곤은 요임금의 오행설(五行說)에 비판적이었거나 순임금과 임금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화를 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순임금은 단군조선에 호의적이었던 요임금의 중신들을 죽이고, 황궁씨의 후예인 묘예(苗裔)를 정벌하는 등 요임금의 통치철학인 제왕지도(帝王之道)의 패권주의를 추구하고 단군조선과 대립함으로써 결국 아버지 유호씨(有戶氏)와 아우 유상(有象)과 골육상쟁을 벌이다가 죽게 된다.
2. 양위어순(讓位於舜)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제왕의 자리를 넘긴 것을 말한다. 중국역사는 이를 선양(禪讓)이라 하였다. 선양(禪讓)은 군주가 혈연관계가 없는 후계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다. 중국의 신화시대에 성천자(聖天子)로 일컬어지는 요(堯)와 순(舜)이 아들이 아닌 능력 있는 인재를 찾아서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것이 선양 전설의 요체이다. 이러한 선양은 신화 속 태평성대의 군주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칭송을 되었으며, 이상적인 군주 교체의 방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평화적으로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선양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선양과정을 통하여 요임금과 아들 단주(丹朱)가 대립하고, 요임금의 중신들과 순임금이 권력투쟁을 벌였으며(해설1 참조), 또 순임금이 아버지 유호씨 및 동생 유상과 골육상쟁을 벌였음을 부도지는 전하고 있다. 요임금이 아들 단주에게 제왕의 자리를 전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서경(書經) 요전(堯典) 9장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帝曰疇咨若時登庸 放齊曰胤子朱啓明 帝曰??訟可乎”
제왈주자약시등용 방제왈윤자주계명 제왈우은송가호
“요임금이 말하기를 누가 때를 따라 등용할 사람을 물을꼬? 방제가 말하기를 맏아들 주가 계명하나이다. 요임금이 말하기를 아, 어리석게 말다툼만 하니 옳을까?”
요임금이 신하들에게 후계자를 천거하라고 하자, 방제라는 신하가 요임금의 맏아들인 단주가 성품이 밝게 열려 등용할 만하다고 천거하였다. 그러나 요임금은 단주가 어리석게 말다툼만 한다고 등용하지 않았다.
또 서경(書經) 익직(益稷) 8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無若丹朱傲 惟慢遊是好 傲虐是作 罔晝夜?? 罔水行舟 朋淫于家 用殄厥世”
무약단주오 유만유시호 오학시작 망주야액액 망수행주 붕음우가 용진궐세
“단주처럼 오만하지 마소서. 게으르고 놀기를 좋아하며, 오만하고 탐학함을 지으며, 낮과 밤이 없이 쉬지 않으며, 물이 없는데도 배를 끌고 다니며, 집안에서 무리들과 음란하여 그 세대를 끊어지게 하였나이다.”
위 말은 우(禹)가 순임금에게 단주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경계한 것이다. 윗 글에 대하여 서경(書經)을 엮은 채침(蔡沈)은 다음과 같이 주를 달고 있다.
“『한지(漢志)』에 요가 아들 주를 단연에 거처하게 하여 제후를 삼았다 하니 단은 주(朱)의 나라 이름이다. 액액(??)은 쉬지 않는 모양이다. 물이 없는데 배를 끌고 다닌다는 것은 오(?)가 배를 끄는 것(오는 육지에서 배를 밀고 다닐 정도로 힘이 장사였으나 하후인 소강에게 죽임을 당함)과 같은 종류다. 붕음(朋淫)은 무리들이 소인들과 가깝게 하면서 집에서 음란함이다. 진(殄)은 끊어짐이고, 세(世)는 요임금의 천하를 세대로 이음이니, 단주가 어질지 못하여 요가 천하를 순에게 주고 주에게 주지 않았으므로 대가 끊어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윗 글 서경(書經) 익직(益稷) 8장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선현들은 중화족과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는데, 구한말의 대사상가인 강증산(姜甑山)의 일대기를 담은 이중성의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대선생(강증산)께서 이르시기를 만고의 원한 중에서 단주의 한이 가장 크니, 요임금의 아들 단주가 불초하다는 말이 반만 년에 걸쳐 전해 내려오지 않더냐. 단주가 불초하였다면 조정의 신하가 일러 '단주가 깨침이 많고 천성이 밝다'고 천거했겠느냐. 야만과 오랑캐를 없애겠다는 것이 남과 더불어 다투고 시비걸기를 좋아하는 것이라더냐. 이는 대동세계를 만들고자 한 것을 두고, 다투고 시비하는 것이라 욕하였느니라.”
"제자가 여쭙기를 우가 요임금의 맏아들이 불초하다고 비판하였나니, 그 이유로써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물과 뭍을 막론하고 배를 몰고 다니고, 집집마다 들어가 술마시기를 좋아하고, 요임금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라' 하였나이다."
“대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는 것’은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며 백성의 고통을 살폈다는 것이오, ‘물과 뭍을 가리지 않고 배를 몰고 다녔다는 것’은 대동세계를 이루고자 분주하였다는 말이오, ‘집집마다 들어가 술을 마셨다는 것’은 가가호호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하였다는 것이오, ‘요임금의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라 하는 것은, 다스리는 도가 요임금과 다름을 이름이니라. 당요의 세상에 단주가 천하를 맡았다면 요복과 황복이라는 지역차별이 없었을 것이고, 야만과 오랑캐라는 이름도 없었을 것이고, 만 리가 지척과 같이 가까와졌을 것이며, 천하가 한가족이 되었으리니,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는 좁고 막힌 것이었느니라. 단주의 원한이 너무 커서 순임금이 창오의 들판에서 갑자기 죽고, 두 왕비가 상강의 물에 빠져 죽었느니라."
요임금이 맏아들 단주에게 제왕의 자리를 물려주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중국측 기록들은 어색하다. 신하들이 단주가‘깨침이 많고 천성이 밝다’고 천거하는데도 요임금이 ‘어리석게 말다툼만 한다’고 등용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천지개벽경을 보면 의문이 풀린다. 단주가 요임금이 추구하는 제왕지도(帝王之道)의 패권주의를 따르지 않고 단군임검이 추구하는 세계일가의 대동세계에 동조하였기 때문에 요임금이 단주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3. 오미지재(五味之災)
인류가 포도열매를 먹음으로 인하여 타락하게 된 사건으로, 사람이 다른 생명을 강제로 먹음으로 인하여 천성을 잃어버리고 낙원을 상실하게 된 재앙을 말한다.(부도지 5~8장 참조)
4. 오행지화(五行之禍)
당요(唐堯)가 스스로 제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하늘의 이치를 어기고 거짓으로 오행설을 만들어 세상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재앙을 말한다. 이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부도지 제17장 해설 참조)
5. 창오(蒼梧)
창오(蒼梧)는 지금의 호남성 영원현(寧遠縣) 동남쪽에 위치하였다. 순임금의 죽음과 관련하여 <사기> 오제본기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순(舜)은 20세에 효자로 소문이 나고, 30세에 요가 등용하였으며, 50세에 천자의 일을 대신하였으며, 58세에 요가 붕어하여 61세에 요를 이어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제위에 오른지 39년에 남쪽으로 순수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어하였다. 강남의 구의(九疑)에 장사지냈다. 이를 영릉(零陵)이라 한다.”
<사기> 오제본기는 순임금이 순행(巡行)하면서 사냥을 하다가 평화롭게 죽은 것처럼 쓰고 있다. 그러나 부도지는 순임금이 단군임검의 명을 받은 유호씨(有戶氏)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창오(蒼梧)의 들로 달아나다가 우(禹)에게 죽음을 당하였다고 한다.
6.살부지원(殺父之怨)
순임금이 우임금의 아버지인 곤(?)을 우산(羽山)으로 귀양 보내어 죽인 것을 말한다.(위의 1번 해설 참조)
7. 순지이처(舜之二妻) 역투강자결(亦投江自決)
순임금의 이처는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말한다. 순임금이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고, 두 왕비는 3일 동안 남쪽을 바라보며 통곡의 피눈물을 흘리다가 끝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상강(湘江)에 몸을 던져 죽었다 한다. 상강(湘江) 주변에는 상비죽(湘妃竹)이라는 유명한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얼룩반점이 있으며, 껍질을 벗기면 핏빛의 속살을 드러내는 대나무다. 두 왕비가 흘린 통곡의 피눈물이 주변의 대나무에 뿌려져서 상비죽(湘妃竹)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상강의 물이 흘러드는 동정호(洞庭湖)에 군산(君山)이라는 섬이 있는데, 그 곳에 두 왕비를 기리는 사당인 상비사(湘妃祠)와 무덤인 이비묘(二妃墓)가 있다. 공원의 정자에 새겨진 글귀가 찾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萬古湘妃竹 無窮奈怨何 年年長春 只是淚痕多”
만고상비죽 무궁내원하 년년장춘 지시루흔다
“만고의 상비죽은 어찌 이리도 무궁토록 슬퍼할까?
해마다 봄이면 자라서 오직 눈물자국만 많아지누나!“ <끝>
제20장. 우(禹)의 반란
우가 끝내 부도(符都)를 배반하고 도산(塗山)에 단을 쌓으며
서와 남의 여러 족속들을 정벌하여 제후라 이르고
도산(塗山)으로 몰아놓고 조공을 받았다.
이는 부도의 제시(祭市)를 본 뜬 것이었으나
갑작스럽고도 난폭한 것이었다.
이때에 천하가 시끄럽고 어수선하므로
부도(符都)로 도망하여 오는 자가 많았다.
우(禹)가 마침내 물과 육지의 모든 길을 끊어
부도(符都)와 고립시키므로 왕래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이때에 유호씨는 서방에 있으면서 묘예(苗裔)를 수습하고
소부, 허유의 고향과 통하며 서남의 여러 족속들과 연결하니
그 세력이 자못 왕성하여 스스로 하나의 읍을 이루었다.
유호씨가 마침내 권사(權士)를 우에게 보내어 설득하였다.
“요(堯)는 천수(天數)를 잘못 알았다.”
“천지를 제멋대로 하기 위하여 땅을 나누고
독단(獨壇)의 이익만을 위하여 때를 정하고
사사로이 개와 양을 기르기 위해 사람들을 몰아내었다.“
“스스로 제왕이라 칭하고 멋대로 하니
세상 사람들은 흙이나 돌과 초목처럼 말이 없으며
하늘의 이치는 도리어 허망함에 빠져버렸다.
“이는 거짓으로 하늘의 권위를 훔쳐
사사로운 욕심을 난폭하게 자행하는 것이다.“
“제왕이 만약 하늘의 권능을 대행한다면
또한 능히 해와 달을 운행하고 만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왕이란 수의 요체이니 사람이 거짓으로 칭할 바가 아니다.
거짓으로 칭하면 모두가 헛된 속임의 추악한 놀음일 뿐이다.“
“사람의 일은 이치를 깨닫는 것이요
인간세상의 일은 그 이치를 깨달은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다.
이외에 다시 무엇이 있으리오.“
“그러므로 부도(符都)의 법은 천수(天數)의 이치를 밝게 깨달아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래의 임무를 다하여
그 본래의 복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고 듣는 사람이 비록 먼저와 나중은 있으나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고 받는 사람이 비록 친하고 먼 것은 있으나 끌어들이고 내쫓음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해가 평등하고 모든 족속들이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다만 오미(五味)의 책임을 속죄하는 것과 대성(大城)의 일을 회복하는 것은
항상 한사람이 희생적으로 주관하는 것이요. 사람마다 능히 할 수 없으므로
이일은 예로부터 인간세상의 일에 섞이지 아니하였다.
황궁(黃穹)씨와 유인(有因)씨의 예가 이것이다.“
[원문]
禹遂背反符都設壇於塗山 伐西南諸族而謂之諸侯 驅聚於塗山而受朝貢 此效符都祭市之制
우수배반부도설단어도산 벌서남제족이위지제후 구취어도산이수조공 차효부도제시지제
而暴突者也 於時 天下騷然 走符都者多 禹乃遮斷水陸之路 孤隔符都而使不得來往 然 不
이폭돌자야 어시 천하소연 주부도자다 우내차단수륙지로 고격부도이사부득내왕 연 불
敢攻符都 是時 有戶氏 居於西方而收拾苗裔 通於巢許之鄕 連結西南諸族 其勢甚盛 自成
감공부도 시시 유호씨 거어서방이수습묘예 통어소허지향 연결서남제족 기세심성 자성
一邑 有戶氏乃送權士論禹曰"堯誤天數 割地爲自專天地 制時爲獨壇利機 驅人爲私牧犬羊
일읍 유호씨내송권사론우왈 요오천수 할지위자전천지 제시위독단이기 구인위사목견양
自稱帝王而獨斷 人世??爲土石草木 天理逆沒於虛妄 此假?天權 恣行私慾之暴也 帝王
자칭제왕이독단 인세묵묵위토석초목 천리역몰어허망 차가절천권 자행사욕지폭야 제왕
者 若代行天權則 亦能開閉日月 造作萬物乎 帝王者 數諦 非人之所假以稱之者 假稱則徒
자 약대행천권즉 역능개폐일월 조작만물호 제왕자 수체 비인지소가이칭지자 가칭즉도
爲詐虛之惡戱而已 人之事證理也 人世之事 明其證理之人事也 此外 復有何哉 故 符都之
위사허지악희이이 인지사증리야 인세지사 명기증리지인사야 차외 복유하재 고 부도지
法 明證天數之理 使人遂其本務而 受其本福而已故 言者聞者 雖有先後 無有高卑 與者受
법 명증천수지리 사인수기본무이 수기본목이이고 언자문자 수유선후 무유고비 여자수
者 雖有熟疎 無有牽驅故 四海平等 諸族自行 唯其報贖五味之責 恢復大城之業 常在於一
자 수유숙소 무유견구고 사해평등 제족자행 유기보속오미지책 회복대성지업 상재어일
人犧牲之主管 非人人之所能爲者故 此事 自古不雜於人世之事 黃穹氏有因氏之例 是也
인희생지주관 비인인지소능위자고 차사 자고불잡어인세지사 황궁씨유인씨지례 시야
[해설]
1. 우(禹)
우(禹)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뒤를 이어 중국 최초의 세습왕조인 하(夏)왕조를 건설하였다. 하나라는 그 존재 자체가 고고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되지 못하였으나 문헌 등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하(夏)는 우(禹)에서 걸(桀)까지 17왕 472년 동안(BC 1600년 무렵까지) 존속되었다고 한다.
사마천의《사기(史記)》〈하본기(夏本記)〉에 의하면, 하왕조(夏王朝)의 시조 우왕(禹王)은 기원전 2070년 왕조를 개국하여, 황하(黃河)의 홍수를 다스리는 데 헌신적으로 노력하였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순(舜)이 죽은 뒤 제후의 추대를 받아 천자가 되었다. 우는 제위를 민간의 현자에게 넘기려고 하였으나, 제후들이 우의 아들인 계(啓)를 추대하였으므로 이때부터 선양제(禪讓制)가 없어지고 상속제(相續制)에 의한 최초의 왕조가 출현하였다.
2. 도산(塗山)
도산은 지금의 안휘성 방부시(?埠市) 회원현(懷遠縣)에 있다. 이곳에 하(夏)나라 당시에 도산씨국(塗山氏國)이 있었으며 회이족(淮夷族)이 거주하였다. 우(禹)가 치수를 하면서 남하하다가 지금의 회원현 경계에 있는 도산(塗山)에서 도산씨녀(塗山氏女)를 아내로 맞이하였다고 한다. 우임금이 제후들을 소집한 도산회의는 일반적으로 중국 하왕조 건립의 상징성인 사건으로 여겨진다.[한어 위키백과 도산지회(?山之?) 참조]
우(禹)가 도산에 단(壇)을 쌓은 것은 독자적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만든 것으로 부도를 배반한 것이다.
하(夏)나라는 아래 지도의 주황색으로 표시된 지역으로 하남성과 섬서성 일부에 해당하는 좁은 지역이다. 하나라를 이은 은나라와 주나라도 대체로 위 강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단군임검의 부도를 따르는 지역이었다.
하(夏)나라 위치(주황색 점, 위키백과 하나라 참조)
3. 유호씨거어서방(有戶氏居於西方)
우(禹)가 하나라를 세울 당시에 단군임검의 특사로 파견된 유호씨는 서쪽에 거처하면서 묘예(苗裔)를 수습하고, 소부와 허유의 고향과 통하며 서남의 여러 족속들과 연결하여 큰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 때 유호씨가 거처한 곳은 섬서성 장안 부근으로 추정된다. 서경(書經)에 우임금의 아들 계(啓)가 감(甘) 땅으로 유호씨를 정벌하러 가는 내용이 있다.
“감(甘)은 땅이름 이다. 유호씨의 나라 남쪽 교외니 부풍군 호현에 있다.(甘 地名 有扈氏國之南郊也 在扶風?縣)” (夏書 제2편 甘誓)
“풍수(?水)는 『지리지』에 풍(?)으로 지었으며, 부풍 호현의 종남산에서 나온다(?水 地志作? 出扶風?縣終南山)”(禹貢 75장)
종남산(終南山)은 섬서성 장안의 남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위의 구절에 의하면 종남산이 있는 곳이 부풍군 호현이며, 유호씨 나라의 남쪽 교외에 해당하므로 유호씨의 나라는 장안(長安) 부근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감주(甘州)는 감숙성에 위치하여 지명이 북서쪽으로 수 천리 이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중심부인 장안에서 단군임검의 부도와 하나라 간에 벌어졌던 전쟁을 수 천리 외곽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왜곡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도산(오른쪽 파란원) 및 유호씨 읍(왼쪽 파란원)
4. 제왕자수체(帝王者數諦)
제왕이란 수의 요체를 말하는 것이다. 한민족의 삼신오제(三神五帝)는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삼신(三神)이란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이다. 천일은 조화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를 주장하고, 태일은 치화를 주관하는 것이다. 또 오제(五帝)란 흑제(黑帝) 적제(赤帝) 청제(靑帝) 백제(白帝) 황제(黃帝)이다. 흑제는 말라죽는 것을 주관하고, 적제는 빛과 열을 주관하고, 청제는 나고 자라는 것을 주관하고, 백제는 열매 맺는 것을 주관하고, 황제는 조화를 이루는 것을 주관한다.”(고동영 저 환단고기 115쪽 참조)
즉 한민족의 삼신오제(三神五帝)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근본원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화족은 한민족의 삼신오제(三神五帝) 원리를 차용하여 자신들의 조상을 삼황오제(三皇五帝)로 불렀다. 이로 인하여 중화족만이 제일이고 다른 민족은 오랑캐로 취급하는 제왕지도(帝王之道)의 패권주의가 생겨나서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것이다. 중화족의 삼황오제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제왕세기》, 《십팔사략》등에 의하면 삼황(三皇)은 복희 신농 황제를 말하며, 오제(五帝)는 소호(少昊) 전욱(?頊) 고신(高辛) 당요(唐堯) 우순(虞舜)를 말한다.
4. 사해평등(四海平等) 제족자행(諸族自行)
단군임검의 통치이념은 바로 사해평등과 민족자치이다. 인류는 모두 한 어머니인 마고(麻姑)의 자손이므로 한 가족인 것이다(부도지 1~4장 참조). 인류는 같은 피를 나눈 형제자매이므로 모두 평등하며, 다른 민족의 간섭이나 지배를 받지 않고 민족자치를 행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반면에 요임금의 통치이념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중화제일(中華第一) 패권주의다. 중화민족이 세계의 중심으로 세상을 지배하며, 나머지 민족은 모두 오랑캐로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패권주의의 고통에 신음한지 오래다. 인류의 근본을 성찰하여 사해평등과 민족자치의 진리로 되돌아 가야할 때다.<끝>
* 부도지 20~23장은 단군임검 시대의 철학과 역(歷)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심오하고 방대하므로 자세한 해설은 후일을 기약하고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도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
제21장. 황당무계한 오행설
“또 소위 오행(五行)은 천수(天數)의 이치에 그러한 법은 없다.
방위의 5중(五中)은 교차의 뜻으로 변하여 운행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1에서 9까지므로 5가 항상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며
아홉 수가 돌면서 율려(律呂)가 서로 어울린 후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는 기수(基數)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 5와 7이 크게 움직여 가면서 고리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그 자리가 5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또한 4와 7이 있는 것이다.“
“또 그 순역생멸(順逆生滅)의 윤멱(輪冪)은 4이며, 5가 아니다.
즉 본래의 아홉수는 변하지 않는 까닭이다.
또한 윤멱(輪冪)이 1번 끝나는 기간은 28의 7이지 5가 아니다.“
“또 그 만물에 짝하는 성질에서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다섯 가지 중
금토(金土)를 어찌하여 구별하여 세우는가?“
“그 약간의 다름으로 인하여 또한 구별하려 한다면
공기나 바람 풀과 돌 등의 종류는 어찌하여 같이 들지 않는가? “
“그러므로 다 들자면 한이 없고, 엄밀하게 나누면 금목수화(金木水火)
혹은 토목수화(土木水火)의 넷이지 다섯이 아니다.“
“또 그 물질의 성질을 수의 성질과 짝 지우는 까닭은 무엇인가?
물질의 수성(數性)은 그 근본이 아홉이지 다섯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행설은 참으로 황당무계한 말이다.
이런 까닭으로 인간세상의 증리(證理)를 거짓으로 꾸며서 속이는 것이니
끝내 하늘의 화를 짓는 것이다. 이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원문]
且其所謂五行者 天數之理未有是法也 方位五中者 交叉之意 非變行之謂也 變
차기소위오행자 천수지리미유시법야 방위오중자 교차지의 비변행지위야 변
者 自一至九故 五者不得常在於中而九者輪回 律呂相調然後萬物生焉 此 基數
자 자일지구고 오자부득상재어중이구자윤회 율려상조연후만물생언 차 기수
之謂也 至其五七大衍之環則 其位不限於五而亦有四七也 且其順逆生滅之輪冪
지위야 지기오칠대연지환즉 기위불한어오이역유사칠야 차기순역생멸지윤멱
四也 非五也 卽原數之九 不變故也 叉輪冪一終之間 二八之七也 非五也 叉其
사야 비오야 즉원수지구 불변고야 차윤멱일종지간 이팔지칠야 비오야 차기
配性之物 金木水火土 五者之中 金土 如何別立乎 以其小異 亦將別之則 氣風
배성지물 금목수화토 오자지중 금토 여하별립호 이기소이 역장별지즉 기풍
草石之類 豈不共擧耶 故 皆擧則無數也 嚴擧則 金木水火或 土木水火之四也
촛석지류 기불공거야 고 개거즉무수야 엄거즉 금목수화혹 토목수화지사야
不得爲五也 尤其物性 由何而配於數性乎 數性之物 其原九也 非五也 故 五行
부득위오야 우기물성 유하이배어수성호 수성지물 기원구야 비오야 고 오행
之說 眞是荒唐無稽之言 以此 誣惑證理之人世 乃作天禍 豈不可恐哉
지설 진시황당무계지언 이차 무혹증리지인세 내작천화 기불가공재
[해설]
1. 오행(五行)
오행은 물질의 근본원소를 물(水) 불(火) 쇠(金) 나무(木) 흙(土)의 5가지로 보고, 이 다섯가지 물질이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을 통하여 만물을 낳는다는 것이다. 오행설(五行說)은 오늘날 동양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부도지에서는 기화수토(氣火水土)의 네가지를 물질의 근본요소로 보며 오행설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부도지 제17장 해설 참조)
2. 기수(基數)
수에는 기수(基數)와 서수(序數)가 있다. 기수(基數)는 양(量)을 나타내는 수이기 때문에 헤아리는 수라고도 한다. 즉 수의 크기를 나타낸다. 반면에 서수(序數)는 순서를 나타내는 수를 말한다.
3. 윤멱(輪冪)
멱(冪)은 같은 수를 여러 번 곱하는 것을 말한다. <끝>
제22장. 역(曆)은 화복의 근본
“또 그 역제(曆制)는 천수(天數)의 근본을 살피지 아니하고
거북과 명협(蓂莢)의 미물에서 근본을 취하였으니
요(堯)는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인가?“
“천지만물은 모두 수에서 나오므로 각각 수의 징조가 있는 것이다.
하필이면 거북과 명협(蓂莢)만 그러하겠는가?“
“인간세상의 역(曆)이 아니므로 그것이 인간 세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삼정(三正)이 뒤집어져서 장차 참으로 부합하고자 하나
얻지 못하고 마침내 하늘의 화가 이르는 것이다.“
“대저 역(曆)이라는 것은 인생의 깨달음의 바탕이니
그 수(數)가 자신에게 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역이 바르면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일이 부합하여 복이 되는 것이요.“
“역이 바르지 못하면 천수(天數)에 어그러져 화가 되는 것이니
이는 복은 이치가 있는데 있고, 이치는 바른 깨달음에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의 바르고 바르지 못함이
인간세상의 화와 복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옛날에 오미(五味)의 화가 한사람의 미혹에서 나와
만대의 생명에 미치거니와 이제 또 역의 화(禍)가
장차 천세의 진리에 미치려 하니 참으로 두렵구나!“
[원문]
且其曆制 不察乎天數之根本 取本於龜蓂之微物 堯且何心哉 天地之物 皆出於
차기역제 불찰호천수지근본 취본어구명지미물 요차하심재 천지지물 개출어
數 各有數徵 何必龜蓂而已哉 非人世之曆 其不合於人世者 固當然也 以故 飜
수 각유수징 하필구명이이재 비인세지역 기불합어인세자 고당연야 이고 번
覆三正 將欲苟合而不得 遂致天禍也 大抵曆者 人生證理之其本故 其數無不在
복삼정 장욕구합이부득 수치천화야 대저역자 인생증리지기본고 기수무불재
躬 是故 曆正則天理人事 證合而爲福 曆不正則乖離於天數而爲禍 此 福在於理
궁 시고 역정즉천리인사 증합이위복 역부정즉괴리어천수이위화 차 복재어리
存 理存於正證故也 故 曆之正與不正 人世禍福之端 可不愼哉 昔世五味之禍
존 리존어정증고야 고 역지정여부정 인세화복지단 가불신재 석세오미지화
出於一人之迷惑 及於萬代之生靈 今且曆禍 將欲及於千世之眞理 懼矣哉
출어일인지미혹 급어만대지생령 금차역화 장욕급어천세지진리 구의재
1. 천수(天數)
주역(周易) 계사전상 제9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天一地二 天三地四 天五地六 天七地八 天九地十 天數五 地數五 五位相得而各有合
천일지이 천삼지사 천오지육 천칠지팔 천구지십 천수오 지수오 오위상득이각유합
天數二十有五 地數三十 凡天地之數五十有五 此所以成變化而行鬼神也”
천수이십유오 지수삼십 범천지지수오십유오 차소이성변화이행귀신야
“하늘은 1, 3, 5, 7, 9요. 땅은 2, 4, 6, 8, 10이다. 하늘의 수가 다섯 가지고 땅의 수가 다섯 가지다. 다섯 가지가 서로 짝을 얻어 합한다. 하늘의 수는 25이고 땅의 수는 30이니 무릇 천지의 수는 55다. 이것이 변화를 이루어 귀신이 운행하는 것이다”
위에서 보는바와 같이 천수(天數)는 보통 하늘의 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1, 3, 5, 7, 9의 홀수를 말한다. 그러나 부도지에서 말하는 천수(天數)는 천지지수(天地之數)의 줄임말로 1에서 9까지의 모든 자연수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부도지 제20, 21장 참조)
2. 구명(龜蓂)
거북과 명협(蓂莢)을 말한다. 거북은‘낙서(洛書)'를 등에 지고 나온 신구(神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禹) 임금이 낙수(洛水)에서 홍수를 다스릴 때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명협(蓂莢)은 중국 요임금 때 났었다는 전설상의 상서로운 풀이다.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하루에 한 잎씩 났다가, 열엿새부터 그믐까지 하루에 한 잎씩 떨어지고, 작은달에는 마지막 한 잎이 시들기만 하고 떨어지지 않았다 하여, 달력 풀 또는 책력 풀이라고도 하였다.(부도지 제17장 해설 참조)
지금까지 하도(河圖)는 하늘의 이치를 나타내고, 낙서(洛書)는 땅의 이치를 나타낸다고 알려져 왔다. 그리하여 하도와 낙서는 동양의 모든 철학사상의 근원이 되어왔다.
하도(河圖)의 원리는 음양이 평등하고 남녀가 평등하고 만인이 평등하고 만물이 평등함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낙서(洛書)는 양(陽)이 강력히 음(陰)을 통제함으로써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고, 강자가 약자를 다스리는 약육강식의 세상을 나타내고 있다.(부도지 제17장 해설 참조)
부도지는 낙서(洛書)가 거북이라는 미물로부터 근본을 취한 것이므로 그것은 인간세상의 진리가 아니라 미물인 짐승세계의 진리라고 비판하고 있다. 약육강식의 짐승세계의 진리가 인간세상의 진리인 양 행세하면서 수천 년에 걸쳐 인간세상을 전쟁의 고통에 빠뜨릴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3. 삼정(三正)
부도지 제20장에서 23장은 단군임검의 특사로 파견된 유호씨(有戶氏)가 우(禹) 임금에게 단군임검의 부도(符都)를 배반하지 말 것을 설득하는 문장이다. 하지만 우임금은 끝내 부도(符都)를 배반하고 유호씨(有戶氏)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측의 서경(書經) 감서(甘誓)3장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有扈氏 威侮五行 怠棄三正 天用?絶其命 今予 惟恭行天之罰”
유호씨 위모오행 태기삼정 천용초절기명 금여 유공행천지벌
“유호씨가 오행을 으르고 업신여기며 삼정을 게을리 하고 버리기에 하늘이 그 명을 빼앗아 끊으시니 이제 나는 하늘의 벌을 공손히 행할지니라.”
여기서 삼정(三正)이 나오는데 해설하기를 “삼정(三正)은 자(周의 歲首) ? 축(殷의 歲首) ? 인(夏의 歲首)의 정월이니, 하나라의 정월은 인월로 세웠느니라. 게을리 하고 버렸다는 것은 정월의 초하루를 쓰지 않음이라. 유호씨가 하늘의 물건을 포악하게 끊어내고 가볍고 소홀히 하여 공경하지 아니하며 정삭을 폐기하고 아래를 포악하게 하고 위를 배반하여 하늘에 죄를 얻었기에 하늘이 그 명을 빼앗아 끊어내시니 이제 내가 정벌한다는 것은 오직 하늘의 벌을 공손히 행할 뿐이라. 이제 이 문장을 살펴보건대 삼정을 차례대로 세운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음이라. 순이 사시와 달을 맞추고 날을 바로잡은 것도 또한 정삭을 하나로 한 것이니, 자월과 축월을 세운 것은 당우의 앞에도 마땅히 이미 있었을 것이라.(夏書 제2편 甘誓3장 해설 |작성자 법고창신)” 하였다.
4. 오미지화(五味之禍)
인간세상의 첫 번째 큰 변고는 부도지 제5장~8장에 나오는‘오미(五味)의 화’다. ‘오미의 화(禍)’는 인간이 다른 생명을 강제로 먹는 것으로 비롯되었다. 이로 인하여 사람이 하늘 성품을 잃어버리고 타락하게 된 것이다. ‘오미의 화(禍)’가 사람이 만물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면, 인간 세상의 두 번째 큰 변고인 ‘역의 화(禍)’는 바로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끝>
제23장. 부도(符都)의 역
“하늘의 도(道)는 돌고 돌아 스스로 시작과 끝이 있고
시작과 끝이 또 돌아서 4번을 거듭하면 다시 시작과 끝이 있다.“
“한 번의 시작과 끝나는 사이를 소력(小曆)이라 하며
두 번의 시작과 끝을 중력(中曆)이라 하고
네 번 거듭되는 시작과 끝을 대력(大曆)이라 한다.“
“소력(小曆)의 1회를 사(祀)라 하며 사(祀)에는 13기(期)가 있다.
1기에는 28일이 있으며 다시 4요(曜)로 나뉘고 1요에는 7일이 있다.“
“요(曜)의 끝을 복(服)이라 하므로 1사(祀)에는 52요복이 있으니
즉 364일이 있다. 이는 1과 4와 7의 성수(性數)다.“
“사(祀)의 시작마다 대사(大祀)의 단(旦)이 있으며
단(旦)은 1일과 같으므로 합하여 365일이 된다.“
“3과 1/2사(祀)에 대삭(大朔)의 판(?)이 있으며
판(?)은 1/2사(祀)이니, 이는 2와 5와 8의 법수(法數)이다.
판(?)의 처음은 1일과 같으므로 4번째 사(祀)는 366일이 된다.“
“10과 1/2사(祀)에 대회(大晦)의 구(晷)가 있으며
구(晷)는 시간의 근원이다. 300구(晷)가 1묘(?)가 된다.
묘(?)는 구(晷)가 눈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9633의 묘각분시(?刻分時)가 1일이 되니
이는 3과 6과 9의 체수(?數)다.“
“이 같은 시작과 끝이 중력(中曆)과 대력(大曆)에 차례로 이른 후에
마침내 이수(理數)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저 요(堯)의 이 세 가지 그릇됨은 헛된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니
어찌 부도(符都)의 참된 도(道)와 비교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헛된 즉 안에 이치가 없으므로 마침내 멸망에 이르고
참된 즉 나에게 이치가 늘 넉넉하므로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원문]
天道回回 自有終始 終始且回 疊進四端而更有終始也 一終始之間 謂之小曆 終
천도회회 자유종시 종시차회 첩진사단이갱유종시야 일종시지간 위지소력 종
始之終始 謂之中曆 四疊之終始 謂之大曆也 小曆之一回曰祀 祀有十三期 一期
시지종시 위지중력 사첩지종시 위지대력야 소력지일회왈사 사유십삼기 일기
有二十八日而 更分爲四曜 一曜有七日 曜終曰服故 一祀有五十二曜服 卽三百
유이십팔일이 갱분위사요 일요유칠일 요종왈복고 일사유오십이요복 즉삼백
六十四日 此 一四七之性數也 每祀之始 有大祀之旦 旦者與一日同故 合爲三百
육십사일 차 일사칠지성수야 매사지시 유대사지단 단자여일일동고 합위삼백
六十五日 三祀有半 有大朔之?者 祀之二分節 此 二五八之法數也 ?之長 與
육십오일 삼사유반 유대삭지판자 사지이분절 차 이오팔지법수야 판지장 여
一日同故 第四之祀 爲三百六十六日 十祀有半 有大晦之晷 晷者 時之根 三百
일일동고 제사지사 위삼백육십육일 십사유반 유대회지구 구자 시지근 삼백
晷爲一? ?者 晷之感眼者也 如是經九六三三之?刻分時爲一日 此 三六九之
구위일묘 묘자 구지감안자야 여시경구륙삼삼지묘각분시위일일 차 삼육구지
?數也 如是終始 次及於中大之曆而理數乃成也 大抵堯之此三誤者 出於虛爲之
체수야 여시종시 차급어중대지력이이수내성야 대저요지차삼오자 출어허위지
欲 豈可比言於符都實爲之道哉 虛爲則理不實於內 竟至滅亡 實爲則理常足於我
욕 기가비언어부도실위지도재 허위즉이불실어내 경지멸망 실위즉이상족어아
配得自存
배득자존
[해설]
1. 천도(天道)
천도(天道)는 천체가 운행하는 길이다.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있어서 끊임없이 운행을 반복한다. 그리하여 땅에서는 춘하추동의 사시사철이 생기고 만물이 생명활동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태양이 운행하는 길을 황도(黃道)라 하고, 달이 운행하는 길을 백도(白道)라 한다.
2. 역(曆)
천체의 운행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 역(曆)이다.
역에는 태양력·태음력·태음태양력의 세 가지가 있다. 본 장은 고대의 역법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는데, 단군임검의 부도는 태양력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도의 역법을 살펴보면 1달(期)을 28일(4*7일)로 정하고, 1년을 13달(期)로 하였다. 그리하여 1년이 365일이 되고 4년째 되는 해는 366일로 정하여 1년의 평균 길이를 365.25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대 천문학이 1년을 365.25636042일로 정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1년의 길이가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다.
1) 태양력
태양력은 태양이 황도상으로 한바퀴 도는 주기를 1태양력으로 정하여 만든 역으로 4계절의 변화와는 부합하나 달의 삭망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태양이 천구상으로 움직이는 길을 황도(黃道)라 하며, 황도상의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7개의 별을 정하여 28수(宿)라 부르고 태양의 위치를 관측하는데 사용하였다. 현대 천문학에서는 태양이 황도상을 1주하는 1항성년을 365.25636042일(365일 6시 9분 9.5초)로 정하고 있다.
2) 태음력
태음력은 달의 삭망주기를 기준으로 하여 12삭망월을 1태음년으로 한 역을 말한다. 태음력은 달의 삭망과는 정확하게 일치하나 태양의 운행과 관계있는 계절의 변화와는 일치하지 않는 단점이 있다.
현대 천문학에서 1삭망월은 29.5305882일(29일 12시 44분 2.9초)이다.
3) 태음태양력
태음태양력의 경우 한 달의 길이를 1삭망월로 한 것은 태음력과 같으나 달의 위상변화를 계절의 변화와 맞추기 위해 12개월의 평년과 13개월의 윤년을 두어 그 평균일이 1태양년의 일수와 같도록 만들었다.
과거에는 많은 민족들이 이 태음태양력을 썼으며 현재도 한국·중국·일본·인도 등의 민간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3. 사(祀)
1년을 사(祀)라고 하였다. 1년은 시대에 따라 재(載, 堯舜시대), 세(歲, 夏나라), 사(祀, 殷나라), 년(秊, 周나라) 등 다양한 명칭이 사용되었다.
부도의 역(曆)은 1사(祀)를 13달(期)로 한 것이 특이하다.
4. 요지차삼오자(堯之此三誤者)
요(堯)의 세 가지 잘못을 말한다. 부도지가 전하는 요임금의 세 가지 잘못은 첫째, 제왕지도(帝王之道)를 주창한 것(부도지 제17장, 20장 참조) 둘째, 오행설(五行說)을 만든 것(부도지 제21장 참조) 셋째, 잘못된 역(曆)을 만든 것(부도지 제22장 참조)을 말한다.
요(堯)의 이 세 가지 잘못은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려는 헛된 욕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세상을 수천 년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끝>
제24장. 우(禹)의 멸망
유호씨가 이처럼 간곡하게 훈계하며 모든 법을 폐지하고
부도(符都)로 되돌아올 것을 권하였다.
우는 완강하게 듣지 않고 도리어 권위로 얕본다 여기고
마침내 무리를 거느리고 유호씨를 수차례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모산(茅山)의 진지에서 죽었다.
이리하여 하(夏)의 무리들이 분하고 슬퍼하며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만 명이 되었다.
이는 모두 우와 더불어 치수(治水) 하던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啓)가 이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으로 쳐들어왔다.
유호씨의 군은 수천에 불과하였으나
하군(夏軍)은 싸울 때마다 패하여 아무런 전공도 없었다.
계(啓)가 마침내 두려워서 진을 물리고
다시는 거병하지 못하니 그 무리들이 격앙되었다.
유호씨가 하(夏)의 무리들이 눈멀음을 보고
속히 고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장차 서쪽과 남쪽의 여러 족속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가므로 그 읍이 스스로 없어졌다.
[원문]
有戶氏 如是??告戒 勸廢諸法而 復歸於符都 禹 頑强不聽 反爲威侮 乃率衆
유호씨 여시정녕고계 권폐제법이 복귀어부도 우 완강불청 반위위모 내솔중
攻有戶氏 數次未勝 竟死於茅山之陣 於是 夏衆悲憤 願死者數萬 此盖與禹治水
공유호씨 수차미승 경사어모산지진 어시 하중비분 원사자수만 차개여우치수
之徒也 禹之子啓 率此大軍 進擊有戶氏之邑 有戶氏之軍 不過數千 然 夏軍 戰
지도야 우지자계 솔차대군 진격유호씨지읍 유호씨지군 불과수천 연 하군 전
則必敗 一無擧績 啓 遂懼而退陣 不復再擧 其衆激昻 於是 有戶氏 見夏衆之爲
즉필해 일무거적 계 수구이퇴진 불복재거 기중격앙 어시 유호씨 견하중지위
?盲 以爲不可速移 將欲敎西南諸族 率其徒而去 其邑自廢
고맹 이위불가속이 장욕교서남제족 솔기도이거 기읍자폐
[해설]
1. 모산(茅山)
모산은 남경(南京) 동남쪽의 강소성(江蘇省) 진강시(鎭江市) 구용(句容)에 위치한다. 중국도교 상청파(上淸派)의 발원지이자 모산종(茅山宗)의 요람이다. 일설에 절강성(折江省)의 회계산(會稽山)을 모산(茅山)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인 우적도(禹迹圖, 1136년작, 다음카페 향고도/중국고지도/우적도 탁본 참조)에 모산(茅山)과 회계산(會稽山)이 모두 나오고 있으므로 모산과 회계산은 별개의 산으로 보인다.
우(禹)는 헛된 오행설과 제왕지도의 패권주의를 버리고 부도(符都)로 되돌아오라는 유호씨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치고 부도와 대립하다가 모산의 진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기> 하본기에는 우(禹)가 제위에 오른지 10년 되는 해에 동쪽으로 순행하다가 회계(會稽)에 이르러 붕어했다고 적고 있다.
2. 계(啓)
우(禹)의 아들로 우임금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사기> 하본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十年 帝禹東巡狩 至于會稽而崩 以天下授益 三年之喪畢 益讓帝禹之子啓 而
십년 제우동순수 지우회계이붕 이천하수익 삼년지상필 익양제우지자계 이
?居箕山之陽 禹子啓賢 天下屬意焉 及禹崩 雖授益 益之佐禹日淺 天下未洽
벽거기산지양 우자계현 천하속의언 급우붕 수수익 익지좌우왈천 천하미흡
故諸侯皆去益而朝啓 曰 “吾君帝禹之子也” 於是啓遂卽天子之位 是爲夏后帝
고제후개거익이조계 왈 “오군재우지자야” 어시계수즉천자지위 시위하후제
啓 夏后帝啓 禹之子 其母塗山氏之女也 有扈氏不服 啓伐之 大戰於甘 ..... 中
계 하후제계 우지자 기모도산씨지녀야 유호씨불복 계벌지 대전어감 ..... 중
略 ...... 遂滅有扈氏 天下咸朝“
략 ...... 수멸유호씨 천하함조“
“(제위에 오른 지) 10년 후 우임금은 동쪽을 순수하다가 회계(會稽)에 이르러 세상을 떠났다. 우는 천하를 익에게 넘겨주었다. 3년 상이 끝나자 익은 우임금의 아들 계(啓)에게 제위를 양보하고 기산(箕山)으로 피하여 살았다. 우의 아들인 계가 현명하여 천하의 마음이 그에게 돌아갔다. 우임금이 돌아가시면서 익에게 천하를 넘겨주었으나, 익이 우를 도운 기간이 적으므로 천하가 흡족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제후들이 모두 익을 떠나서 계를 알현하며 말하기를 “우리들의 왕 우임금의 아들이시다.”고 하였다.
결국 계가 천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바로 하나라의 계임금이다. 계임금은 우의 아들로, 그의 어머니는 도산씨의 딸이다. 유호씨가 복종하지 않자 계가 토벌하려고 감(甘)에서 크게 싸웠다 ...... 중략 ..... 마침내 유호씨를 멸망시키니 천하가 모두 알현하러 왔다.“
3. 유호씨지읍(有戶氏之邑)
유호씨의 나라는 섬서성 장안부근에 있었다. 우(禹)가 하나라를 세울 당시에 단군임검의 특사로 파견된 유호씨는 서쪽에 거처하면서 묘예(苗裔)를 수습하고, 소부와 허유의 고향과 통하며 서남의 여러 족속들과 연결하여 큰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부도지 제20장 해설 참조)
유호씨의 연합세력인 소부와 허유의 고향은 낙양(洛陽)근처인 숭산(崇山)의 남쪽으로 기산(箕山)이 있는 곳이다(부도지 제17장 해설 참조). 위의 <사기> 하본기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우임금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익(益)이 우임금의 아들 계(啓)에게 제위를 양보하고 피한 곳도 바로 기산(箕山)으로 소부와 허유의 고향임을 알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유호씨의 연합세력은 장안과 낙양을 중심으로 소부와 허유 및 우임금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익(益) 등 쟁쟁한 인물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파란색원 왼쪽부터 유호씨읍, 기산, 도산, 모산, 회계산
서경(書經)의 감서(甘誓)에 우임금의 아들 계(啓)가 감(甘) 땅으로 유호씨를 정벌하러 가는 내용이 나온다. 중요한 구절이 있어서 전문을 옮긴다.
?大戰于甘 乃召六卿 王曰嗟六事之人 予誓告汝 有扈氏 威侮五行 怠棄三正
대전우감 내소육경 왕왈차육사지인 여서고여 유호씨 위모오행 태기삼정
天用?絶其命 今予 惟恭行天之罰 左不攻于左 汝不恭命 右不攻于右 汝不恭命
천용초절기명 금여 유공행천지벌 좌불공우좌 여불공명 우불공우좌 여불공명
御非其馬之正 汝不恭命 用命 賞于祖 不用命 戮于社 予則?戮汝?
어비기마지정 여불공명 용명 상우조 불용명 육우사 여측노륙여
?감(甘)에서 크게 싸울 때에 육경(六卿)을 부르시다. 왕이 가라사대 아, 육사의 사람들아! 내 맹세하여 그대들에게 고하노라. 유호씨가 오행을 으르고 업신여기며 삼정을 게을리 하고 버리기에 하늘이 그 명을 빼앗아 끊으시니 이제 나는 하늘의 벌을 공손히 행할지니라.
왼쪽이 왼쪽을 다스리지 아니하면 그대는 명에 공손하지 않음이며, 오른쪽이 오른쪽을 다스리지 아니하면 그대는 명에 공손하지 않음이며, 마부가 그 말을 바르게 하지 아니하면 그대는 명에 공손함이 아니니라.
명으로써 하는 이는 조묘(祖廟)에서 상을 주고, 명으로 하지 않은 이는 사직(社稷)에서 죽이되, 내 너의 처자식까지 죽이리라.(夏書 제2편 甘誓 1징~5장, 작성자 법고창신 참조)?
위 감서(甘誓)에서 전쟁의 이유가 “유호씨가 오행(五行)을 으르고 업신여기며 삼정(三正)을 게을리 하고 버리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삼정(三正)은 요?순?우의 역(曆)의 정월을 말한다.(부도지 제22장 해설 참조)
바로 오행설과 역법의 차이로 인한 갈등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도지에서 전하는 내용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감서(甘誓)의 특이한 점은 전쟁하러 간 내용은 있는데 전쟁의 승패에 대한 기록은 없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계가 마침내 유호씨를 멸망시키니 천하가 모두 알현하러 왔다.“ 고 적었으며, 부도지는 ”하군(夏軍)은 싸울 때마다 패하여 아무런 전공도 없었다.“고 상반된 기록을 하고 있다.
사마천의 주장처럼 “계가 유호씨를 멸망시켰다”면 중국측 기록인 서경(書經)의 감서(甘誓)가 이를 당연히 기록하였을 것이므로 부도지의 기록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4. 기읍자폐(其邑自廢)
유호씨가 하(夏)의 무리들이 눈멀음을 보고 속히 고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장차 서쪽과 남쪽의 여러 족속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가므로 그 읍이 스스로 없어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호씨가 우(禹)에게 그토록 간곡하게 오행설의 잘못을 지적하고, 제왕지도의 패권주의와 짐승의 역인 낙서(洛書)의 역법을 버리고 단군임검의 부도(符都)로 복귀하도록 간곡하게 설득하였으나, 우(禹)가 끝내 듣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일으켜 유호씨를 공격하다가 모산(茅山)의 진지에서 죽었다. 우의 아들 계(啓) 또한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유호씨를 수차례 공격하였으나 모두 패하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夏)나라 민중들은 오히려 분개할 뿐 부도(符都)로 복귀하려고 하지 않았다.
유호씨가 하(夏)나라를 무력으로 제압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도(符都)의 통치이념은 사해평등과 민족자치였다. 하(夏)나라 민중들이 부도(符都)로 복귀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유호씨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夏)나라 민중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군임검의 부도와 중화족의 요임금?순임금?우임금과의 전쟁은 4,000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것은 인간을 지배하는 이성과 욕망의 전쟁이었다. 단군임검의 부도는 인간의 드높은 이성에 근거하여 사해평등과 민족자치를 추구하였다. 반면 요?순?우는 인간의 불타는 욕망에 근거하여 중화제일의 패권주의를 추구하였다. 역사는 반복된다. 수천 년 전에 일어났던 단군임검의 부도와 중화족의 요임금?순임금?우임금과의 전쟁은 그 이후의 인류역사에도 깊이 투영되어 왔다. 부도의 진리가 성하였을 때 인류는 한가족으로 평화를 누릴 수 있었으며, 반면에 패권주의가 성하였을 때 인류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신음하였던 것이다. 부도의 역사는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끝>
제25장. 월식과 성생의 땅에 전도(傳道)
이로부터 천산 남쪽의 태원(太原)지역이
시끌벅적하여 주인이 없는 것 같았다.
왕이나 백성들도 모두 눈이 멀어 어둠이 중첩되니
강자는 위가 되고 약자는 아래가 되었다.
왕과 제후들에게 나라를 봉하는 풍조로
민중들의 삶을 억누르는 폐단이 널리 퍼지니 고질병이 되었다.
마침내 서로 침범하고 빼앗으며 무리지어 생명을 해치므로
세상에 하나의 이로움도 없었다.
이러므로 하나라와 은나라가 모두 그 법으로 망하였으나
끝내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이는 부도(符都)와 스스로 끊어짐으로서
진리의 도를 듣지 못한 까닭이다.
어느덧 유호씨가 그 무리를 거느리고
월식(月息)과 성생(星生)의 땅으로 들어가니
바로 백소씨와 흑소씨의 고향이었다.
양 소(巢)씨의 후예들이 오히려
소 만드는 풍습을 잃지 않고 높은 탑과 계단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천부(天符)의 본음(本音)을 잃어버리고
탑을 만드는 유래를 알지 못하였다.
도(道)는 이상하게 그릇 전해지고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며 정벌을 일삼았다.
마고의 일은 거의 이상야릇하고
행적이 없어져 허망하게 되었다.
유호씨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마고의 도와 천부(天符)의 이치를 말하였으나
무리들이 모두 의심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직 옛일을 아는 사람이 송구히 나와서 환영하므로
유호씨가 근본이치를 말하여 전하였다.
[원문]
自是 天山之南 太原地域 紛紛然??然若無主人 所謂王者爲? 所謂民者爲盲 暗黑重疊
자시 천산지남 태원지역 분분연엄엄연약무주인 소위왕자위고 소위민자위맹 암흑중첩
而 强者爲上 弱者爲下 王侯封國之風 制壓生民之弊 蔓延成痼 遂至於自相侵奪 徒殺生靈
이 강자위상 약자위하 왕후봉국지풍 제압생민지폐 만연성고 수지어자상침탈 도살생령
一無世益 以故 夏殷 皆亡於其法而 終不知其所以然 此自絶符都 未聞眞理之道故也 於焉
일무세익 이고 하은 개망어기법이 종부지기소이연 차자절부도 미문진리지도고야 어언
有戶氏率其徒 入於月息星生之地 卽白巢氏黑巢氏之鄕也 兩巢氏之裔 猶不失作巢之風 多
유호씨솔기도 입어월식성생지지 즉백소씨흑소씨지향야 양소씨지예 유부실작소지풍 다
作高塔層臺 然 忘失天符之本音 未覺作塔之由來 訛轉道異 互相猜疑 爭伐爲事 麻姑之事
작고탑층대 연 망실천부지본음 미각작탑지유래 와전도이 호상시의 쟁벌위사 마고지사
殆化奇怪 泯滅於虛妄 有戶氏周行諸域 說麻姑之道 天符之理 衆皆訝而不受 然 唯其典古
태화기괴 민멸어허망 유호씨주행제역 설마고지도 천부지리 중개아이불수 연 유기전고
者 悚然起來而迎之 於是 有戶氏 述本理而傳之
자 송연기래이영지 어시 유호씨 술본리이전지
[해설]
1. 천산지남(天山之南) 태원지역(太原地域)
중국고지도들을 찾아보면 천산(天山)이 3곳으로 나타난다. 천산(天山)산맥, 기련(祈連)산맥, 음산(陰山)산맥 등에 천산(天山)이 보인다.(부도지 제17장 해설 참조)
태원(太原)이란 지명은 두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현재 산서성(山西省)의 성도(省都)인 태원이다. 분하(汾河) 상류의 동쪽과 서쪽이 태행산맥(太行山脈)과 여양산맥(呂梁山脈)에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한다.
둘째, 주(周)나라 시대에 섬서성의 경수(經水)와 낙수(落水) 일대를 태원이라 했다.
시(詩) ‘소아(小雅)’에서 “험윤을 무찔러 태원(太原)에 이르렀다.”고 한다. 즉 태원은 융(戎)이 살던 곳으로 주(周) 선왕이 백성을 헤아리던 땅이다(《?小雅》“薄伐?? 至于太? ?太?戎所居 周宣王料民之地). 견융(犬戎)은 춘추시대 이국(夷國)으로 견이(?夷)또는 곤이(昆夷)로도 불렸다. 지금의 섬서성 봉상현 북쪽에 있다.(犬戎 在春秋時夷國 亦名?夷 又名昆夷 在今陝西鳳翔縣北)(중국력사지명 대사전 太原 참조)
그러나 부도지에 나오는 태원은 특정지명보다는 글자 뜻 그대로 ‘너른 벌판’으로 음산(陰山)산맥 남쪽의 섬서성 일대와 하토(夏土)의 중심지인 하남성 일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군임검의 특사로 파견된 유호씨가 섬서성 장안부근에 머물면서, 하남성의 하토(夏土)에서 일어난 요?순?우의 반란을 바로잡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으나 하(夏)나라 민중들이 눈멀어 속히 고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유호씨가 서남쪽의 여러 족속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장안을 떠나자 하남성에 머물렀던 하족(夏族)들이 섬서성 일대까지 세력을 확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태원(太原)의 위치(파란색 원, 섬서성 태원과 산서성 태원)
2. 왕후봉국지풍(王侯封國之風)
왕과 제후들에게 나라를 봉하는 풍조를 말한다. 단군임검의 세계일가(世界一家)에 반기를 든 요(堯)임금이 멋대로 천하를 구주(九州)로 나누고 제후들에게 나누어 준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부도지는 이러한 풍조로 인하여 민중들의 삶을 억누르는 폐단이 널리 퍼지고, 마침내 서로 침범하고 빼앗으며 무리지어 생명을 해치므로 세상에 하나의 이로움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도지는 우리에게 커다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나라가 왜 필요한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나라가 필요한가? 아니면 나라가 있기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일이 생겨났는가?
우리는 지금 남북으로 갈라져서 서로를 지키기 위하여 막대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엄청난 국방비를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남북이 통일된다면 어떻게 될까? 군사력을 대폭 줄여도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가 나누어질수록 더 많은 군사력이 필요해짐을 알 수 있다. 일반 국민들은 통일이 되면 훨씬 유리한데 왜 통일이 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기득권 세력 때문이다. 통일이 되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일반 민중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들이 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3. 월식성생지지(月息星生之地)
월식(月息)의 땅은 파미르고원 서쪽의 유럽지역을 말하며, 성생(星生)의 땅은 파미르고원 남쪽으로 인도와 동남아지역을 말한다. 유호씨가 부도(符都)의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수많은 무리를 이끌고 인도와 유럽 등 대륙 전역을 돌아 다녔다는 놀라운 기록이다. 당시에는 국경이 없었으므로 민족들의 이동이 그만큼 자유로웠으며,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먼 지역 간에도 인종적?문화적인 교류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3. 고탑층대(高塔層臺)
지구라트나 피라미드 또는 불가의 탑의 유래를 밝혀주는 귀중한 대목이다. 높은 탑과 계단이 마고성의 소(巢)에서 유래하였으며, 그 목적이 천부의 본음을 가까운 데서 듣기 위한 것이었다면, 《천부경》은 천지창조의 소리를 적은 경전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이 말은 사라져버린 고대문화의 정체를 밝혀주는, 이 세상의 남은 단 한 마디의 증언이다.(해설 <서양문화에 끼친 영향> 참조)
4. 마고지도(麻姑之道)
마고의 도(道)는 증리해혹(證理解惑) 수증복본(修證復本)이라 할 수 있다. “진리를 깨달아 의혹을 풀고, 깨달음을 실천하여 근본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이를 해혹복본(解惑復本)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의혹을 풀고 근본자리로 되돌아간다” 는 것이다. 부도지 전편을 통하여 흐르는 철학이 바로 해혹복본(解惑復本)이다. 의혹은 하늘을 가리는 먹구름과 같아서 본래의 푸른 하늘을 볼 수 없게 한다. 의혹이 만병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근본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본성(本性)이자 우주만물이 하나가 되는 곳이다. 근본자리에서 우리는 우주의 주재자인 율려(律呂)와 하나 되어 우주의 운행질서에 동참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잃어버린 낙원인 마고성(麻姑城)을 회복하는 것이다.
부도지 제4장에서 마고성(麻姑城) 사람들의 생활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성 안의 사람들은 품성이 순정하여 능히 조화를 알며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고 밝았다.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하늘 소리를 온전히 듣고
능히 도약하여 날아다니므로 오고 감이 자유로웠다.
임무를 다하면 금가루로 변하여
그 성체(性?)를 보존하였다.
혼이 알므로 소리를 내지 않고도 능히 말하며
넋이 움직이니 보이지 않고도 능히 갈 수 있었다.
땅기운 중에 퍼져 살면서 그 수명이 한량없었다.“
5. 천부지리(天符之理)
천부지리는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진리를 말한다.
천부(天符)의 이치는 하도(河圖), 천부경(天符經), 부도역(符都曆) 등이다. 하도(河圖)는 하늘의 뜻을 도형화한 것이며, 부도역(符都曆)은 하늘의 뜻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천부경(天符經)은 하늘의 뜻을 81자의 한자(漢字)로 쓴 경(經)이다.
6. 전고자(典古者)
전고자는 옛일을 가르치는 사람을 말한다. 옛일을 가르치는 사람이므로 유호씨가 전하는 마고의 일을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때 유호씨가 전수한 단군임검의 부도(符都) 진리가 후일 인도나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발생한 불교나 기독교 등 각종 종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끝>
제26장. 천부(天符)의 봉쇄
임검씨가 유호씨의 행적을 듣고 그 길을 장하게 여겨
유호씨 족속으로 하여금 교부(敎部)에 취업하여 살게 하였다.
이때에 임검씨가 하토(夏土)의 형세를 심히 걱정하며
마침내 입산하여 해혹복본(解惑復本)의 도를 닦는데 전념하였다.
임검씨의 아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천지가 하나의 이치이며 인생이 한 족속임을 밝혔다.
부모와 조상의 도를 크게 일으키고 천웅(天雄)의 법을 널리 행하며
인간세상의 증리(證理)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늘 운해(雲海)의 족속들과 가까이 하며
하토(夏土)가 하나로 돌아오도록 애썼으나
이도(異道)가 점점 성하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天符)를
아들인 읍루씨(?婁氏)에게 전하고 입산하였다.
읍루씨(?婁氏)가 태어나면서 큰 자비심의 소망으로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았다.
하족(夏族)이 도탄에 빠지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진리가 거짓의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비통히 여겼다.
마침내 천부(天符)를 밝은 땅의 단(壇)에 봉쇄하고
입산하여 복본(復本)의 큰 서원을 닦는데 전념하며
백 년 동안 나오지 않으므로 남은 무리들이 목 놓아 슬피 울었다.
임검씨가 후천말세의 초에 태어나
사해의 장래를 미리 살피고 부도(符都) 건설의 본을 보이시니
천 년 동안 그 공로가 크고도 지극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천부(天符)의 전함이 끊어지니
마고성에서 갈라져 살아 온 이래로 황궁 유인 환인 환웅
임검 부루 읍루씨의 7세 칠천년간 천부(天符)가 전해졌다.
[원문]
壬儉氏 聞有戶氏之行 壯其途 使有戶氏之族 就於敎部而居之 是時 壬儉氏 甚
임검씨 문유호씨지행 장기도 사유호씨지족 취어교부이거지 시시 임검씨 심
憂夏土之形勢 遂入山專修解惑復本之道 壬儉氏之子夫婁氏 繼受天符三印 證天
웋하토지형세 수입산전수해혹복본지도 임검씨지자부루씨 계수천부삼인 증천
地之爲一理 人生之爲一族 大興父祖之道 普行天雄之法 專念人世證理之事 尙
지지위일리 인생지위일족 대흥부조지도 보행천웅지법 전념인세증리지사 상
緊密雲海之族 慾試夏土之歸一 異道漸盛 未得遂意 夫婁氏傳符於子?婁氏 入
긴밀운해지족 욕시하토지귀일 이도점성 미득수의 부루씨전부어자읍루씨 입
山 ?婁氏生而有大悲之願 繼受天符三印 哀憫夏族之陷於塗炭之中 悲痛眞理之
산 음루씨생이유대비지원 계수천부삼인 애민하족지함어도탄지중 비통진리지
墮於詐端之域 遂封鎖天符於明地之壇 乃入山專修復本之大願 百年不出 遺衆
타어사단지역 수봉쇄천부어명지지단 내입산전수복복지대원 백년불출 유중
大哭 壬儉氏 生於後天末世之初 豫察四海之將來 示範符都之建設 千年之間 其
대곡 임검씨 생어후천말세지초 예찰사해지장래 시범부도지건설 천년지간 기
功業 大矣至矣 至是符傳 廢絶 麻姑分居以來 黃因桓雄儉夫婁七世符傳七千年
공업 대의지의 지시부전 폐절 마고분거이래 황인환웅검부루칠세부전칠천년
[해설]
1. 부루씨(夫婁氏)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의하면 고조선은 2096년간(BC 2333 ~ BC 238) 47명의 단군이 다스렸다. 부루씨(夫婁氏)는 2세 부루(扶婁) 단군이다. 가을에 햇곡식을 항아리(단지)에 담아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어 집안의 안녕을 비는 항아리를 부루단지(扶婁壇地)라 한다. 지금도 이 풍속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물을 잘 다스려 백성들이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지으며 살 수 있게 해준 부루 임금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서라 한다.(고동영 저 환단고기 86쪽 참조)
2. 읍루씨(?婁氏)
21세 소태(蘇台) 단군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군임검이 BC 2333년에 고조선을 세워 세상을 다스린 지 일천여년이 지난 21세 소태(蘇台) 단군(BC 1337 ~ BC 1286) 시대에 고조선에서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소태 단군을 보좌하던 우현왕(右賢王) 색불루가 쿠테타를 일으켜 단군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고조선의 부도(符都)는 사해평등(四海平等)과 민족자치의 통치이념에 따라 단군은 모든 민족들의 만장일치 추대로 결정되어 왔다. 그런데 22대 색불루 단군의 쿠테타를 통한 집권은 부도(符都)의 진리를 정면으로 허물어뜨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로 인하여 황궁씨로부터 7,000여 년간 이어오던 부도(符都)의 진리가 맥이 끊어지게 된다.
이때의 일을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47년(경인)에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이미 귀방(鬼方)을 이기고 또 다시 대군을 이끌고 색도(索度)?영지(令支)를 침공하다가 우리에게 크게 패하여 화친을 청하고 공물을 보내왔다.
49년(임진)에 개사원(蓋斯原)의 욕살 고등(高登)이 은밀히 군사를 일으켜 귀방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이에 일군(一群)?양운(養雲) 두 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이때 고등이 많은 군사들과 손을 잡고 서쪽 땅을 침공하여 차지하므로 그 세력이 매우 강하였다. 이리하여 고등이 사람을 보내어 우현왕(右賢王)이 되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임금이 이를 꺼려 허락하지 않았다. 거듭 청하므로 할 수 없이 허락하여 이름을 두막루(豆莫婁)라 하였다.
52년(을미)에 우현왕 고등이 죽고 그의 손자 색불루(索弗婁)가 우현왕이 되었다.
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다가 남쪽 해성(海城)에 이르러 그곳 할아버지들과 함께 하늘에 제사지내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이어 곧 오가를 불러 이들과 임금 자리를 물려주는 일을 의논하고, 늙어서 부지런히 일할 수 없다고 하며 나라 다스리는 일을 서우여(徐于餘)에게 맡기려고 하였다. 이에 살수(薩水) 백 리를 묶어 그가 다스리게 하고 호를 내려 기수(奇首)라 하였다.
우현왕이 이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임금의 결정을 중지하게 하였으나 임금이 끝내 이를 듣지 않았다. 이에 우현왕이 좌우 신하와 사냥꾼 수천을 거느리고 부여의 신궁(新宮)에서 즉위하고 말았다. 임금이 할 수 없이 옥책국보(玉冊國寶)를 우현왕에게 전하고 서우여를 폐하여 서민이 되게 하고는 아사달에 숨어 살다가 세상을 떴다.“(고동영 저 환단고기 64~65쪽 참조)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마한세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해에 고등(高登)이 반란을 일으켜 개성(開城)을 점거하고 임금의 명을 거역하였다. 이에 마한이 군사를 거느리고 진격하여 홍석령(紅石嶺) 경계에 이르렀으나 임금이 고등을 우현왕(右賢王)으로 삼았다는 소식을 듣고 토벌을 중지하였다.
을미년에 임금이 해성(海城) 욕살 서우여(徐于餘)에게 제위를 물려주려고 하였다. 마한이 이를 말렸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색불루(索弗婁)가 제위에 오르자 마한이 군사를 이끌고 해성에서 싸웠으나 패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단군 색불루가 아버지의 공을 이어 모든 병권을 장악하게 되자 진한이 저절로 무너지고 마한과 번한 역시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패망하였다. 이렇게 되어 먼저 임금은 사람을 시켜 옥책(玉冊)과 국보(國寶)를 전하고 나라를 물려주었다. 새 임금이 백악산(白岳山)에 도읍하자 여러 욕살들이 안 된다고 고집하였으나 여원흥(黎元興)과 개천령(蓋天齡) 등이 먼저 임금의 조서를 보여주며 타일렀다. 그러자 욕살들이 모두 복종하게 되었다.”(고동영 저 환단고기 172~173쪽 참조)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번한세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때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였다. 고등이 이 소식을 듣고 상장 서여(西余)와 함께 그를 공격하고 추격하여 색도(索度)에 이르자 군사를 풀어 닥치는 대로 불 지르고 약탈해 가지고 돌아왔다. 서여는 북박(北?)을 습격하여 격파하고 군사를 탕지산(湯池山)에 주둔시키고 있다가 자객을 보내 소정(小丁)을 죽인 후 무기를 싣고 돌아왔다.
단군 색불루(索弗婁)가 처음 삼한을 합쳐 나라의 제도를 크게 고쳤다. 은나라 왕 무정(武丁)의 사신이 와서 조공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보다 앞서 서우여(徐于餘)를 폐하여 서민이 되게 하자 서우여는 몰래 좌원(坐原)으로 돌아가 사냥하는 집 수천 호와 모의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개천령(蓋天齡)이 소식을 듣고 이를 치다가 패하여 진중에서 죽었다. 드디어 임금이 몸소 삼군을 거느리고 나아가 그들을 토벌하였다. 이에 앞서 사람을 보내 항복하기를 권하면서 비왕(裨王)으로 봉할 것을 약속하고 타이르자 약속을 따랐다. 마침내 서우여를 번한으로 임명하였다”(고동영 저 환단고기 181~182쪽 참조)
3. 봉쇄천부(封鎖天符)
21세 소태(蘇台) 단군은 우현왕(右賢王) 색불루가 쿠테타를 일으켜 22세 단군의 자리를 차지하자 천부(天符)를 밝은 땅의 단(壇)에 봉쇄하고 말았다. 부도의 진리를 허물어뜨린 쿠테타 세력에게 천부(天符)를 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위의 2번 해설에서 보듯이 <환단고기>는 21세 소태(蘇台) 단군이 22세 색불루 단군에게 옥책국보(玉冊國寶)를 넘겨주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후로도 47세 단군까지 일천여년(BC 1285 ~ BC 238)을 계속 이어가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부도지는 이때에 이르러 천부(天符)의 전함이 끊어졌다고 하였다.
단군임검이 부도를 건설하고 사해평등(四海平等)과 민족자치(民族自治)의 통치이념에 따라 세상을 다스린 이래로 일천여년 동안 인류는 한 가족으로써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신시(神市)?조시(朝市)?해시(海市)의 모임을 통하여 인류가 마고성의 낙원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을 다졌던 것이다. 비록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등의 반란이 있었지만 그것은 하남성과 섬서성 등 대륙의 일부에 국한된 사건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현왕(右賢王) 색불루(索弗婁)에 의한 쿠테타는 부도의 중심부에서 부도의 진리를 무참하게 허물어 버리는 사건이었다. 이리하여 마고성의 낙원을 향한 인류의 꿈은 멀어지고 세상은 약육강식의 패권주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천부(天符)를 봉쇄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과 진리의 역사가 끝나고 투쟁과 거짓의 역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4. 유중대곡(遺衆大哭)
천부(天符)를 봉쇄함으로써 부도의 꿈이 무너져 버렸다.
마고성의 낙원을 향한 인류의 꿈이 좌절되었다.
마고성은 우리 모두의 고향이다. 사랑과 진리로 충만한 그 곳!
모든 욕망의 사슬이 끊어지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비상하는 그 곳!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7,000년을 간절히 이어 온 인류의 꿈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도의 남은 무리들이 목 놓아 슬피 울었다.
그들의 울음 너머로 약육강식의 처절한 투쟁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5. 황인환웅검부루(黃因桓雄儉夫婁)
인류가 마고성에서 헤어진 이래로 7,000년 동안 부도의 진리를 계승해 오신 분들로 황궁씨(黃穹氏), 유인씨(有因氏), 환인씨(桓因氏), 환웅씨(桓雄氏), 임검씨(壬儉氏), 부루씨(夫婁氏), 읍루씨(?婁氏)를 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