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이 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145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생애, 퇴고>
<필자 주> : 작년 여름이였다. 세계여성 한민족 넷트워크 캘거리 지부<회장 전 안나 방송국장>과, 캘거리 한인문인협회< 회장 소담 한 부연> 공동으로 필자의 러시아 방문기에 관한 초청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있었다. 러시아의 가을 볼가강을 바이킹 유람선을 타고 13일간 뱃놀이를 한 이야기를 하다가 귀한 시간이 다 흘러간 아쉬움에서 쓴 여행기다. 하기 글은 그 때 러시아 방문 중 가장 의미있게 간직했던 <톨스토이>의 생가 방문과 그의 이승의 생애를 짧은 지면을 이용 간단히 정리해 본 것이다. 민초
러시아 방문 18일째 오늘은 꿈에 그리던 <톨스토이>의 향리와 그의 생가 그리고 그의 무덤을 보고자 아침 일찍 일어나 온갖 준비를 마쳤다. 민박집에서 고용한 택시는 5시반에 도착했는데 그의 생가까지 가는 시간은 3시간 30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모스코바의 아침은 안개로 자욱했고 북미 어느 도시보다 한가한 듯 했다. 북미라면 지금 이 시간이면 고속 도로와 시내 곳곳에 차들이 많이 다니는데 이 곳 모스코바의 중심가는 너무나 조용하다.
톨스토이의 생가를 가기 위한 고속도로는 <알랙산드라> 라는 고속 도로로 모스코바를 조금 지나자 가로등이 없어 조금은 을씨년 스러운 불안감이 들었다. 모스램 종교인인 이 청년 기사가 행여 IS 대원은 아닌가 우리를 납치하여 IS 조직에 넘기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고속도로를 달렸다.
고속도로의 양 옆길이나 톨스토이의 생가 주변도 자작나무의 숲을 이루고 있는데 이 원인은 러시아 <짜르>시대에 케서린 2세 황제가 러시아 역사에 훌륭한 황제로 남겨져있는데 이 역시 여 황제의 작품이다. 케서린 황제는 국민들의 생활을 돕고자 전력사정을 감안 러시아 전체를 자작나무를 심게 하였다. 이 자작나무는 밤에는 하이얀 빛을 발휘함으로 전력이 부족한 러시아의 생활경제를 돕고자 하는 아이디어 였다고 한다 .
우선 문호의 일생을 간단히 더듬어 보면 그는 남 러시아 <야스나야 폴리냐>에서 출생했으며 19세기에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호로서 문학비평과 사상가인 위대한 인물로 러시아 사회에 각인되어 있다
명문 백작가의 4남으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성장을 하면서 생에 대한 시련을 맛 보며 삶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1847년 그가 다니던 카잔대학의 대학교육이 옳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자진 중퇴를 하고
향리로 돌아와 지주로서 농민생활을 개선코자 하나 실패로 끝이나 잠시 방랑생활을 하게된다.
1851년 형의 권유로 사관 후보생으로 복무를 하고 그 때 처녀작 <유년시대>를 발표하여 격찬을 받게된다.
1857년 서유럽 문명을 시찰코자 서유럽 여행을 하나 서유럽의 퇴패적이고 삶의 질에 대한 실망감만 안고 귀국하여 인간생활의 진보를 추구하던 그는 1862년 궁정 시의원의 딸인 <소피아>와 결혼하고 문학에 전념할 때< 나폴레옹>의 모스코바 침공을 중심으로 한 <전쟁과 평화>라는 불후의 명작을 쓰게된다. 이 때가 1864년 경이였고 그 후 <안나카레나>를 1874년에 발표하며 세계적 대 문호의 반열에 오른다.
그 후 <부활,신부 세르케이, 무도회의 뒤,종교와 도덕, 톨스토이즘에 대하여,자기완성의 의미, 세가지의 의문, 셰익스피어론,
유년시대의 추억, 러시아 혁명의 의의> 등 수많은 작품을 출산했고 최후의 대작 <인생의 길>을 1910년에 완성하였다.
그러나 그의 가정 생활은 그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순탄하지 않았으며 이 가정생활의 모순을 해결코자 몇 차례 가출을 하게되며
끝내는 1910년 10월 29일 이른 아침 장녀와 주치의를 데리고 방랑의 여행길에 오르게 되며 여행 도중 병을 얻어 아스타프브 현
톨스토이역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감하게 된다.
문호의 묘지에 머리를 숙인 필자는 문호의 마지막 일기 형식의 시를 흥얼흥얼 읖조리며 봉사와 희생이란 무엇인가?라고 자문해 본다. 댓가를 원하는 봉사와 희생은 참 다운 봉사와 희생이 될 수 없다는 마음을 각인해 본다. 나 자신의 생존의 뒤안길을 돌아보며 경건히 옷깃을 여미어 보았다. 이에 인생살이는 댓가 없는 희생과 봉사만이 참된 사랑이라는 생각도 하며 다시 한번 머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