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한국성씨

직산 조씨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05|조회수14 목록 댓글 0

1. 개요

충청남도 천안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2. 시조

시조 조성(趙成)은 백제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이다.

직산조씨갑자대동보에 의하면 시조 조성(趙成)은 한(漢)나라 성제(成帝, 11대 황제, 재위기간 : 기원전 32~7) 때 주몽(朱蒙)의 셋째 아들 온조(溫祚)를 도와 위례성(慰禮城)에서 백제(百濟)를 건국하고, 한산(漢山)으로 천도(遷都)하여 마한(馬韓)을 멸망시킨 후 백제창업의 기초를 확립하는데 훈공을 세워 경양군(慶陽君)에 봉해졌으며, 뒤에 다시 예성부원군(醴城府院君)으로 개봉되었다가 하남백(河南白)에 이봉(移封)되었다고 하며, 그의 아들 조준연(趙俊連)과 손자 조입충(趙立沖)이 함께 금오대장군(金吾大將軍)을 역임한 것으로 전한다. 그 후 시조의 손자 조입충(趙立沖)으로부터 고려 말기에 이르기까지의 계보가 전해지지 않아 후손들은 고려 말에 중정대부(中正大夫)로 합문지후사(閤門祗侯使)에 올랐던 조원우(趙元祐)와 병부 낭중(兵部郞中) 조원경(趙元慶),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조복원(趙復元), 태자 첨사(太子詹事) 조영원(趙永元), 조선 때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한 조응원(趙應元) 등 다섯 계통으로 갈라져서 각각 중시조로 받들고 대를 이어왔다.

3. 역사

합문지후사 조원우(趙元佑)의 손자 조방림(趙邦霖)이 조선 세조가 등하는데 공을 세워 좌익공신(左翼功臣)에 책록되었고 이어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조광보(趙光甫))는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하여 부자가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地)에 추증되었던 조경(趙瓊,참판 조광보의 현손)의 맏아들 조응형(趙應亨)은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철원 부사(鐵原府使)를 역임했으며, 전의 현감(全義縣監)을 지낸 조탁(趙擢, 사정 조광원의 현손)의 아들 조서동(趙瑞東)은 보리공신(輔理功臣)으로 한성부원군(漢城府院君)에 봉해졌다.

한편 임진왜란 때 양산 군수(梁山郡守)로 있었던 조영규(趙英圭)는 양산성(梁山城) 수비에 참전했다가 장렬하게 순절하여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되고 장성의 모암서원(慕庵書院)과 양산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으며, 광해군 때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訓練院僉正)을 지냈던 조영(趙英)은 숙종 때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했던 조수(趙洙)와 함께 무맥(武脈)을 이었다. 인조 때의 명신 김원행(金元行)의 문인(門人)으로 학행(學行)이 뛰어났던 조유선(趙有善)은 유학(儒學)에 정통하여 「고정유사(考亭遺事)」와 「사우연원(師友淵源)」을 편찬했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아 진산 군수(珍山郡守)에 임명되었으나 사임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했다. 그외 숙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복장(司僕將)을 지내고 영조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토평하는데 공을 세워 분무공신(奮武功臣)에 올랐던 조태상(趙台相)은 군수를 역임한 조정휴(趙鼎休)와 함께 직산 조씨를 더욱 빛냈다.

4. 인물

조방림

조전혁

5. 집성촌

경기도 평택시

충청북도 청주시

황해도 해주시

6. 인구: 4,360명(2015년)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