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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뉴스 "서예가 송우진과 진례서도원

작성자石普(송유장)|작성시간15.08.02|조회수226 목록 댓글 0
흐트러진 마음을 모은 붓끝 한 자 한 자 정신의 수양
서예가 송우진과 '진례서도원'
2014년 10월 01일 (수) 09:05:19 호수:191호  10면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붓글씨를 쓰다보면 흐트러진 마음이 가다듬어집니다. 정신을 맑게 하고, 집중하기에 가장 좋습니다. 곧고 아름다운 뜻을 담은 글귀를 쓰는 것은 마음 수양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이 서예의 좋은 점이지요." 서예가 송우진(67)씨가 2000년에 문을 연 '진례서도원'은 서예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이 찾아와 글을 쓰는 공간이다. 진례서도원의 회원 모임 '진묵회'는 각종 서예공모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기도 하다. 서예가 송우진의 진례서도원을 방문했다.

김해사충신 의병장 송빈의 13대손
조부 송세현도 진례에서 서당 열고 후학
선친 글 쓰는 모습 보며 자라 가풍 이어

죽봉 황성현 선생 강좌 익히고 배워
옥전 박다두 선생 만난 뒤 서도원 시작
진묵회 회원들 가르치는 일에 열정

개인전·책 편찬·진묵회전시회 등 준비

  
▲ "더 많은 분들이 서예의 매력을 알게 돼 함께 글씨를 쓰면 좋겠습니다." 송우진 씨가 진례서도원에서 글씨를 쓰고 있다.


진례서도원은 진례파출소 왼편 송정리 433-1 건물의 2층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넒은 공간을 가득 메운 묵향이 느껴진다. 벽에는 진묵회 회원들이 쓴 작품이 걸려있다. 서서 글씨를 쓸 수 있는 책상과 앉아서 글씨를 쓸 수 있는 책상이 비치돼 있다. 책상 위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먹과 벼루가 담긴 나무함이 하나씩 가지런히 놓여 있다.

송우진은 "서서 글씨를 쓰면 한눈에 자신이 쓰고 있는 글씨가 훤히 내려다보여 글씨가 바르게 된다. 하지만 연세가 많은 분들은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으니 앉아서 쓰기도 한다. 자기 마음에 맞는 자리에서 편하게 쓰라고 두 종류의 책상들을 비치했다"고 설명했다.

마침 서도원 안에서는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책상에 앉아 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선시대 반가의 여인을 보는 듯 경이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진례서도원에는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두 명이나 와서 붓글씨를 쓰고 있다고 한다.

송우진은 진례면 송정리 송정마을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김해성 전투에서 왜군을 맞아 싸우다 전사한 김해사충신 중의 한 분인 의병장 송빈(宋賓·1542~1592)의 13대손이다. 청주 송 씨 가문의 세거지인 진례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적부터 전통풍속과 예의를 중시하는 가풍을 익히며 자랐다.

"여섯 살 때 할머니께 천자문을 입으로 외는 걸 배웠지요. 바로도 외고, 거꾸로도 외웠어요. 학교 들어가 교과공부 하면서 다 잊어버리긴 했지만요." 그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손주를 앞에 앉혀놓고 천자문을 함께 외던 할머니의 모습이 잠시 연상됐다.

"조부님(송세현)은 서당을 열었어요. 사랑채 5개의 방이 조부님께 글을 배우러 온 사람들과 학동들로 가득 찼지요." 그는 그 집에서 현재도 살고 있다. "사랑채 앞 정원에 큼직한 사각 돌이 지금도 있습니다. 저는 그 돌이 조부님의 세숫물을 올려놓는 돌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중학교 때 낯선 노인에게서 그 돌의 쓰임새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조부님의 서당에서 글을 배운 적이 있다면서 '다른 건 다 변했는데 이 돌은 그대로구나. 이 돌은 글씨 쓰기 편하게 닥나무 종이를 부드럽게 두드리는 받침돌이다'라고 설명해 주시더군요." 방에서는 글을 읽고, 방 아래에서는 글씨 쓰기 좋으라고 종이를 두드리고…. 진례의 옛 서당 풍경인 셈이다.

"선친(송구복)께서 글을 쓰실 때 옆에 앉아 먹을 갈아드리곤 했습니다. 이 근방에서는 글을 쓸 일이 있으면 누구나 선친을 찾아 왔습니다. 집을 지을 때 쓰는 상량, 초상이 났을 때 망자의 관 위에 덮는 명정, 상가의 부의록, 집안 대소가의 제사축문, 혼인의 사주단자와 사성 등 예의와 격식을 차려야 하는 글씨를 다 쓰셨지요. 농사를 짓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글을 쓰고, 공부도 하시고, 말 그대로 주경야독의 삶을 사셨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 글을 써달라고 사람이 찾아오면, 농사일을 하시다가도 돌아와 손을 씻고 글을 쓰셨습니다. 선친께서 1997년 작고하고 나니, 글씨 쓰는 일이 제게 돌아왔습니다. 전통을 이어나가야 했으니, 자연스럽게 제가 그것을 이어받았습니다."

송우진은 "내가 글씨를 잘 쓴다고 그 일을 맡은 것이 아니었다"는 말부터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집안 어른들 중 객지로 나가신 분들도 많고, 돌아가신 분들도 많습니다. 집안 제례나 혼인 때 누군가는 글을 써야 하는데, 그것이 자연스럽게 내 일이 되어 서예에 관심을 가지게 됐지요. 어릴 때부터 선친께서 글을 쓰시는 것을 보고 자란 덕분에 어른들께서 남긴 기록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세필부터 시작해 이렇게 서도원도 열어 진묵회 회원들과 함께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는 글씨를 쓰는 부친 옆에서 먹을 갈아드리며 어깨너머로 보면서도 한번도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글씨를 쓰는 선친을 뵙고 있으면 감히 제가 할 일이 아닌, 엄숙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그러나 그 역시 군에 입대했을 때나 진례농협에서 근무하는 동안에 '글씨를 쓰는 사람'으로 뽑혔다. "군대에서 차트글씨를 썼고, 농협에서는 상장이나 문서도 썼지요. 그때는 몽당붓으로 먹물을 찍어 쓰던 시절이었어요." 그러고 보면 그에게도 선대의 가풍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윗대의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송우진도 김해향교와 서원에서 올리는 향사 등 지역 유림계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글을 쓰고, 지역사회와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붓을 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연말이 되면 입춘방(立春榜)을 써서 지인들께 선물을 합니다. 입춘방은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문장을 쓴 글이죠. 24절기의 첫 번째인 입춘에 대문이나 기둥, 벽에 입춘방을 붙이는 게 선조들의 풍습입니다. 시절이 변해도 좋은 일이 생기길 기원하며 입춘방을 붙이는 풍속은 여전합니다. 저도 그런 마음을 담아 입춘방을 써서 선물을 하는데,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그 수가 점점 늘어나 3년 전부터는 300여 장의 입춘방을 쓰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진례에 찾아오는 봄기운은 그의 입춘방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예를 본격적으로 익힐 때는 우편으로 집에 배달되는 '서예통신'을 통해 죽봉 황성현 선생의 강좌를 익히고 글씨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옥전 박다두 선생도 찾아가 배웠습니다. 옥전 선생과의 만남이 진례서도원의 시작이었지요."

송우진은 2000년 3월 진례면 신월리 신월마을의 폐교에 세워진 가야문화예술관에서 진례서도원을 창립하고 서예강좌를 개설했다. 이때 옥전 선생을 초빙강사로 모셨다. 2002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는데, 옥전 선생은 지금도 변함없이 진례서도원의 진묵회 회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옥전 선생은 부산에서도 서예학원을 운영하고 계시지만, 진례서도원에서 글씨를 쓰는 진묵회 회원들을 가르치는 일에 마음을 다하고 계시죠. 그 열정이 회원들의 마음에도 와 닿습니다. 진묵회 회원들이 각종 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그 덕분입니다. 문인화, 서예 등 공모전에 작품을 내면 낙방하는 회원이 없을 정도입니다." 진례서도원은 연혁에 어떤 회원이, 어떤 공모전에서, 무슨 상을 받았는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 상세한 기록들을 보니 회원들이 한 가족처럼 지낸다는 말이 실감났다.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일, 윗대 어른들의 가풍을 이어가는 일을 좀 더 잘 하려 하다 보니 서예 공부를 하게 됐고, 서도원도 열게 됐습니다. 내가 쓴 글을 평가받아보자 하는 마음에서 공모전에 작품을 냈고, 그렇게 계속 글을 쓰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기 작품부터 현재까지의 작품들은 모두 간직하고 있습니다. 주위에서 개인전을 한번 하라고 권하는군요. 개인전을 열면 관람객들이 저의 초기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밖에 못썼나'하는 생각을 하다가 '열심히 쓰면 이만큼 쓸 수 있겠구나'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개인전을 열거나, 글을 쓰면서 지내온 삶을 정리하는 책을 한번 내볼까 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김해향교 유림서화전 기획 진행을 마무리한 그는 제7회 진묵회전시회 준비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송우진은 "취재 요청을 받았을 때, 내 이야기보다 진례서도원과 진묵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기사가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붓을 들기를 바라고 있다. "서예를 하면 마음 수양이 자연스럽게 됩니다. 우리네 삶은 늘 다사다난한 일들로 어지럽지만, 글씨를 쓰는 동안에는 잡념이 모두 사라지지요. 마음이 편안해지면 몸 또한 편안해집니다. 더 많은 분들이 함께 글씨를 쓰면 좋겠습니다. 진례서도원에서는 그런 분들을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5년 김수로왕릉 춘양대제시 초헌관 새누리당대표 김무성 대축관 송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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