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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청심 검도관》 남승희 선생님 거합도 ▷주말 검도▷김해 검도▷김해 체육관▷김해 장유 3동▷김해 학생체육▷김해 경찰 삼 단봉 교육▷

작성자가온(세상의 중심이 되라는 뜻)|작성시간26.06.09|조회수8 목록 댓글 0

 

◈청죽(靑竹) 남승희 선생님(1937년 ~ 2021년)은 대한민국 검도계의 발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한국 제1세대 현대 검도인이자, 최고 권위의 단위인 범사(範師) 8단에 올랐던 거목입니다.

검도계에서 큰 존경을 받았던 한편, 검도의 본질과 교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으로 파란만장한 길을 걸으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남승희 선생님의 삶과 업적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1. 한국 현대 검도의 개척자 (1세대 검도인)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검도를 접했으며, 광복 이후 한국 현대 검도의 기틀을 닦은 인물입니다.
대구 무덕관 등에서 수련을 이어갔으며, 학창 시절 경북고등학교에 검도 부를 처음 만들어 활동하는 등 대구·경북 지역뿐 아니라 초기 한국 검도계의 인재 양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대한 검도회 최고 직분인 '범사 8단'으로서 오랜 기간 수십 년간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2. 타 유파 교류와 대한 검도회 영구 제명 사건

남승희 선생님은 평생을 몸담았던 대한 검도회에서 '영구 제명'이라는 큰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해동검도를 비롯한 여러 유사·신생 검도 단체들이 생겨났을 당시, 대한 검도회 지도부는 타 유파와의 교류를 엄격히 금지하고 파문하는 규칙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남승희 선생님은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무인(武人)이 자 교육자로서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타 유파 인원들에게 진검술과 검도를 교습했다는 이유로 대한 검도회에서 제명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검도인이 지도부의 결정에 크게 안타까워했습니다.

3. 일본색 탈피 논쟁과 독자적 노선

선생님은 당시 대한 검도회 지도부가 주도했던 도복 디자인 변경이나 준거(蹲踞, 대련 시작 전 쪼그려 앉는 자세) 폐지 등의 변화에 비판적인 입장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규칙이나 모양 몇 개를 바꾼다고 해서 검도에 남아있는 일본색이 본질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확고한 주장을 펼치셨습니다. 대한 검도회를 떠난 이후에도 선생님은 꺾이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으셨습니다.

사단법인 대한 검도협회의 총재 및 교육 담당을 맡아 활동하셨습니다.
타 유파 출신이나 중국 무술 수련자 등 경계를 두지 않고 누구나 배움을 청하면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일본 제정 거합을 포함한 진검 술인 삼론호현화랑검법(三論弧弦花郞劍法)과 죽도 검도를 융합하여 지도하셨으며, 후학들을 위해 두터운 지식이 담긴 저서 *《검도 세계(검도 교본)》를 남기셨습니다.


◈청죽 남승희 선생님은 한국 검도 초기 역사의 산증인이자 뛰어난 검사였습니다. 동시에 단체의 규칙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배움을 원하는 이에게 검리를 전수하는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진정한 무인이었습니다. 2021년 7월에 작고하셨지만, 선생님이 남긴 검도 교본과 무학(武學)은 여전히 많은 검도인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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