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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김해지리지 진례면 2편 (김해뉴스에서)

작성자비음산|작성시간13.02.28|조회수242 목록 댓글 0

     
길가에서 찾은 초전미륵불 … 훼손된 무릉도원
(37) 진례면< 2 >
2012년 04월 24일 (화) 11:07:58 호수:0호 이영식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report@gimhaenews.co.kr

   
▲ 논 한가운데 벚나무길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아름답게 휘감아도는 학성마을 입구.
지난번에 무려 2시간을 헤매고도 만나지 못했던 초전미륵불님을 찾아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추가 조사도 했기에 나름 확신을 가지고 진례나들목(IC)을 내려 호기롭게 진례에 들어섰건만, 오늘도 화포천 위의 초전교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몇 번의 왕복에 다시 애가 닳았을 즈음 초전교 남단의 오일뱅크 담벼락 옆에 예사롭지 않은 돌무더기가 눈에 띄었다. 다가가 보니 돌무더기는 군대가 진지로 사용했을 법한 사각형 시멘트구조물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바로 그 안에 부처 한 분이 숨어 계셨던 거다. 높이 1.2m, 너비 50㎝ 정도의 화강암에 새겨진 마애불이다. 마모가 심하지만 상단의 다듬은 흔적과 두광과 신광의 광배가 분명하고 배 부분의 가사 주름은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된다. 배 부분의 주름 위치를 보니 좌상인 모양인데 수인이 잘 보이지 않아 미륵님으로 확언하긴 어렵다.
 
   
▲ 초전미륵불.
다만 신기하게도 뒤를 살펴보니 또 다른 새김이 있다. 시멘트벽 사이의 틈이 너무 좁아 제대로 살피기는 어려웠으나 두광의 묘사, 얼굴과 어깨의 선, 그리고 아래 부분의 주름은 돋을새김의 흔적이 분명하고 제법 볼륨도 있다. 훌라후프 같은 두광과 갑옷 같은 옷 주름이 팔부중상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예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원통형 뒷면에 새겨진 것이 부처라면 평평한 앞면의 불상과 함께 2면불임이 처음 확인된 셈이다. 아래가 결실되고 여러 군데가 깨진 채로 시멘트 상자에 앉혀진 품이 근처에 뒹굴던 것을 여기에 모신 모양이다. 이른 아침인데도 촛불이 켜져 있고 기도자리가 청결하다. 예배 단 아래를 보니 간밤에 굿이라도 벌였는지 잡풀 위에 검은 헝겊으로 만든 인형과 오색천이 뒹굴고 있다. 격식 없이 비는 사람이 많은 걸 보니 미륵님이 맞는 모양이다.

지난번 걸음을 멈추었던 진례초등학교 맞은편의 진례중학교를 찾는다. 밝은 색의 낮은 담 너머로 보이는 붉은 색의 타탄트랙과 황색 운동장, 본관의 벽돌색과 흰색의 콘트라스트가 선명하고, 신축 체육관의 메탈릭한 윤곽선이 말끔하다. 1953년 7월 개교로 60주년을 준비하는 전통의 사립학교다. 9개 학급 252명(남137)의 학생들이 16대 조정옥 교장 이하 29명의 교직원들과 함께 수업의 교사별 브랜드화와 스포츠동아리의 활성화를 통해 학력과 체력을 키우고 있다. "세모시 옥색치마~"의 금수현 선생이 작곡한 교가가 자랑스럽고, 해마다 진례면민체육대회가 개최되는 또 다른 진례의 중심이다.
 

   
▲ 다송도예.
진례(進禮)는 이미 신라 말의 <진경대사탑비·924년> 등에 보이지만 그 유래에 대해서는 <김해지리지>에 조차 별다른 언급이 없다. 남쪽을 뜻하는 '갈'과 들의 '덜'이 '갈' 진(進)과 '절' 예(禮)로 표기되었다지만 근거가 없다. 반면에 <삼국사기>는 김천의 지례(知禮)현을 지품천(知品川)현으로, 한성의 울내를 위례(尉禮)로 표기했고, <삼국지>의 불내(不耐)는 동예(東濊)와 같다. 고대의 예나 례(禮)가 '내'나 '천(川)'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진례면은 원래 청천면이었다. 열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청천리에 모두 모여 북으로 흐르기 때문에 '열두 청내'라고도 했단다. '나갈' 진(進)에 '내' 예(禮)의 유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높은 곳에서조차 맑은 물 찾기가 어렵게 되었지만 원래는 동서 양쪽의 산골짜기 마다 맑은 물이 흘러내리던 깨끗한 마을이었다.
 
이제 공장들이 가득 들어찬 고모리~담안리~송현리의 동쪽 골짜기에서 맑은 물 찾기는 어렵겠지만 송계(松溪)·강변(江邊)·학성(鶴城) 같은 맑은 이름의 마을이 있다. 약간 높은 지대를 뜻하는 진례중 언저리의 둔덕과 돈담 마을을 나서 송현로를 따라 가다 강변교 남단에서 고모로와 만난다. 진례농협(1987.11)을 끼고 오른 쪽으로 돌아 남쪽의 학성마을로 향한다. 길 왼쪽에 마을표지석이 나타나면 일단 멈춰 서는 게 좋다. 논 한 가운데에 유려한 커브를 그리며 휘어 들어가는 벚나무 가로수 길의 곡선이 제법 아름답기 때문이다. 어느새 벚꽃은 지고 남은 꽃잎 몇 장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고모로를 달리는 대형 트럭들의 굉음을 뒤로 하고 버스정류장을 지나 학성저수지에 오른다. 저수지에 오르는 입구 오른쪽에 롯데스카이힐 김해컨트리클럽(2008년, 18홀)으로 들어가는 북쪽 출입문이 있다. 대문 안의 정돈되고 좀 있어 보이는 풍경은 어수선한 이쪽 세상과의 분명한 차이를 주장하고 있다.
 
   
▲ 미륵불과 탱화 같은 벽화가 입구에서부터 먼저 눈에 들어오는 송계사.
저수지를 끼고 도는데 차 소리에 놀랐는지 헤엄치던 물새 몇 마리가 날아오르고 노란 부표 위에서 느긋하게 봄볕을 음미하던 제법 큰 자라 한 마리가 물속으로 뛰어 든다. 왠지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누군가에게 감사하고픈 자신을 발견한다. 저수지 윗쪽 좌우에 손길이 베풀어진 숲이 있어 기웃거려 보았더니 한쪽은 청주 송씨, 또 한쪽은 동래 정씨의 문중묘원인 모양이다. 수면 위로 건너 다 보이는 경치도 괜찮고 내려 쬐는 봄볕도 아름다운데 이 언저리는 있는 집안의 무덤자리로 변해가는 모양이다. 버스정류장까지 돌아 와 솥을 만들었다는 솥골(鼎谷)과 송씨 문중의 추모제(追慕齊)로 올라가는 고모로180번길을 버리고, 고모로216번길을 따라 학성마을회관을 지나 당리마을회관에 이른다. 못 당(塘)을 쓰는데, <김해지리지>는 마을회관 같은 집 당(堂)으로 표기하면서 송현리의 중심마을로 전하고 있다. 회관 위쪽에 있는 당리저수지가 조금 더 큰 솔티저수지와 붙어 있다. 솔은 송(松)이고, 티는 고개 '치'로 고개 현(峴)과 같은 말이니 송현리의 이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마을회관에서 조금 더 가면 소나무 숲의 낮은 언덕이 길을 막는데 여기가 솔티다.
 
솔티 옆의 송계를 따라 올라가면 송계사가 있다. 참선도량이라 고성방가와 사진촬영은 물론, 말도 하면 안 된다는 주지의 안내(?)문에 몸을 움츠리며 절로 들어선다. 맞은편의 미륵불과 탱화 같은 벽화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오른쪽 원통보전의 기와지붕이 길 아래에 있는 색다른 분위기다. 물소리에 이끌려 약사전의 슬라브 지붕에 올라보니 소나무가 있는 계곡은 맞는데 기대했던 청량감과는 거리가 멀다. 주지스님이 출타 중인 모양이라 절의 내력은 묻지 못했으나 <김해지리지·1991년>는 송계암으로 전하고 있다.
 
   
▲ 금속공예 대한민국 명장 변종복 장인이 1997년부터 작업하고 있는 공방 '고려공예'.
송계사에서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에 조각공원 같은 너른 잔디밭과 커다란 공장 같은 공방이 보이는데, 입구에는 '대한민국 명장 변종복 장인의 집 고려'라는 청동글자가 붙여진 큼지막한 바위가 서 있다. 2010년 4월에 시내 수릉원에서 허왕후의 동상을 제작 개막했던 변종복 명장이 1997년부터 작업하고 있는 공방이다. 노동부가 주조분야의 금속공예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명장(06-11호)으로 인정한 장인으로, 46년 동안이나 금속주조공예의 외길을 걷고 있다. 전통의 계승은 물론 이탈리아 유학 등으로 절차탁마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 고장의 자랑이다. 한마음선원(충북·뉴욕·진영)의 우주탑, 부산대 우정의 종, 김천시립도서관의 책 조형물 등의 대형 설치작품이 있고, YTN의 명장열전 '쇳물을 예술로' 등에도 소개되었다.
 
솔티 아래 자락을 돌아 고모로216번길을 따라 가면 오룡요 앞에 오룡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다. 오룡마을은 청주 송씨 오형제가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장유철강 윗쪽의 예쁜 솔밭엔 몇몇 후손들의 묘소가 있다. 미륵불이란 표지판을 따라 비탈길을 올라가 보았더니 부처는 없고 미륵불이라 쓴 커다란 표지석이 철책 밖에 서 있을 뿐이다. 안을 들여 다 보니 어느 집안의 별장이나 묘원인 모양인데, 어디서 옮겨 왔는지 보물급으로 보이는 3층 석탑도 보인다. 마침 자전거로 지나는 분께 물었더니 부산의 신발회사 집안 같다는데, 돈도 그렇지만 석탑의 진위 여부와 안치 경위, 그리고 보지도 못할 미륵불을 어떻게 문화재의 고동색 간판으로 공공도로에 붙여 놓을 수 있었는지 갑자기 물음표 투성이가 되었다. 고모로324번안길을 끝까지 오르면 산은 어느덧 낮아지고 제법 넓은 오솔길이 나타나는데 주촌면 내삼리로 넘어가는 불티재(佛峴)의 시작이다.
 
   
▲ 송빈 생가.
(주)고모텍 앞으로 내려와 고모로324번길을 따라 고려요(서만삼)와 정자가 예쁜 벽돌기와집 다송도예(송영복)를 지나면 대밭을 배경으로 시간여행을 한 듯한 일본식 농가가 있다. 마침 굴뚝에서 연기도 피어오르고 있어 일본의 어디나 일본 애니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농가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면 노란 유채꽃이 활짝 핀 송빈(宋賓) 선생의 유허지가 있다. 임진왜란 때 죽음으로 김해성을 지켰던 사충신 중 한 분으로, 공의 생가와 1799년(정조23)의 비명을 다시 새겨 세운 유허비(1992년)가 있다. 솟을대문 앞의 은행나무엔 어느새 신록의 은행잎이 가득하다. 가을이면 회청색 기와지붕 위를 노랗게 물들일 터이다. 유허지 아랫쪽에는 200~300년은 족히 넘었을 노거수들이 작은 내를 따라 늘어서 있다. 길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팽나무는 300년은 넘었을 것인데 바로 앞에 마을회관이 있는 걸 보니 마을의 당산목임을 알겠다. 동과 북은 무릉산(313m)과 황매봉(393m), 서와 북은 응봉산(284m)과 태종산(290m)이 담처럼 둘러쌓아 담안마을이라 했단다.
 
담안마을회관을 지나 모처럼 시원하게 들판을 가로 지른다. 고모로와 만나는 곳에 순백색의 담안교회가 있다. 1931년 시작의 예배가 80주년을 맞이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30년이 조금 못되었다지만 개화기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예배당이 단아하다. 김영래 담임목사와 130여명의 신도들이 신앙공동체를 다지며 전도에 헌신하고 있다. 오른쪽 멀리 알록달록하게 보이는 아시아마트를 바라보며 고모로를 건너 고모로327번길로 들어선다. 길 초입에 있는 1956년 6월 개교의 대진초등학교는 박영서 교장 이하 17명의 교직원들이 40명(남18)의 학생·9명의 유치원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초미니 학교다. 수업 중인지 적막한 교정이지만 창의경영(교과부)·환경보전(환경부)·엄마품돌봄(경남교육청) 등의 선정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을 키우기에 열심이다. 더 들어가면 '경로효도관광'의 플래카드가 눈부신 하평마을회관이 있다. 여기가 '아랫들'의 하평마을이고, 들판 건너 맞은편이 '윗들'의 상평마을이다.
 
   
▲ 고모로 324번길을 따라 고려요와 다송도예를 지나면 대밭을 배경으로 이색적인 일본식 농가가 이국의 정취를 자아낸다.
하평마을을 벗어나면 들판 한가운데 신축의 진례역이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다. 2010년 11월 30일에 부산신항선이 개통되었고, 12월 15일부터 경전선 삼랑진~마산 간 복선전철화의 완공으로 여객업무를 시작했다. 당초 KTX의 정차를 감안해 50억 원 짜리 호화판 역사가 세워졌지만, 바로 옆에 진영역이 생기면서 하루 12회의 무궁화만이 정차할 뿐이다. 1일 이용 승객 10여 명의 수치는 예산낭비의 전형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진례역 뒤편에선 진례(담안)천이 화포천에 합류하고 있다.
 
역 앞 들판을 일직선으로 가로질러 개동저수지 앞의 개동마을을 지나 고모리에 들어선다. 상우마을 표지석을 지나 고모마트 옆의 고모마을회관에 이른다. 지금은 옛 고(古)에 그리워할 모(慕)를 쓰지만, 원래는 돌아 볼 고(顧)에 어미 모(母)의 고모곡(顧母谷)이었다 한다. 동에서 북으로 뻗어 마을 위를 감싼 모양이 어미 소를 그리워하는 송아지가 고개 돌려 돌아보는 형국에서 생긴 이름이란다. 송아지 머리에 해당하는 고개가 높을 고(高), 고개 령(嶺)의 고령이다. 고모로582번길에서 동쪽으로 넘어가는 해발 130m 정도에 불과하지만 차로 오르다 보면 뒤가 옴찔할 정도의 높이를 느낀다. 진례의 모든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촌의 덕암리, 한림의 명동리, 진례의 고모리가 경계를 이루는 이 고개를 넘으면 숟가락으로 폭 떠낸 듯한 작은 분지의 별세계 고령마을이 있다. <김해지리지>가 외부에선 마을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기록할 정도로 동떨어진 마을이다.
 
살아있는 무릉도원(?)을 기대하며 올랐던 걸음에 힘이 빠진다. 분지를 둘러싼 병풍의 반이 포크레인의 굉음과 함께 시뻘겋게 깎여나가고 있다. 김해상록골프장의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밭을 만지고 농사를 준비하는 손길과 산자락에 원을 그리고 있는 몇 채의 집들, 그리고 늦은 벚꽃이 '무릉도원'의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처음의 기대가 크게 잘못되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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