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다른 조선의 시간
인류에게 언제나 관심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우주.
천문학은 농사를 짓는데서 가장 중요한 연구대상이었다.
이러한 현실이 과도하게 과장되어서 우주의 별자리의 변화와 인간의 운명과 맞물려간다고 생각했다.
왕조시대
왕이 국가의 중심이었던 시대, 왕은 곧 하늘이며 태양이었다.
하늘을 읽는 것은 왕의 중요한 책무 중의 하나였다.
환단문영의 전성기에는
천문학을 중심으로 발전·찬란한 과학 융성기를 꽃피웠다.
역사의 주류가 화족중심으로 이루어지고
환단문명의 후예들이 한반도로 정착하게된다.
어느덧 세계 역사에서 14~15세기는 르네상스 시대라고 한다. 서양에서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천지가 개벽하고 있었다. 조선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한 촉매제가 세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과학 융성기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세종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리더십을 통해 굉장히 많은 인재들이 발굴돼 함께 연구를 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복합되었던 시대에 세종은 국가의 전면적인 동력을 과학기술로 잡았다. 그것은 조선시대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조선의 대표적인 발명품인 측우기는 장영실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세종의 맏아들인 문종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중국과 우리나라는 위도가 달라서 시간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역법의 계산을 하기 위해 수학자가 필요했고,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신분을 뛰어넘은 과학자 장영실
장영실에 대해 세종은 "공교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비해 뛰어나므로 아버지인 태종께서 장영실을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고 말했다. 실록을 찾아보면 세종은 장영실에게 상의원의 별좌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검색창에 장영실이라고 치면, 장영실의 출생 년도와 사망년도가 나와 있지 않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세종실록에 딱 한 줄 나와 있다. 먼저 1383년에 태어났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1390년 출생설이 있다. 고려의 고위직 관리였던 장성휘와 기생 사이에서 태어났고 부유한 교육을 받으며 잘 살았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태종에 이르러 신분제 실시로 노비 계급이 되었다.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확실한건 장영실은 노비였다는 것이다. 노비였음에도 과학적 재능이 뛰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조상이 대대로 과학자였다는 말도 있다.
아산 장씨의 족보에 따르면 장서의 9세손으로 기록되어있다. 장서는 중국 송나라의 대장군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한 인물로 그의 3세손과 4세손은 군기시 책임자였고 5세손은 서운관 판사를 지냈다고 한다.
물시계는 전통적으로 고대로부터 시간 재는 측정 기기로 이용됐다. 물시계의 어느 시점을 알려주는 신호를 발생하는 자격 장치를 붙인 물시계를 '자격루'라고 한다.
물이 단계적으로 줄어들면서 자 같은 것이 일정하게 떠오르게 되면 배치되어있던 구슬을 떨어뜨리게 된다. 구슬이 떼구르르 굴러가서 어느 지역에 가면 북을 땅땅 치는 것이다. 장영실은 바람에 주관적이거나 실수에 의한 것이지 않고 일정할 수 있게 자동화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말이 간단한 것이지 끊임없이 도미노처럼 흐름이 맞아야 한다.
조선의 숨은 과학자들
조선시대 과학의 르네상스는 장영실뿐만 아니라 숨은 과학자들·수학자들·천문학자들이 많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몇몇의 과학자들이 있다. 세종대왕은 훌륭한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에 비유하면, 감독이 경기를 할 수는 없는데 장영실 같은 스트라이커도 있지만 골키퍼도.. 훌륭한 수비진도 있어야 한다. 세종대왕이 과학의 시대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과학자들의 역할이 크다.
◆이순지
천문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문과 급재를 하고 전형적인 유학자로 성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답하지 못한 서울의 위도나 북극성의 고도 등을 대답하면서 천문학적인 감각을 발휘했다. 이에 세종대왕은 놓치지 않고 그를 천문학자로 발전시킨다. 이순지가 한 가장 큰 것이 '역법서'인데, 칠정산 내편과 외편의 편집을 주관했다.
실제로 천문관칙을 수행하기 위해 '간의대'를 만들며 천문기기들을 제작하게 되며 세종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
◆김담
천재적인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김담은 이순지가 가는 곳에 항상 있었다. 이순지와 더불어 간의대에 같이 관측을 수행하고, 역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또 그를 얘기할 때 새롭게 조명하는 것 중 하나가 관측이다. 예를 들어 혜성을 관측할 때, 그 당시에 정밀하게 기록을 해 혜성이 어떤 혜성이었는지 현대에 와서도 역추적이 가능하게끔 했다.
◆이천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분이다.
무과 출신이고, 남쪽에 외구들이 몰려오고 북쪽에 여진족들이 침략해 대마도와 여진족 정벌에 나서 무과 무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인 업적은 '금속활자'의 발명이다. 4장을 찍던 것을 40장을 찍어낼 수 있는 '갑인자'라고 하는 금속활자를 발명함으로써 어떤 지식체계를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역할을 하는데 주도적인 작업을 한다. 그 외에도 천문관측 장비들을 계량하는 작업을 했다. 또 이천이 가는 곳에 장영실이 있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둘의 합작을 통한 관측기기들의 발명이 이루어졌다.
한국 천문연구원에서 발명한 소행성에 ‘이천’이라는 이름을 붙여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하늘을 떠돌고 있다.
세종이 조선에게 선물한 것은 환단문명의 씨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