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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인물

이고 (李高)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09|조회수16 목록 댓글 0

1. 개요

고려의 무신이자 권신. 한때 이의방, 정중부와 견줄 정도로 위상이 컸지만 실질적으로는 집권하지 못했기 때문에《고려사》에서는 별도의 <열전>으로 수록되지 못했다. 남아있는 기록이 극히 적으므로 본관은 불명이다.

2. 생애

이고의 젊은시절 기록은 남은 게 거의 없다. 다만 이의방과 같은 견룡행수였던 것으로 보아 비슷한 나이대로 임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처형후 가족을 연좌할 때 부모를 연좌해 처벌한 기록은 있으나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기록이 없은 것으로 보아 결혼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이후 이고의 아버지가 이고와 절연하여 연좌제를 감형받았다는 기록으로 볼대 권력을 잡기 전에 이미 아버지와 의절한 것으로 보인다.

정중부, 이의방 등과 함께 무신정변을 주도했으며 당시 직책은 근위대 하급 장교에 해당하는 견룡군(牽龍軍) 산원(散員)이었다. 이때 이의방과 함께 정변을 일으킬 것을 사전에 계획한 후 명망 높던 장군인 우학유를 끌어들이려고 시도했으나 그가 거부하자 정중부를 주모자로 끌어들였다. 이후 보현원 사건 전날인 8월 29일 밤 흥왕사에서 정중부가 이고와 이의방을 불러 다음날 의종이 계획대로 보현원에 행차하면 쿠데타를 벌일것을 약조한다

1170년 8월 30일 의종이 보현원으로 행차하던 중 오문에서 오병수박희를 열었는데 이때 한뢰가 대장군 이소응을 모욕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때 무신들이 분노가 폭발하는 와중에 이고는 칼을 빼들 준비를 하나 정중부가 말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의종이 보현원에 들어가기 직전 이의민과 같이 왕명을 사칭해 순검군을 동원하여 반란을 준비하였고, 이후 의종이 보현원 건물로 들어간 직후 반란군을 이끌고 일대를 포위 직접 임종식, 이복기를 죽여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무신정변의 서막을 알린다. 이때 고려사 절요에는 이고가 임종식과 이복기를 손으로 직접 때려죽였다(等手殺)는 기록이 있다.

한편 문제 한뢰는 학살이 시작되자 의종이 있는 방에 도망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때 이고가 의종 앞에서 칼을 빼들고 협박하였고 결국 이를 이기지 못한 의종이 한뢰를 내주자 이고는 바로 한뢰를 직접 죽여버린다. 그리고 반란군을 동원해 보현원에서 왕을 호종하는 문신들을 모두 몰살시켜 버렸다.

그 후 수도 개경에 들어가 추밀원부사 양순정(梁純精), 사천감(司天監) 음중인(陰仲寅), 대부소경 박보균(朴甫均), 감찰어사 최동식(崔東軾), 내시지후 김광(金光) 등 궐내에 숙직하고 있던 관료들을 모두 죽였다. 이후 이의방 등과 함께 순검군을 거느리고 밤에 태자궁(太子宮)에 다달아 행궁별감 김거실(金居實), 원외랑 이인보(李仁甫) 등을 죽였다. 이후 다시 의종의 별장이었던 천동택(泉洞宅)에 들어가 별상원(別常員) 10여 명을 죽이고서 사람을 시켜 길에서 외치기를, “모든 문신의 관(冠)을 쓴 자는 비록 서리일지라도 씨를 남기지 말게 하라."하였고 이에 군졸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판리부사로 치사한 최유칭(崔褎偁), 판리부사 허홍재(許洪材), 동지추밀원사 서순(徐醇), 지추밀원사 최온(崔溫), 상서우승(尙書右丞) 김돈시(金敦時), 국자감 대사성 이지심(李知深), 비서감 김광중(金光中), 이부시랑 윤돈신(尹敦信), 위위소경(衛尉少卿) 조문귀(趙文貴), 대부소경 최윤서(崔允諝), 시랑 조문진(趙文振), 내시소경 진현광(陳玄光), 시어사 박윤공(朴允恭), 병부낭중 강처약(康處約), 도성낭중 강처균(康處均), 봉어(奉御) 전치유(田致儒), 지후 배진(裵縉)ㆍ배연(裵衍) 등 50여 명을 수색해서 죽였다고 <고려사>, <고려사절요>, <동국통감> 들의 고려시대 정사(正史)들에 전한다.

 

이에 크게 겁을 먹은 의종이 무신들에게 관직을 퍼주면 달래는 과정에서 이고 또한 응양군 중랑장에 봉했으며 환궁 이후에는 장군으로 승진시켜 주었다.

9월 1일 정변 다음날 의종이 궁궐에 연금되자 환관 왕광취 등이 무신들을 공격하려다 한숙(韓淑)의 배신으로 실패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이고는 동료 무신 채원(蔡元)과 함께 의종을 시해하려고 하다가 고위 무장인 양숙(梁淑)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그리고 의종을 폐위하고 동생이던 익양후 왕흔을 명종을 옹립하면서 대장군 위위경 겸 집주(大將軍 衛尉卿 兼 執奏)에 올랐다. 이때즘 무신들이 살아남은 문신들을 무신 회의인 중방으로 불렀는데 이때 이고가 남은 문신들을 다시 죽이려고 들었는데 정중부가 말려서 실행하지 않았다.

움룍 10월 04일 정중부, 이의방과 함께 벽상공신으로서 공신각 위에 초상이 그려졌다고 한다.

3. 난을 일으키다

이고는 무신정변의 공으로 벽상공신이 되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임금이 되기 위해 불량배들과 법운사(法雲寺) 승려 수혜(修惠), 개국사(開國寺) 승려 현소(玄素) 등과 결탁하여 이고의 난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실패하고 채원과 이의방에게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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