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꽃 능소화 / 송유창

작성자石普(송유장)|작성시간21.04.02|조회수64 목록 댓글 0

1. 어머님의 꽃 능소화!(2020년 6월 3일 오후 9시 30분에 저장)



 

 

능소화는 쌍떡잎식물 통화(통꽃)식물목 능소화과의 낙엽 활옆 덩굴식물로서 높이는 10m 정도 자란다. 금등화(金藤花)라고도 부르며 중국이 원산지이다. 능소화의 한자말인 ‘능소(凌霄)’는 ‘하늘을 타고 오르다’라는 뜻으로 ‘하늘을 능멸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말이다. 덩굴빨판이 있어 어디든 기어올라 기어이 하늘을 보는 꽃이라 한다.

능소화는 끈질기면서 꾸밈없이 소박한 꽃이다.

나는 여산(礪山)에서 부사관 학교장을 할 때, 학교장 공관 울타리에 지천으로 피던 능소화 꽃 한 그루를 시골 집 앞마당 소나무 옆에 옮겨 심었다. 소나무를 타고 올라간 능소화 꽃이 해마다 필 때마다 그 꽃을 보노라면, 검붉은 주황색 꽃이 마치 자식들이 온갖 애를 태워 멍이든 어머니의 가슴 같아 보였다.

또한 꽃이면 풍기는 그 흔한 향기마저 하나 없으며, 한 젖을 먹여 키운 형제 같이 꽃잎도 통꽃으로 서로 차별 없이 훤하게 열려있다. 그리고 꽃의 줄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망울이 주저리주저리 달려 있어, 마치 옛날에 식구 많은 집에 자식들이 뭘 얻어먹으려고 크기대로 줄지어 있는 것 같다.

뿌리내리는 땅도 그늘지고 외지며 크게 쓸모없는 공간을 겸손하게 차지한다. 또한 넝쿨은 마치 늙은 노인이 자식에 의지하여 겨우 서 있듯이, 다른 지지대를 의지하여야 겨우 자라는 덩굴 꽃나무이다. 그리고 울타리를 타는 넝쿨은, 마치 타향으로 떠난 자식이 언제 돌아 올까하고 기다리는 어머니처럼 보이는 꽃나무이다. 화장기 하나 없는 청순한 어머니 같이 보이는 꽃이다.

 

능 소 화

 

어쩌면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만 삼켜낸 인고(忍苦)의 세월로

꽃잎은 애가타서

검붉게 멍이 들었다

 

기다리다 또 기다리다가 지쳐서

세상 밖 소식이라도 좀 듣고 싶어

울타리를 어깨 짚고

스르르 담장너머로 몸을 늘어트려 본다.

하지(夏至) 지난 덥고 긴 날이

지치지도 않는지 ......

 

오늘도 사람 발자국 소리

쉬이 들으려고 통으로 꽃잎을 열고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올라

혹시나 하며 기다리며

주저리주저리 꽃망울을 새순에 달아 놓았다

하염없이 기다린 세월을 기억하고자

하룻밤에 한 마디씩만

검붉은 꽃을 피 운다

 

조신(操身)한 몸매에 화장기하나 없이

오로지 기다림을 이고

구부정한 넝쿨은 울타리를 휘감고

올해에도 어김없이

담장너머를 마냥 기웃거리는

한(恨) 많은 내 어머님 같은 꽃

능소화!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의 배려로 서울 소재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였다. 고교 입학을 위해 서울에 사시는 큰 이모 댁에서 이종사촌들(5남1녀)과 어울리며 입시를 준비하였다. 이 시기에 어머님과 아버님은 식구 많은 이모님 댁에 나까지 보내 늘 미안해하시면서 눈치 보며 지낼 어린 자식을 걱정하셨다. 나 또한중학교를 갓 졸업하여 몹시 부모님과 시골집이 그리워 눈물을 자주 글썽이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고등학교 재학 시는 동창들의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그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힘들게 농사일을 하시는 시골 부모님 생각에 어렸지만 나는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이렇게 서울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부터 나는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매우 부족하였다. 그래서 지금 내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모님의 흉내를 내고 살고 있는 것은, 부모님의 삶을 바르게 이해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이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부모님을 뵙기 위해서 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 재학 때에는 짧은 방학을 기다려야했고, 장교가 되어서는 가뭄에 콩 나듯 가끔 줘지는 휴가 때가 되어야 잠깐 만나 뵐 수 있었다. 그래서 사관학교 4학년 여름 방학 때인 어느 날 어머님과 나는 시골 집 큰 방에서, 내가 방문 쪽에 눕고 어머님이 봉창 쪽에 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깐 낮잠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 내가 먼저 깨어 그 때 주무시는 어머님을 보니 런닝 내의 밖으로 젖가슴의 젖꼭지가, 시커멓게 늘어지고 비뚤어진 채로 옷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갑자기 나를 키워준 어머님의 젖가슴이 한 번 만져보고 싶어, 주무시는 어머님 등 뒤에서 슬그머니 손을 넣어 일부러 한 번 만져보았다. 그러자 어머님은 바로 알아차리시고 “이놈아! 네가 어릴 때 다 빨아서 이렇게 늘어졌다...”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나이가 들어 어머님을 유일하게 안아본 기회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어머님을 한 번 안아본 그 때의 추억이 너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자주 부모님을 볼 수 없었던 나는, 집안의 소나무에 올라가 핀 능소화 꽃이 평생 동안 고향집에서 나를 기다리며 사셨던 어머님처럼느껴진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이다. 또 다른 꽃말로는 ‘그리움’이다. 그래서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 같은 꽃이다. 또한 능소화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옛날 궁궐에 소화(霄花)라는 예쁜 궁녀가 임금의 총애를 받고 궁궐 한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임금은 그 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소화는 그저 애만 태우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임금이 찾아올까 오매불망 기다리던 소화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쓸쓸하게 죽어갔다. 그렇게 소화가 세상을 떠난 뒤 소화가 있던 곳의 주변 담장에 진한 주황색 꽃들이 피어났는데 이 꽃이 바로 능소화라는 애절한 전설이 있다

그리고 육군사관학교 4학년 늦가을이었다. 국군의 날 기념으로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가 매년 서울 운동장에서 열리곤 하였다. 이 체육대화가 끝나면 통상 며칠간의 휴가를 생도들에게 주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어머님과 아버님을 뵙고 갈 수 있는 귀한 시간이지만, 언제 다시 뵈러 올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아쉬움만 남기고 떠나곤 했다. 가는 날이면 어머님은 꼭 점고개 너머까지 나를 바래 다 주셨다. 아니 단 몇 초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자식의 맘을 헤아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보이는 점고개 넘어 독립 묘지 있는 곳에 서서 떠나는 나를 한없이 바라보셨다. 지금도 이 고개를 넘으면 어머님이 서 계시는 둣한 곳이다. 3군 사관학교 체육대회 휴가로 집엘 왔다 간지 며칠이 되지 않아, 시골에서 가을 추수하시느라 고생하시는 두 분 모습이 몹시 걱정되었다. 학과 출장을 하여 화랑대(花郞臺) 연병장에 들어서니, 늦가을 바람에 은행잎이 소슬하게 떨어지면서 부모님과 이별한 후의 그리움이 가슴을 시리게 하였다. 그래서 내가 쓴 글 중에 칠언절귀(七言節句)의 한 수이다.

 

別 後(별후)

銀杏黃葉 日日淸(은행황엽 일일청)

無巢鳥聲 更凄涼(무소조성 경처량)

黃昏高閣 上孤身(황혼고각 상고신)

​離前不知 別後識(이전부지 별후식)

노오란 은행잎 떨어져 가지는 나날이 맑아지고

집 없는 새소리 닥칠 추위로 더욱 처량한데

황혼에 높은 대(臺)에 외로운 몸 올라보니

이별 전에 몰랐던 아픔 이별 후에 아는 것을...

[출처] 1. 어머님의 꽃 능소화!(2020년 6월 3일 오후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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