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려 초기 문관. 서필 - 서희 - 서눌의 3대에 걸쳐 재상을 배출한 당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이천 서씨 출신이다. 성종, 목종, 현종, 덕종, 정종 등 5명의 임금을 섬겼다.
2. 생애
성종 시대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친 명재상 서희의 아들이다. 1016년(현종 7) 사헌대(司憲臺) 중승(中丞)이 되었고, 이후 자신의 딸이 현종과 결혼해 원목왕후가 되자 지위가 더욱 올라가 중추원의 장관 중추원사(中樞院使)가 되었다.
이후 1030년(현종 21) 부총리격인 문하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가 되었다가 1031년(덕종 즉위년) 총리격인 문하시중(門下侍中)까지 직위가 승진하니, 그야말로 이천 서씨의 권세가 가장 강했을 때였다.
향직 품계 또한 정점을 찍어 1품 2등위인 중대광(重大匡)에서 1품 1등위인 삼중대광(三重大匡)까지 올라갔다. 후에 병을 얻어 퇴직하고 절에서 요양했다. 이후 정종 용혜대왕은 내사령 직을 내리고 궤장을 하사하여 늙은 신하를 대우해 주었고, 1042년(정종 8) 6월, 서눌이 죽자 태사(太師)로 추증하고, 간경공(簡敬公) 시호를 주었다. 하지만 정종 문명왕의 추가 시호를 올릴 때 간경(簡敬) 시호가 선택되자 원숙(元肅)으로 시호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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