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읽는 법] 고양이 그림은 70세 생일 축하그림
예로부터 고양이(猫) 그림은 70세의 생일을 축하는 그림이다. 화재(和齋) 변상벽(卞相壁)이 그린 고양이 그림도 한국적으로 표현된 좋은 예의 하나이다. 그분은 고양이를 잘 그려서 변고양(卞古羊)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가 중국 그림과는 달리 참새(雀)을 기쁠 희(喜)로 표현하였다.

변상벽(卞尙璧)의 묘작도(猫雀圖)
참새 작과 까치 작(鵲)의 독음이 같은 것을 이용하여 우리나라에서만 기쁨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중국 그림에도 참새 종류가 기쁨(歡樂)을 뜻하는 일이 있지만, 이때는 반드시 노랑색으로 그려진다. 노란 참새인 황작(黃雀)이 환(歡)과 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변상벽(卞尙璧)의 군묘작작도(群猫鵲雀圖)
변상벽의 이 그림도 중. 고생들이 주고받는 참새 시리즈에 나오는 넌센스 퀴즈처럼 이치에 맞지 않는 점이 있다. 고양이가 나무등걸에 오르면 가지에 앉아있던 여섯마리의 참새가 모두 날아가고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참새가 날아가기는 커녕 고양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더욱 이상한 점은 고양이도 참새를 잡을 의사가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한 화면에서 서로가 무관심하게 그려진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편 그의 다른 그림을 보면 어미고양이 한 마리와 새끼고양이 세 마리가 있고 향나무 가지에 참새와 까치가 어울려 있는 모습니 있는데, 아마도 이 그림에서 변화되어 그렇게 그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고양이는 70세 노인을 뜻한다.
고양이 묘(猫)가 70세 노인이라는 뜻의 모(耄)와 중국에서는 독음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원리를 잘 아는 중국에서는 이렇게 어미고양이와 새끼를 한 화면에 그리는 일이 없다. 변상벽은 아마도 자식 셋을 두고 70세를 맞는 분의 고희를 축하하기 위하여 까치를 등장시켰을 것이다.

변상벽(卞尙璧)의 묘작도(猫雀圖)
까치가 큰 새라서 고양이와 조형적으로 잘 어울리지 않으므로 같은 발음의 참새를 까치 대신 그려 넣은 듯하다. 이것이 중국과는 다른, 우리나라만의 독자적 방법이다. 이런 독화법을 모르는 채 이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때로는 화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예컨대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참새와 고양이가 한 화면에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그린 것은 한국인의 평화를 사랑하는 심성을 반영한 것이라는 식의 감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인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미술품을 감상할 때는 그 그림을 그린 이의 생각을 올바로 이해하는 노부부가 자식 여섯을 거느리고 행복하게 고희를 맞는 것을 축하하기 위한 내용으로 그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점을 먼저 이해하고 난 후에 다른 점에 감상의 눈을 돌리는 것이 타당하다.
고양이와 나비를 함께 그리면...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 중 "예로부터 사람이 70세를 산다는 것은 드문일이다(人生七十古來稀)"에서 알 수 있듯이 평균 수멸이 18세 정도에 불과했던 옛날에 70세를 맞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으며 더우기 부부가 해로하여 고희를 맞는다는 것은 정말 경하할 일이었다.
김홍도의 [황묘농접도]
[현대] 유건화의 고양이와 나비
결국 변상벽의 그림은 이런 뜻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또 고양이가 70세 장수를 뜻하기 때문에 고양이와 함께 나비, 국화, 바위 등이 구성되어 고희와 관련된 여러가지 의미의 그림이 되었다. 단원 김홍도의 고양이와 나비를 그린 그림은 곧 모질도(耄耋圖)이다.
이때 고양이가 70세 노인이 모(耄)가 되고 나비는 80세 노인의 질(耋)이 된다. 묘(猫)와 모(耄), 나비 접(蝶)과 질(耋)은 중국에서 서로 읽는 소리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도와 기법이 좀 다르더라도 제백석의 모질도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봐야한다.
고양이를 국화 옆에 그리면...
이런 소재의 그림에서도 역시 고양이와 국화가 가진 뜻을 이용하여 서로 같은 의미를 나태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고양이는 70세의 노인을 뜻하고 이럴 때 국화는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도연명(陶淵明)이 국화를 사랑한 고사 때문에 은일자(隱逸者), 또 국화의 국(菊)이 거(居)와 음이 비슷하므로 은거를 뜻한다.

변상벽(卞尙璧)의 국정추묘(菊庭秋猫)
따라서 두 의미를 합하여 읽으면 "유유자적 은둔해 살면서 고희를 맞는다(隱逸享耋)"는 뜻으로 풀이 된다. 동양에서 은둔해 산다는 것은 서양에서처럼 염세주의가 아니다. 중원에서의 은일자(隱逸者)들은 대부분 도을 추구하거나 작품을 구상하는 예술인들이었다.
서양에서는 좁은 영지를 서로 나누어 가졌던 봉건주의시대의 역사 때문에 은준자는 염제주의자이거나 추방당한 사람일 수밖에 없겠지만, 동양에서는 원래 물산이 풍부하고 땅이 넓었으므로 유유자적하게 지내면서 학문과 사색에 힘쓰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해서 인품과 덕을 갖춘 사람이 되면 역경(易經)에서의 표현대로 군자가 되어 표범의 무늬와 같이 뚜렷히 겉으로 드러나서 감출래야 감출 수 없게 되므로(君子豹變) 저절로 현자라는 것이 임금에게까지 알려져 부름을 받게되고, 이때 그의 경륜과 이상을 펴서 민생을 이롭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출세요, 선비들의 이상이었다.
그래서 말조차 은둔해서 실력을 기르다가 세상에 나가 경륜을 편다는 뜻의 '출세(出世)'였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주(周)나라 문왕(文王)에게 등용되어 위수(渭水)가의 일개 어부에서 재상이 된 태공망 여상(呂尙)이었다.
강태공(姜太公)으로 잘 알려진 그가 7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찍 관로에 진출한 사람들보다 자기 이상을 펼 더 좋은 자리에 진출한 가장 전형적인 출세를 한 사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800년의 기틀을 다진 사람으로 만고에 추앙받고 있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면 고양이 앞에 방아깨비가 그려져 있는데 방아깨비 당(螳)이 '의당(宜當) 그러리라'는 당(當)의 뜻으로 놓여진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추일한묘도( 秋日閑猫圖)
또 하나의 고양이 그림을 잘 그렸던 중국 서비홍의 작품도 이런 방식으로 읽으면 '모수(耄壽)'가 된다. 고양이가 모(耄), 바위가 수(壽)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중국어도 점차 다음절화되는 추세이므로 옛날에는 '모' 한자이면 될 것이 '모수'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