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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秋史) 김정희

작성자클라베르|작성시간14.12.16|조회수132 목록 댓글 0

 

 

추사(秋史) 김정희

1786 - 1856

 

 

 

 

                 △ 세한도

 

 

△ 유애도서

 

 

 

 

△ 침계

 

 

 

 

△ 직성수구 대련

 

 

 

△ 지란병분

 

 

 

 

△ 대팽두부

 

 

 

△ 도사무백발

 

 

 

 

△ 화법서세 대련

 

 

 

 

 

△ 고사소요

 

 

 

 

△ 만수일장

 

 

 

 

△ 산수도

 

 

 

 

△ 영영백운도

 

 

 

 

△ 소림모정

 

 

 

 

△ 부작란도

 

 

 

 

△ 난맹첩

 

 

 

 

△ 호고연경

 

 

 

 

金正喜 (1786 - 1856)

자는 원춘(元春)이며 호는 완당(阮堂), 추사(秋史),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파(果坡), 노과(老果) 등.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1809년 생원이 되고, 1819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24세에 중국의 연경에 체류 중에 완원, 옹방강, 조강 등과 교류하였다.
이때 그들을 통하여 경학과 금석학, 서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1840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1848년 풀려 났으며,
1851년 헌종의 묘천 문제로 다시 북청으로 귀양을 갔다가 이듬해 유배가 풀렸다.

독특한 추사체를 완성하였으며, 특히 예서와 행서의 새 경지를 열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금석학에 조예가 깊어, 함흥 황초령에 있는

진흥왕 순수비의 비문을 분석하였다.


조선 건국시 무학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던 북한산 석비가

진흥왕 순수비라는 것과 ‘진흥’이란 칭호가 왕이 생전에

사용하였다는 것도 김정희가 밝혀낸 사실이다.

저서 [실사구시설]을 통하여
근거 없는 지식이나 선입견으로 학문을 대하는 것을 경계하였으며
북경으로부터 귀국할 때 불경 400여 권과 불상 등을 가져와서

마곡사에 기증하기도 하였다.
71세에 타계하였다.


생전에 세자시강원설서와 충청우도암행어사,

성균관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문집 [완당집]과 저서 [금석과안록] [완당척독] 등이 있고,
[묵죽도], [묵란도] 등을 비롯한 많은 서화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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