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려의 승려. 속명(속세 이름)은 전견명(全見明). 자(字)는 회연(晦然), 일연(一然)인데, 일연을 법명(승명)으로 사용했다. 호는 목암(睦庵). 삼국시대 역사서인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편찬했다.
오늘날의 경상북도 경산시인 압량군(훗날의 장산군) 출생으로, 신라의 원효 대사와 동향이다. 일연 본인도 삼국유사에서 원효에 대해 '원효의 살아온 내력과 학문이며 업적은 모두 당나라 승전과 행장에 실렸으니, 굳이 여기서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썼을 정도. 대신 '이 나라에서 전하는 한두어 가지 특이한 일을 적어 둔다.'고 하였다.
삼국유사는 '이러이러한 책에 자세히 쓰여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는데 더 알고 싶으면 책을 읽어보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서술이 종종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가락국기를 인용해 수로왕의 일대기에 대해선 자세히 적었는데 그 다음 왕들에 대해선 대개 이름만 기록하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를 시전하셨다. 문제는 앞에 쓴 원효의 행적이야 다행히 지금까지 다른 기록에 남았지만, 어떤 경우는 자세하게 쓰여 있다고 추천한 책이 지금은 소실되어 결국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게 문제. 물론 일연이라고 자기가 보고 참조한 책들이 하나도 후대에 전해지지 못할 줄은 예상도 못 했을 테니 일연의 책임은 아니다.
2. 생애
1206년에 경산에서 태어났다. 1214년(9세)에 전라도 해양(海陽, 現 광주광역시 인근) 무량사(無量寺)에서 대웅 밑에서 학문을 닦았다. 1219년(14세) 설악산 진전사]에서 출가해 승려가 되었다. 계속 공부하다가 1227년(22세) 승과 시험에 급제해서 22년 동안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비슬산 대견사에서 초임 주지를 지냈다. 1237년(32세) 삼중대사, 1246년(41세) 선사가 되었는데 이 시기는 몽골 제국이 본격적으로 고려를 침략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1259년(54세) 대선사가 되었고 1261년(56세)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군 선원사의 주지가 되어 보조국사 지눌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 1264년(59세)에는 지금의 경북 포항에 있는 오어사로 옮겨, 불교(佛敎)를 연구하기 이전에 먼저 치심(治心)과 덕성 계몽(德性 啓蒙)의 관련 위주로써 후학(後學)들을 가르쳤다.
1268년(63세) 운해사에서 대덕 1백여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를 조직해 맹주가 되었다. 1277년(72세) 운문사 주지가 되었으며 당시 경주에 와 있던 충렬왕의 부름을 받아 충렬왕을 1년 가까이 모시면서 충렬왕에게 법을 강론했다.
1283년(78세) 충렬왕을 따라 개경으로 돌아가 국존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의 호를 받았다. 그러나 노모를 모신다는 이유로 고향에 가기를 청해 반 년 동안 살았지만 그해에 어머니는 아흔여섯 살로 숨을 거두었다.
1284년(79세)에 경상도 군위군(現 대구광역시 군위군)의 인각사를 중건하고 궁궐에서 구산문도회를 열었다. 1289년 군위군 인각사에서 세수 84세로 사망했다. 이후 나라에서 보각국존(普覺國尊)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생전에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삼국유사는 고대 한국 신화, 설화, 향가를 집대성한 책으로 현대에서도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삼국사기와 더불어 귀중한 자료이다. 대표작인 삼국유사 이외에도 조파도 2권, 대장수지록 3권, 제승법수 7권, 조정사원 30권, 선문염송사원 30권, 어록 2권, 게송잡저 3권 등 많은 불교 저서를 남겼다.
3. 여담
현재 경산시에는 일연의 이름을 딴 도로인 일연로가 존재하며 경산시는 자기네 도시를 일연, 원효, 설총 등 삼성현이 태어난 고장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이름을 딴 도로인 원효로, 설총로, 삼성현로도 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서는 '삼국유사 일연'이라는 가사로 언급된다.
시험에 "일연은 삼국유사를 편찬하였으며 불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내용의 선지가 자주 나온다. <삼국유사>를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바꿔서 출제가 종종 되며 단순 암기식으로 공부하는 수험생들은 단골로 틀리는 문제. 생각 없이 외우지 말고 제목을 이해하면 전혀 헷갈릴 일이 없다. <삼국유사>의 '유사'는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 <삼국사기>의 '사기'는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는 뜻이다. 제목만 봐도 김부식이 편찬한 관찬 사서가 <삼국사기>이고 일연이 저술한 야사들을 모아 교차검증 등을 하여 지은 책이 <삼국유사>라고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내용 면에서도 <삼국사기>와 비교하는 문제가 출제된다. (물론 논란이 있는 표현이지만) <삼국사기>는 신라 계승 의식을 표방하고 유교적인 색채가 강하다면 <삼국유사>는 고조선 계승 의식이 엿보이며 불교적이다. 역시나 서로의 내용을 뒤바꿔서 문제가 출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기억해야 한다. 이 역시 각각의 시대적 배경과 특징을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삼국사기>는 문벌귀족 세력이 집권할 당시 편찬된 관찬 사서이다. 고려의 입장에서는 이전 시대의 왕조인 신라를 계승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했음이 당연하다.
반면 <삼국유사>는 원 간섭기에 저술되었는데 외세의 침탈에 시달리면서 민족 의식을 고취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민족의 뿌리인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의식이 나타났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또 삼국유사가 실제로 삼국사기보다 민족주의적이라 보기는 힘들다. 삼국사기 참조.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승휴의 <제왕운기> 역시 고조선사를 다룬 것과도 연결지어 생각해 두면 좋다.
만화가 윤승운은 자신의 작품에서 일연을 뛰어난 학자, 역사가, 그리고 고승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