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 복희씨(太皞伏羲氏) 또는 포희씨(庖犧氏)는 중국의 삼황중의 하나라고 한다.
“복희씨伏羲氏는 중국 민족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신화적 인물로 복희伏羲 또는 복희伏犧, 포희包羲, 포희包犧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전설에서 복희는 인류에게 닥친 대홍수 시절에 표주박 속에 들어가 있던 덕분에 되살이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로 복희라고 했다고 전한다.”
일반적으로 ‘복희’란 희생(제사에 쓰이는 짐승)을 길러 붙여진 이름이다. 성씨는 풍(風)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복희는 중화민족의 지혜를 밝혀 준 선구자이고, 인류가 원시상태에서 문명시대로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개척자라는 것이다.
그는 음양의 변화 원리에 근거하여 팔괘(八卦)를 창제하고, 8종의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부호를 사용하여 천지간의 만사만물을 개괄하였다고 한다.
팔괘가 나타내는 여덟가지 부호는 각각 하늘(天), 땅(地), 물(水), 불(火), 바람(豊), 천둥(雷), 산(山), 못(澤)을 대표하는데, 복희는 이 팔괘를 이용하여 길흉화복을 점쳐 신의 계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랬다고 한다.
이른바 희역 혹은 8괘의 역학의 창시자라는 데는 한족의 일치된 주장이다.
이것은 바로 세계에 대한 초보적 인식 방식으로 여기에 한족 철학의 싹이 배태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 혹은 동양 문화의 중요한 특징이 여기에서 마련되었으며, <<주역>>의 사상적 기초가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더나가서 그는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을 보고 그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고기잡이와 목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또 "슬(瑟)"이라는 악기와 <가변(駕辯)>이라는 악곡을 만들었다. 이는 그당시에 인류문화의 서광을 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대(漢代)의 고전 ≪회남자(淮南子)≫「천문훈(天文訓)」에 의하면, 후대에 태호 복희씨는 동방의 천제가 되었으며, 나무의 신 구망(句芒)이 그를 보좌하였다고 한다.
복희는 손에 컴퍼스를 들고 봄과 생명을 관장하였다.
그가 나타날 때는 대지가 다시 소생하고 만물이 생장하는 봄이 도래하였다. 고대의 중국학자들은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라는 다섯 가지 사물로써 만물의 기원과 변화를 설명하였는데, 역대 제왕들은 항상 그 중에 하나를 취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맹춘기(孟春紀)」 고유주(高誘注)에 의하면, 복희는 살아서는 목덕(木德)으로써 천하의 왕이 되었고, 죽어서는 그를 동방에서 제사지내어 목덕(木德)의 천제가 되었다고 한다. 도교에서도 그를 동방의 천제라 일컫는다.
전설상으로는 원래 태호와 복희가 별개의 인물이었는데 선진(先秦)의 사관이 편찬한 ≪세본(世本)≫에서 처음으로 그 둘을 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태호 복희씨가 죽은 후에 그의 자손들은 회화(淮河) 북쪽 기슭을 따라서 동으로 뻗어나가, 황하 하류를 따라서 제수(濟水) 유역 일대를 장악하였다.
그러나 태호 복희는 여와처럼 고대 민간 신앙의 신화일 뿐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복희 상상도가 출토된 신장의 경우 본래 한족 지역이 아니며, 한족 이외에 남방 소수 민족들도 복희 신화를 가지고 있어, 고대 씨족 사회에 널리 사용된 민간 신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당나라 시대 간행된 역경에 따르면 복희가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으나, 복희가 살았다는 기원전 25세기의 문자나 기호가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팔괘는 주나라 초기 점술가들이 제안하였고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여러 신앙과 풍습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여, 사서의 내용들과는 실제로는 다른 면도 있다.
글자를 만들었다고 믿어지기도 하지만, 역시 복희가 살았던 시대의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전설에 의하면 100년 이상 살았다고 전해진다. 무덤은 화이양현 북쪽 3리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다른 전설 시대에 나오는 인물 무덤처럼 실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호복희가 만든 희역은 주역8괘의 시조라고 하니 단순하게 전설적인 인물로만 취급하기는 어렵다.
환웅이나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하여 단군왕검을 신화라고 치부하는 일과 같은 태도와 같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동양문명사에서 태호복희가 의미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단 한장의 그림으로 표현할 수가 있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서양의 컴퍼스와 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것이 북두칠성이다.
수학이나 수의 상징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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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복희의 이름과 출생지의 유래
1. 《한서 율력지(漢書 律歷志)》: 태호(太昊)가 그물을 만들어 사냥을 하여 제물용 희생양을 잡았기 때문에 천하 사람들이 포희씨(炮犧氏)라고 말하였다.
(太昊作網罟, 以佃獵取犧牲, 故天下號曰炮犧氏.) (《한서(漢書)》중화서국 1962년판, 제1011쪽.)
2. 《풍속통의권상(風俗通義卷上)》: 복(伏)은 구분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며, 희(戱)는 공헌이며 법이다; 복희(伏犧)가 처음으로 팔괘(八卦)를 구분하여 천하를 변화시켰다. 천하의 법칙이 모두 복종하는데 공헌하였으므로 복희(伏羲)라고 하였다.
(伏者別也, 變也, 戱者獻也法也; 伏犧始別八卦以變化天下. 天下法則, 咸伏貢獻, 故曰伏犧也.) (《총서집성(叢書集成)》중화서국 1985년판《풍속통의(風俗通義)》 제3쪽.)
3. 《습유기(拾遺記)》: 포(庖)는 포괄하는 것이다. 이에 온갖 사물의 형상을 포괄함으로써 희생양을 신에게 바쳤는데, 백성들은 그 신성함에 탄복하여 포희(庖犧)라고 하였으며 또한 복희(伏犧)라고도 불렀다. 혼돈의 성질을 변화시켜 그 가르침을 온화하고 편안하게 하였으므로 복희(宓犧)라고도 했다.
(庖者包也. 言包含萬象, 以犧牲登薦于神, 民服其聖, 故曰庖犧, 亦謂伏犧, 變混沌之質, 文宓其敎, 故曰宓犧.) (《백자전서(百子全書)》절강출판사 영인 《습유기(拾遺記)》권1)
4. 《제왕세기(帝王世紀)》: 희생을 취하여 주방을 가득 채워 천하를 먹였으므로 포희씨(庖犧氏)라고 하여 희황(犧皇)이 되었는데, 후세에 음이 잘못되어 복희(伏犧)라고 부르거나 혹은 복희(虙犧)라 불렀으며 호는 웅황씨(雄皇氏)라 했다.
(取犧牲以充庖廚, 以食天下, 故號曰庖犧氏, 是爲犧皇, 後世音謬, 故謂之伏犧, 或謂之虙犧, 一號雄皇氏.) (요녕교육출판사1997년판 “신세기만유문고(新世紀萬有文庫)” 《제왕세기(帝王世紀)》 제2쪽.)
5. 《삼황본기(三皇本紀)》: 그물을 엮어 사냥과 고기잡이를 가르쳤으므로 복희씨(宓犧氏)라고 했으며, 희생 가축을 길러 주방을 채웠으므로 포희(庖犧)라고 했다.
(結網罟以敎佃漁, 故曰宓犧氏; 養犧牲以庖廚, 故曰庖犧.) (《사기(史記)》중화도서관 간행 정교(精校) 단구본(斷句本). 《이십오사(二十五史)》상해고적출판사 1986년판 제361쪽.)
6. 《삼황본기자주(三皇本紀自注)》: 동방에 위치하고 태양과 같이 밝으므로 태호(太皞)라고 하였는데, 호(皞)는 밝음이다.(位吊方, 象日之明, 故稱太皞, 皞, 明也) (《사기(史記)》정교(精校) 단구(斷句) 방전본(仿殿本), 중화도서관 간행. 《이십오사(二十五史)》상해고적출판사 1986년판 제361쪽.)
7. 《예기 월령(禮記 月令)》정현(鄭玄) 주(注): 이는 훌륭한 군주이고 목관의 신하이다. 자고이래로 덕을 드러내고 공을 세운 자 대호 복희씨이다. 구망은 소호씨의 아들로 중이라 하였고 목관이 되었다.
(此蒼精之君, 木官之臣. 自古以來著德立功者也. 大皞, 宓犧氏; 句芒, 少皞氏之子, 曰重, 爲木官, 大皞上音太, 皞亦作昊.)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중화서국 1980년판 제1353쪽.)
8. 《예기 월령(禮記 月令)》공영달(孔潁達) 소(疏): 천제 대호는 자고이래로 목덕의 주군이라 불렸고, 천제 대호가 호(皞)라 불리는 것은 옛 《상서》의 말에 따르면 원기가 광대한 것을 호라고 하는데, 하늘은 밝고 광대하다는 뜻으로 복희의 덕이 하늘과 같으므로 호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其帝大皞者, 謂自古以來木德之君, 其帝大皞也. 謂之皞者, 按異義古《尙書》說, 元氣廣大謂之皞, 天則皞皞, 廣大之意, 以伏犧德同天, 故稱皞.)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중화서국 1980년판 제1353쪽.)
9. 《회남홍열집해(淮南鴻烈集解)》: 오성이란 무엇인가? 동방은 목(木)이다. 그곳을 맡은 황제는 태호이고 그 보좌역은 구망인데 컴퍼스를 돌리며 봄을 다스린다.(何謂五星? 東方, 木也, 其帝太皞, 其佐句芒, 執規而治春.) (《회남홍열집해(淮南鴻烈集解)》중화서국 1989년판 제88쪽.)
10. 《예기 월령(禮記 月令)》: 그 황제는 태호이고 그 신은 구망이다. 정현이 주석하길, “이는 창정(蒼精)의 군주요, 목관의 신하이다. 자고이래로 덕을 드러내어 공을 세운 자로 대호 복희씨이다.”라고 하였다. 공영달이 이를 다시 주석하길, “창(蒼)은 동방의 색이다. 태호 복희씨는 동방에서 덕을 세워 태호라 불리며 덕은 희생을 잡고 부릴 수 있으므로 복희(伏犧)라 하는데, 즉 복희(宓戱)이다.”라고 했다.
(其帝太皞, 其神句芒. 鄭玄注: 此蒼精之君, 木官之臣. 自古以來著德立功者也. 大皞, 宓犧氏.孔穎達疏: 蒼是東方之色. 太皞, 宓犧氏者, 印方立德, 則謂之太皞, 德能執伏犧牲, 謂之伏犧, 卽宓戱也.)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중화서국 1980년판 제1353쪽.)
11. 《잠부론 왕덕지(潛夫論 王德志)》: 뇌택에 거인의 발자국이 있는데, 화서가 그것을 밟고 복희를 낳았다. 그 모양은 일각(日角)이고 세호(世號)는 태호였으며 진(陳)에 도읍했다. 그 덕은 목이었는데 용으로 기록하였으므로 용사(龍師)가 되어 용의 이름을 얻었다.
(大人迹出雷澤, 華胥履之生伏羲. 其相日角, 世號太皞, 都于陳. 其德木, 以龍紀, 故爲龍師而龍名.) (《잠부론전교정(潛夫論箋校正)》중화서국 1985년판 제384쪽.)
12. 《한서 고금인표(漢書 古今人表)》의 “상상성인(上上聖人)”에 있음: 태호 황제 복희씨이다. 장안이 주석하길, “태호는 천하에 이름이 있다. 그물을 만들어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음으로 희생양을 준비하였으므로 복희씨라고 불렀다. 사고(師古)가 말하기를 “복(宓)의 음은 복(伏)이고, 글자는 본래 복(虙)으로 하였는데 그 음은 같았다”고 하였다”고 했다.
(太昊帝宓羲氏 張晏注: 太昊, 有天下號也. 作網罟田漁以備犧牲, 故曰宓羲氏. 師古曰: 宓音伏, 字本作虙, 其音同.) (《한서(漢書)》중화서국 1962년판 제863쪽.)
13. 《좌전 소공17년(左傳 昭公十七年)》: 대호씨는 용으로서 기록하였으므로 용사가 되어 용의 이름을 얻었다. 두예가 주석하길, “대호 복희씨는 풍씨 성의 조상이다. 용서(龍瑞)가 있었으므로 용으로서 관직의 이름을 지었다.
(大皞氏以龍紀, 故爲龍師而龍名. 杜預注: 大皞, 伏犧氏, 風姓之祖也, 有龍瑞, 故以龍名官.) (《춘추좌전주(春秋左傳注)》중화서국 1981년판 제1386쪽.)
14. 《삼황본기(三皇本紀)》:(사마정(司馬貞)이 보충 저술하고 주석함) 태호 포희씨는 풍씨로 수인씨를 대신하여 천하를 계승하여 다스렸다. 그 모친은 화서라고 하는데 뇌택에서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성기(成紀)에서 포희를 낳았다. 사마정이 스스로 주석하기를, “살펴보건대, 복희가 풍씨라는 것은 《국어》에서 출전하였고, 화서 이하부분은 《제왕세기》에서 출전한 것이다. 뇌택의 택이라는 이름은 순(舜)이 물고기를 잡던 곳으로 제음(濟陰)에 있다. 성기(成紀) 또한 지명으로 천수(天水)에 성기현(成紀縣)이 있다고 한다.”고 했다.
(太皞庖犧氏, 風姓, 代燧人氏繼天而王. 母曰華胥, 履大人迹于雷澤, 而生庖犧于成紀. 司馬貞自注: 按, 伏犧風姓出《國語》, 其華胥以下出《帝王世紀》. 然雷澤, 澤名, 卽舜所漁之地, 在濟陰. 成紀亦地名, 按, 天水有成紀縣.) (《사기(史記)》정교(精校) 단구(斷句) 방전본(仿殿本), 중화도서관 간행.)
15. 《제왕세기(帝王世紀)》:(진(晋)의 황보밀(皇甫謐) 저술) 태호 황제 포희씨는 풍씨이다. 그 모친은 화서로 수인씨의 시대에 뇌택에서 거인의 발자국이 나왔는데, 화서는 이 발자국을 밟고 임신을 하여 복희(伏犧)를 낳았고 성기에서 자랐다. (복희는) 뱀의 몸에 사람 얼굴을 하고 성덕이 있었다. 수인씨의 후예로 포희씨(庖犧氏)가 그를 대신하여 천하를 계승하여 다스렸는데 처음으로 목덕을 이루어 여러 왕들의 으뜸이 되었다.
(太昊帝庖犧氏, 風姓也. 母曰華胥, 燧人之世, 有巨人迹, 出于雷澤. 華胥以足履之有娠, 生伏犧, 長于成紀. 蛇身人首, 有聖德. 燧人氏後, 庖犧氏代之, 繼天而王, 首德于木. 百王爲先.) (요녕교육출판사 1997년판 “신세기만유문고(新世紀萬有文庫)” 《제왕세기(帝王世紀)》 제2쪽.)
16. 《수경주(水經注)》권 17: 위수에 물이 모이다. 와정수(瓦亭水)의 남쪽에는 왼쪽으로 방성천(方城川)이 모이고 서쪽으로는 와정수가 한데 모인다. 와정수의 또 남쪽으로 성기현(成紀縣)의 동쪽을 거쳐 장리천(長離川)을 지나는데 이곳은 장리수(長離水)라고 부른다. 왼쪽으로 성기수(成紀水)와 합하는데, 물은 서북쪽의 당정천(當亭川)에서 발원하고 동쪽으로 파석협(破石峽)에서 흘러나와 나루터까지 흘러서 끊긴다. 고로 독(瀆)은 동쪽으로 성기현을 지난다. 고로 황제 태호 포희씨가 태어난 곳이다. 한(漢)은 천수군현(天水郡縣) 다스렸고 왕망은 하양군(阿陽郡)에서 다스렸다.
(渭水注. 瓦亭水又南, 左會方城川, 西注瓦亭水. 瓦亭水又南, 經成紀縣東, 歷長離川, 謂之長離水. 左與成紀水合, 水導源西北當亭川, 東流出破石峽, 津流遂斷. 故瀆東經成紀縣. 故帝太皞庖犧所生之處也. 漢以爲天水郡縣, 王莽之阿陽郡治也.) (《수경주(水經注)》악록서사(岳麓書社) 1995년판 제262쪽.)
17. 《하도계명징(河圖稽命徵)》: 화서가 뇌택에서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서 성기에서 복희를 낳았다.(華胥于雷澤履大人之迹, 而生伏犧于成紀.) (《황씨일서고(黃氏逸書考)》)
18. 《습유기(拾遺記)》: 포희가 도읍한 나라에는 화서주가 있다. 어느 날 신모(神母)가 그 곳을 유람하는데, 푸른 무지개가 신모를 감싸고돌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없어졌는데 곧 임신한 느낌이 들어 12년이 지나서 포희를 낳았다.
(庖犧所都之國, 有華胥之州. 神母游其上, 有靑虹繞神母, 久而方滅, 卽覺有娠, 歷十二年而生庖犧.) (《백자전서(百子全書)》절강출판사 영인판 《제왕세기(帝王世紀)》제2쪽.)
19. 《광운 상성지운제육(廣韻 上聲止韻第六)》: 기(紀)란, 12년을 기라고 한다.(紀, 十二年曰紀.) (《송본광운(宋本廣韻)》중국서점 1982년판 제231쪽.)
20. 《서 필명(書 畢命)》: 공안국이 전하길, “12년을 기라고 한다.”고 했다.(孔安國傳: 十二年曰紀.)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중화서국 1980년 영인판 제244쪽.)
21. 《국어 진어사(國語 晋語四)》: 힘을 1기를 모으면 심원할 수 있다. 위소가 주석하길, “목성이 한 바퀴 도는 12년이 1기가 된다.”고 했다.
(蓄力一紀, 可以遠矣. 韋昭注: 十二年歲星一周爲一紀.) (《국어(國語)》상해고적출판사 1978년판 제337쪽.)
이제 살펴보건대, 12년이 1기가 되며 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고로 ‘성기’라는 이름의 유래는 복희가 12년 만에 태어난 것으로부터 근거한다. 복희가 12년만에 태어났고 12년을 1기로 하므로 이름이 성기가 된 것이다.
(今按: 十二年爲一紀, 古已有之. 故“成紀”得名之由, 淵自伏犧所生. 伏犧生十二年, 十二年爲一紀, 故名成紀.)
22. 《속한서 군국지(續漢書 郡國志)》: 성기는 옛 황제 포희씨가 태어난 곳이다.(成紀, 古帝庖犧氏所生之地.)
23. 《원화군현도지(元和郡縣圖志)》: 성기현은 원래 한(漢)의 옛 현으로 천수(天水)에 속한다. 복희씨의 모친은 화서라고 하는데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성기에서 복희를 낳았는데 바로 이 언덕이다.
(成紀縣, 本漢舊縣也, 屬天水. 伏羲氏母曰華胥, 履大人迹, 生伏羲于成紀, 卽此邱也.) (중화서국 1985년판《총서집성(叢書集成)》의《원화군현도지(元和郡縣圖志)》제1115쪽 참고.)
24. 《사강평요 권일복희씨(史綱評要 卷一伏犧氏)》(명(明) 이지(李贄)): 천제 대호 복희씨는 성기에서 태어났다.(大昊伏羲氏, 帝生于成紀) (《사강평요(史綱評要)》중화서국1974년판 제5쪽.)
25. 《정편이십육사 오제(精編二十六史 五帝)》: 성기에서 천제를 낳았다. 성기는 지금의 섬서 공창부 진주이다.
(生帝于成紀. 成紀, 今陝西巩昌府秦州是也.) (《신성복희씨(神聖伏犧氏)》천수시(天水市) 문화국(내부발행) 제24쪽.)
26. 《제왕세기(帝王世紀)》(진(晋)의 황보밀(皇甫謐) 저술): 태호 황제 포희씨는 풍씨이다.(太昊帝庖犧氏, 風姓也)
(요녕교육출판사 “신세기만유문고(新世紀萬有文庫)” 《제왕세기(帝王世紀)》1997년판, 제2쪽.)
27. 《삼황본기(三皇本紀)》(당(唐)의 사마정(司馬貞) 저술): 태호 포희씨는 풍씨로 수인씨를 대신해 천하를 계승하여 다스렸다.
(太昊庖羲氏, 風姓, 代燧人氏繼天而王.) (《이십오사(二十五史)》상해고적 1986년판, 제361쪽.)
28. 《설문해자(說文解字)》(한(漢)의 허신(許愼)): 풍은 8풍이다. 동쪽은 명도풍이라 하고, 동남은 청명풍이라하며, 남쪽은 경풍이라하고 서남은 량풍이라하며, 서쪽은 창려풍이라 하고 서북은 부주풍이라하며, 북쪽은 광막풍이라하고 동쪽은 융풍이라 한다. 바람이 움직이면 충이 태어나며 고로 충은 8일 만에 변화된다. 충을 따라 모두 소리를 낸다. 무릇 풍의 종류는 모두 풍을 따른다.
(風, 八風也. 東方曰明庶風, 東南曰淸明風, 南方曰景風, 西南曰凉風, 西方曰閶閭風, 西北曰不周風, 北方曰廣莫風, 東方曰融風. 風動蟲生, 故蟲八日而化. 從蟲, 凡聲. 凡風之屬皆從風.) (중화서국 1978년판《설문해자(說文解字)》제284쪽.)
29.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청(淸) 단옥재(段玉裁)): 《좌씨전》에 이르길, “무릇 춤이라는 것은 8음을 질서지어서 팔방에 교화를 행하는 까닭에 여덟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석하길, “팔괘는 풍이다. 건(乾)은 음이 석(石)으로 그 풍은 부주(不周)이고, 감(坎)은 음이 혁(革)으로 그 풍은 광막(廣莫)이며, 간(艮)은 음이 포(匏)로 그 풍은 융(融)이고, 진(震)은 음이 죽(竹)으로 그 풍은 명서(明庶)이며, 손(巽)은 음이 목(木)으로 그 풍은 청명(淸明)이고, 리(離)는 음이 사(絲)로 그 풍은 경(景)이며, 곤(坤)은 음이 토(土)로 그 풍은 량(凉)이고, 태(兑)는 음이 금(金)으로 그 풍은 여 (閶 )이다.”라고 했다.
(《左氏傳》“夫舞所以節八音而行八風.” 服注: “八卦之風也. 乾音石, 其風不周; 坎音革, 其風廣莫; 艮音匏, 其風融; 震音竹, 其風明庶; 巽音木, 其風淸明; 離音絲, 其風景; 坤音土, 其風凉; 兑音金, 其風閶 .)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상해고적출판사 1981년판, 제677쪽.)
30. 《습유기(拾遺記)》(왕가(王嘉)): 복희는 방단(方壇) 위에 앉아 8풍의 기운을 듣고 이에 팔괘를 그렸다.(伏羲坐于方壇之上, 聽八風之氣, 乃畵八卦.) (《백자전서(百子全書)》절강출판사 영인 《백자전서(百子全書)》권1.)
31.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청(淸) 단옥재(段玉裁)): 충은 일명 복(蝮: 살무사)이라고도 하는데 굵기가 3촌이고 머리 크기는 엄지손가락만 하다. 단옥재가 곽박의 말을 인용하여 주석하길, “이것은 일종의 뱀으로부터 기원했으므로 사람들은 이로부터 이름을 복훼라 하였다.”고 했다.(蟲, 一名蝮, 博三寸, 首大如擘指. 段注引郭璞: 此自一種蛇, 人自名爲蝮虺.)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상해고적출판사 1981년판, 제662쪽.)
32. 《삼황본기(三皇本紀)》(당(唐)의 사마정(司馬貞)):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성덕이 있었다.
(蛇身人首, 有聖德.) (《이십오사(二十五史)》상해고적 1986년판, 제361쪽.)
33. 《삼황본기(三皇本紀)》(당(唐)의 사마정(司馬貞) 저술): 여와씨 또한 풍씨인데,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신성한 덕을 지니고 있어 복희를 대신하여 일어나 여희씨(女希氏)라 하였다.
(女媧氏亦風姓, 蛇身人首, 有神聖之德, 代宓犧立, 號曰女希氏.) (《이십오사(二十五史)》상해고적 1986년판, 제361쪽.)
34. 《성씨심원(姓氏尋源)》(청(淸)의 장주(張澍)): 《성찬》에 이르길, 풍씨는 복희씨의 후예라고 하였다. 《좌전》의 임(任), 숙(宿), 수구(須句), 전유(顓臾) 네 나라 모두 풍씨로 실제로 태호의 제사를 주관하였다. 노나라 희공의 모친도 풍씨였다. 살펴보건대, 《노사》에서 《성찬》을 인용하여 이르길, 전욱제가 풍씨라 하였고, 《당세계표》에서 또한 이르길, 위씨, 팽씨는 모두 풍씨에서 나온 전욱의 후예라고 했다. 《고사고》에서는 전욱을 운(妘)씨라 하였다.
《변증》에 이르길, 태호는 목덕왕으로 본래 동쪽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움직이자 바람이 일어났으므로 풍을 성으로 하고 이름을 방아(方牙)라 하고 또 창아(蒼牙)라고도 하였다. 또 살펴보건대, 황제의 신하 풍후는 그를 보좌하여 치우를 멸망시킨 자인데, 혹자는 풍후가 바로 봉거(封鉅)라고도 하는데 이는 아니다. 《환제요략》에 이르길, 풍후는 황제의 시중이 되었다고 했으며, 《한지 풍후 고허경》2편에는 요(堯)는 대풍(大風)을 죽이고 우(禹)는 풍후를 방문하였는데, 모두 춘황(春皇)의 후예라고 하였다.
《제왕세기》에는 여와씨 또한 풍시로 포희를 계승하여 호를 여희(女希)라 하였다고 했다. 나필(羅泌)이 이르길, 여와는 운(云)씨라 하였다. 또 살펴보건대, 《운화군현지》에 이르길, 복주(復州) 경릉현성(竟陵縣城)은 본래 옛 풍성(風城)으로 옛 풍국(風國) 즉, 복희 풍씨의 나라였다. 풍씨가 지역을 씨로 한 것은 《삼분》이라는 책에 이르기를 풍으로 인해 생겨났기 때문에 풍씨가 되었다고 한다.
《역통괘험》주(注)에 이르길, 수황(燧皇)이 복희의 앞 시대였지만 풍씨성이 복희가 반드시 수인씨를 계승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죽서기년》에 이르길, 하후상(夏后相) 시기에 풍이(風夷) 혹은 복희의 후예 계열이 있었다고 한다.
(《姓纂》云: 風姓, 伏羲氏之後. 《左傳》任、宿、須句、顓臾四國皆風姓, 實司太皞之祀. 魯僖公母成風. 澍按: 《路史》引《姓簒》云: 顓頊帝風姓, 《唐世系表》亦云韋氏、彭氏皆出風姓顓帝之後. 《古史考》以顓頊爲妘姓也. 《辨證》云: 太皞以木德王, 本生于東, 因其動則風生, 以風爲姓, 名方牙, 又曰蒼牙. 又按: 黃帝臣風后, 佐滅蚩尤者, 或謂風后, 卽封鉅, 非也. 《環濟要略》云: 風后爲黃帝侍中, 《漢志․風后․孤虛經》二篇, 堯誅大風, 禹訪風后, 皆是春皇之裔. 《帝王世紀》女媧氏亦風姓, 承包羲制度號女希. 羅泌云: 女媧云姓. 又按: 《元和郡縣志》云: 復州竟陵縣城本古風城, 古之風國, 卽伏羲風姓也. 是風姓當以地爲氏者, 而《三墳》書言因風而生爲風姓. 《易通卦驗》注謂燧皇在伏羲前, 風姓是伏羲因燧人氏, 未必然也. 《竹書紀年》: 夏后相時有風夷或系伏羲之後.) (《성씨심원(姓氏尋源)》악록서사 1992년판 제14쪽.)
35. 《좌전 희공이십일년(左傳 僖公二十一年)》: 임(任), 숙(宿), 수구(須句), 전유(顓臾)는 풍씨로 실제로 태호와 유제(有濟)의 제사를 주관하여 제하(諸夏)를 모셨다. 주인(邾人)이 수구를 멸망시켰다. 이에 수구의 아들이 도망 와 계승하여 풍씨가 되었다.
두씨가 주석하길, “수구는 동평(東平) 수창현(須昌縣) 서북쪽에 위치한다.”고 했다. 양백준이 주석하길, “전유의 옛 성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비현(費縣) 서북쪽으로 80리 즉, 평읍현(平邑縣)의 동쪽”이라고 했다. 《논어 계씨》에는 “전유로 말하면, 옛날에 선왕이 동몽(東蒙)의 제주(祭主)로 삼았고 또한 우리의 영토 안에 있다.”고 했다. 양씨가 또 주석하길, 전하기는 네 나라는 대호의 후예이므로 그 제사를 주관하였다고 했다. 도 두씨의 주석에 따르면 수구는 풍씨의 친정이 되었다고 했다.
(任、宿、須句、顓臾, 風姓也, 實司太皞與有濟之祀, 以服事諸夏. 邾人滅須句. 須句子來奔, 因成風也.
杜注: 須句吊平須昌縣西北. 楊伯峻注: 顓臾故城在今山東省費縣西北八十里, 卽平邑縣東. 《論語 季氏》: “夫顓臾, 昔者先王以爲東蒙主, 且在邦域之中矣.” 又楊注: 相傳四國爲大皞之後, 故主其祭祀. 又据杜注, 須句, 乃成風母家.) (《춘추좌전주(春秋左傳注)》중화서국 1981년판 제392쪽.)
36. 《성씨심원(姓氏尋源)》(청(淸)의 장주(張澍)): 몽씨는 《성찬》에 이르기를 전유의 후예 중 몽씨가 있다고 했다.
(蒙氏, 《姓簒》云, 顓臾之後有蒙氏.) (《성씨심원(姓氏尋源)》악록서사 1992년판 제11쪽.)
37. 《예기 월령(禮記 月令)》: 그 황제는 태호이고, 그 신은 구망이다.
(其帝太皞, 其神句芒. 정현이 주석하길, 구망은 소호씨의 아들로 중이라 불렀다고 했다. 鄭玄注: 句芒, 少皞氏之子, 曰重.)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중화서국 1980년판 제1353쪽.)
38. 《성씨심원(姓氏尋源)》(청(淸)의 장주(張澍)): 중씨는, 《성보》에 이르기를 중씨는 남정중(南正重)의 후예라고 했다. 《노사》에 이르길, 전욱의 후예 중 중씨가 있다고 했다. 살펴보건대, 여형(呂刑)과 공전(孔傳)에 중(重)은 즉 희(羲)라고 했다. 또 살펴보건대, 소호의 아들 중은 전욱의 목정(木正) 즉, 구망이 되었고 후에 분명 그 성씨가 된 자가 있었다.《노사》에 이르길, 중씨의 구망국(句芒國)은 창주(滄州)의 남쪽에 천중성(千重城)이 있다고 했다. 《통보》에 이르길, 섬서(陝西) 진평현(鎭平縣)에 중씨가 있다고 했다.
(重氏, 《姓譜》云重氏, 南正重之後. 《路史》云: 顓帝後有重氏. 澍按: 呂刑、孔傳重卽羲也. 又按: 少皞子重爲顓頊木正卽句芒, 後必有爲氏者. 《路史》云: 重氏句芒國, 滄州之南有千重城. 《統譜》云: 陝西鎭平縣有重氏.) (《성씨심원(姓氏尋源)》악록서사 1992년판 제27쪽.)
39. 《사기 오제본기(史記 五帝本紀)》: 풍후(風后), 역목(力牧), 상선(常先), 대홍(大鴻)이 일어나 백성을 다스렸다.
배인의 《집해》에서 정현이 말하길 “풍후는 황제의 삼공이다”라고 했다. 장수절은 《정의》에서, 《제왕세기》에 이르길 “황제의 꿈에 큰 바람이 불어 천하의 먼지와 때가 모두 사라졌다” 황제가 자면서 탄식하여 말하길 ‘바람을 호령하니 집권자요 먼지와 흙을 제거하였으니 후(后)가 있구나. 천하에 풍씨이며 이름이 후(后)인 사람이 있단 말인가?’ 이리하여 두 개의 점에 의지하여 그를 찾았더니 회우에서 풍후를 얻어 재상에 올랐다. 《예문지》에 이르길, “풍후의 병법은 13편이고, 그림이 2권이며 《고허》20권이다.”라고 했다.
(擧風后、力牧、常先、大鴻以治民. 裵駰《集解》: 鄭玄曰: “風后, 黃帝三公也.” 張守節《正義》: 《帝王世紀》云: “黃帝夢大風吹天下之塵垢皆去” 帝寐而嘆曰: ‘風爲號令, 執政者也, 垢去土, 后在也. 天下豈有姓風名后者哉?’ 于是依二占而求之, 得風后于誨隅, 登以爲相. 《藝文志》云: “風后兵法十三篇, 圖二卷, 《孤虛》十二卷.”) (《사기(史記)》중화서국 1982년판, 제6쪽.)
40. 《성씨심원(姓氏尋源)》(청(淸)의 장주(張澍)): 풍씨는 어떤 성인가? 《찬문》에 이르길, 풍?은 모두 복희의 후예라고 했다.
?씨는 어떤 성인가? 《찬문》에 이르길, 풍?은 모두 복희의 후예라고 했다. (偑氏, 何氏《纂文》云: 偑?皆伏羲之後.?氏, 何氏《纂文》云: 偑? 皆伏羲之後.) (《성씨심원(姓氏尋源)》악록출판사 1992년판 제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