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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인물

이승휴(李承休)

작성자太石 安極鎬|작성시간26.06.09|조회수15 목록 댓글 0

1. 개요

고려 후기의 문신

제왕운기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가리 이씨(加利 李氏)의 시조이다.

2. 생애

1224년 경산부 가리현(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1252년(고종 39) 4월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듬해에 홀어머니를 뵈러 삼척현으로 갔다가 몽골의 침략으로 길이 막히자 그 곳 두타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1264년(원종 5)에 이장용과 유경의 천거를 받아 경흥부서기에 보임되었다가 내직으로 옮겨 도병마녹사가 되었다. 1273년 원에서 황후와 황태자의 책봉이 있었을 때 고려에서 이에 대한 축하 사절을 파견했는데 여기에 이승휴도 서장관으로 포함되어 원의 수도 대도(북경)를 다녀오게 되었고, 사행을 다녀온지 13년 뒤인 1290년 10월에야 자신이 사행 도중에 자신이 썼던 시문을 발견하여 빈왕록(賓王錄)이라는 이름으로 엮었다. 빈왕록은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행문학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후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1280년(충렬왕 6) 감찰사의 관원들과 함께 국왕의 실정 및 국왕 측근 인물들의 전횡을 들어 10개 조로 간언하다가 파직되었다.

이후 64세 때인 1287년 두타산에 용안당(容安堂)을 짓고 이곳에서 제왕운기를 저술하였다. 용안당은 훗날 이승휴 본인이 희사해서 사찰로 삼고 간장사라고 했고, 서산대사(청허휴정)가 1598년에 절을 중창하면서 흑악사(黑岳寺)라고 이름을 바꾸었다가 2백년 쯤 지나서 조선 말기에 다시 천은사(天恩寺)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천은사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하늘의 은혜'라는 뜻인데, 조선 말기인 광무 3년(1899년)에 이성계의 4대 조인 이안사(추존 목조)가 이곳에 자리잡았을 때 이안사의 아버지 이양무의 묘소를 삼척에 썼고 이양무의 묘소는 이후 조선 왕조에 의해 '준경묘(濬慶墓)'라 불리며 묘에서 20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 간장사를 준경묘와 영경묘(永慶墓) 제사에 쓸 두부를 만드는 조포사로 지정하면서 '임금의 은혜'를 입었다라는 의미로 '천은사'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6.25 전쟁 때 파괴되었고, 거의 명맥만 이어오다가 1983년에야 문일봉 스님에 의해 중건되었다.

천은사 아래쪽에 삼화사(三和寺)가 있는데, 용안당에서 머무르던 시절 이승휴가 이 삼화사에서 1천 상자나 되는 불경을 빌려다 읽었다고 한다. 삼화사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7년에 항일 의병들의 병참기지로 쓰였다는 이유로 일본군들이 절을 소각해 버려 대웅전 포함 2백 칸이나 되는 전각이 소실되는 수난을 겪었다.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해 개혁정치를 추진할 때 특별히 기용되어 사림시독학사 좌간의대부 사관수찬관 지제고에 임명되었다. 2년 뒤인 1300년에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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