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정병국 / 책이 가져다준 고약한 병

작성자연잎|작성시간26.06.11|조회수31 목록 댓글 0

책이 가져다준 고약한 병

정병국

 

 

책을 좋아해서 얻은 병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야기도 곤란한 치질이다. 어릴 적부터 책만 손에 쥐면 끝까지 다 보는 습관이 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느라 낮에 책이 좋아도 어머님에게 눈치가 보여 읽을 수가 없었다. 어머님은 내가 책을 읽는 모습만 보아도 돈 때문에 진학을 못 시켜 준 사실에 가슴을 아파하셔서 드러내 놓고 읽을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앉아서 읽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내 병이 시작되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치질로 고생해야만 했다. 별로 심각하게 느끼지 않아 방치하게 되었고 화장실에서 책 읽는 습관은 아주 공고히 길들어졌다. 치질은 사랑했던 여인처럼 잊을만하면 내 소중한 곳에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기를 반복했다. 급기야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는 변에서도 빨간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따금 내치핵이 외치핵 되어 배변 시 가끔 보이기 시작했다. 병이 병 같지도 않은 게 신경을 건드렸다. 드러내놓고 싶지 않아서 병원에는 가 보지도 않았다. 가끔 심각함이 느껴지면 어른들에게 귀동냥했던 민간요법을 사용해 보기도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치질이 점점 심해지면서 변에서 피가 한 종지 정도가 나오고. 그때부터 자주 하던 헌혈도 빈혈이 걱정되어 기피하게 되었다. 그렇게 심각한 일들이 자주 번복이 되는데도 치질로 병원 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변비가 생기면 좌약도 쓰고 빈혈이 오면 임산부들이 먹는 철분제를 자주 사 먹으면서도 병원은 이상하리만큼 가기 싫었다.

변의 밸런스가 깨지거나 술을 폭음하는 날 뒤에는 피가 주삿바늘에서 주사약 나오듯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날로 심각성이 더해졌다. 그래서 치핵에 수은을 집어넣어 치질 덩어리를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치료도 알음알음으로 소개받고 찾아가 보았으나 치료 같지 않아 포기를 하면서도 병원은 죽어도 가기가 싫었다.

사십이 넘어서자 변의 양보다 피의 양이 더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빈혈성 혼절이 가끔 왔다. 산을 타는데도 정상에 서면 어지럼증이 올 정도의 고소공포증이 생겼다. 몸은 전보다도 뚱뚱해져서 백여 킬로가 넘는데도 몸에 핏기가 하나도 없어 보이기 일쑤였고 급기야 병원을 제 발로 찾아갔다. 이름도 알맞게 지은 항문외과 비슷한 창문외과~~ 그렇게 치질은 내 인생의 전반전을 빈혈의 공포와 대장암의 공포를 안겨 주었기에 단호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환부를 들여다보신 의사는 하루가 급하다고 수술 날을 잡았다. 치질 외에 대장암이나 다른 것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하체를 국소마취하고 수술이 진행되었다. 마취 때문에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의식은 멀쩡해서 다행이었다. 삼십여 분 걸리는가 싶더니 수술은 끝났고 의사는 내게 달걀 덩어리만 한 치질 덩어리를 보여주며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다.

수술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가기 위해 수술용 침대에서 이동용 침대로 나를 옮길 때 문제가 발생했다. 간호사 두 명과 의사가 나를 옆 이동용 침대로 옮기다가 내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두 침대 사이로 나를 빠뜨려 버렸다. 나는 두 눈을 뜨고 바라보면서도 마취 때문에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하고 셋이서 나를 들어 올리려고 하는데 아예 들지도 못했다. 간호사 두 명과 수술했던 의사 선생님이 더 달려오고, 그래도 못 들고, 나도 나름 힘을 쓰지만, 하반신 마취로 허사였다. 다시 두 명이 더 달려오고, 시간은 지체되고, 급기야 사무실의 남자 직원이 두 명 더 달려와서야 나를 이동용 침대에 올릴 수 있었다. 십여 분은 족히 걸리는 시간이었다. 아홉 명이 내 몸뚱이 하나를 가지고 씨름을 한 셈이다. 의사도 놀라고 간호사들도, 직원들도 놀랐다. 나는 나대로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 단 두세 사람이 나를 번쩍 들을 수가 없다니.

몸의 무게가 그렇게 심각하게 무거울 줄을 몰랐다. 더구나 의식이 멀쩡해서 다 보고야 말았으니 어쩌면 치질을 수술한 것 보다도 더 창피하고 슬픈 일이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못 보았던 아내는 내 이야기를 듣고 배꼽을 쥐고 웃었으나 나는 치질과 빈혈보다 더 크고도 다른 고민을 안 한 채 병원을 나서야 했다. 사실 아내가 며칠을 간호하는데도 무게가 많이 나가 무진장 고생했다. 그때부터 몸의 무게가 내 의식을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전에는 전혀 심각함을 몰랐었다.

아내 당신은 절대로 물에 빠지면 안 된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당신을 건져 낼 때도 열 사람이 필요하고. 당신이 먼저 몸져눕게 되면 골격이 커서 걱정이 된다라는 것이다. 나도 속으로는 은근히 걱정된다. 언젠가 쌀 빼기를 꼭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성악 중에 테너를 좋아해서 살을 빼고 싶지 않다. 몸이 악기라고 지금이 가장 적절한 성량을 낼 수 있는 몸이기 때문에 당분간 그냥 유지하려고 한다.

다만 몸무게는 내게 커다란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이십 년 전 이야기를 다시 올린 것은 독서는 여전히 진행형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확인차 쓰는 거다. 지난여름 8킬로 정도 영토와 무게를 줄였는데 바쁘니 현상 유지도 벅차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무게가 112에서 이제 확실하게 108에 걸려있다. 분명 내려갔다. 조금 더 노력하면 두 자리로 폴짝대려 뛸 것 같다. 이미 도전은 시작되었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래서 응원을 부탁드릴 겸 수치에 가까웠던 이야기를 다시 쓴다. 어젠가 두 자리로 곤두박질쳐야 하기에~~~~ㅎㅎ

여전히 밤에는 책을 뒤적이고 또 브런치를 뒤적인다. 빌어먹을 활자중독증 환자.

 

 

정병국

등단: 『문예춘추』(2009 수필), 『한국작가회』(2016 소설)

문학 활동: 청주시문학회, 충북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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