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김길자-늦가을 산사, 마음이 쉬어가는 곳

작성자시인가수 권오중|작성시간26.06.11|조회수2 목록 댓글 0

늦가을 산사, 마음이 쉬어가는 곳 / 김길자

 

 

 해마다 가을이 오면, 단풍이 절정인 산사가 그리워 마음이 먼저 길을 나선다.

오늘따라 가을 햇살은 따사롭고 하늘은 높고 파랗다. 마음과 생각이 통하는 문우 몇이 깊은 산속 각연사를 찾았다.

골짜기로 접어들면서 산 양편을 바라보면 늦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루어 황홀하기 그지없다. 빨강. 파랑. 노랑 원색의 나뭇잎 물결이 사람의 마음까지도 무아의 경지에 빠져들게 한다.

 산자 수려한 괴산의 보개산과 칠보산, 덕대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각연사(覺淵寺). 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바로 아래에는 국립공원 쌍곡계곡이 있다. 서쪽으로는 군자산의 우뚝 솟은 모습이 한편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주변의 수려한 산세와 골짜기마다 깨끗한 옥수가 흐르는 계곡을 돌아 첩첩산중에 이르면 주변은 산 새소리와 물소리만 들린다.

 각연사는 신라 법흥왕이 호국불교를 강조하면서 나라를 통치하고 있던 때에 유일 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유일 대사는 괴산군 칠성면 사동(절골) 근처에 절을 세우려고 목수들을 모아 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까마귀 떼들이 날아들어 대팻밥과 나무 부스러기를 물고 어디론가 날아가더라는 것이다.

이상하게 여긴 대사가 까마귀를 따라가니 조그마한 못에 물고 온 대팻밥을 떨어뜨리고는 못가에 쉬고 있었다. 대사는 못 속에서 서광이 비치는 것을 보고 신비로운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연못 속을 살펴보니 진좌(鎭坐)한 석불이 그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처님의 계시라고 생각한 대사는 즉시 절을 짓던 작업을 중단하고 이곳에 사람들을 데리고 와 비로자나불을 조심스레 건져내고 연못을 메워 절을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각연사는 연못 속에 부처님이 있음을 깨달은 절이란 뜻이 있다. 각연사는 이 석불의 기도 영험이 크다고 소문이 나 한때는 크게 융성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나도 불자로서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린다. 마음의 잡념이 한 올씩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나의 얕은 불심으로 소원을 빌기 전에, 불상 앞에서야 비로소 인간 속세에 쌓인 허물이 먼저 떠오른다.

 

오늘 하루 말과 행동과 생각이

남을 해치지 않게 하시고,

작은 인연도 귀히 여기게 하소서!”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발원 기도를 올린다.

연못 속에서 발견된 비로자나불을 봉안한 비로전 앞에는 수백 년을 훨씬 넘었을 보리수 한 그루가 서 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 앉아 도를 깨달아 정각(正覺)을 이루었다는 나무다. 보리수는 오래된 각연사의 역사를 안고 있는 듯 의연하다. 수백 년 동안 아름다운 산세와 경내를 내려다보며 각연사 스님들의 발걸음을 지켜보았을 나무.

 높고 파란 하늘 아래 비로전 앞마당에 깔린 모래에 시선이 머문다. 일정한 간격으로 정갈하게 비질 자국이 선명하다. 넓은 모래 마당 어디에도 떨어져 뒹구는 낙엽 한 장 없이 깨끗하다.

 새벽마다 빗자루를 들어 모래를 고르고 발자국을 지우고 마치 숨을 고르듯 마당을 다독였을 것 같다. 바람이 지나가도, 새가 날아와 모래를 흩트려도 비질 자국은 잠시 흐트러질 뿐 이내 다시 고요로 돌아간 모래 마당.

 가을 하늘은 드높고 파랗다. 목을 젖히고 올려다본 하늘은 티 없이 곱다.

이곳은 스님들이 수행 정진에 가장 좋은 환경으로 꼽힌다고 한다. 마음이 편하게 머물며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고 하며, 비구 스님 몇몇이 모여 정진하는 곳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참 나를 찾아가기 위한 기도와 독경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돌아오는 길. 산사 뒤편 능선에 걸린 단풍이 서서히 그림자로 내려앉는다.

하루가 저물 듯, 마음도 가볍게 저문다. 늦가을 산사는 그렇게, 말없이 마음을 쉬게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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