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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인물

김저(金佇)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10|조회수10 목록 댓글 0

1. 개요

고려의 인물. 김윤명의 아들이자 최영의 조카

2. 생애

김윤명(金允明)과 최영의 누이인 동주 최씨(東州 崔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러한 인척관계로 오랫동안 외삼촌인 최영을 따라 권세를 부렸고 대호군, 영삼사사 등을 지냈다. 이후 최영이 처형당한 이듬해인 1389년 11월에 정득후와 함께 황려현(現 여주시)에서 우왕을 알현했다. 우왕을 복위시키기 위해 우왕의 당부에 따라 팔관일에 거사를 일으킨다는 걸 곽충보에게 알렸지만, 곽충보는 이를 거짓으로 승낙하고 이성계에 알려주면서 일이 발각되었다. 이후 정득후와 함께 이성계를 죽이기 위해 그의 자택에 갔다가 정득후와 김저 모두 현장에서 발각됐고, 정득후는 그 자리에서 목을 찔러 자살했고, 김저는 문객에게 붙잡혀 순군옥에 수감된 뒤 대간에게 신문을 받았다.

진술 중에 조방흥을 언급하고 변안열, 이림, 우현보, 우인열, 왕안덕, 우홍수 등과 공모해 우왕을 맞아들일 약속을 했다고 진술했다. 옥중에서 사망했고, 시신마저 큰 거리에서 참수되었는데, 김저의 진술에서 순군관에 관한 것이 많아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의혹을 품었다. 이후 김저와 공모한 혐의를 받은 27명이 유배되었다.

후에 공양왕 때 정몽주가 죄가 있는 자가 부당하게 사면을 받거나 죄가 없는 자에게 누명을 씻도록 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성헌, 형조 등에서 5가지 죄목을 들어 반박할 때 박의룡의 공술을 설명하고 우현보 등이 모의에 가담했던 사실을 김저가 벌써 명백히 말했다고 언급했다.

사후 부인 김씨도 순사(殉死)하고 아들 김전(金鈿)은 식음을 전폐하여 목숨을 끊었으며 손자 김두(金㺶)는 두문동에 은거하여 사람들이 일문삼세(一門三世)의 충절이라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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