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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인물

이자의(李資義)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08|조회수7 목록 댓글 0

1. 개요

고려 중기의 권신

고려의 문벌귀족 이자연의 장남인 이정의 차남이다. 이자겸과는 사촌이다. 형인 이자인과는 달리 《고려사》 반역 열전에 그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2. 생애

선종 7년인 1090년 호부상서(戶部尙書)로서 사은사(謝恩使)로 송나라에 파견되었고, 헌종 즉위년인 1094년에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거쳐, 이듬해에 중추원사(中樞院事)에 올랐다.

헌종이 유약하여 어머니 사숙태후가 국사를 대리하게 된 것을 기회로 삼아 이자의는 무뢰한 용사들을 모아 자신의 누이인 원신궁주의 아들 한산후 왕윤을 즉위시키려고 모의하였다. 헌종은 병약해 언제든지 승하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실권자인 태후는 자신의 사촌이었으니 조카를 내세워 자신이 권신이 되고자 한 것이다.

허나 당시 보위를 두고 경쟁하던 계림공(鷄林公)이 이를 알아채고 평장사(平章事) 소태보를 시켜 먼저 타격을 가한다. 소태보가 상장군(上將軍) 왕국모로 하여금 시위하게 하자, 결국 선정문(宣政門) 밖에서 장사(壯士) 고의화(高義和)에 의해 처형되었고, 그 일파도 죽임을 당하거나 변방에 유배되고 재산은 몰수되었다. 그런데 이자의가 정말로 모반을 꾸몄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더러 있다. 이자의의 모의가 발각되기까지의 개연성이 꽤 부족하다는 점과 숙종 즉위 후 이자의 일파가 복권된 점으로 미루어, 계림공 일파가 정적 제거를 위해 먼저 손을 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자신의 주 정적이었던 이자의를 제거하고 대권을 차지한 계림공은 헌종에게서 선위를 받아 천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자의는 원신궁주와 한산후 왕윤의 기세를 빌려 권력을 차지하고자 했다. 이 행보는 자신의 사촌 이자겸과 똑같지만 이자의는 계림공이란 강력한 라이벌로 인해 패배하고 끝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다.

3. 가족관계

대표적인 외척 세도 가문인 인천 이씨 출신으로 이자연의 손자이자 이정의 차남으로, 고려 선종의 후궁 원신궁주의 오빠이다. 이자겸과 선종의 계비 사숙왕후와는 사촌, 선종의 정비 정신현비와는 육촌간이다. 또 문종비 인예왕후, 인경현비, 인절현비는 모두 이자의의 고모들로, 계림공을 비롯한 문종의 자식들은 모두 이자의의 고종사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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