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 1201년(신종 4)
고려시대 무신정권 시기의 인물
2. 정방의의 난
당시의 고려는 최충헌 집권기로, 무신정변 이후로 수많은 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국내 상황에서 1200년(신종 3년)에 진주에서 공사노비들이 난을 일으켜 정방의의 집을 포함한 주리(州吏)들의 집 50여채를 불태워버린다.
노비들의 난이 진압된 후, 정방의는 활과 화살을 들고 사록 전수룡을 알현하자, 전수룡은 정방의가 난을 계획하는 것을 의심하였으나, 별 다른 혐의가 없어 그를 풀어주었다.
정방의가 손수 활과 화살을 들고 들어가 사록(司錄) 전수룡(全守龍)을 알현하니, 전수룡이 힐책하며 말하기를, “무슨 까닭으로 활과 화살을 들고 절을 하느냐?”라고 하였다. 정방의가 말하기를, “적의 괴수를 체포하고자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미 적들을 잡았으니 감히 하례를 드리려고 들어왔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전수룡이 “그렇지 않다. 그대가 활과 화살을 가진 것을 보니, 반드시 난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곧바로 정방의를 신문하였지만 다른 혐의가 없어서 풀어주었다.
《고려사》 권128, 열전 권제41 반역(叛逆) 정방의
하지만 태수 이순중이 정방의의 본심을 파악하고 정방의를 바로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으나, 정방의의 동생인 정창대가 관아에 뛰쳐들어와 정방의를 풀어주고 도주한다. 그 후, 정씨 형제는 폭주해서 깡패들을 불러모아 진주 사람 6,400명을 살해한다.
정방의를 투옥시킨 이순중은 정씨 형제가 무서워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서 벌벌 떨고 있었으나, 정방의는 이순중을 협박하여 억지로 사무를 보게 하였고, 진주의 백성들과 다른 서리들은 정방의에게 화를 당할까봐 정방의의 죄를 사건을 조사하러 온 안찰부사에게 말하지 못하였다. 힘으로 진주 사람들의 입을 막은 정씨 형제는 점점 선을 넘게 되고, 사병들을 키워 사람들을 살육하고 다녔다.
그러자 정방의에게 원한을 품은 진주 사람들 중 일부가 광명과 계발의 도움을 받아 정방의를 공격했으나 도리어 정방의에게 무참히 패한다.
결국 1201년 진주 사람들 모두가 봉기해 정방의를 죽이고, 동생 정창대를 쫓아냄으로써 정방의의 난은 끝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