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질더질
강미란
판소리 「흥부가」의 한 대목, 매를 맞고 돌아온 흥부를 맞는 장면이다. 북장단이 낮게 깔리고 초가집 위로 어둠이 스며든다. 장단은 느리게 흐르다가 어느 순간 가슴을 죄듯 조여 오고, 그 위에 소리꾼의 목청이 실린다. 숨죽인 객석을 가로지르며 울음이 터진다.
“에구, 이놈의 세상아!
울어도 먹을 것이 없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니로다!
에에구― 더질더질, 더질더질― 이놈의 팔자야!”
고수가 장단을 바꾸자 소리꾼의 소리는 더 낮고 깊어진다. 흥부 아내는 더질더질 울어댄다. 숨이 넘어가듯 몸이 흔들리고 어깨가 들썩인다. 그 울음은 단순한 한탄이 아니다. 가진 것 없는 삶이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마지막 항변이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절박한 숨이다. 울음은 무너짐처럼 보이지만, 다시 버티기 위한 힘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복을 타는 대목보다 더질더질 울어대는 장면에 오래 머문다. 복은 결과이지만 울음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박 속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지기 전, 먼저 쏟아진 것은 사람의 눈물이었다. 눈물은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그 바닥이 삶을 받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그 울음 끝에서 흥부 아내는 다시 일어난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남편의 등을 토닥이며 삶을 붙든다. 복은 어느 날 찾아오지만, 그것을 담을 그릇은 이미 울음 속에서 빚어졌다. 더질더질 견뎌 낸 시간은 그녀를 단단하게 세웠다. 울음은 무너짐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과정이었다.
그 장면 속에 나의 지난날이 겹쳐 온다. 친정어머니를 떠나보내던 날, 나 또한 더질더질 울었다. 병실의 흰 벽은 침묵했고, 기계의 미세한 소리만이 시간을 붙들고 있었다. 창밖의 햇빛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으나, 내 안에서는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식어 가는 손을 붙잡았지만, 체온은 이미 나를 떠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이승과의 인연을 놓는 순간, 세상은 숨을 죽였고 나는 홀로 서야 했다.
그날의 울음은 눈물이 아니었다. 가슴이 찢기는 소리였다. “엄마”라는 부름이 더는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 순간, 나는 비로소 고아가 된 것만 같았다.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여전히 아이였다. 그 아이가 하루아침에 어른이 되어야 하는 자리였다. 울음은 어린아이처럼 터져 나왔지만, 감당해야 할 몫은 어른의 몫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울었을까. 단지 상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옷깃을 고쳐 주던 손길과 단호히 일러 주던 목소리, 괜히 한 번 더 챙겨 주던 마음까지.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과거가 되었다. 그 사랑은 사라졌는데 사랑받던 나만 남아 있었다. 그 어긋남이 나를 더질더질 울게 했다.
어머니를 잃고 나는 몇 해 동안 이유 없이 허전했다. 기쁜 날에도 먼저 전화를 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멈칫하게 했다. 그 빈자리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지만, 나를 무너뜨리지만은 않았다. 더질더질 울고 난 뒤, 나는 조금씩 어머니의 자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가며 그 자리를 닮아 가고 있었다. 울음은 사랑을 끊는 일이 아니라 다른 자리로 옮겨 놓는 일이었다.
치유 자서전 쓰기 강의하다 보면 글을 쓰다 말고 더질더질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을 자주 만난다. 펜을 내려놓는 사이 눌러 두었던 세월이 쏟아진다. “그때는…”이라는 말 뒤에서 기억이 먼저 흐른다. 끝내 말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울음의 형태로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 그것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고백이다. 나는 그 곁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그것이 막아야 할 감정이 아니라 지나가야 할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더질더질 흐느끼는 동안 사람은 자기 삶의 가장 아픈 지점으로 걸어 들어가고, 그곳에서 비로소 자신을 만난다.
울고 난 뒤의 얼굴은 오히려 맑다. 막혀 있던 숨이 트이고 삶은 다시 이어진다. 울음으로 한 차례 씻겨 난 기억은 더 이상 생살처럼 아프지 않다. 더질더질 토해 낸 문장은 삶을 정리하는 방식이 되고, 나를 설명하는 서사가 된다. 울음은 감정의 낭비가 아니라 삶을 다시 세우는 시간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더질더질 울어야 할 때가 있다. 아이처럼 짧게 스치는 울음도 있고, 세월을 건너 오래 이어지는 울음도 있다. 그러나 그 울음은 우리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밀어낸다. 삶은 여러 차례 나를 시험했고 예고 없이 상실과 외로움을 던졌다. 그때마다 나는 그날의 울음을 떠올렸다. 끝까지 울고도 나는 숨을 이어 갔다. 어둠은 물러가고 날은 다시 밝았다.
울음은 약함이 아니다. 다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더질더질 울고 나면 마음 한켠이 비워지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하루가 들어선다. 울음은 삶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움직이게 한다.
판소리 한마당이 내게 남긴 것은 한 가지 분명한 깨달음이다. 사람은 울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더질더질 울던 시간들이 내 안의 굳은 마음을 녹이고, 그 자리에 다시 살아갈 힘을 놓아준다. 삶은 울다가 웃다가 또다시 일어서는 일의 반복이며, 그 사이마다 울음은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숨 쉬게 한다. 장단이 끊기지 않듯 우리의 삶 또한 그렇게 이어진다. 더질더질 울음을 품은 채 우리는 끝내 앞으로 나아간다.
등단: 《한국수필》(2016)
저서: 수필집 《나의 퀘렌시아》, 《차경借景》,《어디로 가는 걸까》,《레치얌!》
수상: 고동주문학상, 한국수필독서문학상대상,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입선,
한국수필 올해의 좋은수필상, 한남문학공모전 대상 외 다수
문학 활동: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