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려 후기의 우정승을 역임한 인물이자, 역신(逆臣)
2. 생애
2.1. 실세 공신
공민왕이 원나라에 볼모로 가있던 시절 왕을 호종했던 인물들 중 1명이다. 그 공을 인정받아 호종공신에 제수되고, 공민왕 즉위 직후엔 참리에, 고려에 귀국한 이후엔 찬성사, 판삼사사 등에 임명되는 등 공민왕의 신임을 얻는 듯했지만 아직 왕권이 공고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기에 이런 믿음은 독재와 전횡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대원 강경파이기도 했는데 줄곧 부원배 척결을 강력히 주장했고, 기철을 필두로 한 친원파들과 팽팽한 대립을 이어갔다.
2.2. 조일신의 난
결국 조일신은 독단적으로 기철 일파를 제거하려 시도하였고, 부원배의 수괴인 기철이 도주해버렸기 때문에 거사는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기해 조일신이 그 일당인 정천기와 최화상, 장승량을 모아서 기원을 죽이고 시어궁를 포위하여 숙위하던 판밀직사사 최덕림 등 여러 명을 살해하였다.
고려사 세가 권제38, (1352년 음력 9월 29일)
한편, 조일신은 바로 다음 날, 공민왕을 겁박하여 스스로 수상직인 우정승에 오르는 한편 자신의 일파들로 조정을 채운다. 다시 다음 날엔 함께 난을 일으켰던 인물들을 살해하는 기행을 벌이기도 한다.
겨울 10월 신축 초하루 조일신이 최화상을 살해하고 왕에게 권하여 장승량 등 8~9명을 참수하여 저자거리에 효수하였다.
고려사 세가 권제38 (1352년 음력 10월 1일)
다음 날인 음력 10월 2일, 공민왕은 조일신을 좌정승 겸 판군부감찰사(判軍簿監察事)직에 임명하나, 사실상 조일신 스스로 오른거나 마찬가지였다.
2.2.1. 최후
그러나 공민왕은 조일신을 처단하려 시도했고, 결국 이 사건은 이인복과 최영 등의 활약으로 진압된다. 정동행성에서 조일신은 문 밖으로 끌려나가 목이 베여버리며 목숨을 잃었고, 잔당들 역시 제압되면서 이 사건은 마무리된다. 조일신의 난의 끝이었다. 하지만 사료가 빈약하다는 점, 고작 5일 천하라는, 상당히 짧은 기간의 해프닝이라는 점, 공민왕 즉위 원년에 일어난 점 등, 상당히 수상쩍은 요소로 인해, 정확한 앞뒤 관계가 밝혀지지도 않은 한국사의 대표적인 미스터리 사건이기도 하다.
고려사절요는 이렇게 전한다.
계묘. 단양대군(丹陽大君)의 집으로 이어(移御)하였는데, 가는 길에 고라리(高羅里)를 지나니, 조일신(趙日新)이 말 위에서 왕과 대비(大妃)·공주에게 술잔을 바쳤다. 이때 조일신이 난을 일으켜서 안팎을 호령하니 조정의 신료들이 두려워하여 입을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왕이 몰래 전 좌사(左使) 이인복(李仁復)을 불러서 말하기를,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하였다.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하가 감히 난을 일으킨 데에는 실로 떳떳한 형벌이 있습니다. 하물며 지금 천조(天朝)가 당당하고 법령이 밝으니, 만약 망설이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신다면 신은 누가 상(上)께 미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마침내 〈그들을〉 주살하고 제거할 뜻을 결정하였다. 갑진. 행성(行省)에 행차하여 기로(耆老)를 모아서 몰래 의논하였다. 다음날, 다시 행성에 행차하여서 김첨수(金添守)에게 명하여 조일신을 잡도록 하고, 행성문 밖으로 끌어내어 목을 베었다. 그 친당(親黨) 정을보(鄭乙輔)·이권(李權)·나영걸(羅英傑)·고충절(高忠節)·이종(李宗)·이군상(李君常)·박희(朴曦)·채하로(蔡河老) 등 28명을 가두었다. 적당(賊黨) 조파회(趙波廻)는 도망가서 숨었다가 노모가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왔으므로, 목을 베었다. 이때 날마다 계속해서 흐리고 흙비가 왔는데 조일신의 목을 베자, 하늘이 개었다.
고려사절요 권26 (1352년 음력 10월 3일)
4년 후인 1356년, 병신정변을 일으킨 공민왕이 기철 일파를 제거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때 조일신을 앞세워 기철을 죽이려다 마무리가 잘 되지 않고 애매하게 끝나자 조일신이 전부 누명을 쓰고 죽은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2.2.2. 사건 이후
이 사건으로 인해 공민왕은 한동안 기철 일파와 원나라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했다. 고려사를 전공한 이익주 교수에 따르면, 공민왕이 기철의 어머니에게 연회를 베풀었는데, 이 연회로 인해 고려 전체의 물가가 오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4년간의 기다림 끝에, 공민왕은 병신정변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주권을 되찾는데 성공한다.
3. 기타
조선 건국 공신인 조준의 5촌 당숙 아저씨가 된다.
고려사를 전공한 이익주 교수는 "조일신의 난은 아직까지도 수수께끼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고려사 최영 열전에는 조일신의 난과 관련하여, 최영의 행적이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공민왕(恭愍王) 원년(1352)에 조일신(趙日新)이 난을 일으키니 최영이 안우(安祐)·최원(崔源) 등과 함께 협력하여 〈일당을〉 모두 죽이고 호군(護軍)에 제수되었으며...(후략)
고려사 열전 권제26, 최영 열전 中
조일신의 난에 대한 이인복 열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민왕(恭愍王) 초에 조일신(趙日新)이 반란을 일으켜 전국을 호령하니 조정의 신하들이 두려운 마음에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왕이 몰래 이인복을 불러 말하기를,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하니 〈이인복이〉 대답하기를, “신하가 반란을 일으키면 응당 정해진 처벌이 있습니다. 하물며 지금 원[天朝]에서 당당히 법령을 밝히고 있는데 만약 주저한다면 신은 허물이 주상에게 미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으므로 왕이 조일신을 죽이기로 결심하였다...(후략)
고려사 열전 권제25, 이인복 열전 中