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려 말기의 무신. 자는 문성(文成)·충가(忠可), 호는 대은(大隱)·불굴당(不屈堂).
원주 변씨(原州 邊氏)의 시조이다.
2. 생애
변안열은 1334년 4월 원나라 요동 심양(瀋陽, 현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에서 아버지 변량(邊諒)과 어머니 곽씨 사이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원나라에서 무과에 장원급제했을 정도로 그 무예가 뛰어났다고 전하며, 후에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와 함께 귀국할 때 그들을 모시고 따라와서 그대로 고려에 정착했다.
고려가 원나라 부마국이 되었던 기간 동안 많은 고려인이 원나라로 건너가서 정착하거나 벼슬을 하다가 그 자손들이 다시 고려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변안열은 그와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이후 안우 휘하에서 홍건적을 토벌한 것에 종군해 공을 세워 2등공신이 되었다. 계속 승진해 판소부감사가 되었다가 안우와 함께 개경을 수복해 그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으며, 예의판서가 되어 추성보조공신의 칭호를 받고 승진해서 밀직부사, 동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했다.
잔치를 열 때 임견미, 염흥방과 함께 수박희로 겨루기도 했고 판밀직사사를 지내면서 최영과 함께 탐라의 몽골인들을 정벌하고 귀환해 지문하부사를 지내다가 평리가 되었으며, 1374년에 우왕이 즉위하고 추충양절선위익찬공신의 칭호를 받고 양광전라도 도지휘사, 조전원수가 되어 왜구가 부령에 침입해 행안선에 올라가자 나세, 조사민, 유실과 함께 이들을 격파해 우왕으로부터 많은 물품을 하사받고 도당에서 천수사까지 역신을 물리치는 의식인 나례를 벌였다.
평리(評理)로 승진했다가 왜선 5백 척이 진포 어귀에서 침입해 이산, 영동현, 황간, 어모, 중모, 화령, 공성, 청리, 상주 등 여러 곳을 공격했는데, 1380년에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이성계 휘하에서 종군해 황산대첩에 참전했다. 고려 조정으로 돌아가서 임견미, 이인임과 함께 정방을 맡았지만 서로 욕심을 채우기 위해 공장이나 재력이 있는 자를 먼저 벼슬에 올렸고 왜구가 단양군을 공격하자 한방언 등과 함께 왜구를 격파해 80여 명의 목, 말 200여 필을 얻었으며, 안동에서도 왜구를 격파해 30여 명의 목, 말 60필을 얻자 그 공으로 원천부원군에 봉해지고 판삼사사로 임명되었다.
위화도 회군에 참여하였으나 우왕 폐위에는 반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왕이 강화도로 유배당하자 크게 탄식하고 자신의 호를 대은이라고 지었다.
1389년에 영삼사사가 되었는데, 우왕이 김저와 정득후에게 이성계를 암살하라고 밀명을 내렸다가 곽충보의 밀고로 현장에서 붙잡힌 김저가 고문당하던 중 변안열과 공모해 우왕을 맞이하려 했다고 발설했다. 그래서 이성계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되었고 사면령이 내리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 파직당하는 선에서 그쳤다가 다음날 상소가 나오면서 삭직하여 한양에 유배를 가게 되었다. 우왕은 강릉으로 추방되었을 때 어느 사람에게 자신을 그르친 자는 변안열이라 탄식했다고 한다. 변안열이 유배를 당한 후에도 극형에 처하라는 상소가 올라왔지만 설장수와 함께 명나라에 가서 우왕의 폭정을 보고한 전적이 있었기에 김저의 계획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 해서 파직만 됐다.
그러나 변안열을 포함해 이 일에 연루된 자들을 죽이라는 상소가 올라오자 공양왕은 처형시키라는 명을 내렸고, 결국 변안열은 1390년 1월 16일 한양부(漢陽府, 현 서울특별시)에서 처형되었다. 변안열은 처형될 때 우왕을 맞이하려는 사람이 어찌 자신뿐이겠냐고 탄식하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김백흥이 형리에게 명해 그를 참수하게 했으며, 그의 처의 일족은 죄에서 면하도록 했다.
1388년에 일어난 위화도 회군 때 그도 함께 참여했기에 그 공적을 기록하도록 지시했지만, 주원장에게 이성계가 명나라를 공격했다고 말한 윤이, 이초 등의 진술에서 변안열의 이름이 언급되자 변안열의 공신 칭호는 삭제됐고 가산도 적몰됐다. 그러나 그의 죄명에는 다소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는 데다 변안열의 딸이 이성계의 아들 이방번의 아내라서 사돈지간인 점 등 여러 상황이 참작된 것인지 조선 개국 후에 그는 개국공신으로 복권되었고 그 아들도 벼슬을 하게 되었다.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카카오맵 로드뷰)에 있다.
슬하로 3남 1녀가 있다. 아들들의 이름은 변현·변이(邊頤, 1360 ~ 1439)·변예(邊預)이며, 딸인 원주 변씨는 상술한 이방번의 아내다.
고려사 간신열전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사』 권 126, 열전 39, 간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