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여말선초의 관료, 조선의 정승
2. 생애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 성여완(成汝完, 1309~1397)의 맏아들로 태어나 1357년(공민왕 6) 4월 정당문학 이인복과, 첨서추밀원사 김희조(김취려의 현손)가 주관한 문과에 급제했다. 당시 성석린과 함께 급제한 인물들 가운데 염흥방(장원 급제함), 민제(이방원의 장인), 강시(공양왕의 사위인 강회계의 아버지), 허금(민대생과 혼인한 허금의 딸이 한명회의 장모임) 등이 있다.
고려 말의 대학자 이제현에게도 재능을 인정받았고, 공민왕에게도 중용되는 등 학자 및 관리로서의 재능도 출중했다. 신돈의 모함으로 해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3개월 만에 조정에 복귀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문(文)에 완전히 치중되어 있던 것도 아니라서, 1380년(우왕 6) 왜구가 침입한 위기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막아낸 일화도 있다.
경신년 여름에 왜적이 승천부(昇天府)에 들어와서 서울(개경)을 거의 함락시킬 뻔하였는데, 이 때 석린은 원수(元帥)가 되고, 양백연(楊伯淵)은 편장(褊將)이 되었다. 여러 장수들은 적의 선봉(先鋒)이 매우 날랜 것을 보고는 물러가서 다리를 건너고자 하였으나, 석린이 홀로 계책을 결정하여 말하기를,
"만약 이 다리를 지나간다면, 사람들의 마음이 이반(離叛)될 것이니, 다리를 등지고 한번 싸우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하니, 여러 장수들이 그 말에 따라, 사람이 모두 죽을 힘을 내어 싸우니, 적이 과연 이기지 못하고 도망하였다.
학유, 전리총랑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양광도 관찰사 시절에는 의창을 설치하고 국가적으로 시행할 것을 건의해 받아들여졌다.
위화도 회군 후 이성계와 공모하여 우왕, 창왕을 몰아내고 공양왕을 옹립해 찬화공신에 올랐다. 조선이 개국되자 이색과 우현보의 일파로 몰려 추방되었다가 돌아와 한성부 판사, 좌의정 등을 역임했으며 특히 태종 때에는 4번에 걸쳐 영의정을 나누어 역임하는 등 상당한 거물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잠저에 있을 때부터 큰 총애를 받았는데, 태조가 기쁘지 않은 일이 있더라도 성석린을 보내면 화가 풀릴 정도로 그를 신임했다. 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 권력을 모두 잃어버린 채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말년의 태조를 모시고 잔치를 여는 등 그의 마음을 돌리는 데 힘썼으며, 이성계가 동북면으로 훌쩍 떠나 머물 무렵에는 태종의 명을 받아 이성계를 설득해 도성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때 태종이 '부왕께서 믿고 중히 여기는 이로 경 같은 사람이 없다'고 당부하는 등, 태종으로서도 아버지 상대로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카드였던 모양. 그러나 태조와 태종의 대립이 가장 극렬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던 조사의의 난 때는 민제 등과 도성 수비를 맡았다.
세는 나이로 86세까지 장수했으며, 말년에는 궤장을 하사받는 등 원로대신으로 대우받았다. 참고로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한동안 중지되었던 궤장 하사가 세종 2년 1420년에 예조의 건의로 부활함에 따라 1421년, 조선왕조에서 하사한 제1호 궤장을 받는 영광을 누리는 기록을 세웠다. 이에 감격한 성석린은 "자애하심은 부모보다도 더하시고 보호하시기를 어린 아이와 같이 하시니, 마땅히 크시옵신 은혜를 우러러 받잡고 고질된 노병을 엎드려 잊어버리고, 가을을 바라만 보아도 쇠잔해지는 창포 같은 체질로서, 혹시라도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의 정성을 바칠까 하와, 아침 저녁 한줌의 향을 피워 하늘에 빌겠사오니, 어찌 보응이 없사오리까. 개와 말 같은 하찮은 마음일지라도 주인을 사모함이 죽고 살고에 다름이 있사오리까."라고 사의를 표했고 세종은 자신은 그저 옛일을 따랐을 뿐이라고 위로했다.
이후 1423년에 사망하였다. 세종이 슬퍼하며 3일간 조회를 폐하고 문경(文景)이란 시호를 내렸다. 졸기에서 "용의(容儀)가 청수(淸秀) 괴위(魁偉)하고, 자성(資性)이 탁월하였다. 네 임금을 섬기매 영정(寧靜)함을 힘쓰고, 어수선하게 고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다. 오랫동안 재상으로 있으면서 재능을 발휘한 정승이었고 그의 형제들 역시 고관의 자리에 오르는 등 현달한 인물이었으나, 하륜이나 이숙번처럼 기책을 발휘해 태종의 즉위에 공헌한 타입은 아니었기에 이들 측근 세력에 비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