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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비산경

작성자유토피아|작성시간18.05.13|조회수216 목록 댓글 0

<<주비산경(周髀算經)>>은 동양의 고대 본토의 천문학과 수학의 경전으로 인식되어 왔다.

10여년전에 필자는 <<주비산경>>을 시간들여 연구한 적이 있고, 책 전부에 상세한 주석을 달고 문어체로 번역문을 달았다.

 

연구과정에서 책속의 많은 내용은 필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아무리 보더라도 이것은 외국에서 전래된 것처럼 보였다. <<주비산경>>내의 주목을 끄는 부분을 먼저 소개해 보겠다.

 

<<주비산경>>은 주공(周公)이 상고(商高)와 대화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일찌기 옛날 사람들은 이 책을 주나라때 책으로 보았다. 그러나, 현재 학자들이 인정하는 비교적 보편적인 의견은 <<주비산경>>이 책으로 완성된 것은 기원전100년경인 서한(西漢)시대라는 것이다. 책안에 쓰여진 내용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다.

 

고대중국의 천문학자는 기하적인 우주모형에 대하여 연구한 전통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대수적인 방법으로 각종 천문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우주가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에 대하여는 그들이 전혀 연구하거나 관심가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주비산경>>은 고대중국에 있어서 이 방면의 유일한 예외이다. 책안에서 고대중국의 유일한 기하우주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개천(蓋天)"이라는 우조모형의 구조는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하고 대부분은 스스로 수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주비산경>>의 "개천"우주모형은 이전에 오랫동안 사람들에 의하여 "구관형(球冠形)"이라고 오해받아왔다. 그러나, 필자가 고증한 바에 의하면 이 모형의 정확한 모양은 다음과 같다. 개천우주는 하나의 유한한 우주이며, 주요한 포인트와 수치는 아래와 같다.


1. 대지는 하늘과 80,000리가 떨어져 평행하는 원형평면이다.

2. 하늘의 중심은 북극(北極)이다. 북극의 아래에 있는 대지는 중앙에 높은 기둥모양의 물건이 있다. 이 기둥은 위는 좁고 아래는 굵은 높이 60,000리의 "선기(璇璣)"이다. 바닥의 직경은 23,000리에 이른다. 하늘의 북극이 있는 곳도 평면이 아니라 상응하게 융기되어 있다.

3. 개천우주모형을 만든 사람은 원형대지상의 자기의 거주지의 위치를 확정했는데, 이 위치는 중앙이 아니라 남쪽으로 치우쳐 있다.

4. 대지의 중앙에 기둥은 하늘의 북극이 있는 곳으로 솟아 있다.

5. 일월성신(해달별)은 하늘에서 북극을 휘감아 도는 평면원주운동을 한다.

6. 태양은 이 원주운동에서 다중의 동심궤도(七衡六間)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반년을 주기로 규칙적으로 궤도를 옮긴다(1년에 1번 왕복한다).

7. 태양의 상술한 운행모델은 상당한 정도로 밤과 낮이 있는 것과 태양의 주기년도를 운동중의 일부 현상으로 설명한다(예를 들어 1년 사계절)

8. 태양광선은 사방으로 비추는 극한은 167,000리이다. 태양운동의 가장 먼 곳의 궤도는 반경 238,000리를 더하여야 한다. 즉, 개천우주의 최대치는 반경 405,000리이다.

프톨레미의 정교한 우주론과 비교하면, <<주비산경>>의 개천우주모형은 상당히 조악한 수준이다. 이 점은 이상할 것도 없다. 다만,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개천우주모형의 8개 특징은 모조리 고대인도의 우주모형의 특징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고대인도의 우주모형에 대한 기록은 주로 <<푸라나스(Puranas)>>에 기록되어 있다. <<푸라나스>>는 인도의 성전이며 동시에 고대의 역사서적이고, 백과사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구체적인 완성연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 안의 우주모델에 대한 개념은 학자들이 베다(Veda)시대 즉 기원전1000년전으로 보고 있다. <<푸라나스>>에서 언급한 우주모델은 아래와 같다:

- 대지는 편평한 원반과 같다. 대지의 중앙에는 높은 산이 솟아 있는데 이름은 수메루(Sumeru) 또는 메루(Meru)라고 한다. 한자로 번역한 중국에서는 須彌山이라고 부른다. 수메루산의 바깥은 환형(環形)의 육지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 육지는 다시 환형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이처럼 차례로 둘러싸여 바깥으로 펼쳐지는데 모두 7개의 대륙과 7개의 바다가 있다.

- 인도는 수메루산의 남쪽에 있다.

- 대지와 평행한 천상에는 일련의 천륜(天輪)이 있다. 이 천륜의 축중심은 수메루산이다. 수메루산의 꼭대기는 바로 북극성(Dhruva)이 있는 곳이다. 여러 천륜은 각종 천체를 데리고 회전한다. 이 천체에는 해, 달, 항성,...그리고 5대행성(차례로 수성, 금성, 화성, 목성과 토성)이 포함된다.

- 수메루산을 이용하여 검은 밤과 밝은 낮의 교차를 설명한다. 태양을 거느린 천륜은 180개의 궤도가 있다. 태양은 매일 1궤도씩을 옮긴다. 반년후에는 반대방향으로 중복한다. 이로써 해가 뜨는 방위각이 년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당나라때 석도선(釋道宣)의 <<석가방지(釋迦方誌)>> 권상(卷上)에서 고대인도의 우주모형을 묘사하고 있다. 구체적인 점에서 교묘하게 상술한 기재와 서로 보충이 된다: "수메르산은 바로 경전에서 말하는 수미산이다. 바다에 금륜표(金輪表)가 반쯤 바다위로 8만 유순(由旬) 솟아있고, 해와 달은 그 허리를 돈다. 바깥에는 금산(金山)이 일곱겹으로 둘러싸고 있다. 가운데에는 각 바닷물이 있고, 8공덕을 갖추고 있다."

이상의 기재를 종합하면, 고대인도의 우주모형은 <<주비산경>>의 개천우주모형과 놀랄 정도로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점에서 거의 모든 곳이 일치한다.

1. 양자의 하늘, 땅은 모두 원형이고 평행하는 평면이다.

2. "선기"와 "수메루산"은 마찬가지로 대지의 중앙에서 "천주(天柱, 하늘기둥)"의 역할을 하고 있다.

3. 주나라와 인도는 모두 각자 대지의 중심에서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4. "선기"와 "수메루산"은 바로 위쪽은 모두 각종천체가 회전하는 중심축인 북극이 있다.

5. 일월성신은 모두 하늘을 도는데, 북극을 중심으로 평면원주운동을 한다.

6. 만일 인도의 수메루산의 "칠산칠해(七山七海)"라는 숫자가 <<주비산경>>의 칠형육간(七衡六間)을 생각나게 한다면, 인도우주에서 태양천륜이 180개의 궤도를 가졌다는 것은 성질상으로나 공능상으로 칠형유간과 완전히 일치한다(태양은 칠형의 사이에서 왕복하는데 이것도 매일 연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7. <<주비산경>>의 하늘과 땅의 거리는 8만리인데, 수메르산도 해상에서 "8만유순"의 높이를 가지고 있다. 그 위는 천륜이 있는 곳이니, 양자는 하늘땅간의 거리에서 모두 팔만이라는 숫자를 사용하고 있다.

8. <<주비산경>>은 태양광선이 사방으로 비치는 극한은 167,000리로 하였는데, 불경인 <<입세아비담론>>의 권5, "일월행품제십구"의 말미에서는 "태양광의 경도는 7억2만1천2백 유순이다. 주위는 21억6만3천6백 유순이다" 비록 구체적인 수치는 다르지만, 태양광이 비치는 반경이 유한한 고정수치를 지닌다는 점은 이미 놀랄 정도로 일치하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발전역사상, 문화가 다원적이고 자발적으로 생성되는 것은 완전히 가능하다. 그러므로 많은 서로 다른 문명에서도 서로 닮은 점이 나타나는 것인데, 이것은 아마도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주비산경>>의 개천우주모형과 고대인도의 우주모형간의 닮은 정도는 너무나 심하다. 전체 설정에서 세부적인 점에 이르기까지 일치하는 것이다. 이것까지도 "우연"이라고 설명한다면 너무 억지스럽지 않겠는가.


 『구장산술(九章算術)』

[출처] 『구장산술(九章算術)』 (박성일의 역사탐방) |작성자 박성일



현재까지 남아 있는 중국 한(漢)나라 때부터 당(唐)나라 초기까지의 고대 수학서는 총 10종류로 이루어진『산경십서(算徑十書)』라는 수학책으로서,『주비산경(周髀算經)』․『구장산술(九章算術)』․『해도산경(海島算經 : 유휘(劉徽 : ?∼?)가 지음)』․『손자산경(孫子算經)』․『오조산경(五曹算經)』․『장구건산경(張邱建算經 : 장구건(張邱建)이 지음)』․『하후양산경(夏候陽算經 : 하후양(夏侯陽)이 지음)』․『오경산술(五經算術 : 견란(甄鸞)이 지음)』․『수술기유(數術記遺 : 서악(徐岳)이 지음)』․『집고산경(緝古算經 : 왕효통(王孝通)이 지음)』의 10산경(算經)을 말합니다. 원래 초기에는 조충지(租沖之)가 지은『철술(綴術)』이 들어있었지만 후에 난해하다는 이유로 빠지고『집고산경(緝古算經)』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것이『구장산술』로서 2번째로 오래된 서적이며, 가장 오래된 서적인『주비산경(周髀算徑)』은 천문학에 관한 수학서입니다.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엮어지고, 최종적으로 한(漢) 왕조 때인 B.C. 200∼B.C. 100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은 위(魏)나라 유휘(劉徽)가 263년에『구장산술주(九章算術註)』라는 주석을 써서 정본(定本)이 되었는데, 그의 서문에 의하면 전한(前漢) 시대의 학자가 진(秦)나라 때의 유문(遺文)을 모아서 편집한 것이라고 하네요.

참고로 위나라 사람 유희는 정96각형과 정192각형의 넓이를 계산하는 한편, 고대 그리스 최고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Archimedes)가 구한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원주율 π가 3.1410과 3.1427 사이에 존재함을 밝히기도 한 인물입니다.


저자와 저작 연대가 불명인 이 책은 고대 중국 수학을 집대성한 책으로서 후대 산수 서적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데요. 소재가 다양하고 내용의 수준이 아주 높아 당(唐)나라 이전의 가장 훌륭한 수학서로 평가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 사회의 경제사를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답니다.


국가를 통치할 때 중요한 것은 토지의 넓이를 측정하고 토목공사를 하고 부역을 부과하고 세금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실사구시의 실용주의적 성행이 강했기 때문에 답이 어떻게 나오는지 그 방법만 알면 충분하지 굳이 증명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런 중국인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듯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방전(方田) 20문, 속미(粟米) 46문, 쇠분(衰分) 20문, 소광(少廣) 24문, 상공(商工) 28문, 균수(均輸) 28문, 영부족(盈不足) 20문, 방정(方程) 18문, 구고(勾股) 24문 등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을 중심으로 9장에 걸쳐서 총 246문제가 문제 - 답 - 풀이 순서로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국가를 다스리는 것과 관련된 계산법으로서 고대 사회경제사의 사료로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답니다.

제1장「방전(方田)」은 전묘(田畝 : 논밭)의 측량을 통해 그 넓이를 구하는 계산을 다룬 38문제로서 분수가 등장하며, 분자․분모․통분이라는 말도 엿볼 수 있습니다.


제2장「속미(粟米)」는 ‘껍질을 벗기기 전의 조’를 말하는 ‘속미(粟米)’를 기준으로 한 금전미곡(金錢米穀), 즉 곡물의 교환과 관련한 교역산 풀이를 다룬 46문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3장「쇠분(衰分)」은 차등을 두어 비례적으로 나누는 방법을 이용해 급료나 조세 계산법을 다룬 계산 문제 20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4장「소광(少廣)」은「방전(方田)」장과는 역으로 넓이로부터 변의 길이와 지름을 구하는 24문제로서 제곱근 풀이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제5장「상공(商功)」은 토목공사의 공정과 부피와 관련한 원통․원기둥․원뿔․사각뿔․각뿔대 등 여러 가지 모양의 입방체에 대한 부피 문제 28개가 실려 있습니다.


제6장「균수(均輸)」는 백성에게 공평하게 부역을 부과하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운반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고려해 비용을 균등하게 정하는 28문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7장「영부족(盈不足)」은 분배의 과․부족산 문항 20개가 실려 있습니다.


제8장「방정(方程)」은 연립일차방정식의 계산 문제 18개를 가감법으로 푸는 방법을 취급하였는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방정식(方程式)’이라는 명칭도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제9장「구고(勾股)」는 직각삼각형에 관한 문제 24개로서 ‘피타고라스 정리’의 응용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직각삼각형의 높이․길이․넓이와 거리와의 관계 및 이차방정식도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산기로는 산목(算木)이 쓰였고, 계산에는 정수(正數)와 더불어 부수(負數)도 다루어졌으며, 단위 분수․가정법 등 서양 수학과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내용도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동시대의 그리스 수학과 견주어 봐도 산수와 대수 분야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평가되기도 한답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최초로 행렬(行列) 문제를 다루는 해법을 설명하였는데요. 바빌로니아인들의 해법과 유사하지만, 오히려 중국인들이 행렬의 개념에 더 가깝게 접근하였음을 직접 확인할 수가 있답니다.

[출처] 『구장산술(九章算術)』 (박성일의 역사탐방) |작성자 박성일


첨성대


첨성대만이 지니는 이 특이한 형태는 축조 양식에 동양적 우주관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첨성대의 기단부의 원형과 정사각형은『주비산경』에 있는「방원도(方圓圖)」를 본뜬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돌로 쌓아올린 27개의 동심원 맨 꼭대기에 ‘井’자형의 돌을 얹은 것은 28개 별자리의 운행을 상징하는 것으로「칠형도(七衡圖)」에 대응한다.「칠형도」란 일 년 중 태양의 운행을 가리키는 중국 전통의 천문 도식이다. 일곱 개의 동심원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동지 때의 황도․최소의 것은 하지 때의 황도를 나타낸다. 따라서 첨성대 꼭대기의 ‘井’자형 돌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 27개의 동심원이 그려진 첨성대의 평면도를「칠형도」와 비교해 보면, 가장 바깥쪽에 있는 원은 평면도의 ‘동지월출견우(冬至月出牽牛)’의 우수(牛宿)를, 중앙의 ‘井’자형 돌은 중심원도의†하지일출동정(夏至日出東井)’의 정수(井宿)를 나타낸 것이 된다. 즉 27층의 돌들과 정상의 ‘井’자 모양의 돌로 이루어진 원통형의 첨성대는 28수를 상징하도록 계획적으로 구조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기단 돌의 12개는 1년 12개월과 대응하고, 원통부 1층에서 6층까지의 돌의 수는 각각 16․15․15․16․16․15로 동지-소한․소한-대한․대한-입춘․입춘-우수․우수-경칩․경칩-춘분 사이의 일수와 딱 맞는다. 27층까지와 꼭대기의 ‘井’자형의 돌의 개수는 모두 366개로 일 년의 날 수와 일치한다. 이것은『주비산경』에 실린 1년 365와 1/4일로 하는 사분력의 입장과 같다.


이러한 첨성대의 구조에 관하여 연제 홍사준(然齊 洪思俊 : ?~1980)은 다음 표와 같이 수치를 조사하였다. 이 표를 참조하여『주비산경』의 상징적인 수치, 즉 원주율 3, sinα = 4/5, cosα = 3/5 등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⑴ 기단의 대각선과 첨성대의 높이는 각각 24.20척․30.63척으로 그 비는 약 0.8, 즉 4/5가 된다.

⑵ 정자석의 한 변과 1층 원의 지름은 각각 10.10척․16.85척으로 그 비는 약 0.6, 즉 3/5이다.

⑶ 최상층의 원지름과 중앙부에 있는 창의 한 변 길이는 각각 3.18척․9.64척이며 그 비는 약 3이다.

[문제]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

1) 첨성대의 용도와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학설이 아닌 것은?

① 천문관측대 ② 해시계 ③ 천신 제단 ④ 우주 우물 ⑤ 천문 상징 기념물


2) 첨성대의 각 구조에 대한 설명 중 잘못된 것은?

① 기단부의 원형과 정사각형은「방원도(方圓圖)」를 본뜬 것이다.

② 돌로 쌓은 28개 동심원 꼭대기에 ‘井’자형 돌을 얹은 것은 28개 별의 운행을 상징한다.

③ 11단 아래에 채워진 흙은 원형으로 인한 변형에 저항할 내력을 만들어 붕괴 위험을 감소시켰다.

④ 기단 돌의 12개는 1년 12개월과 대응한다.

⑤ 첨성대만의 특이한 형태는 축조 양식에 동양적 우주관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3) 첨성대를 건립한 연대와 기술자는?

[출처] 첨성대(瞻星臺 : 국보 제31호) - 형태(形態) (박성일의 역사탐방) |작성자 박성일


주비산경 설명


현재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수학서로 알려져 있는 이 책은 상하 2권으로 된 천문학(天文學)에 관한 수학서로서 저자는 미상(未詳)이며, 책명은 ‘주대(周代)에 비(髀)라고 하는 8척의 막대에 의하여 천지를 측정 산출하였다’는 것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이 책의 중요 부분은 2세기경인 후한(後漢) 무렵에 편찬되어 송대(宋代)에 간본되었는데, 후한(後漢) 또는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조군경(趙君卿 : ?∼?)․북주(北周)의 견란(甄鸞 : ?∼?)․당(唐)나라의 이순풍(李淳風 : 602∼670) 등의 주석이 가해졌다.


이 책은 원주율을 3으로 하는 등 수학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직각삼각형의 빗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면적은 두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2개의 정사각형 면적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Pythagorean Theorem)’와 같은 ‘구(勾)․고(股)․현(弦)의 법(法)’을 기초로 하여 혼천설(渾天說)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고대 우주관인 개천설(蓋天說)을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중국에서 적어도 기원전 1000년쯤, 즉 지금부터 3000년 전에 이미 ‘구고현 정리(勾股弦 定理)’에 대한 개념이 나왔다고 한다. 피타고라스(Pythagoras : B.C. 582(?)∼B.C. 497(?))가 이 정리를 발견한 것이 기원전 500년쯤되기 때문에 그보다 500년 이상 앞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신라시대에 아주 중요한 천문 교재로 사용되었으므로 우리 선조들도 이미 신라시대 때부터 구고현 정리(勾股弦 定理)를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 천문학(天文學)’하면 흔히 첨성대(瞻星臺 : 국보 제31호)를 떠올리는데, 실제로 경주 인왕동에 위치한 첨성대(瞻星臺)를 살펴보면 구고현 정리(勾股弦 定理)를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대 중국에서는 개천설(蓋天說)․혼천설(渾天說)․선야설(宣夜說)․안천론(安天論)․궁천론(穹天論)․흔천론(昕天論) 등으로 불리는 여섯 가지 우주론이 등장하여 끊임없는 논쟁을 계속하다가 한(漢)나라 이후에 개천설(蓋天說)과 혼천설(渾天說)의 양대 우주론 간의 격돌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이 둘 간의 싸움도 위진(魏晋) 시대 이후 중국 고대 우주론을 최초로 정리한『진서(晋書)』「천문지(天文志)」가 여섯 가지 우주론을 언급하면서도 장형(張衡 : 78~139)이 주장한 혼천설(渾天說)만을 정설로 인정하는 한편, 나머지 논천설(論天說)들에 대해서는 “기이하고 이상한 학설”이라 하여 묵살함으로써 천문학적인 근거가 좀 더 탄탄한 혼천설(渾天說)이 우주 구조론의 정설로 대접받아 서양 천문학이 등장할 때까지 오랫동안 동양의 우주 구조론으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원전 2~3세기 때 형성됨으로써 여러 우주론 중에서 가장 기원이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개천설(蓋天說)’은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뜻임)을 바탕으로 하여 당시의 천체 관측 기구라 할 수 있는 그노몬(Gnomon : ‘지면에 세운 막대기 모양의 해시계’임)의 일종인 8척의 막대기, 즉 주비(周髀)에 의해 탄생한 학설로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데, 태양의 각도에 따라 생기는 이 막대기의 그림자로 하늘의 움직임을 측정한 결과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를 8만 리라고 가정하게 되었고, 평평하고 둥근 모양의 하늘이 평평하고 네모진 지상을 덮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반면 후한(後漢) 시대에 천문 수리학의 대가로서 지진계를 발명해 지진의 강도를 측정했고, 원주율을 √10(약 3.16)로 계산해내기도 했던 장형(張衡)이 ‘혼천의(渾天儀)’라는 천체 관측 기구를 제작하면서 우주 구조론으로 정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혼천설(渾天說)’은 “혼천(渾天)은 마치 계란과 같으며 하늘은 탄환과 같이 둥글다. 땅은 마치 계란의 노른자위 같아서 홀로 하늘 안에 놓여 있다. 하늘은 크지만 땅은 작다. 하늘의 겉과 안은 물이 있고 하늘은 땅을 감싸고 있다. 하늘과 땅은 각각 기를 타고 바로 세워졌고 물에 실려서 운행한다. 그리고 하늘은 남북극을 축으로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다.”면서 하늘 구조를 평면 구조라고 주장했던 개천설(蓋天說)과는 전혀 다른 내용, 즉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늘을 회전하는 고정된 구로 인식하는 진일보한 입장을 제시하였다. 이는 당시의 개천설(蓋天說)과 비교해볼 때 훨씬 과학적으로 타당한 구조론을 지닌 우주론이었다.


첨성대(瞻星臺) 또한 이 책의 우주론(宇宙論)인 개천설(蓋天說)을 그대로 집약시켜놓은 구조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근거로 27층의 동심원(同心圓) 형태의 석층(石層)과 맨 꼭대기 ‘井’자형 돌은 기본 별자리 28수(宿)를 의미하고, 12라는 기단석의 수는 1년 12개월에 대응하며, 27층까지의 돌의 수는 정확히 362개로서 음력(陰曆)으로 따진 1년의 일수(日數)와 정확히 부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처] 『주비산경(周髀算經)』 (박성일의 역사탐방) |작성자 박성일




첨성대


1. 첨성대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국보 제31호이다.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다. 1350년이 지나고도 옛날의 그 모습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자랑스런 우리의 과학 유산이다.

첨성대의 건립은 신라의 천문학 발전을 상징한다. 확실한 기록은 남아있지는 않지만 신라의 천문학을 관장하는 국가 천문기관의 중심적 시설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360여 개의 돌을 정성들여 쌓아 만든 첨성대는 높이가 9미터 정도로 병 모양을 하고 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 갈수록 가늘어지는 원통형 또는 병 모양을 하고 있는 첨성대는 잘 살펴보면 위에 4각형의 돌이 놓여 있고 아래 부분도 4각형의 돌 단이 있다.

또 그 한가운데에 남쪽을 향한 창이 하나 있는데 그 크기는 가로와 세로가 각기 1미터쯤이다. 창 아래와 위를 모두 12단씩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창은 3단에 걸쳐 있으니까, 첨성대는 모두 276단의 돌을 쌓아 만든 셈이다.

첨성대는 옛날 별의 운행을 비롯하여 일식, 월식 등 천문을 관찰한 외에도 길흉을 점쳤다고 하는데 농사일에도 도움을 준 흔적이 보인다고 하였다.

 용도

천체의 움직임(하늘의 변화)을 관측하고 별자리를 관찰하던 천문 관측대이다.


2. 모양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위에 술병모양의 원통부가 올려지고 맨 위에 정자형의 정상부가 얹혀진 모습이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비어 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보인다. (도자기 모양이며, 바깥 벽면은 돌로 쌓아올려 성벽을 떠올리게 한다.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아름다운건축물이다.)


3. 의의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있으며, 관측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것으로 여겨진다.


4. 보존상태

돌의 총 개수가 365개 인 것, 돌을 쌓은 단수가 27단 인 것 등을 알아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고 볼 수 있다 (6.25 당시 탱크가 경주 시가지를 지날 때 허술한 초가들이 탱크의 진동에 여지없이 무너질 때도 첨성대만은 끄덕 없었다고 한다.)


5. 가치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할 수 있다.


6. 얽힌 이야기


첨성대가 제단이었다는 학설도 있다. (삼국유사)에는 한사내아이가 집을 나와 헤매다가 첨성대의 신비한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상세내용

지대석과 기단은 4각형으로 8석과 12석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27단의 아래가 넓은 원통형 주체부가 있는데, 여기에 쓰여진 돌은 362개이고, 1단의 높이는 약 30㎝이다. 제13단에서 제15단에 걸쳐 남쪽으로 면한 곳에 조그마한 출입구가 나 있는데, 그 아랫부분 양쪽에 사다리를 걸었으리라고 추정되는 흔적이 있다.

내부는 제12단까지 흙이 차 있고, 제19, 20단과 제25, 26단 두 곳에 정자형으로 길고 큰 돌이 걸쳐져 있는데, 그 양쪽 끝이 바깥으로 내밀고 있으며, 꼭대기에도 정자석 2단이 놓여 있다. 제27단 내부의 반원에는 판석이 있고, 그 반대쪽에는 판목을 놓았을 것으로 보여지는 자리가 있다. 꼭대기의 정자석 위에도 관측에 필요한 어떤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으나 석조부분만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데, 매우 희귀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첨성대의 건립에 대하여는, 《삼국유사》「선덕왕 지기삼사」조에 「별기운시왕대연석축첨성대」라고만 나와 있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선덕왕 재위시(632~646)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7.첨성대의 유래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8. 첨성대에 대한 주장들

오늘날 첨성대가 과연 천문대였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먼저 첨성대에 대해 현대적인 해석을 한 사람은 일제강점기에 조선기상관측소에서 근무했던 일본인 와다였다.


그는 1910년〈조선관측소 학술보고〉의 '경주첨성대의 설'에서 첨성대는 그 위에 목조가구물을 세우고혼천의 같은관측기를 설치했던 천문대였으리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1917년 〈조선고대관측기록 조사보고〉에서 같은 내용을 주장했다. 우리나라 학자인 홍이섭도 〈조선과학사〉에서 신라에서는 독자적인 천문관측을 하고 있었으며 그 증거로 경주 첨성대를 들 수있고 이것은 현존하는 동양최고의 천문대라고 평가했다.


또한 첨성대에 대해 처음으로 정확히 실측하고 연구한 홍사준은 첨성대 내부에 사람이 들어가 27단의 내부에 반듯이 누워 중천을 쳐다보며 관측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첨성대가 개천설에 의거하여 백제인이 세운 신라 천문대라고 보았다. 박동현도 첨성대가  개방식 돔 형태를 가진 천문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이와 같이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견해는 8·15해방 전부터 1960년대까지 정설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후 상설천문대가 아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상운은 첨성대가 규표를 중심으로 한 다목적관측대일 것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개방식 돔으로 관측하기에 불편한 내부구조를 근거로 상설 천문대로 보기 어려우며 백제인들이 주비의 법에 따라 세웠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와 비슷한 견해로 김용운은 첨성대가 실제로 관측에 사용된 것이 아니며, 다만 수학 및 천문학에 관한 당대의 권위서였던 〈주비산경 〉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반영하여 축조한 상징적인 탑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용범은 첨성대는 천문관측과는 관련이 없으며, 다만 불교의 우주관인 수미산의 모양을 본떠 만든 제단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성래는 첨성대를 넓은 의미의 천문대로 평가하면서도 겉 모양은 불교의 수미산을 쫓았으며, 토속적 신앙에 따른 농업신인 영성을 숭배하기 위한 제단이었다고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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